Living "death"tination 3화

Act. 1 화려하게 폈던 꽃

도시 레인투스는 보르니아 령을 다스리는 보르니아 후작이 사는 성을 중심으로 2겹의 성벽이 둘러져 있는 곳이다.

도시 내부가 복잡한 골목으로 유명한 만큼 성벽 외곽도 상당히 난잡한 골목으로 유명한 데 나름 정돈되고 계획적으로 건설된 내부와 달리 마왕으로 인해 유린당한 마을과 도시 등에서 대피했던 난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외곽은 막무가내로 쌓여졌다고 해도 좋을 건축물들로 인해 그야말로 던전과 다를 바없는 복잡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나마 도시에 들어가는 길은 보르니아 후작이 깔끔하게 정리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몰려오는 난민들과 성벽 내부와 외곽의 조직들로 인해 그 이상의 일을 하는 것에 난감을 겪고 있었다.

"크허억...! 케흑! 커허윽!"

그런 외곽 지역 골목에서 아젝트는 숨이 넘어갈 듯 호흡했다.

따라가던 백성현이 점점 속도를 높이자 얼떨결에 당황을 하면서도 뒤쳐지지 않기 위해 달렸던 탓이었다.

단순히 길목만 달렸다면 어찌어찌 숨을 쉴 수 있었겠지만 때때로 담을 넘거나 지붕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죽음의 문턱을 넘을 뻔했다.

'돈 좀 생기면 호흡 마법을 배워야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자 백성현이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올리고 있었다.

"쉿. 잠깐만 조용히 해줄래?"

"...누구때문인데... 하아..."

다만 뭔가 발견한 것인지 눈을 살짝 찌푸리는 그를 보고 아젝트는 입을 다물었다.

주변이 조용해진 걸 확인한 백성현은 눈을 감고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까지 모은 정보와 주점에서 만난 조직원들을 후두려패서 강탈한 정보, 그리고 점주에게서 얻은 정보를 조합해보면 이 주변에 [골목]의 작은 창고가 있다.

[골목]이 갖고 있는 수많은 창고 중 작은 편에 속하지만 어쨋든 간부 하나가 관리하는 만큼 꽤나 돈될 물품도 있을 터.

눈을 감고 소리를 들어보니 창고를 지키는 조직원은 두명. 목소리의 떨림과 말의 속도를 보아하니 아직 주점에서 있던 소동에 대해 모르는 모양이었다.

백성현은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숨을 고르고 지팡이를 만지작 거리는 아젝트를 보며 말했다.

"혹시 사람을 재우는 능력같은 거 있어?"

"일단 능력이 아니라 마법이다. 그리고, 재우진 못 해. 관련 마법을 배운 적도 없고."

반짝이는 눈빛이 따갑게 날아갔다.

아젝트는 표정을 구기며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서로 잡담을 주고 받느라 바쁜 모습을 보며 짧게 숨을 내뱉고 다시 돌아와 지팡이에 마력을 모았다.

"대신 눈을 가려줄 수 있어. 확실하게 하기 위해선 한명만 가능해."

"눈이 안 가려진 녀석은 내가 빠르게 해치우면 된다. 그거지?"

그래. 라고 답하기도 전에 뛰쳐나가는 백성현을 보고 한숨에 이어 욕설을 내뱉으며 겨우 모인 마력을 방출해 마법을 구축했다.

"제발 좀! 《안개 속 헤메임》!"

다행히 마법은 적중하여 한명의 감각을 차단시켰다.

"안녕. 친구들? 그리고 사정이 있어서 빠른 이별을 고해야하겠네. 잘 자 친구들!"

동시에 당황하던 다른 경비는 백성현이 팔로 목을 휘감고 뒤로 누우며 바닥에 꽂아버렸다.

제 한몸 아끼지 않는 몸 기술을 쓴 백성현은 곧바로 일어나 시야가 차단되었던 남은 경비의 얼굴에 무릎을 꽂아낸 후 마치 큰일을 했다는 듯 이마를 닦아내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이 건물엔 왜 온 거야?"

라고 물었지만 왜인지 딱히 답을 들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특히 눈을 반짝이며 입을 달싹이는 상대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일은 없다는 걸 깨닫고 짧게 숨을 내뱉었다.

"자경단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

경비에게서 열쇠를 가져온 백성현이 창고의 문을 활짝 열었다.

약간의 매쾌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이어진 냄새에 두 청년이 미소를 지었다.

"바로 돈이야! 집세를 내고 무기를 만들고 가끔 쳐맞아서 상처나면 병원비...가! 필요하기도 하고, 그리고 뭐 이것저것 정신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돈이지.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건 나쁜놈 지갑털기란 말씀! 하하하하! 기분 째진다! 위휴~!"

"마, 마도서의 냄새! 그것도 한두개가 아니야?!"

작은 창고는 마도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무기와 보물 등으로 예상 외의 물건들이 많았다.

