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눈을 감으면 이 꿈을 떠나게 될 거야
230223, 온이 나옴. 미완이 아님(!)
그리고 나는 눈을 감았습니다.
엉성한 나무기둥 위에 새가 앉아 있었습니다. 흑요석 같은 두 눈과 반질반질한 검은색 깃털. 하얀 머리의 소년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새도 소년을 바라보았습니다. 소년은 새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새는 도망치지 않고 소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어땠어?
소년은 믿겨지지 않아 새를 바라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새는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 없었거든요.
삶은 어땠어?
새가 다시 물었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삶이 방금 막 끝난 건지 묻고 싶었습니다.
내 삶은 늘 같았지만 매번 달랐지. 죽음이라거나, 사랑이라거나... 날갯짓이라거나. 그런 것들은 너무 먼 이야기들이잖아.
새가 우아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새의 움직임을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넌 어떤 새야?
이토록 검은 깃털을 가진 새는 잉크에 빠진 새 아니면 까마귀밖에 없지.
새가 자랑하듯 자신의 날개를 펼쳐 보였습니다. 밤을 두른 듯 섬찟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소년은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어느 순간 안개가 세상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둘의 세상이 갑자기 좁혀졌습니다. 온통 하얀 세상 속에서도 새만은 고고한 태도로 소년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죽은 거니?
너를 기억하는 것은 죽음밖에 없으니.
소년은 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새를 바라보며 오래 전의 친구를 떠올렸습니다. 이런 죽음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변이 너무나 황망하고 조용했으니까요.
그런데 난 아직 내가 느껴져. 내가 누군지 알겠단 말이야.
거짓말.
새가 사뿐히 소년의 어깨로 내려와 앉았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새는 어쩐지 더 커진 것 같았습니다.
네 영혼은 생각만큼 순수하지 않구나. 하지만 네 눈은 정말 아름답군.
새가 감상하듯 소년의 눈동자를 응시했습니다.
너도 정말 예쁜 새야. 내가 만난 다른 까마귀들은 아주 못되고 무섭게 굴었어.
그건 네가 너무나 빛났기 때문이야.
소년은 잠시 대답이 없었습니다.
까마귀들은 미래를 내다봐.
과거는?
그건 중요하지 않아.
소년은 먼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그 기억은 너무나 그리웠지만 들여다볼수록 흐릿해졌습니다. 동시에 소년은 그것이 어떤 기억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소년은 슬픔을 느꼈지만 이윽고 그 슬픔도 흐려졌습니다.
집에 가고 싶어.
넌 집을 찾게 될 거야.
새가 덧붙였습니다.
네가 떠나온 곳.
그곳이 어딘데?
네 미래.
소년은 처음으로 새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멀리에 길이 보였습니다. 길은 계속 좁아지다가 안개에 흐릿해져 사라졌습니다.
이 모든 게 언젠가 끝나기는 해?
네가 기억하는 동안에는 끝나지 않아. 끝이 온다면 그때 내가 네 눈을 가져가도 될까?
상관없어. 하지만 많이 기다려야 할 거야.
머지않은 미래일지도 몰라.
소년은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이 모든 게 한낱 백일몽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렇지만 소년은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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