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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 일시 10. 31.                                              

본 문서 하단에 광과민성 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는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니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2024년, 서울. 인간에 의해 인위적인 번영을 이룬 인간들의 대도시.

정확히 언제일까. 어느날 하늘 가운데에 아주 자그마한 구멍이 뚫렸다. 달리 어떤 표현도 어울리지 않을 말 그대로의 구멍.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육안으론 확인조차 불가능한 그것의 존재가 처음 알려지게 된 계기는 정부 산하 기관이나 관측 단체의 보고가 아닌 어느 중견 유튜버의 노들섬 나들이 야외방송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비유하자면 그래픽이 깨진 듯한 비정상적인 균열. 누군가가 그 구멍의 존재에 대해 덧글을 남겨 잠깐 화제가 되긴 했으나, 그 크기가 워낙 작은 탓에 이후로 별다른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한강대교를 직접 지나치는 수많은 인간들도 그것에 대해 주목하는 일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구멍이 말도 안 되게 비대해진 크기로 넓어져버린 것이다. 그 구멍은 한강 위에 뚫린 채로 온 하늘을 덮고 있었다.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새까만 것이 낮에도 꼭 밤하늘을 보는 듯 했다. 별 하나 없는 심연의 것과 같은 밤하늘. 유튜브, 인터넷 뉴스……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그 구멍에 주목했다. 당연스레 시민들은 불안에 젖기 시작했다. 몇백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우주적 특이 현상이라는 루머가 돌았고 인간들의 불온한 숨결에 진노한 신이 종말을 위해 재림하고 있다는 광신적인 소문 또한 퍼져나갔다. 정부에서는 시민들을 안심시키기에 바빴고 관측 기관에서도 구멍에 대한 마땅한 정의와 뚜렷한 해결책을 보이지 못했다. 구멍에서 천둥과 우레와 같은 천재지변이 쏟아져 내리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라는 일단 그것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은 낮밤 가릴 것 없이 어둑한 하늘 아래 두려움을 씹으며 일상을 영위해야만 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구멍이 더욱더 커졌다. 여전히 그것에서 뭔가가 쏟아져 내려오진 않았으나, 기이하게도 한국의 치안이 급속도로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이유 모를 공공기물 파손과 연쇄살인이 부쩍 늘어났다. 이상한 점은 어떤 카메라에도 범인이 찍히지 않았다는 점. 파손된 건물은 마치 거대한 들짐승이 날뛰고 간 흔적과 같았으며 시체에도 금수가 물어뜯은 것만 같이 날카로운 이빨 자국이 남아있었다. 흔적도 남기지 않는 기원 불명의 투명 살인마가 나돌아다닌다는 소문이 가득 퍼져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민들은 여전히 죽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일상 생활이 가능했지만 이런 와중에도 저 하늘의 구멍은 왜 아직까지도 저렇게 건재한 건지. 시민들의 두려움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광신도들이 방송으로 시민들을 현혹하는 것은 물론, 무력한 정부의 움직임에 지친 이들이 폭력 단체를 결성하여 시청 앞에서 시위를 일삼기도 했다.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며, 그로부터 일주일째의 어느날. 

아비규환이 도래했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살인마가 직접적으로 그 끔찍한 모습을 일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괴물들이었다. 그것도 너무나 그 형태와 부류가 다양한. 어떤 괴물은 요정의 모습으로, 어떤 괴물은 요괴의 모습으로, 어떤 괴물은 짐승의 모습으로, 어떤 괴물은 마귀의 모습으로. 가지각색의 괴물들이 인간들을 가차없이 유린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그 발톱과 이빨에 의해 씹히고, 찢겨지고, 잡아먹혔다. 치타에게 처절하게 내쫓기다 결국 잡혀 생을 마감하는 가련한 토끼처럼.

그놈들은 악마야. 악마. 어느 순간,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한국은 갑작스레 출현한 악마들에 의해 그야말로 태초의 혼돈에 짙게 물들었다. 군의 개입에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에겐 일반적인 총탄과 칼날이 통하지 않았다. 도로가 갈라졌고 건물이 무너졌다. 교통은 순식간에 마비되었고 사방에서 총성과 불길이 일었다. 비단 서울시 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도시와 지역,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부서진 자동차와 애꿎은 시체들이 산을 이루어 신중한 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어느 곳에도 무사히 다다를 수 없었다.


지옥과 같은 하루하루. 우리들은 살아야했다. 그저 이렇게라도 살 수밖에 없는 너무나 연약한 인간이라서. 서로가 서로를 약탈하기 시작한 와중에도 어떻게든, 도망치고. 견뎌내고 살아남고. 그렇게 악착같이 버텨내는 와중 몇몇의 핸드폰으로 한 통의 메시지가 흘러들어왔다. 배터리가 다하고 이리저리 부딪혀 고장났어도 상관없이. 마치 해킹이라도 당한 듯 검게, 새까맣게⋯ 마치 그 구멍의 빛깔처럼 깊게 물든 액정 위로 떠오르는 수상한 메시지 하나가.





대답하자, 액정이 한 차례 점멸한 뒤 조용해졌다. 다시금 새까맣게 물들어가는 것이 어쩐지 꼭 그 메시지를 천천히 먹어삼키며 음미하는 듯도 했다. 몇 초의 시간이 지난 뒤에 갑자기 음성 메시지가 들려왔다. 기묘한 웃음소리가 뒤섞인 것도 같이 스산한.


“네게 살아갈 기회를 주마.”



그리고 우리의 핸드폰에는 묘령의 프로그램이 설치되었다.

DEMONICA. 그것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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