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살
올리안 모음집
오후에는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경주가 있었다. 해가 하늘의 꼭대기에서 조금 기울었을 때 영지의 초입에 설치된 관중석에는 양산을 쓴 사람들이 가득했다. 관중석에는 앉지 못했지만 경주로를 따라 서 있는 평민들도 제법 있었다. 땅을 울리는 산발적인 말발굽 소리, 땅이 머금고 있는 열기와 그 위로 피어오르는 흙먼지 구름은 귀족과 평민을 가리지 않고 가슴 뛰게
한낮의 도시는 활기차다. 온화한 색의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화단에는 잎이 긴 꽃이 몇 촉이 심겨 있으며, 길거리에 나앉아 구걸하는 거지들 사이를 주민들이 산만하게 걸어 다닌다. 항구 도시기 때문에 종종 산 물고기와 죽은 생선의 비린내, 소금기 같은 것들이 바람을 타고 몰려온다. 다리를 지나 도시의 중심부로 가면 광장이 있는데 그곳엔
오스카는 문득 잠에서 깨었다. 아마 익숙하지 않은 침구와 향기, 또 물기 어린 공기 따위가 그를 잠에서부터 이끌어낸 듯 싶었다. 외마디 숨을 내뱉으며 주위에 귀를 기울이면 차츰 빗줄기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위로 포근히 덮이는 차분한 숨소리. 어제는 날이 좋았다. 근 며칠 해밍턴의 관저에 머물고 있었는데 여가를 즐기기 위
오스카는 느슨한 시선을 들어 올린다. 낮은 조도와 가라앉은 숨소리로도 가려지지 않는 열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다. 힘들어 보이기에 숨을 트이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한 듯하다. 판단력이 흐려진 건 아무래도 부정할 수 없는 알코올의 탓이다. 술을 이렇게까지 마신 건 오랜만이다. 원래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늘 지나치지 않을 만큼만
연회가 파해갈 무렵 오스카 울스워터는 거의 모든 것에 진력이 나 있었다. 예의를 모르고 옷자락을 스쳐 지나가는 여러 얼굴 없는 손, 걸핏하면 발끝을 밟는 데뷔탕트들의 구둣발과 먹잇감을 찾아 눈을 굴리는 늙은이들… 무대 위에서 악사들이 오토마타처럼 반복해 연주하는 수십 가지의 무곡이 그 모든 광경에 무료함을 한층 더해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재미를 보지 못
제 비위를 맞추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오스카는 기대 이하의 것에 미미한 짜증을 느꼈다. 열렬히 타오르는 감정은 금세 재가 되어 사라지건만 정작 얕은 불은 바람이 불어도 쉬이 꺼지지 않았다. 억누르기엔 미미하고 내버려 두기엔 속이 쓰리다. * ‘윌리엄이었나?’ 세간의 소문이란 소문은 전부 귀에 흘러 들어왔으나 오스카는 왜인지
클라디아스는 영광을 가리킨다. 윌리엄은 정복한 이의 이름이다. 한때 클라디아스는 그가 정복한 것에 제가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홀로 남은 영광은 무엇을 섬겨야하는가? * 어떤 것은 남겨두는 것이 맞다.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다. 클라디아스는 그 순간이 꼭 장면에 담긴 것 처럼 끊겼다고 생각했다. 말을 듣는 순간 클라디아스는 실수했던가, 하고 말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