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death"tination 5화

Act. 1 화려하게 폈던 꽃

"우욱! 우웨엑!"

순식간에 도망가버린 [골목]을 보던 아젝트는 전신이 뒤틀리는 감각과 함께 속에서 피를 게워냈다.

너무나 황당한 광경을 보는 바람에 잊고 있었지만 현재 그는 석화 마법을 밀어내기 위해 물약을 하나 더 섭취한 상황.

곧바로 사용해도 위험할 터인데 2초씩이나 몸 속에 재워둔 탓에 결국 속이 망가져갔다.

'붉은 피에 섞인 푸른 빛. 누가 봐도 마나 중독 증상이군.'

마법사가 된지 얼마 되지 않는 초짜들이 제일 많이 걸리고 제일 많은 사망 이유로 손꼽히는 마나 중독을 나름 어느정도 마법사로 지냈다고 생각했던 아젝트가 걸리니 헛웃음이 절로 나오려 했지만 뒤따르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뒤늦게 몸 속에서 날뛰는 마나를 마력으로 치환하며 석화 마법을 밀어내기 위해 한쪽 팔을 마법진 위에 올려뒀다.

다행히 마법진은 아직 유효했고 워낙 순도가 높은 마력이다보니 반신을 뒤덮었던 석화마법은 팔뚝까지 물러났다.

"크흡!"

다만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몸에서 무리를 한 탓이었을까.

겨우 멎었던 핏물들이 코와 눈을 통해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고 역시 푸른빛이 섞여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중마법진을 그리지 말걸.

혹시 모를 아주 작은 틈을 만들기 위해 석화 해제 마법진 위에 환각 마법진을 따로 만들어 석화 해제 마법이 어디까지 진행되는 지 속였었다.

거기에다 깨어난 소녀가 예상보다 더 강하고 상황판단이 빨랐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만약 예상대로 혹은 그보다 더 약하거나 조금만 얼탔다면 오히려 당하는 건 이쪽이었을 것이다.

"끄흑! 카학!"

결과는 석화 마법을 다 밀어내 없앴지만 이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괜찮아."

소녀가 아젝트의 손을 잡았다.

손과 손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빛속성 마력이 폭주하고 있던 마력들을 안정시켰다.

"내 이름은 안나, 안나 파머스야. 특별히 너에겐 애니라는 애칭으로 부를 수 있게 허락해줄게. 내 생명의 은인이니까."

안나의 말은 아젝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치기도 했고 귀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일 시간에 몸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였다.

다만 살짝 떠진 눈에 보인 것은 무시할 수 없었다.

빛의 마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탓일까? 사방에 빛망울이 반짝였다.

마법사 스승 밑에서 교육을 받으며 다양한 속성의 마력들을 봤지만 처음보는 빛의 마력에 아젝트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호흡이 안정되고 발작도 멈춘 상태였다.

빛망울을 만들어낸 빛의 마력을 잡고 싶어 손을 뻗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이 마력을 손에 담아가고 싶었다.

만약 담아갈 수만 있다면 담아가 연구를 해보고도 싶었다.

빛의 마력은 그 어떤 속성들 보다 아름다웠다.

따갑게 들어오는 시선에 안나는 난감하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눈 앞에 마법사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노려본다는 건 어떤 이유가 있겠지. 적어도 적의는 아니라는 점이 안나에게 안도감을 줬다.

"...아...!"

어느정도 마력이 안정감을 되찾자 안나는 천천히 손을 뗐다.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지만 정신을 차린 아젝트는 겨우 자리에 앉아 재잘거리는 소리가 없다는 걸 깨닫고 잘 돌아가지 않는 고개 대신 눈동자를 굴렸다.

"여기...서 빠져나갈려면..."

찾는 건 의외로 쉬웠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깔려있는 백성현.

다만 깔아뭉개고 있는 사람들도 백성현도 석상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제일 밑에 있는, 하아... 저 동대륙 출신으로 보이는 녀석의 머리를 쳐줄 수 있어?"

"...뭐?"

천성부터 해맑아보이던 안나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고 황당함이 자리를 잡았다.

