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異形)

영영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은 없었으나 다음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나를 알았듯 떠난 후에야 나도 그를 알게 되었다.

클로 by C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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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나는 매일같이 꼭두새벽부터 물가에 앉아 지평선의 기울기를 눈어림했다. 하염없기도, 하릴없기도 한 일이었다. 이제는 묏자리여도 좋겠다 느껴지었던 그곳이 연안인가 해안인가 헤아리기만 하여도 하구의 하루가 다 갔다.

어느 날, 해와 함께 지평선에서 무언가 머리를 내밀었다. 사람이었다. 사람이 아니었다. 희고 푸르른 비늘을 단 것은 무릇 사람이 아닐 테다. 소금기에 바싹 말라 어떠한 의문도 담수처럼 들이키던 과거의 나는 황급히도 말을 건네었다.

 

“그대는 괴기요?”

 

그는 머리를 완전히 물 밖으로 내밀고 나를 바라다보았다. 우리는 지그시 눈을 마주했다. 그도 나를 살피고 있었다. 이내 들린 목소리는 마침내 사람이었다.

 

“부적절한 질문이군요. 고기라는 의미라면 그것은 인간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면 또한 괴기怪奇요?”

“당신은 어떤가요.”


메아리처럼 돌아온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이상스레 여길 만큼 전과 달랐고 변질되어 있었다. 괴상하지 않다 단언할 수 없었다.

 

“모르겠소.”

 

도무지 그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생각하고 있었군요.”

“생각하고 있었소.”

“답은 구할 수 있을 것 같나요.”

“모르겠소.”

“당신을 오래간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대는 나를 알게 되었소?”

“모르겠네요. 충분치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더 오래 보시게. 그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주 만났다. 그는 조금 떨어진 암초에 눕듯이 앉아 나를 관찰했다. 나는 독백하듯 수 일에 걸쳐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벗을 잃고 집을 잃어 걷고 또 걷다 마침내 더 걸을 수 없는 이곳에 닿아 멈추게 되었다고. 그는 참으로 잘 들었다. “당신은 말수가 적지 않은 사람이군요.” 관찰자가 그리 말하니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나를 알아갈수록 나는 그에 대해 잘 모르게 되었다. 깊이를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그는 악마와 내기를 했다.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는 구태여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타락하지 않음이 놀이의 조건이라 하였다.

 

“타락이라 함은.”

“이 경우, 이형異形을 사랑하는 것이 되겠네요.”

“나는 그대에게 이형이겠구료.”

“네, 저희는 많이 다르니까요.”

“허나 또한 닮았소.”

“어떤 점이 그런가요?”

“그대 또한 말수가 적지는 않으니.”

 

말장난이 아니었으나 그는 웃었다. 아마 처음이었다. 내가 잠시 입을 다문 채 그의 머리 뒤에 흐르는 새털구름을 바라보고 있자 찬찬히 웃음이 멎었다.

 

“이상.”

 

시선을 마주했다.

 

“당신은 매료되기 쉬운 사람이죠.”

 

관찰자가 그리 말하니 나는 또 끄덕였다.

 

“타락하지는 말아요.”

“그대를 사랑한 적 없소.”

“곧 그리될 겁니다. 파우스트는 알고 있어요.”

“그렇다 한들 나는 같은 내기를 한 적이 없으니 잃을 것이 없소.”

“아니오.”

 

나는 다시 새털구름을 찾았으나 잠시 눈을 뗀 사이 흩어지고 말았는지 어느새 그의 뒤는 비어 있었다. 가림막이 없어 볕이 쏟아져 내렸다. 넓고 기다란 지느러미가 오색으로 반짝였다. 얇은 부분은 바람에 따라 조금씩 날리기도 하였다. 마치.

 

“당신을 잃게 될 거예요.”

 

마치….

 

“더욱이 파우스트는 알고 있답니다. 말려도 소용없겠죠.”

 

그의 통찰은 적확했다. 나는 점점 혼자 시간을 죽이던 때와 다름없이 말수가 적어졌다. 그 또한 구태여 말을 걸지 않았다. 우리는 조용히 함께했다. 나날이 흘렀다. 어느 때고 철썩이는 파도가 간간이 옷자락을 적셨다.

 

문득, 완전히 젖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서 발을 담그고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몇 걸음 더 걸으면 그에게도 닿을 수 있었다. 왜 여지껏 다가갈 생각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동요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또 그렇게 보는군요.”

“물이 차구료.”

“나에겐 당신이 원하는 것이 없어요.”

“지금 그곳으로 가겠소.”

“이상.”

 

내가 걸음을 멈추었다.

 

“아무리 희고 커다래 보여도, 이건 날개가 아니에요.”

 

무릎 꿇었다. 고개를 떨구자 쏟아진 머리칼 끝이 수면에 닿았다. 이대로 머리를 처박고 싶었다. 아직 행하지 않았는데 얼굴이 젖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멀리 데려가 주시오.”

“지느러미로는 날 수 없습니다. 가라앉을 뿐이죠.”

“마냥 비껴보다 기어이 천지가 뒤집혀버렸소. 위아래조차 모른 채 박제되어 있을 뿐이오.”

 

그가 바위에서 미끄러져 물에 잠겼다. 나는 그를 찾으려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럴 새도 없이 눈앞에 있었다. 거리가 더없이 좁아 손을 뻗으면 닿을 듯했다. 결심하자 순간에 그가 말했다.

 

“멈추세요.”

 

명령이 아닌 선고였다.

기어코 그는 나를 완전히 알았다.

 

관찰자에 따르면 나는 말수가 적지 않고, 매료되기 쉬우며, 이형을 사랑하게 될 터였다. 무엇 하나 부정할 마음이 들지 않으니 모두 맞았다 하여도 좋겠다. 무어라 말하든 그의 결론이 정의定義였다.

 

그가 빈손으로 판결했다.

 

“당신은 아름다워요.”

 

그는 지평선으로 떠났다.

 

영영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은 없었으나 다음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나를 알았듯 떠난 후에야 나도 그를 알게 되었다. 완전히 젖지 못한 채 해안인지 연안인지 모를 물 밖으로 나와 걸었다. 젖은 발은 걸음을 더할수록 물기가 말라 더 발자국을 남기지 못했다. 그가 나아간 만큼만 걸어볼 셈이었다. 지평선의 기울기는 수평해서 거리를 어림하기 어려웠다. 계속 걸었다. 끝내 바다가 보이지 않을 곳까지.

 

난 영영 바다로 돌아 걷지 않았다.

내기에 이긴 그 또한 그러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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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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