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커미션 신청하는 사람을 위한 안내

글 커미션을 신청하는 사람을 위한 허술한 안내 1

나는 왜 커미션 결과물에 기뻐할 수 없는가

이어서, 신청서를 어떻게 써야 글러에게서 효과적으로 글을 뽑아낼 수 있을지(..) 적어보겠습니다.

글 커미션을 얼마나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느냐는 주어진 글감이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하냐에 좌우되기도 하니까요.

물론 다른 요소도 있고 그건 다음에...

※ 이 글은 어디까지나 글 커미션주가 양심적인 사람임을 가정한 것입니다. 실력과 성품은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므로 만일 성품적으로 문제가 있는 분일 경우 답이 없습니다. 환불받고 도망칩시다. 저는 신청자보다 커미션주쪽의 인품이 결여된 사건이 훨씬 많음을 인지하고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1. 신청서에 꼭 있지만 잘 안 쓰이는 것들

  • 캐릭터의 외모는 좋아하는 색깔보다 덜 중요할 수 있습니다.
     오타쿠들이 집착하는 요소의 상당수는, 사실 글 커미션에서 거의 쓰일 일이 없는 정보값입니다. 외모나 장신구 등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는 글이 필요한 게 아닌 이상 그렇습니다. 물론 쓰일 일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캐릭터가 머리카락 색 때문에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라면 글러는 좋아하면서 수저 들고 달려들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설정이 추가로 붙는 게 아닌 그냥 외형, 그냥 생김새, 그냥 생일, 그냥 키와 몸무게라면 정말로, 쓸 일이 거의 없습니다. 모든 등장인물의 외모 정보가 전혀 없어도 작업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 등장인물의 수도 대부분,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글러는 문장 하나로 천만대군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열 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커미션 내에서 어떤 역할을 꼭 해야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이 경우는 굉장히 드물겁니다. 왜냐하면 중요 캐릭터가 늘어나는 만큼 분량도 늘어나고, 분량이 늘어나는 만큼 가격도 올라가니까요. 초 고액의 커미션이 아니라면 중요 인물 수는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중요인물이 두세명 정도라면 한명에 드는 품이나 두세명이나 비슷비슷합니다. 오히려 한 명만 있는 것보다 두세명쯤은 있는 게 더 캐해가 편합니다.

  • 부가설명 없는 설정들이나 단순한 관계 문답표
     어떤 캐릭터에게 붙는 설정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설정 자체가 많이 있다고 해서 그게 글감이 되느냐면 그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머리를 긁적이는 버릇이 있는 캐릭터가 있다고 칩시다. 그 버릇이 들게 된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이 적혀있지 않다면, 캐릭터가 머쓱할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한 줄 적는 게 더 편해지는 정도로밖에 쓰이지 않습니다. 부잣집 자식이다 같은 설정도 그게 캐릭터의 집안문제를 다루는 내용의 커미션이 아닌 이상은... 물론 없는 것보다야 낫습니다만.
     관계문답표도 마찬가지입니다. A는 B를 10점 만점에 8점 좋아하고, B는 A를 6점 좋아한다는 정보가 적혀있으면 물론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상상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는 있죠. 하지만 이런 감정의 차이나 신뢰의 정도를 표현하려면 역시나, 상당한 분량이 필요합니다. 고액의 커미션에나 반영할 수 있는 자료들이지요.

  • 일러스트 위주의 이미지 자료
     물론 주시면 좋죠. 아름다운 아트들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요. 제가 잘 안 쓰인다고 해서 신청서에서 아트들을 빼지는 말아주세요. 황송하게 감상하고 있으니까... 꼭입니다... 꼭 넣어주세요... 하지만 커미션에서 유용하게 쓰이지는 않습니다. 그 일러스트 안에 캐릭터의 서사가 모두 담겨있고 그게 다 설명되어 있는 게 아니라면 글러의 눈호강과 의욕증진 외에는 그다지... 쓰일 일이 없습니다...... 급하게 넣는 신청서라면 굳이 넣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 다른 분께 넣은 글 커미션 자료
     이건 좀 애매합니다만, 신청서에 정보가 많다면 다른 분께 넣은 글 커미션 자료는 필수가 아닙니다. 만일 신청서가 짧고 정보량이 부족하다면 여기에서라도 어떻게든 글감을 찾아내야 하므로ㅠㅠ 있으면 좋겠지만, 이미 자료가 있다면 그다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두 개는 있으면 매우 좋은데, 그 첫 번째는 신청자님의 마음에 쏙 든 커미션이고 두 번째는 서사나 캐릭터가 가장 많이 표현된 커미션입니다. 첫 번째는 취향파악이 되기 때문에 좋습니다. 독자의 취향을 알면 거기에 맞춰서 쓰기 편하고 자유도도 오히려 높아집니다. 신청자님의 취향을 전혀 모르면 누가 읽어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설정과 서사밖에 쓰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취향을 알 수록 오히려 작업이 쉽습니다. 두 번째는 당연한 것이니 부연설명하지 않겠습니다.

