哀而不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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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하랑.”
“왜.”
“나 요즘, ······아니다.”
사람 궁금해 죽으라고 하던 말을 뚝 끊은 건지.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한 이수호가 말문을 열자마자 휙 닫아버렸다. 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하면 되는 것을. 불만을 담고 녀석이 누워있는 방향으로 돌아누웠다.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던 눈이 떼굴 굴러왔는데, ······얘, 정말 무슨 일이 있나? 많은 생각을 욱여넣은 눈동자가 위태로워 보여서. 나는 어정쩡하게 손을 뻗어서 턱 끝까지 덮은 이불에 얹고 어색하게 토닥였고, 이수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요즘, 불안한 것 같다.”
“뭐가?”
“그냥. 다.”
처음 보는 표정. 불안한 눈동자와 맺힌 말 많은 입술. 낯섦에 덩달아 불안해진 마음이 어서 녀석을 달래라고 부추기자, 나는 나도 모르게 녀석에게 입을 맞췄다. 따뜻하고 말랑한 살이 짓눌렸다가 떨어지고 나니 후회가 몰려왔으나, 그걸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주순朱脣의 여운이 짙게 남아서. 달래주려던 거긴 한데 그래도, 이수호가 화를 내도 달게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너, 너 뭐 한 거냐?”
“뭐긴 뭐야. 엄마처럼 해본 거지.”
“엄마가 언제 이런 걸 해줬다고?”
네 생각 해서 해준 건데 말이 많아. 책임을 전부 남에게 떠넘기고 민망스러워 냉큼 돌아누워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망했다. 나 혼자 쟤 얼굴 보는 거 껄끄러워지겠는데? 입술이 닿았던 감촉이 사라지자마자 찾아온 자책에 몰래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였다. 허리에 팔 하나가 척 얹어지더니 등 뒤에 따뜻한 체온이 달라붙었다.
“야, 이하랑. 한 번만 더 해보자.”
“뭐?”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미쳤냐?”
“네가 한 건 안 미친 거고?”
아, 씨. 할 말 없게 만드네. 민망함에 괜히 녀석의 팔을 찰싹 때렸다. 뜨뜻한 맨살에 손바닥이 짧게 닿기만 해도 짜르르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아서 헛웃음이 다 나왔다. 나 사춘기인 건가? 이런 내 심정도 모르고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이 없는 녀석의 팔을 다시 한번 찰싹 때리니, 등 뒤에서 입에서 폭탄이 터져 나왔다.
“그럼 미쳤다고 치고 하자.”
“진짜 왜 이래? 야, 잠이나 자.”
“좋았으니까.”
좋았다고? 귀를 의심하는 사이 이수호가 내 어깨를 잡아 바로 눕히고, 입매를 곱게 휘더니만 내 위에 올라앉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또다시 여린 살덩이들이 맞닿았다. 이상하게 높은 온도의 숨. 어디서 배운 건지 입술 사이를 집요하게도 파고드는 과육. 적극적인 태도에 당황해 축축한 것이 입안에 넘어오기 전에 홀랑 고개를 뺐다. 민망함에 절로 오므려지는 다리를 보고 환히도 웃는 녀석의 얼굴이 발그레한 선홍빛을 띠고 있었다.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듯 사랑스러운 색. 아하. 진심을 알고 나니 눈물이 고여서 고개를 저었다. 너는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이거늘, 반대로 사랑을 품었으니. 너는,
“이수호가 아니구나.”
살아있는 것을 따라 하되 곧이 할 수 없어 모든 행동을 거꾸로 하는 꼬락서니. 참나. 난 그것도 모르고 저딴 것이 하는 거에 떨리는 가슴을 안았나. 자세히 보니 묘하게 풀려있는 홍채와 동공. 무언가를 쉴 새 없이 종알거리는 입. 지문에 달려있는 손톱까지. 아무리 생긴 것이 이수호라 해도 그렇지, 무당의 자식이 부끄럽게 뻔한 술수에 홀려버리다니.
“하랑아.”
“아, 꺼져.”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 것이 별안간 속상해서 견딜 수 없다는 구슬픈 표정을 짓더니. 그래, 안녕. 짧은 말과 함께 힘껏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헉――! 벌떡 일어나 앉으니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나쁜 꿈이라도 꾼 게야?”
아. 이수호다.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안도감에 괜히 녀석의 어깨를 툭 치고 다시 벌렁 드러누웠다.
“왜 안 자고 있냐?”
“못 한 게 있거든.”
“이 새벽에?”
“엉.”
