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death"tination 4화

Act. 1 화려하게 폈던 꽃

밖에서 싸움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수없이 들리는 발자국소리가 괜히 아젝트의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았다.

저 많은 사람들을 백성현이 혼자서 막고 있다.

제 아무리 죽고 다시 살아난다 한들 저 많은 적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침착하자. 적어도 마법 해체는 스승님께 확실하게 배웠잖아.'

먼저 할 것은 석화 마법의 패턴 파악이었다.

석화 마법 하나만 걸려있는 지 아니면 다른 마법이나 저주가 겹쳐있는 지부터 시작해서 어느 수준의 마법이 걸린 것인지와 마법사의 마법이냐 아티펙트의 마법이냐까지 알아낼 게 한두개가 아니기에 침착하되 빠르게 해야했다.

퍼억 소리와 함께 망치를 손에 쥔 팔이 창고 구석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충격으로 핏자국이 얼굴에 튀었지만 집중을 놓치지 않고 마력을 운용했다.

'다행히 겹친 마법은 없다. 수준은 나보다 딱 한 수위 위, 아티펙트... 그리고 잠깐만? 빛 속성 마력?'

마력을 거둔 아젝트는 석화에 걸린 소녀의 눈을 바라봤다.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눈빛에 미약하게 서린 마력이 설마 빛속성일 줄이야.

적어도 빛속성 마력에는 석화 마법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 마력의 주인은 소녀의 것이 된다.

확실하게 살아있음을 알 수 있는 신호였고 만약 마왕이 살아 있다면 용사 후보의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기도 했다.

비록 석화 마법에 걸려 아무것도 못한 채 죽음만 기다리는 처지기는 했지만.

"조금만 틈을 줘도 알아서 나오겠네."

가방에서 분필과 푸른빛이 감도는 물약을 꺼냈다.

주문마법으로 해결하고 싶지만 아까 주점에서 많은 량의 마력을 소진해 입에 물약을 꽂아두고 마법을 시전해야만 했다.

"백성현! 안에 피 안 튀게 해줘!"

팔 하나 이후로 날아오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쳤다.

답은 없었다. 애초에 답을 원하고 한 말도 아니니 신경쓰지는 않았지만 망치잡고 있던 팔이 날아온 이후로는 안으로 아무도 혹은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경이로웠다.

진짜 뭐하던 놈이었을까.

사아악.

분필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팔을 타고 올라왔다.

"흐아아아아압!!"

백성현의 기합소리가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기합소리에 손에 힘이 들어가 분필이 깨졌지만 다행히 마법진 자체엔 큰 영향은 없었다.

놀란 가슴에 잠시 멈췄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석상이 올라갈 수 있는 크기의 마법진이 필요했다. 기껏해야 작은 종이에만 그려왔었지만 다행히 스승에게 맞아가며 배운 마법진 그리기 실력은 제대로 발휘되었다.

마법진의 형태가 완성되어 갈 수록 공기 중에 떠도는 마나들이 미약하게 흔들려 잔바람을 만들었다.

마법사가 아니라면 느끼지 못할 마나의 흐름.

이 마나를 모아 마법으로 만들기 위한 포석을 깔아둔 것이 마력이다.

미약하게 흔들리던 마나는 마법진이 완성되자 고요해졌다.

마법진 안에 가둬진 마나는 이윽고 마력으로 변질되고 마법을 발동할 것이다.

다만 그 양이 부족하기에 마법사들은 마법진에 마력을 주입한다.

이론상 마법진만 있다면 막 마법을 배운 어린 애들도 고위급 마법을 발동할 수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우면 대륙의 구도가 바뀔 것이고 마법학교라던가 마탑같은 게 생길리가 없겠지.

마법진을 그리던 분필을 가방에 넣은 아젝트는 한손에는 지팡이를 다른 한손에는 마력을 회복해 줄 물약들을 손가락에 끼워뒀다.