과연 조직의 간부가 담당하던 창고의 값을 했다.

"빰! 빠바밤! 빰빰!"

창고의 문이 열리고 아젝트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건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백성현은 당연하다는 듯 네모난 물건에서 나온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아까 싸울 때 나오던 빠르고 시끄러운 노래가 아닌 긴장감이 생기는 듯한 노래이긴 했지만 백성현의 높은 텐션때문에 음색이 묻혔다.

'그래도 내 손에 쥐여진 이 수많은 마도서들은 값어치가 있어. 따라온 건 좋은 선택이었다. 아젝트!'

아공간 가방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쌓아둔 마도서들을 밧줄로 꽉 묶었다.

백성현을 볼때 찌푸리던 얼굴은 마도서가 시선에 걸치기만 해도 미소로 가득찼다.

"흐흐흐, 이것만 다 익히면 나도 도시급 마법사가 될 수 있어!"

기어코 입밖으로 나왔지만 상관없다. 너무 기쁜 나머지 만세도 해버렸다.

푹.

"히끅?!"

몸을 활짝 켜자 뭉툭한 뭔가에 찔린 감각이 등을 타고 전신에 퍼지며 몸이 굳었다.

설마 안에도 경비가 하나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조심히 고개를 돌렸다.

"석상도 있네?"

말문이 막힌 아젝트 대신 말하는 백성현.

그의 말대로 석상이 있었다.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준비를 하는 검사의 석상이었는데 눈대중으로 봐도 아젝트보다 더 어려보일 정도로 엣된 외모에 작은 키를 가진 소녀였지만 눈빛은 날카롭고 매서웠다.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뒤뚱뒤뚱 빠져나온 그가 공기중에 떠도는 마력의 형태를 보며 말했다.

"마, 마력이 느껴져. 이거 석화 마법에 걸렸어."

석화 마법이라는 말에 백성현은 하던 일을 멈추고 석상에게 다가갔다.

어디서 꺼냈는 지 모를 가면을 쓰면서 검을 뽑으려고 하던 석상의 손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석화 마법으로 전신을 덮었다면 죽었다고 봐야해. 안타깝지만 죽음엔 순서가 없어."

살던 고향에서 이곳 레인투스까지 오면서 여러가지를 보고 경험한 아젝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어쩌다 동행했던 어느 마법사가 석화 마법으로 마물을 처치했던 걸 본 적도 있고 던전 동행자가 함정에 걸려 석화되어 부서진 것도 봤다.

또한 자신이 배웠던 지식으로도 마력 저항력을 높여두던가 석화 마법에 전신이 뒤덮히기 전에 빠르게 해체 마법을 쓰는 것이 정석이었다.

간혹 석화된 상태로도 견디는 경우도 있지만 길어야 평균적으로 보름 정도가 한계라고 했다.

'그정도로 정신력이 강할 리가 없지.'

"맥박이 느껴지는 데, 그래도 죽은 거라고 봐야하나?"

"....뭐?"

지팡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퍼졌다.

한순간에 지금까지 배운 것이 부정당한 기분이 들어 혼란스러워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손을 뻗어 석화된 팔 위에 손을 얹었다.

손을 타고 느껴지는 맥박이 있음에도 아젝트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잠시 하늘을 보던 그는 가방에서 아티펙트 하나를 꺼냈다.

짧은 막대기에 끝에 마석 하나만 달랑 붙어있는 투박한 디자인의 아티펙트를 한 웅큼 꺼내자 백성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지만 아젝트는 신경 쓰지 않고 아티펙트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마력이 담긴 아티펙트는 푸른 마력이 날붙이 모양으로 가시화되었다.

"보통 석화된 상태라면 쉽게 부서지는 게 맞지만 안에 살아 있다면 멀쩡할 거야."

마치 석상이 부서지길 바라는 눈빛을 보며 백성현의 눈빛이 아까보다 더 떨떠름하게 변하고 있었다.

한 웅큼 꺼내진 아티펙트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백성현은 그저 허탈한 웃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아젝트가 쓰고 있는 아티펙트는 락핏 내지 멀티툴로 주 목적은 로그같은 직업군들이 던전에 있는 함정같은 것들을 해체하는 데 쓰인다.

문제는 이게 마석을 가공하여 만든 아티펙트라는 것이다.

연료로 주로 쓰이는 탓에 매물 자체가 없는 최하급 마석도 가공을 하면 3일은 먹고 살 수 있는 가격으로 껑충 뛴다고 하는데 그런 마석을 다시 아티펙트로 가공한 것이다.

'심지어 저 아티펙트는 내구도가 뛰어나도 결국 소모품이라서 매물찾기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런 비쌀 법한 아티펙트를 길드나 단체가 아닌 개인이 들고 다닌다는 건 사실상 날 죽여주십쇼라고 홍보하는 꼴과 다를 게 없다.

어쩌면 [골목]의 간부가 가방을 돌려주는 척하고 바로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하고 백성현은 추측했다.