2. 신청서에 있으면 좋아하는 것들 - 결국 우리는 취미생활에 진심인 오타쿠이지 않은가

 읽다 보면 그럼 중요한 건 캐릭터의 외형보다 캐릭터의 내면이나 경험이 아닌가? 싶으실 겁니다. 맞습니다. 캐릭터 개인 특히 내면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할 수록 커미션 작업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의문이 드실 거에요. 캐릭터가 글의 전부가 아닐텐데? 맞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 하나 없어도 소설 한 편 쓰기? 문학으로 갈 수록 그게 더 일반적입니다. 

 그럼 왜 이런 말을 하느냐? 글러가 작업해야 하는 건 '오타쿠'를 위한 '커미션'이기 때문입니다.

 매력적인 캐릭터? 마니아층으로 타겟을 잡으면 급격하게 중요도가 올라갑니다. 오타쿠? 최애의 발가락 길이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커미션? 커미션은 단순히 그냥 '좋은 이야기가 보고싶다'가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좋은 이야기에 등장했으면 좋겠다' 입니다. 원 타겟이죠.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을 위한 작업입니다. 

 그러니 취미로 글 쓰는 사람이라도 가격을 낮게 받을 수가 없습니다. 동인지라면 여럿에게 팔 수라도 있지만, 커미션은 아니니까요.(물론 수요층 많은 캐릭터나 컾링의 커미션을 팔 수도 있긴 합니다만 그 경우 과연 커미션을 굳이 넣을까요? 포타결제 하면 되는데) 하지만 커미션을 넣는 신청자 입장에서도 이건 '취미'라서 큰 돈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어떻게 되느냐...

 캐릭터성, 혹은 관계성을 중심으로 한 단문이 주요 작업이 됩니다.

 여러 복선을 깔거나 서사를 길게 끌고 가기 힘든 구조입니다. 

 너무 많은 자료는 못 받지만 어느정도 자료는 풍부해야 한다는 뭣같은 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 많은 자료는 이해하는 데에만 며칠이 걸리니 품이 많이 들죠.(극단적인 예시로, 명탐정 코난을 모르는 커미션주에게 천자 작업을 부탁하면서 104권 전권을 읽어야 이해가능한 내용의 커미션을 넣는다고 생각해봅시다. 설령 책값을 커미션주에게 준다고 한들 쓸 엄두가 날까요?) 현재 커미션 평균 단가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료가 없으면? '그 누구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소재'로 '무난한 전개'를 꾸역꾸역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캐붕과 설정오류의 가능성을 감수하고요. 캐릭터가 중요한 글에서 심한 캐붕... 되겠습니까... 캐붕 괜찮아요 라는 말? 완전히 믿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 '자신의 취향 안에서의 캐붕' 이라는 것을 디폴트로 가정하고 이야기합니다. 근데 캐릭터가 어떤지도 파악이 안 되는 신청서에 신청자의 취향이 적혀있을 확률? 없다고 해도 무방하죠. 결국 정말 무난하고 평범한 부분만 반영이 된 따분한 이야기를 쓸 수밖에요. 논란 커미션주가 되기는 싫으니까.

 그래서 풍부하면서 많지 않은 자료를 달라니 대체 어쩌자는거냐, 싶은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예시를 아래에 적어둡니다. 읽다보면 짧으면서도 풍부한 신청서란 무엇인지 대충 감이 오실 거예요.

  • 출생의 비밀(?) - 너는 어떻게 자랐는가
     어떤 인간이 완성되기까지 어릴적 배경과 환경, 형제여부 등은 정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도 많고 예외도 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비슷한 환경과 조건에서 자랐을 때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집이 부잣집이었어요, 는 그렇군요, 말고는 할 말이 없지만 한 마디만 덧붙이면 캐릭터의 방향성을 알 수 있습니다.
     짧은 예시로 부잣집에서 귀여움받고 자랐습니다. 와 부잣집에서 엄격하게 자랐습니다. 를 생각해봅시다. 벌써 어떤 사람일지 상상할 때 오는 느낌이 다르죠?

  • 캐릭터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각종 과거사
     어릴적 배경과 환경이 비슷하다고 해도 어떤 사건을 겪었느냐에 따라 또 캐릭터의 방향성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정말 아무 일 없이 평범하게 큰 사람과 어릴 때 유괴범에게 납치당한 일이 있는 사람. 둘의 이미지가 다르지요?
     평범하게 컸다고 해도 '어떠한 사건 하나'가 있으면 글 쓰기가 훨씬 더 쉬워집니다. 평범하게 곤충채집을 하며 자랐습니다. 와 평범하게 곤충으로 놀래켜져서 울기도 했습니다. 는 다릅니다. 슈퍼맨 놀이를 했습니다. 와 높은 데서 떨어질 뻔했습니다. 는 다릅니다. 어떤 성격인지 유추도 가능하거니와 글감이 나오기도 쉽습니다. 저라면 높은 데서 떨어질 뻔한 친구를 바닥이 유리로 된 고층건물에 세우겠어요.

