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잘키웠나.....

이런 식으로 재회하고 싶지는 않았다…정말로.

히라데 시엔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속도 모르고 드물게 도시의 밤하늘이 맑았다. 별이 총총 떠있을 정도로. 이런 하늘을 이 동네에서 보는 게 정말 얼마만이지. 왜 하필 이렇게 날씨마저 좋은 거지. 차마 눈앞을 쳐다볼 수가 없어서…더 정확히는, 눈앞의 광경을 외면하고 싶어서 그는 가만히 그렇게 하늘만 빤히 바라본 채로 별을 하나 셌다.

별 하나에 도망,

별 하나에 가고,

별 하나에 싶다….

장장 7년만의 재회였는데, 정말로 이런 식으로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다. 뭐였더라, 전에 동료 교사한테 들은 말이었는데. 야생 동물(특히 고양이) 같은 것들을 길들여 키우면 집으로 가끔 이상한 것들을 물어 온다고 했다. 전혀 달갑지 않은 선물들. 죽은 뱀 시체, 쥐 내장, 기절한 벌레 따위. 주인이 좋아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신나서 가져다 바치는 껄끄러운 선물들 말이다. 전혀 알맞지 않은 비유지만, 이 상황에서 그 이야기가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정말로 뭘까.

진짜로 도망가고 싶다. 키우던 들고양이가 죽은 뱀을 물어다 문고리에 걸어 둔 심정도 이것만큼 기절할 지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다. 눈 앞에는 양손과 양 다리가 묶여 포박당한 채, 눈이 안대로 가려지고 입가에는 청테이프가 칭칭 붙어 있는 여동생이 있었다.


문제의 원인은 히라데 시엔이 평소답지 않게 거나하게 취해서 비틀비틀 집에 기어들어온 날에 있었다.

취한 것 자체는 문제가 전혀 안 됐다. 아무튼 오버드라는 존재의 정신력은 일반인보다 몇 배는 강한 법이고, 취할 때까지 마시기 위해 대체 얼마를 시켰던가 하는 것 정도는 사소한 문제가 될 수 있었겠으나 그날 히라데 시엔이 술집으로 휘적휘적 기어가며 쥐고 있던 카드는 카스가 쿄지 명의였으므로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뭐, 숙취. 음, 그렇게까지 오버드가 허약하진 않으니까. 그것도 됐고. 비틀비틀 집에 들어와 문고리를 쥐는 시엔을 받쳐 든 아리스는 대번에 울먹거리며 대체 어쩌다 이렇게까지 마시셨냐, 무사히 집까지 오신 거 맞냐, 소지품 도둑맞은 건 없냐 하고 울음을 터뜨렸지만 뭐 이것도 달래면 됐고….

그럼 뭐가 문제였느냐, 하면.

‘어, 어, 어쩌다, 이렇게, 마, 마시시구.’

‘…어어? 어….’

‘누, 누, 누, 누가 소, 속상하게 하셨, 하셨어요…?’

그렇게 시엔의 팔을 덥썩 붙잡고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는 제자는 금방이라도 시엔의 입에서 나오는 인물을 세상에서 더 찾아볼 수 없게 분해해주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서 시엔을 두 배로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 제자로 말할 것 같으면 언제나 ‘히라데 시엔을 심란하게 만드는 대상’을 랭크하자면 1위에 올라감직 했으나 스스로는 전혀 그것을 알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아니, 사실은 어쩌면 시엔 본인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면 그는 그날 오랜만에 헤어진지 7년이 넘은 여동생이 그리워서 술을 좀 퍼 마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분으로는 동생에게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한탄도 좀 했고, 미안하기도 했고, 용돈도 줘야 하는데, 어, 그리고 또 뭐더라…아무튼.

시엔은 대충 허공으로 손을 뻗으며(아니, 사실 그 위치엔 아리스가 있었다. 취해서 위치를 분간하기 힘들었을 뿐이다.) 웅얼거렸다.

‘카네….’

그리고 그대로 푹, 현관에서 취기를 이기지 못해 잠들어 버렸다.

그 탓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동생의 이름을 부른 순간 위험하게, 아니, 대체 어떤 생각을 한 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맨정신으로 표정을 마주했다면 ‘아리스, 안 돼! 뭔지 몰라도 안 돼! 일단 하지 마!’를 외칠 법하게 번쩍이던 사랑스러운 제자의 눈동자가 빛난 것을.

…그랬다. 맨정신이었으면 말릴 수 있었을 텐데. 술이 웬수는 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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