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열백호] 안녕 일상.

20231230 호백온 "짝사랑 최후의 날" 농놀피마 님 신간 회지 <양호열 지우기> 글 축전

호열백호 온리전 "짝사랑 최후의 날"에 농놀피마 님이 내신 그림 회지에 드린 글 축전입니다!

한글이 없어서 엉터리로 장 수를 체크하는 바람에, 피마 님이 편집하셨더니

무려 한 페이지 분량이 늘어난...엄청난 민폐를 끼쳤는데도 ;ㅂ;

"제가 한 장 덜 그려도 되니 오히려 좋아요! 핫핫하!"하고 호쾌하게 넘겨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불가능해보이는 일정을, 묵묵히 피벅마벅. 작업해나가시는 과정이 너무 감탄스러워서,

마없 화공 작업 짓시에서 입/손이 봉인된 주접러(=작업짓시에 적합하지 않은 자...)인 제가,

꾸벅꾸벅졸아가며 피마 님이 계신 짓시에 굳이 구욷이 엉덩이 붙이고 버티며

아이디어가 러프로, 선으로 살아나는 과정을 숨죽이며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다시 한번 신간 회지의 발행과, 행복했던 호백온 참가, 성공적인 전리품 획득을 축하드리며...!

이런 경험에 제가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피마 님https://x.com/nongnolpima?s=20

거듭 거듭 감사드립니다.

2024년에도 행복한 호백해요!

회지의 샘플은 여기에!

https://posty.pe/tqrqs4

*스포일러 주의!*

혹시 아직 회지 본문을 못 보신 분들께는

축전에 약간의 본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점,

주의 당부 드립니다.


안녕, 일상.

멈칫. 커다란 반동으로 백호의 몸이 덜컥, 멈춰섰을 때, 양호열은 그 정지를 눈으로 봤다기보다는 마주잡은 손을 통해 느꼈다. 철렁, 얼마 전에 겪은 사건의 여파로 쉽사리 안 좋은 상상에 빠지는 마음이 백호의 움직임만큼 크게 요동친다. 

“...왜 그래, 백호야?!”

아, 하고 백호가 잠깐 졸았다 깬 것처럼 머리를 흔들었다. “어, 어. 아무것도 아니다, 호열아.” 단 두 음절, 제 이름이 나오자마자, 마법의 주문처럼 긴장이 풀렸다.

“어디 안 좋은 것…아니지?”

“응? 어어, 그런 거 아니다!” 

그보다 호열아, 이 천재가 말이다…티 나게 말을 돌리지만, 으레 백호가 하던 이야기. 당연하게 부르는 이름. …맞잡은 손의 체온. 평소의 백호야. 그 주문만으로도 깨어나려던 근심은 다시 잠들 수 있다. 

그대로, 였다. 변함없이 양호열은 강백호와 등교하고, 점심 도시락을 나눠먹고, 부 활동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함께 귀가한다. 어찌저찌 사귀기로 하고, 백호도 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맞잡은 손에 가득한 땀과 열기에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밖에는 사귀기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뭐 어때, 이대로도 좋잖아.

양호열의 일상에 강백호가 고스란히 돌아와 당연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것만으로도.

기억이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인데 백호가 내 마음을 받아줬잖아.

이 정도면 충분해.

내일도 일상 그대로의 하루가 되겠지.

그거면 충분해.


...라고 되뇌며 잠든 것이 불과 몇 시간 전이다. 말만 하면 그 반대로 이뤄지는 징크스라도 있나?

신문배달을 위해 현관문을 열던 양호열은 갑자기 코 앞으로 불쑥 내밀어진 뭔가에 반사적으로 주먹을 날릴 뻔 했다.

넘실대는 하얀색 너머로 선명한 빨강, 그로 인해 더 깊이 새겨진 멈춤,의 신호만 아니었다면.

흐아악!!! 간발의 차이로 멈춘 주먹에 맞을 뻔한, 호랑이 울부짖음같은 목청은 익숙하다못해 애틋한 제,   

“...백호…?!” ..가 맞는데. 이게 뭐야…?

제 주먹에 박살나 흩뿌려졌던 모 선배의 앞니와, 뿜어져나온 코피처럼 하얗고 빨갛고 쬐그만 것들…

착각하기 딱 좋은 크기의, 오종종한 희고 붉은 꽃송이들이, 그 선배의 입가 정도의 높이에서 한들거리고 있었다.

무심코 주먹이 날아갈 뻔한 것은 그 탓이다.

“호 호 호열아, 자, 자, 잘 잤냐…!” 

“...백호야? ”

…백호가 맞긴 맞는데? 보송하고 말랑한 것들을 와들와들 떨며 꽉 그러쥐어 더 큼직해보이는 손도, 더듬거리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도, 벌개진 얼굴도…다, 본 적은 있지만…백호가 이런 얼굴 하는 거, 정면에서는 처음 본다고?!

오 오 오다 주웠다!!! 양호열의 품에 방문 판매원 샘플 떠맡기듯 냅다 꽃다발을 안겨준 강백호는 순식간에 줄행랑을 쳤다.

뒤를 돌아보며 “피, 필요 없으면 버리든지!”하고 덧붙이다 고꾸라질 뻔하면서. 