이제 지팡이 끝을 마법진 위에 찍으면 몸에 있는 마력이 지팡이에 있는 마석을 경우해서 마법진에 주입 될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의 마법진에 마력을 주입하는 건 처음이라 떨리네.'

괜히 식은땀이 흘렀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빠르게 물약 하나를 입에 털어 넣고 마법진 위에 지팡이를 찍었다.

"흐읍!?"

순도가 높은 마력이 몸에 생성됨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땅에 박았다.

지팡이 끝에 있는 마석에는 한 차례 금이 가는 탓에 잠깐 갈 곳을 잃은 마력이 비도처럼 주변에 박혔고 아젝트의 어깨에도 하나 박힌 후 사라졌지만 겨우 정신줄을 붙잡은 덕에 넘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안도의 한숨인지 아니면 몸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넘치는 마력이 입을 통해 나오는 건지 모르는 숨을 내뱉으니 조금이지만 몸이 편해졌다.

허나 아직은 안심하기 일렀다.

마력이 빠져나가는 속도와 마법진이 형성되는 속도 그리고 마석이 얼마나 버텨줄 지 가늠이 되지 않았기에 아젝트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한번 더 물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필요 이상의, 그리고 능력 이상의 마력이 몸 안에서 활발하게 움직이자 몸이 움찔움찔 떨리기 시작했다.

시야가 돌기 시작하고 구역질과 함께 입 안에서 피 맛이 감돌기 시작했다.

"끄으읍."

지팡이를 잡고 있는 손등 위로 푸른 혈관이 도드라지면서 주변에 멍이 들었다.

누군가 살짝만 건들여도 고통이 온 몸에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리라. 그럼에도 확실하게 발동되어가고 있는 마법진을 보며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 석상이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빛 속성 마력? 확실히 강할 것이지만 어쨌든 이렇게 석화되어 있다.

도박이다.

밖에서 싸우고 있을 백성현이 얼마나 더 버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혼자 도망갔을 지도 모른다.

'조용해졌어.'

그제서야 사방이 조용해진 걸 알 수 있었다.

싸움은 진작에 끝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겼을까.

"꽤나 애먹었구만."

"......"

처음 듣는 목소리지만 모두가 조용한 상황에서 혼자서 말하는 걸 보아 [골목]의 간부급 이상이지 않을까 추측되었다.

눈만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고개도 돌리고 싶었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아마 수준에 맞지 않는 마력을 억지로 만들어 마법을 발동하려고 하니 몸이 굳은 것 같았다.

"애송아. 보아하니 수준에 맞지 않는 마법을 쓰려는 거로 보이는데. 그러다 죽는다고?"

다행인 점은 입구 부근에서 더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아젝트가 마법사이기에 어딘가 어떤 함정이 있을 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일테지만 금방 함정이 없다는 걸 눈치챌 것이다.

'아직 더 많은 마나가 필요해.'

아젝트와 매드캣의 거리는 사실상 일직선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더라도 검만 던져도 충분히 맞을 만한 거리기도 했다.

급한 마음에 함정 하나 만들지 않는 자신을 탓했지만 별 수가 있었을까.

지금 할 수 있는 건 마력을 마법진에 쏟아내는 것.

그렇다면 아예 마석을 터트리자.

콰가가각!

발 끝에서부터 머리까지 전신에 있는 마력을 심장까지 끌어올렸다.

심장까지 모인 마력이 심장을 강하게 조여 호흡이 어려웠지만 다행히 지팡이를 잡고 있는 팔을 통해 더 많은 마력이 빠져나가 마석을 거쳐갔다.

"끄륵!"

강제로 마력이 지나갈 통로를 넓힌 팔이 먼저 검붉게 변했다.

티딕 소리와 함께 마법진에 주입되지 못하고 마석에 고여있던 마력들이 날카롭게 벼려져 사방에 날아갔다.

"막아!!"

그제서야 매드캣이 부하들에게 명령하며 뛰어들었다.

제 아무리 낮은 등급의 마석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폭주시키면 최악의 경우 이 근방이 날아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후작도 구경만 하지 않을거야!'

