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하행상행 / 쿠다노보] 나를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4

다시 만나요.

  • 동명의 소설이 있으나, 본 소설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 쓰고 싶은 걸 썼습니다. 적폐 글이라 느낄 수 있습니다.

  • 인간하행 인외상행 AU입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혈연이 아닙니다.


그날 이후 상행은 숲에 틀어박혔다. 숲에 들어오는 인간을 꾀어 죽이거나, 다시 제게 찾아올 인연 같은 걸 기다리는 일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게 다 의미가 없어졌다. 예전처럼 어린아이가 숲을 헤맨다고 해도 그 아이는 제게 이름을 지어줄 수 없을 것이다. 그 아이는 저와 바다를 보지도 못할 것이고, 그 아이는 저와 입을 맞추지도 못할 것이다. 그 아이는 하행이 아니니까. 제게 처음으로 이름을 지어준, 처음으로 바다를 보여준, 처음으로 입을 맞춘 아이는 오직 하행뿐일 테니까.

하지만 하행은 죽었다. 그러니 다른 생각을 하자.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어쩌면 숲을 두고 여행을 떠나도 좋겠다. 바닷가를 따라 쭉 걷다 보면 여기와는 다른 곳에 닿을 수 있겠지. 그러고 보니 하행과 함께 본 그 바다의 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는데.

아, 젠장. 하행과의 기억을 잊으려 했는데 계속 떠올리게 된다. 외롭고, 그리워서. 원래 이렇게 외로움을 탔던가. 대체 하행을 만나기 전엔 어떻게 시간을 보냈던 건지. 상행은 하행을 제대로 잊기 전까지는 여기서 나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누가 찾아오든 신경 쓰지 않겠다. 그 마음가짐이 문제였을까. 새파랗게 어린 청년들이 담력 시험을 하겠다며 겁 없이 숲에 들어왔다.

“야, 저주는 무슨! 그런 거 다 헛소문이야!”

시끄러운 고함이 왁자하게 숲을 울렸다. 평소라면 그것이 상행의 진노를 살 법도 하지만, 상행은 하행을 잃은 상심이 커 저따위 것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저 하행을 잊길 바라며 계속해서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할 뿐이었다.

신이 난 청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행적을 떠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사람 중엔 건축가도 있었다.

“여길 싹 밀고 나무 자재들로 마을 공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나무들의 상태가 아주 좋아!”

건축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숲에 들락거렸다. 그리고 그것이 한 달쯤 되었을 때, 건축가는 많은 사람을 데리고 숲에 와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숲에 살던 포켓몬들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 숲을 떠났다. 더 이상 숲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상행은 더 이상 수호신 같은 거창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 숲에 존재하는 건,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쓸쓸하게 잠들어있는 여우 한 마리일 뿐이었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는 숲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색할 정도의 규모가 되어서야 상행은 눈을 떴다. 주위에는 돌로 만든 정제된 길이 깔려 있었고, 인위적으로 세운 비(碑)가 하나 있었다. 아마 악운을 막아주길 기원하며 세웠을 것이다. 정갈하고 단정한 글씨체로 ‘공원’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상행은 힘을 주어 비를 넘어뜨렸다.

어디에도 없었다. 자신이 하행과 함께했다는 모든 흔적이 지워졌다. 마지막으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던 큰 돌도, 하행의 키를 표시했던 나무도 이제 없었다. …그래,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라, 기억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썼으니까. 상행은 어쩐지 먹먹한 기분이 들었지만 괜찮은 척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하행이 잊히지 않았다. 이곳엔 하행과 제가 함께했다는 모든 흔적이 지워진 뒤인데. 그런데도 하행은 여전히 상행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행에 대한 기억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상행은 제가 살아온 날들에 비하면 하행과 함께한 순간은 찰나지만, 그 찰나가 없어진다면 제 일부가 텅 빈 느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떠올리고 싶어 할 것이다. 자신의 사라진 기억을. 괴로워서, 사무치게 그리워서 겨우 잊어버린 그 기억을.

‘정말로 하행을 지우고 싶은 겁니까?’