깡!!

"아악!"

창고를 울리는 청량한 소리가 들렸다.

놀랍게도-어쩌면 놀랍지 않게도-아티펙트가 두동강나고 석상은 멀쩡했다.

낮게 쳐도 보름은 먹고 살 수 있지않을까 싶은 아티펙트가 두동강이 났는데도 아젝트는 자신이 틀린 걸 인정하기 싫다는 듯 , 다시 아티펙트를 들었다.

다시 한번 높게 올라간 팔을 백성현이 잡았다.

"그만. 석화 마법이라고 했지? 해체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아직이야. 얜 분명 죽었어. 난 그 사실을 증명할거야."

"무슨 마음인지 조금도 모르겠지만 우리 지금 포위당했거든? 나 혼자만이라면 빠져나갈 수 있긴한데, 이왕이면 쪽수 늘리는 게 좋잖아. 만약 우리 적이라면 우리가 조져지겠지만 만약 끌어들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조져지냐 좋아지냐의 차이인거지."

저 빌어먹을 뿌듯해보이는 얼굴-왜 뿌듯한 건지 감도 안잡히지만-을 보며 아젝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어느순간부터 지붕에서 발구르는 소리가 들리던 걸 이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창고의 문이 열려있는 탓에 밖이 분주한 게 보였다.

백성현은 음악이 나오던 물건을 회수해서 다른 음악을 틀고 소리를 최대로 키웠다. 아까 전에 주점에서 들리던 노래와 비슷한 부류의 음악이었다.

어쩌면 좋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아젝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들고 있던 마도서들을 구석으로 치우고 석상을 안아 창고 중앙으로 가져갔다. 예상 외로 가벼워서인지 혼자서도 가뿐히 옮길 수 있었고 그동안 백성현은 어디선가 주워왔는 지 모를 한손으로 쓸 수 있는 망치 두 자루를 손에 들고 창고 문 앞에 서 있었다.

문 앞으로 나온 백성현은 뜬금없이 건물 위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인물을 발견했다.

산발의 머리에 매부리코를 가진 남성은 주변에 있는 어중이떠중이들은 물론 그동안 잡아왔던 간부들과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

오히려 그 어중이떠중이들 사이에 간부들이 섞여 있는 걸 보아 건물 위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대략적으로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골목]의 대장.

막시무스 매드캣.

정말 저게 본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이곳 외곽지역이 아닌 내성에서도 활동 할 수 있다고도 전해지는 자였다.

'생각해보니 간부들만 쏙쏙 빼먹다가 마무리할 때 잡으러 가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꼬였네.'

다 잡을 생각이었지만 결국 이 좁은 곳에서 조직 하나가 전부 모였다.

지금까지 박살낸 간부들이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부담을 덜었지만 그럼에도 꽤 많은 숫자가 남아있었다.

"카하하핫, 불사자! 이렇게 집적 보니 반갑구만!"

"그래. 반갑다. 산발머리 친구. 근데 둘 잡겠다고 조직 전부 끌고 오는 걸 보면 어지간히 쫄았나봐?"

"뭐? 동료가 있다고?"

아.

백성현은 자신의 입을 막고 눈알을 굴렸다.

당연히 알고 온 줄 알았는데 그냥 한놈 잡는다고 전부를 끌고 온 것이다.

그러다가 본진 털리면 어쩌려고 그러나싶었지만 그만큼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아니면 소문이 무서웠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창고 안에 있는 석상이 된 소녀에게 호되게 당해서 과민반응을 하는 건지 지금까지 모았던 정보를 가지고 고민했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 했다.

확실한 건 석화마법만 풀리면 든든한 아군이 생긴다는 것이다.

안에 있는 아젝트에겐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서 혼자 안절부절 못하고 있겠지만.

일단은 시간을 끌 마음에 입을 열었다.

"이런 벌써 간파하다니 사실 나 혼자야!"

"뭐?! 하하하 하마타면 속을 뻔했잖아~"

"딱 봐도 안에 사람이 있습니다. 이 멍청한 두목님아!"

"뭐?!! 이런 망나니같은 감히 날 속였겠다!!"

누가봐도 최측근으로 보이는 간부가 매드캣의 머리를 때리며 태클을 걸자 매드캣이 백성현을 보며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이 이상한 꽁트에 잠시 얼이 빠져있었지만 결국 시간끌기는 폭력으로 해야함을 깨닫고 손에 들고 있던 쌍망치를 다시 잡았다.

"저 망나니같은 놈을 족쳐!!"

그의 말 한마디에 [골목]의 조직원들과 간부들이 일제히 몰려왔다.

가장 먼저 앞에서 검을 휘두르던 조직원의 검을 망치로 내려치고 반댓손에 있는 망치로 어깨뼈를 가격한 백성현은 문득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근데 잠깐만. 왜 내가 깡패 두목에게 망나니 소리를 들어야하지?"

그 물음에 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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