못하긴 뭘 못해? 아버지가 얘한테 뭘 시켰나? 그럴 리가 없는데. 머리를 벅벅 긁고 있으니 스르륵 자리에 눕는 이수호. 쟤도 자다 깨서 봉창 두드리는 소리나 했나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녀석의 단정한 손끝이 내 손에 얹어졌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손뼈를 어루만지던 것이 손등을 타고 손목을 지나 팔을 타고 놀더니만.
“잠들면 안 돼.”
킥킥 웃는 소리와 함께 팔뚝을 콱 쥐었다.
“이게 미쳤나!”
손을 확 쳐내니 불쑥 고개를 내민 녀석의 눈이 번들거렸다. 아. 아······? 입맛을 다시는 놈의 입술에 눈이 고정되었다. 그래. 놈은 소리 없이 말하고 있었다. 아까 못다 한 짓을 하자고. 입을 맞추자고. 그렇게. 놈의 어깨를 확 밀치고 일어났다.
“아버지! 아버지이!”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어두컴컴한 툇마루를 달려가 시커먼 방 안으로 달음박질 쳤다. 내 고함에 놀라 눈을 뜬 아버지는 당최 무슨 일이기에 이른 날부터 소란을 일으키는 것이냐며 몸을 일으키다가, 일순간 싸한 눈으로 내 어깨너머를 가만히 응시했다.
“하랑아.”
“아버지. 아버지, 이수호가,”
“얘야, 하랑아. 정신 똑바로 차려라.”
여전히 매서운 눈초리로 바깥을 응시하던 아버지가 내 손을 꽉 잡고 일어서서 성큼 문밖으로 걸음을 나섰다. 영문도 모른 채 얼떨결에 함께 일어나 걸음걸이를 따른 나를, 아버지는 휙 내던지듯 밀며 훠이 물러나라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지금 당장 동네 잽이들은 다 불러와라. 무슨 일이냐 묻거든 돼지 네 마리는 잡아야 할 일이라 전하고.”
어서! 불호령에 발바닥이 달은 듯 펄쩍 뛰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정확 하게는 모르지만 그 음산한 기운. 이수호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 했다. 나는 온 동네를 돌며 종종 아버지의 일로 얼굴을 익힌 잽이들을 찾아갔다. 아버지가 부른다는 말에 별다른 말없이 악기를 챙긴 이들은 알아서 가볼 터이니 어여 가서 다른 이들을 부르라며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가장 구석에 박힌 집까지 발품을 팔고 돌아오니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주머니 한 분께서 내 머리 위로 커다란 오방기를 덮었다. 대체 무엇으로부터 나를 숨기려는 건지 시야를 가리게 덮은 채로 나를 꽉 끌어안은 아주머니는 방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이수호는?’
거의 끌려가듯이 하는 와중에 그새 마당에 차려진 굿판을 힐끔거려도 제대로 트이지 않은 시야 탓에 이수호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컴컴한 방 안에 나를 우두커니 앉힌 아주머니는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를 하고 떠났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언성을 높이는 어른들의 소리가 들리다가 음산한 징 소리를 선두로 여러 악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쾅쾅 요란히 울리는 악기 소리와 경을 읊는 아버지의 목소리. 동이 튼 지 얼마 되지 않아 붉게 비쳐 들어오는 햇살. 목적이 애매한 굿판이 벌어졌다.
다리를 모아 끌어안고 무르팍에 두 눈을 문질렀다. 이수호, 얘는 어디서 뭐를 하기에 보이지를 않아. 아까 상태도 이상하더니만. 혹시 잘못된 거 아니야? 불안이라는 게 마음을 조금씩 좀먹기 시작하더니 환청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이수호가 살려달라며 백빽 지르는 목소리라던가. ······어?
“이수호?”
환청이, 맞나? 쨍한 자바라 소리 사이로 언뜻 들리는 고함소리. 저게 정말 내 귀에만 들리는 환청이 맞는 거냐고. 호기심이 화를 부를 걸 알지만 도저히 앉은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슬금슬금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장지문에 검지 끝을 푹 찍어 작은 눈구멍을 만들고, 그 사이로 오른쪽 눈을 맞췄다.
피가 낭자한 굿판 꼬라지에 순간 헛구역질이 올랐다. 이북의 굿이로구나. 길게 널려있는 돼지들과 신묘하게도 맨바닥에 우뚝 세워져 있는 삼지창들. 꼭 무언가를 가둬놓고 싶어 하는 모양새의 비릿한 울타리 사이. 거기에는 삼베 천에 둘둘 묶여 나뒹굴고 있는 내 쌍둥이가 있었다.
