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먹고 꽐라되었더니 빙의되었다.

1화 술먹고 꽐라됐더니 빙의되었다.

정쿱

quack quack by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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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날 가지고 트루먼쇼를 하는 게 아닐까.

승철은 당장이라도 사실은 깜짝카메라였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리길 바랐다. 분명 어제 너무 마시긴 했는데. 숙취인지 아닌지 모를 두통과 함께 눈을 뜨니 난생 처음 보는 실크 천의 이불과 큰 방 안이었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고 얼굴을 잔뜩 찡그리니 물이 든 잔이 눈 앞에 들이밀어졌다.

 

 

"어제 많이 드시긴 했지요. 어르신들이 간 만에 오셔서 들뜨셨나 봅니다."

너무 놀라면 비명도 안 나온다더니, 그걸 직접 체험하고 싶진 않았는데. "누구세요?" "누구긴요, 도련님의 충실한 집사지요." 승철은 저도 모르게 이불을 붙잡고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보니 승철이 아끼던 잠옷도 어제 술마시던 옷도 아닌 생전 처음보는 실크비단 제질의 잠옷을 입고있단 걸 깨달았을 땐 이제 진짜 술 끊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식사가 준비되어있으니 얼른 채비를 하시죠."

 

 

어영부영 침대에 붙은 승철을 바라본 집사의 손엔 아마 갈아입어야 할 옷으로 보이는 정복이 들려있었다. 두,두고 가세요. 제가 입을게요. 너무 긴장한 탓에 말도 더듬으며 말하니 집사의 표정이 한결 불안해졌지만, 제 주인의 명령이니 충실한 집사는 가지런히 옷을 올려두고는 방을 나섰다. 이제 온전한 혼자가 된 승철은 그제서야 방 안을 둘러본다. 얼핏봐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넓은 방. 분위기만 보면 제가 꼭 흔한 로판 소설에 빙의된 듯한 느낌이었다. 로판? 승철은 괜히 꿈이 아닐까 제 팔뚝을 꼬집어본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아픔이나 감각은 너무 현실감이 넘쳤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 가설이 진짜인지 확인을 하러 집사가 두고 간 옷을 집어 들었다.

 

 

 

 

현실에선 가벼운 후드티류만 입던 승철은 블라우스에 베스트까지 빼입고나니 어색하고 답답한 느낌에 잘못입진 않았나 몇 번이나 확인하고 방을 나섰다. 문 앞에 대기하던 집사가 자연스럽게 식당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내심 길 잃을까봐 걱정하던 승철은 조금 안심했다. 지나치는 건물의 양식이나 분위기나 너무 웹툰이나 소설에서 묘사되던 대저택을 그대로 가져다 둔 것 같았다. 

머리 회전은 빨랐던 승철은 숙취에 쩔은 뇌를 붙잡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건 빙의다. 빙의가 확실하다. 고통도 느껴지는데 꿈이 아니라면 남은 가능성은 그거 하나 뿐이었다. 한 명이 쓰기 시작하니 진부하게 모두가 갔다 쓰던 그 상황을 직접 겪게되니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나는 과연 어떤 소설로 자신이 빙의가 된 것일까. 승철은 이것저것 찍먹하던 시절을 조금 후회했다. 아, 다 읽은 건 생각보다 없는데. 자신이 앞날을 얼마나 예측할 수 있을지, 죽을 캐릭터인지 아님 주인공인지 모든 걸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식당까지 걸어가는 복도는 왜 이리도 짧은지. 어느새 다다른 호화롭고 큰 문 앞에 집사가 손잡이를 쥔 채 승철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충 고개를 까딱하자 거대한 문이 열렸다.

흔히 볼 수 있는 길고 여러 정교한 꽃과 문양으로 장식된 테이블 위로 고급스런 붉은 천이 덮여있고, 척봐도 비싸보이는 촛대와 은식기들. 이건 정말 어딘가의 소설 속이 분명했다. 메이드가 가장 안 쪽에 위치한 의자를 끌어 뺐다. 저기가 내 자린가 봐. 제 자리로 추측되는 곳 맞은 편과 옆자리에는 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러워보이는 드레스를 입고있는 여성들이 앉아 있었다. 중앙에는 저와 비슷하게 짙은 남색 베스트 위로 마이까지 걸친 근엄한 표정을 지은 남자가. 아마, 내가 빙의한 이 캐릭터의 아버지겠지. 승철은 상체를 살짝 숙여 최대한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다. 방식이 다를까 걱정했는데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어떤 식으로 인사를 하는지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그대로 행할 수 있었다.

 

 

“최 가문 장남이 되었으면 적당히 조절할 줄은 알아야지.”

“…면목없습니다.”

“다음부턴 조심하도록 하여라.”

“네. 아버지.”

“승연이 너는 학교에서 사고치지말고.”

“저도 알아서 해요. 아버지.”

“얘, 아버지께 말버릇이 그게 뭐니.”