마법사는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은 들었지만 다짜고짜 사람의 목을 자르라니.

석상이 되고 정신을 다잡아서 한달을 견뎌낸 어린 소녀에겐 납득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부탁할게. 여기서 안전하게 빠져나가려면, 저 녀석이 필요해."

필요하다면서 왜 목을 치라는 건데?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말을 끝으로 주르륵 힘빠지듯 바닥과 하나가 되며 기절했다.

"끄응..."

침음을 흘리던 안나는 고민을 했다.

비록 빛의 마력으로 안정시켰지만 어디까지나 임시조치. 계속 저렇게 내비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목을 베라니.

이미 검은 뽑혀있었다.

행동만, 행동만 하면 되는데.

아직 살아있다면 살아있는 데로 문제고 석화와 동시에 죽었다고 해도 이건 시체훼손아닌가.

"진짜 이 판단이 맞아?"

눈을 질끈 감았다. 질끈 감은 눈에 눈물이 고였다.

9살에 빛의 마력을 깨닫고 10살에 곰을 잡은 후로 13살인 지금까지 이정도의 위기를 느낀 적이 있을까. 한달 전에 석화되어 죽을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이정도의 위기를 느끼진 않았다.

하지만 생명의 은인이 뭔가 생각이 있으니 하라고 한 거 겠지.

"에잇! 모르겠다!"

고민이 긴 것에 비해 결정은 깔끔했다.

순식간에 검에 검기를 씌우더니 그대로 아래에서 위로 그으며 머리를 날려버렸다.

그러면서도 손에 남은 감각이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어 검날을 보며 찝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손끝에 이질적인 감각이 남았든 말든 검기가 잦아들자 안나는 검집에 검을 꽂아넣었다.

변화가 있을 지 목이 사라진 백성현의 시체를 계속 보기도 하고 마력을 퍼트려 주변을 탐색도 해봤지만 몇 분이 지나도 별 일이 생기지 않자 괜한 짓을 한 건가 싶었다. 이럴 시간에 아젝트를 데려가 치료를 해야한다. 라고 생각하며 뒤돌았다.

드드득. 바위와 바위가 맞부딪히며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던 안나는 그대로 반바퀴 더 돌아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봤다.

단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쌓여있던 사람 무더기 석상은 아마 안나가 석화 마법에서 풀릴 때 내지른 참격에 윗동(?)이 잘려 있지만 그럼에도 엉켜있는 숫자로 봐서 결코 가볍지 않는 무게였다.

그 무게를 방금 목이 베였던 남성이 목이 어느새 다시 생긴 채로 들어올리고 있었다.

"흐읍!"

힘들어보이지는 않지만 습관적으로 기합을 내지른 남성은 번쩍 들어올리더니 옆으로 슬쩍 밀듯이 던졌다.

안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주먹을 쥐락펴락해보고 공중에 주먹질도 해봤다.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4번째 내민 주먹에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음!"

뭔가 검증이 끝났다는 듯 만족한 미소를 지은 그는 안나를 마주봤다.

"반가워. 안나 파머스. 난 백성현이라고 해."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안나의 경계심이 한층 올랐다.

지금 기절해 있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 곧바로 이름을 말하니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귀가 좋다고 해도 석화된 상황이었기에 소리를 들을 리도 없었다.

"아하하, 눈빛 매섭네. 아마 돌로 굳어버린 날 죽인 건 그쪽일테고. 그러면 음음. 힘은 합격. 그동안 조사해온 걸로 보아 인성도 합격... 음음..."

뭔가 훑어보는 눈빛이 기분나빴다.

마치, 막 빛의 마력을 얻게 된 후에 마을에 있던 경비대장이 보던 미묘하게 끈쩍한 눈빛이었다.

그러면 이 다음 말도 예상이 갈 수밖에.

"같이 활동해볼래? 지금 괜찮은 서포터는 구했는데 쓸만한 딜러가 없거든. 탱커는 뭐 내가 어떻게든 한다치고."

"...제가...왜요?"