상행은 그제야 제 마음을 깨닫고 하행의 마지막을 보았던 마을로 뛰어갔다. 마을은 한참 개발이 되어 예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상행은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마을의 가장 왼쪽에 위치한 공동묘지를 발견하곤 순서대로 묘비를 읽기 시작했다. 아마도 하행은 여기 묻혀 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리워질 때마다 찾아올 수 있도록.

그리고 끝내, 상행은 하행을 찾아냈다.

 

하행

xxxx. xx. xx. ~ xxxx. xx. xx.

만나서 기뻤어.

 

아, 하행. 당신은 끝까지 이렇게나 다정해서.

상행은 묘비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차갑고 딱딱한 촉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하행의 촉감과는 상반되었지만, 이 자리에 하행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 사실 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정말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실감 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상행은 몇 날 며칠을 하행의 묘비 앞에서 보냈다. 얼마나 울고 눈을 벅벅 닦았는지 눈 아래는 붉어져 있었고, 목소리는 갈라져 듣기에 썩 좋지 않았다. 하행의 묘비를 한참을 끌어안고 있던 탓에 이제는 묘비에서 온기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주위에서 상행을 이상하게 보았지만 그런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 쓸 게 아니었다. 잊히지 않는다면 제 전력을 다해서 그리워하리라.

상행이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묘비 앞을 지킨 지 보름 째 되는 날이었다. 그만큼 하행을 그리워했으며, 그만큼 하행이 간절했다. 하행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러고 보니 언제였더라. 하행이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상행은 제 눈동자만큼 흐릿해진 정신으로 하행과의 기억을 떠올렸다.

“상행. 환생을 알아?”

“그게 뭡니까?”

“짧게 설명하자면, 인간이 죽고 나면 다시 태어나. 그걸 환생이라고 한대.”

“하행은 그런 걸 믿습니까?”

“그랬으면 좋을 거 같지 않아? 다시 상행을 만날 수 있는 거잖아.”

당시 상행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인간들은 참 신기한 걸 믿는구나. 필멸하는 존재들은 어쩔 수 없이 영생에 매달리는 것일까. 참 어리석구나. 영생이라는 건 그리 좋은 게 아님에도.

그리고 하행이 죽은 뒤인 지금에서야 하행의 심정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시 저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왜 그걸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늦은 마음은 후회만 가득 담길 뿐이다.

상행은 과거로부터 벗어나 다시 제 앞에 놓인 묘비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정신이 맑아졌다.

“이런 막연한 기다림은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당신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수십 년이든, 수백 년이든, 기다리겠습니다. 어차피 제게는 찰나일 테니.”

상행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제야 하행의 무덤 앞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많고 많은 사람 중 하행을 찾는다는 건 꽤 긴 여행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상행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린 날의 하행이 저를 포기하지 않았듯이. 상행은 바지의 무릎을 툭툭 털었다.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는지 그 정도로는 흙먼지가 쉽게 털리지 않았다. 뭐, 어차피 새로 둔갑하면 그만이었다. 상행은 더러운 바지를 그냥 내버려 두고 거리를 걸었다.

그 사이 마을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붉은색 지붕에 유리창이 여러 개 달린, 가운데엔 이상하게 생긴 동그란 공 같은 무늬가 그려져 있는 건물이 생겼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거대한 건물들이 많이 생겼는데, 죄다 화려하고 번쩍번쩍해서 오래 쳐다보기 어려웠다. 사람들과 포켓몬의 사이도 꽤 원만해졌는지, 예전이라면 생각해볼 수도 없는 거리에 포켓몬과 사람이 공존했다.

‘그곳도 달라졌을까요.’

상행은 하행과 같이 불꽃놀이를 보았던 둔덕을 올랐다. 여기만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상행은 잠시 둔덕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가, 바다를 향해 길을 떠났다. 우선 바닷가를 쭉 걸어가면서 보이는 마을에 들러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근처 마을까지 또 걷고, 들러보기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계획이었다.

“나 길 가다가 너랑 똑같이 생긴 사람 봤어.”