  • 대화로그 혹은 특정 상황에서의 행동지문.
     자료 안에 핑퐁이 길게 있으면 저는 아마 감사함에 엎드려 울 것입니다. 대사를 쓰기 너무너무 편합니다...... 찰진 대사를 고안해내기도 훨씬 쉽습니다...... 읽기 버겁지 않은 일상대화라면 정말 좋습니다. 다만 몰아서 쓴 한역만 반복되는 경우는 읽는 사람은 한 줄 한 줄을 두뇌 풀가동해서 퍼즐놀이를 해야하기 때문에(..) 읽다 지쳐서 읽기를 포기할 수 있으니 추천하지 않습니다. 저야 주어진 자료는 어떻게든 다 읽는 편이지만, 여러분의 존잘님에게는 시간이 없고 밀린 커미션이 많을테니까요.
     그럼 말 수 없고 무뚝뚝한 캐릭터는 어쩌란말이냐! 그치만 무뚝뚝한 캐릭터는 커뮤를 뛰지 못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문이 있으면 좋습니다. 옆사람이 물을 쏟았을 때 말 없이 손수건을 건네주는 사람이 있을 거고, 컵을 먼저 똑바로 세우는 사람이 있을 거고, 튀는 물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이 있을거에요. 이런 걸 넣어도 되나? 싶을 수 있지만 아뇨, 오히려 이런 걸 넣어주세요. 필요해요. 절실하게...
     그는 무뚝뚝합니다. 로 끝나는, 말투도 없고 행동지문도 없고 구체적인 성격도 없는 캐릭터로 신청이 들어온다고 상상하니 정말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어요. 그림러에게 이 친구 머리카락은 보석색깔이에요. 라고 하고 설명을 끝내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 대인관계 - 친밀도 높은 사람과의
     친구가 없습니다. 친구가 많습니다. (x)
     소수와 긴밀하게 지냅니다. 여럿이 어울려 지냅니다. 가식으로 모두를 대합니다. 인류는 모두 친구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모든 관계에 무감합니다. 애인과 친구에게 대하는 태도가 비슷합니다. 애인이 생기면 친구들이 섭섭해합니다. 등등... (o)
     설령 아포칼립스로 마지막 인류 두 명이 남았고 그 둘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대인관계는 있는게 좋습니다. 원래 사람에게 집착하는지, 아니면 둘만 남지 않았다면 초연했을지에 따라 캐릭터는 또 갈래가 나뉩니다. 무어라 해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요.

  • 배경이 되는 세계관 혹은 시대
     똑같이 소심해도 18세기 사람과 21세기 사람의 행동은 다를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세계관이나 시대가 특별하다면 신청서에 언급해주시면 정말 좋습니다. 세계관이나 시대는 커미션에 반영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지만 캐릭터를 상상하기에 굉장히 편리하기 때문에 작업속도가 빨라집니다.

  • 캐릭터의 가치관
     비슷한 결의 이야기이므로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선량한 캐릭터도 겁이 많다 없다, 배짱이 있다 없다, 개인을 돕는다 사회운동을 한다, 질서선 혼돈선, 등의 여러 갈래가 있겠습니다.

  • 신청자님의 취향
     어쩌면 제일 중요한 사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잘 쓴 이야기라도 취향에 안 맞으면 돈 쓴 의미 없잖아요. 취향이라고 해서 외모취향을 이야기하는 건 상술했든 의미가 없고, 해피엔딩이 좋다 새드엔딩이 좋다 부터 시작해서 서사가 쌓여야 한다 서사보다 조합이다 라고 써주신다거나, 혹은 호불호요소 표를 첨부한다던가 할 수도 있겠죠. 설명하기 어렵다면 지금까지 좋아해온 것들의 리스트를 대충 적어주셔도 좋습니다. 주로 보는 영화가 로맨스인지 호러인지 만화나 애니는 뭘 봤는지... 리스트에서 공통점을 추릴 수 있거든요.
     특히 불호요소는 꼭 표기해주시는게 좋습니다. 열심히 작업한 결과물이 고지받지 못한 불호요소 때문에 불쾌감을 줬다고 한다면 쓴 쪽에서도 너무 씁쓸하고 마음아픕니다...

 지금까지 생각나는 건 이정도네요. 다음에는 어떤 때 어떤 타입으로 넣으면 좋을지에 대해 쓰지 않을까요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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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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