"그야 목적이 있잖아. 그쪽 행동패턴을 조사해본 결과, 정의감이 넘치는 전형적인 초보 영웅님이신데 마침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외각지역 조직들을 괴멸시키는 거거든. 겸사겸사 돈도 구하고. 그 과정에서 그쪽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음~ 그래 맞아 구하러 왔다. 아니 영입하러 온 거야. 한달이나 걸렸지만."

"...한달..."

"응. 한달."

뭔가 고민중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굴리는 안나의 모습에 백성현은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안되면 어쩔 수 없고, 그렇게 말하는 백성현은 목에 걸린 호루라기를 불고 있었다. 소리는 없었다.

"커흑!"

안나의 고민은 길어질 수 없었다.

뒤쪽에서 다시 마력이 폭주하는 지 몸을 들썩이는 아젝트의 모습에 안나와 백성현이 동시에 펄쩍 뛰며 당황했다.

"아! 임시조치가 이게 시간을 다 했어!"

"아이고 우리 서포터 죽겠네!"

둘은 다급하게 아젝트 곁으로 달려갔다.

안나는 아까처럼 손과 이마에 손을 얹은 후 마력을 흘려보내 안정시켰고 백성현은... 음악을 틀었다.

마치 푸른 초원 위에서 해먹에 누워 햇살을 만끽하는 듯 마음에 평안이 오고 낮잠이 찾아오는 듯한 음악이었다.

새삼 진지한 얼굴로 아젝트의 귀에 음악이 나오는 물건을 갖다대자 마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손을 갖다대고 있었던 안나가 눈동자만 올려 백성현을 바라보았다.

"......"

매섭기도 하고 뭔가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에 삐찔거리며 뺨을 스쳐 내려가는 땀을 닦으며 괜히 엄치를 치켜세웠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음악을 저장해둔 날 칭찬해주면 좋겠는데. 그런 눈빛 말고,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게...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려던 백성현은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박수를 쳤다.

이곳 도시 레인투스에 온 지 약 두달 째, 오자마자 도시를 조사하고 조직들을 깨부수는 과정에서 접촉해온 단체에게 받은 건 호루라기 뿐이 아니었다. 복잡합 도시에 걸맞는 다양한 비밀 장소들 중 제공받은 장소들이 있었고 마침 가까운 곳에도 하나 있었다.

"비밀 아지트에 연락망이 있어!"

"비밀... 아지트?!"

안나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더 가야 볼 수 있는 외진 마을에서는 어린 애들이 놀거리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농가의 부모님을 도와야했는데 어쩌다 시간이 빈 아이들은 항상 모여서 근처를 돌아다니거나 자신들만의 모임장소를 만들고 놀았다.

그런 안나에게 아지트라는 단어는 옛 기억-라고 해봤자 길어야 한달 전이지만-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단어였다.

심지어 '비밀'이라는 접두사가 붙었으니 눈에 빛이 모여들어 반짝임을 만들고 있었다.

"거기서 연락망을 이용해서."

"연락망!!"

"우리를 도와주는 비밀 조직에게서."

"비비비, 비밀 조직!!!"

"개쩌는 비밀 병기를 요청하는 거야!"

"비밀 병기!!!!!"

막 임시조치가 끝난 안나는 양 손바닥을 양볼에 딱 붙여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과거 모험가를 했지만 지금은 은퇴한 마을 이장님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현 황제가 황태자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던 시절 여러 모험가들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사상 최다의 속성 마력을 가진 황제와 늙지 않는 창술가, 혈향의 마녀, 호탕한 바라투스 외에도 여러 영웅들이 결국 끝에는 마왕을 잡는 이야기였다. 과거 마왕성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마을인 만큼 그 신빙성은 더 높아보였다.

안나는 떨리는 손을 뻗어 백성현의 손을 잡았다.

"대장님이라고 불러도 될까?"

"대장이라니 그런 부담스러운! 하지만 그렇게 원한다면 허락해주겠다! 파머스 대원!"

"대장!!"

"파머스 대원!!"

"대장!!"

"퐈뫄스 대원!!!'

"돼좡!!!"

시끄러. 기절한 아젝트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안나와 백성현은 노을을 등지며 뜨거운 눈물과 함께 악수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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