“이수호!”
아주머니의 당부도 잊고 박차고 나와 굿판에 발을 들였다.
“이하랑―――!”
핏물에 흠뻑 젖은 아버지의 고함이 귓전을 때렸지만 알 게 뭐냐. 그것과 비슷 하게 피범벅이 된 이수호가 나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 다가오는데. 나는 기어 오는 인물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야, 야. 괜찮아?”
“하랑아. 하랑아……. 나 좀 살려다오. 저거, 저거 우리 아버지가 아니야. 응?”
눈물을 줄줄 흘리며 몸을 비트는 혈육의 모습이 참혹해 덩달아 코끝이 시큰히 아려왔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지독한 피비린내. 끊이지 않는 연주. 벼락과도 같은 아버지의 호통. 그리고 살려달라며 엉엉 울음을 터트린 제 연정. 안 되겠다. 역시 풀어주자. 아무리 굿이라고 한들 사람을 이 꼬라지로 만드는 게 폭력이 아니면 무어야. 나는 꽉 쪼매진 매듭으로 손을 뻗었는데, 별안간 이수호가 독사처럼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너는 형님이 죽어가는데도 구경만 하는 게야!”
생전 저리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정신이 번쩍 들 만큼 거대한 꾸짖음에 화들짝 놀라 주춤 물러서니, 이수호는 다시 엉금엉금 기어 와서 내 발등 위에 제 입술을 꾹 눌러 찍으며 몸부림쳤다. 맨발 위로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니 발가락 사이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오소소 소름이 돋아 그제야 크게 뒷걸음질 치니 아버지가 그것의 등을 무신도로 콱 내려쳤다. 아악! 괴로워 죽겠다는 비명소리. 그것 위로 해금 소리가 묵직하게 얹어졌다.
“하랑아! 하랑아아! 나 아파!”
“아프다고 했잖아! 네가 불렀잖아!”
“아파……. 나 아프다, 하랑아……. 하랑아…….”
그것은 울며 애원하다가 바락 화를 내기도 했고, 또 얼마 가지 않아서는 제발 살려달라며 아버지를 향해 싹싹 빌기 바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쩍 벌려 놓은 돼지 내장에 얼굴을 처박아 씹어뱉었고, 그럴 때마다 이수호의 몸이 기이한 방향으로 휙휙 틀어졌다.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상황에 눈을 질끈 감고 귀를 틀어막았다. 꽉 막힌 귓구멍 사이로 웅웅 울리는 악기 소리가 점점 정점을 향해 치닫는 순간.
“아아악―――!”
사람이 죽을 때나 낼 법한 비명을 내지른 이수호의 몸이 축 늘어졌다. 가축의 피에 덮인 몸이 미동하지 않으니, ······아니야. 아버지가 설마 자기 자식을 죽도록 몰아세웠을 리 있나. 불안함에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살면서 느끼는 가장 최고의 공포. 눈가가 파들파들 움찔거리고, 쉼 없이 뜀박질을 한 듯이 숨이 막혀왔다.
불안함에 발을 떼지 못하는 나와는 다르게 연주를 뚝 멈춘 잽이들은 수고했다 인사를 나누며 저마다 담뱃불을 붙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손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툭 털어내고 상 위에서 정과 하나를 들어 이수호 입에 물렸다. 새빨간 손에 있던 것을 잘도 넙죽 받아먹는 녀석. 고 입이 우물우물 달다구리를 씹다가 퉤엣! 뱉으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우. 이게 뭔 맛이랴?”
피 맛에 오만상을 쓰고 있는 혈육에게 달려가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얘가 왜 이래? 아니, 여긴 왜, 아니, 아버지는 왜 그래요?”
나는 왜 이런 꼴인데? 기함하는 녀석의 등을 팡팡 두드리니 아버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겨우 손만 뻗어 몸에 엮어둔 삼베 천을 잡아끌었다. 거칠던 숨이 가라앉으니 눈물이 터졌다. 이, 씨. 이 자식이 대체 뭘 하고 다녔기에 이런 꼴이 되도록 굿판을 벌여야 하는 건데. 아버지를 따라 축축이 젖은 천을 북북 찢어서 벗겨내었다. 몸이 자유로워지자마자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상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둥그런 뒤통수를 퍽 때렸다. 그제야 아버지도 크게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다 끝난 거지?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어서 떨리는 손으로 담뱃불을 붙이는 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왜?
왜 아버지는 이 상황에 누름굿을 하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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