[골목]의 두목인 매드캣이 성 내부가 아닌 외곽에서 행동했던 이유가 최대한 후작에게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였고 성벽 내와 달리 외곽에서 활동 하는 것이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이미 충분히 외곽 지역 여러 조직이 무너진 소문과 함께 외곽 지역을 주름 잡던 거대 조직 중 하나인 [골목]이 폭발에 휘말렸다는 소문이 돌면 안그래도 눈엣가시로 여겼던 후작의 군대가 성벽 내에 있는 조직들과 손을 잡는 한이 있더라도 정리 작업에 들어갈 터.

그런 일만큼은 막아야 했다.

매드캣의 팔뚝에서부터 시작해 손바닥까지 감싼 프로텍터를 앞으로 내밀었다.

손바닥에 붉은 보석이 박혀 있는 것을 빼면 단순한 디자인의 프로텍테에 마력이 모여들자 마력의 흐름을 느낀 아젝트가 프로텍터의 정체가 석화 마법을 일으키는 아티펙트임을 알 수 있었다.

아니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모를 수가 없었다.

이윽고 붉은 보석에 빛이 모여들었다.

반사적으로 머리에 직접적으로 닿는 걸 방지하기 위해 물약을 들고 있던 팔을 뻗었다. 단순한 움직임에도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고통이 뒤따랐다.

"사정거리에 들어왔구나! 애송아!"

손끝이 굳어간다.

회색 빛이 감도는 손이 보였다.

석화되어 가는 속도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그나마 현재 마력이 흘러 넘치는 상황이 아니었으면 순식간에 죽었겠지.

파삭.

아. 부서지는 마석을 보며 매드캣은 웃었다.

폭발은 없었다. 전방위에 쏘여지던 벼려진 마력들도 이제 사라졌다.

비록 지금은 체내에 남아있는 마력 찌꺼기로 겨우 막고 있지만 힘이 빠져 지팡이를 잡던 손이 점점 미끄러져 거의 누운 상태의 아젝트의 머리에 아티펙트를 직접 갖다대기만 해도 즉사 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문제에 불과 했으며 이런 어린 마법사가 이 이상 뭔가 더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뒈져..., 버려! 도둑신 사푸도 상종 안 할 새끼...!"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매드캣을 보면서 아젝트는 오히려 한 차례 마력을 더 끌어올렸다.

눈, 귀, 코 그리고 입에서까지 무언가 흐르는 감촉을 느끼며 고향에서 쓰이던 손가락 욕과 함께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분명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표정을 보려 했건만 오히려 일그러지는 건 매드캣이었다.

점점 미끄러지듯 힘이 빠져 지팡이 끝을 잡고 바닥에 거의 눕다시피하던 아젝트의 입꼬리는 어느순간부터 슬며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돌아 불사자가 다시 나타났는지 살피고 옆에 있는 석상의 상태도 살폈다.

그래봤자 발버둥이다.

그래야만 했다.

"빛의 마력을 가진 용사의 가능성을 가진 핏덩이는 멋진 석상이 되었다! 밖에 있는 불사자도 결국 석화되었지!"

근데 이 불안감은 뭐지?

"그런데 너같은 애송이 마법사가 뭘 할 수 있다는 거냐!"

그래 끝이다.

매드캣은 곧 [골목]이었다. 바닥부터 시작해 무려 외곽에서 무시 못 할 조직으로 만들어낸 능력자가 자신이었다.

고성능의 아티펙트까지 손에 넣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국가도 설립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단 말이다.

"왜 네 녀석도!"

옆에 석화 되어 있는 핏덩이가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처럼.

"웃고있냔 말이다!"

아티펙트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붉은빛의 보석에서 나오는 빛이 아젝트의 반신을 돌덩이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아젝트는 올라간 입꼬리를 유지하며 말했다.

"빛이여."

쩌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째선지 시야가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언제부터?"

환각 마법.

그러고보니 보고를 받은 기억이 있었다. 오늘 아침에 잡은 환각술사가 있다고.