 


안녕Hello, 어제와 같은 하루. 안녕Bye…어제와 같은 하루. 

새벽의 꽃다발 투척(?) 이후로 줄줄이 이어진 비일상은 다음과 같았다.

신문 배달하면서 백호 마주치지 못하기.

(방학이라지만) 등교 같이 못하기.

하루 종일 농구부 특훈이라 제대로 말도 못 나누고 아르바이트 가기.

…백호가 저에게 마구 손을 흔들다 주장에게 꿀밤을 맞는 것을 봤으니 이건 어쩔 수 없다 쳐.

어제만 같으랬더니! 하나부터 열까지, 평소에 하던 것을 하나도 못했잖아!!!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비일상에 언짢아도 용케 아르바이트를 마친 양호열은 울컥 짜증이 치밀어, 평소와 달리 문을 거의 부술 듯 열어젖혔다. 

“끄악!!!”

“...배, 백호야? 왜 여기 있어?” 

문에 정통으로 부딪혔는지 발간 코가, 이마가, 얼굴이 여기서 더 빨개질 수 있구나. 거의 머리카락만큼 빨개진 백호가, 새벽과는 다르게, 우물대느라 반쯤 속삭이다시피 한 

“그으…그…애, 애, 애인 마중. …많이 놀랬냐?” 란 말에,

양호열은.

놀랐냐고? ...귀신에 홀린 것 같다. 다 홀렸으면 정신차리라는 듯 물벼락이 쏟아졌다.

“으앗! 미, 미안타 호열아!!!” 

강백호가 헛손질을 하는 바람에 요란하게 양호열의 그릇으로 떨어진 차슈에서 튄 뜨거운 라멘이 양호열의 얼굴에 화끈한 국물 싸대기를 날렸다. 맞잡은 손처럼 국물 속에 나란히 잠겨 있는 차슈 두 장. 양호열의 라멘 그릇에서 처음 보는 광경이다. 

“이놈들, 음식 갖고 무슨 짓이야! 얌전히 먹지 못해?!” 

누, 눗…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라멘가게 주인에게 연신 꾸벅거리며 사과하는 강백호까지. 어제와 하나부터 열까지 달랐던 하루의 대단원이었다.


아. 딱 하나, 있구나. 어제와 같은 것.

혼비백산한 채로 별이 총총한 거리를 걸어 돌아가는 동안, 쌀쌀해진 밤공기에도 손이 전혀 시리지 않다. 손가락 하나하나, 일일이 깍지껴 맞닿은 두 손바닥 안에서, 난로처럼 뜨끈한 체온과 공기만큼 서늘한 편인 체온이 기분좋은 온도로 섞여간다. 

“...백호야.”

“어, 어어?!” 

“아까 사장님한테 혼나느라 차슈 고맙다고 말 못해서 미안. 마중 나와줘서 고마워. 꽃도 예뻤어.”

“그, 그, 그르냐!” 푸헹, 콧바람이 나올 듯 대번에 의기양양해진 백호의 얼굴을 보니, 아무렴 어떤가 싶다. 

“..호열아, 나, 기억 잃었다가, 되찾은 거잖냐.”

무심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설마 무슨 부작용이라든가.

“…혹시, …뭔가 또 기억 안 나거나…아프거나, 그래?”

“눗…그런 건 아닌데. 한번 잃었다가 돌아와서 그런가? 가끔, 어떤 기억이 갑자기 확! 하고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니까…TV에서 재방? 해주듯이?

네가 나 러닝하는 거 보고 웃어주는 거나,  차가운 포*리 건네주는 거랑, 네가 나 기다리다가 눈 마주치던 거.

...그럴 때마다, 무지, 무지 기뻤던 거. 그런 게 불 킬 때처럼 확! 환하게 기억나드라.”

“우리 사, 사, 사귀는 사인데, 네가 나 보고 웃고, 나 데리러 오고, 나 맛있는 것 주는 거. 전이랑 똑같잖냐.

나도 전이랑 똑같이 엄청 기쁘구. 그러다보니까! 아, 나 호열이 네가 정말 좋구나.

그리고 전에도 똑같이 엄청 좋아했구나! 하고 알게 됐지 뭐냐.”

 

점점 뜨끈뜨끈해지는 손깍지를 한번 슬쩍, 고쳐 쥔 백호가 더듬거리며 덧붙였다. 

“네가 그럴 때마다 엄청 서, 설레니까, 그, 그니까…나두, 너한테 똑같이 해주고 싶다.” 

 

일상은 그대로였다. 잊었다 되돌아온 기억이 한층 선명해졌듯, 그 위에 맞잡은 손과 연인 사이라는 새로운 시점을 덧입었을 뿐. 그러니까 소원은 이뤄졌다.

 

안녕Hello, 일상.

안녕Hello, 새로운 일상.  

 


*쓸 당시에 농최날을 다시 확인하지 않고 써서 만만 선배 앞니 박살 정황이 약간 헷갈렸어요...

하지만 농최날 전에 앞니가 날아가지 않았었더래도, 양떤남자의 키나 펀치를 맞았더라면 앞니가 무사했을 리가 없다!

라며 애써 멋대로 뇌절했습니다. ...이미 이대로 인쇄됐는걸. 엉엉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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