하행은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카밀레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너인 줄 알고 말 걸려 했는데, 옷이 검은색이라 말 안 걸었어. 너 검은 옷은 안 입잖아.”

“헤에, 그 정도?”

“그냥 검은 옷 입은 너야.”

하행은 마지막 남은 샌드위치의 한 입을 입에 쏙 넣고는 빙긋 웃었다.

“있잖아, 다음에 만나면 번호라도 물어봐.”

“도플갱어라서 만났다가 죽으면 어떡해. 난 내 친구를 벌써 잃긴 싫은데.”

카밀레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하여간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별이 안 되게 말하는 데에는 선수였다. 분명 농담이었겠지만.

“그래서, 왜 검은 옷은 안 입는 거야?”

“음… 그냥? 왠지 검은 옷을 입고 거울을 보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아.”

“그냥 평범하게 검은 옷이 잘 안 받는 건 아니고?”

“옷이 잘 안 받는 느낌이 아니야. 진짜 다른 사람.”

“흐응, 내가 봤던 검은 옷의 너는 제법 잘 어울렸어.”

카밀레의 말에 하행은 정말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저기, 나 키 커. 그리고 잘생겼어. 그러니까 검은 옷도 잘 어울리는 게 당연.”

“……그래.”

카밀레는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짧은 한 문장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보다 하행, 수업 늦은 거 아니야?”

그 말에 하행은 시계를 확인했다. 강의 시작까지 앞으로 5분, 여기서 목적지까지 초고속으로 달리면 3분. 조금 아슬아슬하겠지만, 충분히 가능. 하행은 카밀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가방을 챙겨 강의실로 달렸다.

강의 시작까지 앞으로 3분, 주변에 방해물 없음, 이대로 오른쪽으로 꺾기만 하면 강의실, 시간 조금 여유. 하행은 짧게 짧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며 속도를 늦추고 걸었다.

누군가에게 손목이 붙잡혀 생각이 뚝 끊기기 전까지는.

“…누구?”

아무리 시간이 조금 여유 있다고 해도 고작 몇 분밖에 남지 않았던 터라 하행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으며 뒤로 돌았다.

“전 기다리는 걸 잘 못 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찾으러 왔습니다.”

새까만 구두. 새까만 바지. 새까만 코트. 저와 엇비슷한 체형. 그리고 얼굴은…

“…도플갱어?”

“예?”

자주 보았던 사람이었다. 제가 검은 옷을 입고 거울을 볼 때마다 서 있던, 제가 아닌 다른 사람. 지각할 위기에 놓인 상황만 아니었다면 아주 흥미로웠을 것이다. 강의 시작까지 앞으로 2분. 방해물 존재. 시간 여유 없음. 하행은 신경질적으로 손을 놓았다.

“저기, 나 지금 바빠. 나중에.”

하행은 등을 돌려 강의실로 다시 달려갔다. 상행은 하행을 놓쳐버린 제 손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언제나 하행이 먼저 다가와 주었고, 언제나 하행이 먼저 저를 찾았다. 그랬기에 이번엔 용기 내어 제가 먼저 찾아갔는데, 이렇게 쌀쌀맞은 반응을 보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제가 알았던 하행은 다정하고, 밝고, 자상했는데. …그래도, 하행이 분명 ‘나중에’라고 말했다. 나중에. 상행은 그 말에 그 자리에서 하행을 기다렸다.

강의가 끝나고 건물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오자 상행은 몸을 움츠렸지만, 자리를 피하진 않았다. 오히려 하행과 닮은 사람이 있는지 집중해서 살펴보았다. 곧 하행이 나오자 상행은 기쁜 마음에 하행을 불렀다. 아니, 부르려 했다. 하행의 주변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하행의 이름을 크게 불렀을 것이다. 아, 하행. 여전히 당신의 주위엔 사람이 많군요. 당신은, 저만의 것이 아니군요. 상행은 슬그머니 뻗었던 손을 거두었다. 그러다 하행과 눈이 마주치고, 하행은 옆에 있던 친구에게 몇 마디 말을 하더니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그리고는 상행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가자.”