허나 보고상에는 실력있는 마법사가 아니었을 터인데.

매드캣의 추측은 오래가지 않았다.

깨진 시야 사이로 빛이 새어들어와 눈을 가렸기 때문이었으며 매섭게 전신을 찌르는 듯한 투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빛의 마력을 가진 검사가 석화에서 풀려 있었다.

"참(斬)!"

콰아앙!!!

아젝트는 감탄했다.

그저 검질 한번에 부채꼴로 외곽의 골목을 이루던 건물들의 윗부분이 날아갔다.

그 공격이 비록 매드캣을 죽일 수는 없었지만 근처에 있던 조직원들과 몇몇 간부들이 어린 검사가 갈대밭에서 휘두르는 검에 베여나간 갈대처럼 흐트러졌다.

만약 힘이 빠져 자세가 낮아진 게 아니라면 본인도 베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았지만 지금음 석화된 몸을 원상복구 하는 게 급선무였다.

아직 멀쩡한-이라고 하지만 피멍투성이인-손으로 석화된 손에 쥐여진 물약을 빼내어 입에 털어넣고 조금만 늦었으면 죽었겠네 라고 중얼거리며 마력을 전신에 퍼트려 석화된 부분을 밀어냈다.

"와."

갑작스러운 감탄사에 시선이 절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따라갔다.

앳되어보이는 소녀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하늘은 파랗구나."

당연한 사실을 입에 담을 정도로 석화되었던 시간이 길었던 걸까. 그동안 이성을 유지하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라고 생각하려던 그때 소녀를 양팔을 하늘로 뻗었다.

"내가 돌아왔다!!!!!!!!!! 내가!! 살아남았다!!!! 하늘은 푸르구나!!!"

아젝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눌렀다.

"으하하하하!"

소녀는 체내에 쌓였던 마력들을 사방에 발산했다.

빛의 속성을 가진 마력은 성(聖)속성을 지닌 마력과 같이 날 것으로 발산하더라도 주변에 피해를 주지는 않는 특이한 마력 속성이었기에 아낌없이 발산했다.

물론 성속성 마력과 달리 발산만으로도 주변을 치유하는 효과는 없었기에 아젝트나 [골목]의 일원들이 치료되는 경우는 없었다.

어느정도 마력을 발산했던 소녀는 그 어느때보다 활기찬 표정으로 매드캣을 바라봤다.

"오랜만이다! 악당! 네녀석에게 공격당하고 한달! 난 쉬지 않고 단련하면서 기억하고 있었어!"

"망할 핏덩이가...!"

소녀는 한껏 도발한 후 주변을 살폈다.

석화가 제멋대로 풀렸을 리 없으니 누군가 풀어줬을 것이고 쉽게 찾아냈다.

누가봐도 마력을 잔뜩 써서 괴로워하는 전형적인 마법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젝트였다.

생명의 은인에게 말 걸까 했지만 사실 매드캣을 상대로 등을 돌릴 자신은 없었기에 가볍게 윙크만 날렸다.

윙크를 받은 생명의 은인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 같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순식간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간간히 신음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매드캣은 입술을 씹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아티펙트를 다시 작동시켜 석화 마법을 걸고 싶었지만 손을 살짝만 움직여도 본능이 손을 내미는 순간 잘린다고 말하고 있었다.

"모두..."

그래도 결단을 내려야한다. 이미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좋든 싫든 다른 조직의 개입은 사실상 확정이고 최악의 경우 후작이 직접 결단을 내릴지도 모른다.

"모두 돌격!!"

그렇기에 명령을 내렸다.

"뒤로!!!!"

명령이 끝나기 무섭게 [골목]의 살아남은 모든 조직원들이 마침 그 명령만을 기다렸다는 듯 사방팔방으로 도망, 아니 뒤로 돌격했다.

과연 외곽 지역에서 주름잡는 조직답게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골목]을 보며 아젝트도 소녀도 벙찐 얼굴로 있을 뿐이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