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장치 활
조조와 호봉
가까이 오거라.
연병장에 몸소 선 조조는 하반신 의체를 갈아 끼운 모습이었다.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근 며칠 고생했다고 들었다.
말도 마세요. 세상이 빙빙 돌더라고요. 다들 대단도 하지, 이렇게 넓은 세상을 보면서 살아왔다니.
좋은 몸을 얻기 위해선 그만한 고난이 수반되는 법. 평범한 눈과는 다르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양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켠 호봉은 가벼운 걸음으로 조조에게 다가갔다. 일부러 사람을 물린 것인지는 몰라도 널찍한 연병장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가벼운 한숨과 함께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조조의 기계 발굽이 땅을 다지듯 제자리걸음 했다.
지금은 충분히 적응이 되었느냐.
뭐어… 아마도요.
그가 한 손에 들고 있던 활을 호봉에게 건넸다. 호봉은 그것을 받아 들어 만지작거렸다. 예상한 것보다 무거웠다. 일반적인 장궁이 아니었다. 마치 거인을 위해 만든 쇠뇌처럼 활몸은 단단하고 시위는 팽팽해서 웬만한 장수도 시위를 당기기 힘들 것 같았다.
어떻느냐? 네 머리로 헤아려 답해보거라.
그냥 활이 아니네요. 하지만 옛날이라면 모를까 지금에 와서 이런 무기를 쓸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합당하구나.
하지만 조조는 그 활을 다시 받아가지 않았다. 호봉은 조조가 방금까지 바라보고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에 상반신만 남은 인형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실제 사람과 비슷한 강도로 만들어진 모형이었다.
시험입니까?
가벼운 시험이다.
호봉은 어깨를 으쓱이고 활을 고쳐 잡았다. 조조가 눈짓하자 대기하고 있던 병사 하나가 호봉에게 화살통을 가져다주었다. 호봉은 화살통을 둘러메는 대신 화살 하나를 뽑아 화살을 얹었다. 표적과의 거리는 어림잡아 300척. 발을 살짝 벌려 디딘 호봉은 활을 들어 올렸다. 활을 쏘는 건 오랜만이었다. 적당히 자세를 잡고 시위를 시험 삼아 당겨보면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토끼 잡는 데에나 쓰라고 만들어준 눈이 아니라는 거군. 옆에서 조조의 음성이 들려왔다.
제대로 해볼 테냐.
글쎄요…….
호봉은 눈살을 찌푸리며 확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대로, 라는 건 분명 필살의 기세를 말하는 것인데… 당장은 어느 정도로 힘을 주어야 할지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손가락을 단단히 걸고 오른팔에 힘을 주면 비로소 현이 부드럽게 끌려왔다. 활에 감긴 가죽이 빠듯하게 조여드는 소리가 났다. 탄성을 극대화한 활이었다. 이렇게만 당겨도 화살은 과녁에 충분히 다다를 수 있다. 조조의 명령 없이도 시위를 놓으면 그게 끝이었다. 그러나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호봉을 지켜보던 조조가 순간 낮고 빠르게 속삭였다.
당겨라.
얼마나요?
부러질 만큼.
호봉은 곧바로 숨을 참고 눈을 부릅떴다. 왼눈에서 종잇장보다 얇은 태엽들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방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한 힘으로 시위를 당기는 오른팔이 지면과 완전한 평행을 이루어 미끄러진다. 기름칠한 부품들이 각기 맞물려 움직일 때에 쇠뇌를 붙잡고 있는 손만큼은 부품 없는 온전한 인간의 신체였으나… 여전히 흔들림은 없다. 한계까지 휜 활대가 힘겨운 소리를 내고 동공을 흉내 낸 조리개가 끝까지 조여드는 순간 호봉은 시위를 놓았다.
허공을 찢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화살이 과녁의 머리를 후려쳤다. 마치 총의 방아쇠를 당긴 듯 탕, 하는 폭음이 나면 비로소 숨이 트였다. 가죽이 찢어지며 머리가 날아가는 소리였다. 인형을 확인하러 달려가는 병사를 바라보며 왼쪽 눈가에 손을 짚고 있던 호봉이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어디에 맞아도 상관없죠?
제대로 보았느냐.
네. 왼눈에 맞았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저 멀리서 병사가 머리를 집어 들었다. 길고 두꺼운 화살이 왼눈에 꽂혀 있었다. 조조와 나란히 고개를 돌린 채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호봉은 개운한 웃음을 지었다.
호봉의 등에 조조의 손이 닿았다.
부러졌다면 분명 다쳤을 테지. 잘했다.
후후… 늘 어렵게 말씀하신다니까요.
다음에 저 병사를 쏘라 하면 그리 할 수 있겠느냐.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활이 아니라 화승총을 주고 쏘라 하여도 할 수 있겠느냐.
화승총은 옛것인데요. 위의 기술이라면 화살로도 총알을 능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인을 붙여주시면 제가 괜찮은 것을 고안해 볼 수 있는데요. 그러자 조조가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흡족한 미소. 그리고 몸을 돌리며 어깨를 부드럽게 쓸고 지나가는 손길. 호봉은 활을 든 채로 조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가 손을 까딱거리자 활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그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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