하행은 상행의 손을 잡고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갔다. 여기라면 사람이 없으니 편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행은 잡았던 손을 놓고 상행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날카롭게 올라간 눈꼬리와 티 하나 없는 얼굴. 다른 점이라면 역시 그는 웃지 않는다는 점일까. 상행은 저를 관찰하는 하행의 시선을 마주하다가 눈을 굴려 시선을 피했다. 저의 추악한 욕망을 들킬까 봐 하행을 오래 바라볼 수 없었다.

“있잖아, 넌 누구?”

기억이 없구나. 제 손을 신경질적으로 놓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래도 역시 저를 알던 하행은 이젠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기껏 만났는데 우울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아서, 상행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답했다.

“…저는 상행이라고 합니다.”

“이름도 닮았어. 기분 이상해.”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는 말에 혼자 상처받았다. 상행은 몇 번이고 고민했던 말을 기어이 내뱉고 말았다.

“당신이, 지어주었던 이름입니다.”

“뭐?”

“당신이 하행이기에, 저는 상행이라며 당신이 지어주었던 이름입니다.”

“기억에 없어.”

“전생의 하행이 제게 지어준 이름이니까요.”

전생이라는 말이 나오자 하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학가 주변에 이상한 사람이 많다고들 해도 내 얘기는 아닌 줄 알았는데. 이런 날이 오다니. 하행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한숨의 의미가 좋지 않다는 건 상행도 잘 알고 있었다. 하행이 절대로 제 말을 믿어줄 의지가 없다는 것은, 하행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전생의 하행과 저는 아주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아, 그래.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행은 속으로 생각하며 팔짱을 끼고 상행의 이야기를 들었다.

“연인이기라도 했어?”

“연인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하행은 다급히 돌아온 대답에 눈을 깜빡였다. 뭐야, 그렇게까지 부정할 일? 내가 어때서. 하행의 기분이 왠지 상해가려 할 때 즈음 상행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감히 하행에게 저 같은 게 어울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대체 뭐가 목적일까. 돈이 필요하거나, 사람이 필요한 거라면 보통 연인이었다는 말에 동조하면서 감정적으로 호소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제 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마저 낮춰가면서까지 부정하며 제게 말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새로운 방식일까? 하행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상행을 바라보았다.

“하행? 여기서 뭐해?”

그때, 누군가 하행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둘이 동시에 그곳을 바라보자 카밀레가 서 있었다.

“카밀레야말로. 여기엔 웬일?”

“여긴 우리 집 가는 골목길이야. 큰 길로 가면 돌아가야 해서.”

카밀레는 슬쩍 하행의 팔에 팔짱을 꼈다.

“가자. 너한테 줄 것도 있고.”

“응?”

카밀레는 하행을 끌고 가다시피 데려갔다. 상행은 몇 번 입을 달싹이며 하행을 부르려 했으나, 하행의 옆에 달라붙어 있는 카밀레의 모습에 어쩐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렇게 상행은, 또 하행이 멀어지는 모습을 그 자리에서 보고만 있었다.

“멀리서 좀 지켜보고 있었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아, 고마워.”

“그나저나 용케도 안 죽었네. 역시 도플갱어는 괴담인가?”

“있잖아, 줄 거 있다는 건 뭐야?”

“없어. 그런 거. 그냥 상황을 빠져나오기 위한 말이야.”

하행은 흘긋 뒤를 돌아보았다. 저와 얼굴이 똑같은 사람의 등 뒤로 얼핏 여러 개의 검은 여우 꼬리가 보인 것도 같아서, 하행은 제 눈을 비볐다.


글을 쓰다보니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내가 말하면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기린에 대한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상행도 하행이 아닌 다른 것의 생각을 하고자 했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하행에 대해 떠올리게 되죠. 잊히지도 않는 것을 잊는다는 것은 그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상행은 하행만이 길들인 여우지만 하행은 상행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 너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포인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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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플랫폼에 업로드했던 글을 글리프에 재업로드하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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