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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nts Dans le Port

항구의 연인들 / 20230531

made in heaven by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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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는 문득 잠에서 깨었다. 아마 익숙하지 않은 침구와 향기, 또 물기 어린 공기 따위가 그를 잠에서부터 이끌어낸 듯 싶었다. 외마디 숨을 내뱉으며 주위에 귀를 기울이면 차츰 빗줄기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위로 포근히 덮이는 차분한 숨소리.

 

어제는 날이 좋았다. 근 며칠 해밍턴의 관저에 머물고 있었는데 여가를 즐기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영지 바깥의 해역을 일정 기간 빌리기로 해서 확인차 방문한 것이었다. 그러나 평소 해밍턴과의 관계가 그 일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느냐 하면 할 말이 없었다. 애초 오스카 그 자신도 공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편이 아닌데다가 일이 진척되는 내도록 클라디아스는 마치 자신의 충실한 심복처럼 듣기 좋은 대답만 내어주었던 것이다. 사용하시기에 부족함 없도록 손을 보았다는 해밍턴 저의 항구는 아름다웠고, 늘 애수가 어려 있던 올리브 빛 눈동자에는 바닷가에서부터 불어오는 햇빛이 그득히 괴여 있었다. 그러니 하인들이 물러가고 단둘이 남았을 때, 그에게 상을 주지 않을 이유가 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러나 오스카는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제는 너무 윗사람답지 못하게 굴었어. 근사한 와인 향기에 이끌리듯 침대에 등을 댄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언제 잠들었는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이불 안에서 제 배를 더듬어 보면 자신은 사실상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인 게 틀림없었다. 이제 다른 건 아무래도 좋으니 그저 클라디아스가 지난 밤 제 옷을 제대로 정리해놓았길 바랄 뿐이다.

본래 일정대로라면 오늘 오후쯤 느지막이 출발할 생각이었는데, 아침부터 비가 쏟아지니 출발하기로 한 시각엔 길의 상태가 어떨지 모르게 되었다. 그러나 악천후로 하루쯤 더 머무른다고 해서 일정에 차질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결론 내린 오스카는 자리에서 당장 일어나는 대신 몸을 조금 틀어 곤히 잠든 이를 바라보았다. 클라디아스는 귀엽게도 모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어제의 초조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차분히 잠든 얼굴이다.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그 모습을 관음하는 것은 나름의 재미가 있어 오스카는 그를 꼼꼼히 눈으로 뜯어본다. 풀어헤친 갈색 머리카락은 자신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길이가 있고, 부피감 있게 곱슬거리는 것이 제 머리칼과는 대조적이다. 온전히 감긴 눈가에 얹힌 속눈썹은 길고, 잠에 취해 보일 듯 말듯 벌어진 입술에는 핏기가 돌고 있었다. 또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반듯하고 흠이 없는 그의 얼굴을 비대칭하게 만드는 입가의 점이었다. 그 위로 살짝 손끝을 대어보아도 클라디아스는 당장 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거기서 어떠한 오기가 생겼는지 몰라도 오스카는 당장 손을 거두는 대신 그의 완고하게 다물린 턱선을 손끝으로 덧그렸다. 턱 끝에서부터 비교적 부드러운 턱 밑으로 손을 옮겨 더듬다 보면 가까운 곳에 꼭 그의 눈을 닮은 보석이 박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다만… 한 눈으로는 당장 모로 누워 그의 귀를 보는 것이 요원하다. 그 부분에 있어 오스카는 촉각의 도움을 받았다.

손으로 귀를 덮고 귓바퀴를 꾹꾹 문지르다 흘러내리듯 뒤쪽을 더듬으면 불현듯 클라디아스가 입을 완전히 다물었다. 당장 눈을 뜨진 못했지만 숨소리가 조금 흐트러졌다. 그가 잠에서 깨었음을 알았으나 손을 거두지는 않았다. 오스카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머리카락을 따라 손을 천천히 옮겼다.

“올리.”

얕게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손으로 그의 뒷덜미를 주무르자 그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이윽고 낮은 숨소리와 함께 가늘게 뜨인 눈은 명백히 자신을 흘겨보고 있는 듯해 오스카는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내가 깨웠나?”

“그렇게 더듬으시면 죽은 사람도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는 아직 간밤의 여운을 떨쳐내지 못해 작고 먹먹했다.

“자네 말이 맞아. 내가 자는 사람을 너무 성가시게 했군.”

“성가시다뇨, 저는 그저…….”

그의 목소리가 기어들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모른다. 다만 부정적인 이야기는 아닐 테니 그것으로 되었다. 바로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하며 달싹이는 입술 위로 오스카는 길게 입을 맞췄다. 클라디아스가 짧은 침음과 함께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무엇이 오스카에게 그러한 충동을 불러일으켰는지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를 충분히 골렸다는 생각이 들 때쯤 만족하여 손을 놓았다.

“클라디아스, 알고 있나?”

“무엇을…….”

부드럽게 서걱거리는 이불을 젖힌 오스카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의도를 아직 읽어내지 못한 클라디아스는 생각에 골몰한 건지,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건지 몸을 일으키는 게 늦었다.

“비가 오고 있어. 오후에 날이 갤지 어떨지 모르겠군.”

“…개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눈앞으로 거추장스럽게 쏟아지는 머리를 한 차례 쓸어넘긴 오스카는 클라디아스를 내려다본다. 처음에는 늘상 우울해 보이기만 했던 얼굴이 요즘은 숱하게 그 낯빛을 달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 좋을 대로 착각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내 출발이 늦어지겠지.”

그러나 비가 조금 일찍 그친다 해도 출발을 서두를 생각은 아니었다. 피차 보아야 할 일이 끝난터라 오늘은 여유를 갖기로 마음먹은 참이다. 오스카는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부드럽게 밀었다. 그리고 반쯤 일으켰던 그의 몸이 맥없이 쓰러지는 걸 보고서야 침대 밖으로 다리를 내밀었다.

“그러니 바보 같은 얼굴은 그만두고 얼른 일어나. 모처럼 생긴 자유 시간인데, 알차게 써야 하지 않겠나.”

말을 완전히 맺고 나서야 비로소 등 뒤에서부터 이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스카는 발로 카펫을 디디며 숨죽여 웃는다. 클라디아스의 집에 머무르는 것은 이토록 좋았다. 그의 온 신경을 빼앗는 것은 즐거웠다. 아마 아침을 먹고서도 오스카는 그의 온기가 남아 있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아니면 둘이서 빗길을 걷는 것도 좋다. 어쩌면 그와 비에 흠뻑 젖으며 그 해변을 다시 보러 갈 수도 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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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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