 

눈 앞에 놓이는 접시의 음식이나 대리석 깎아 만든 것 같은 인테리어 안 속에서 이런 한국 가정에서 일어날법한 대화에 한국적인 이름이라니. 승철은 그제서야 제가 어떤 소설에 빙의되었는지 깨달았다. 로판이라는 장르 태그를 달고 모든 풍경묘사는 흔한 유럽 쪽 양식이면서 이름은 한국식에 등장인물들의 대화 방식이나 사상은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했던 그 소설. 체인지업. 아마 여자 주인공의 라이벌이자 악역이었던 영애 이름이 최승연이었다. 리뷰를 읽어보고 재밌을 것 같아서 연재 중이던 인기 소설을 읽기 시작한게 기억이 났다. 여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던 그 소설은 한국인들이 좋아할만한 이른바 사이다 전개로 막힘없이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자신이 당한게 있으면 그대로 되갚아 주는 여주인공…. 가장 최근 연재분에서는 승철이 속하게 된 최 가문이 여주인공을 괴롭혔던 벌로 가문 전체가 숙청시키는― 거기까지 떠오르자 뒷목이 금새 서늘해졌다. 이건 막아야하는데. 승철은 괜히 제 옆에 앉은 여동생을 슬쩍 쳐다보았다.

 

“왜 그러시죠?”

“아무것도 아니다.”

 

냉랭하게 저를 쏘아보는 여동생에 승철은 조금 당황했다. 성격 안 좋을 것 같다. 그러니까 악역이겠지? 그렇지만 빙의된 이상, 죽고싶지는 않았다. 여기서 죽었다가 영영 못돌아가고 그대로 죽어버리면? 상상만으로 아찔해진 탓에 승철은 잠시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이게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코로 들어가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겉보기에는 완벽하게 식사를 마친 승철은 다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처음 깨어난 장소니까 뭐라도 있지 않을까? 그런 승철의 기대를 배신하듯 방 안은 그저 이전에 사용한 것들로 보이는 그러니까 작중 ‘최승연’의 오빠. '최승철'의 물건들만 남아있었다. 그래도 대충 물건을 쥐면 어떤 식으로 사용해야하는지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올라서 그나마 여기로 자신을 떨군 미지의 힘에게 감사를 보냈다.

 

방 안 곳곳을 살피던 승철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에초에 여주인공 일인칭으로 전개되던 것이라 최 가문에 대한 내용은 별로 소개되지도 않았고, 작중에 악역의 오빠인 자신에 대한 내용은 그저 오빠가 존재한다 이 한 줄 정도라서. 원래 그렇게 친한 남매는 아닌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K정서 가득한 이 소설에서 식사는 무조건 가족 전체가 참여해야했다. 승철은 여동생과 접점을 늘릴 수 있다는 그 사실에 그나마 안도했다. 며칠이 지나고 이 곳 생활이 조금은 익숙해졌을 시점. 식당 문을 열었을 때 마침 여동생만 혼자 자리에 앉아있었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기필코 물어봐야했다. 괜히 자리에 앉아 헛기침을 하다 입을 열었다.

 

 

“승연아, 요즘 무슨 고민없니?”

“네?”

 

숨기지도 않는 듯 얼굴을 찌푸린 여동생을 보며 승철은 그냥 무대뽀로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도 않고. 여동생을 주시하는게 가장 편하고 빠른 방법이었으니까.

 

“뭐, 학교에서 귀찮게 구는 놈들이 있다던지….”

 

승연의 표정이 더 썩어들어갔다. 평소에는 말도 안 나누던 제 오라비가 뭘 잘못 먹었는지 요즘 태도가 여간 거슬리는게 아니었다.

 

“관심 끄세요.”

 

사춘기 청소년은 정말 질풍노도구나.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없다는 듯 정면으로 고개를 돌린 여동생을 보며 승철은 앞으로 꽤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날 이후로도 승철은 끊임없이 여동생한테 말을 걸고 은근슬적 집 안 정원에서 산책하는 시간에 알짱댄다던지 서재에 있으면 본인도 서재 한구석에 자리잡고서는 책을 펼쳐놓고 계속해서 여동생을 흘끗거리며 쳐다봤다. 결국 화가 끝까지 난 여동생은 제 오라비의 기행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승철에게 다가왔다. 그가 어설프게 들고있는 책을 손으로 내리 누르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올려다보는 얼굴에 뒷목잡을 뻔 했지만.

 

 

“요즘 뭐하시는거죠?”

“뭘 말이냐?”

“자꾸 제 뒤를 스토커마냥 밟아대는 것 말이에요.”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을 짓던 승철이 금방이라도 사람을 팰거같은 눈빛에 결국 노선을 틀어 개꼰대 미친 발언을 하기로했다. 이 소설은 K가부장 문화의 점철된 말그대로 겉모습만 로판인 소설이었으니까.

 

“오라비가 여동생이 잘 지내나 보는 것도 안 되나?”

“생전 이런 적없었으면서 무슨…. 저번 연회때 마신 술에 정신 나가는 독이라도 타져있었나요?”

“야 너는 말을 왜 그렇게하냐아…”

“허.”

 

승연은 제 오라비가 진짜 독탄 술을 마신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술먹고 뇌가 어떻게 됐다던지. 맨날 술을 좋아할 때부터 알아봤다. 제가 물가에 놓은 애라도 되는 것마냥 구는 이 집안도 슬슬 진절머리났다. 사춘기가 쎄게 온 것이다. 근데 또 인물은 되는 제 오라비가 퍽 서운한 듯 눈썹이 쳐진채로 있으니 그건 그거대로 마음이 불편해져서. 그렇다. 승연은 잘생긴 얼굴에 약했다.

 

 

“그럼 제 말을 들어주실건가요?”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선이면?”

“그럼 검을 가르켜주세요.”

“…누구 찌르고 그럴건 아니지?”

“있으면 첫 타자는 오라버니겠네요.”

 

 

한 쪽 눈썹만 치켜올리며 말하는 여동생이 흉흉했다. 개꼰대 집안 특성 상, 처음부터 정식 선생을 고용할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그걸 안 여동생이 머리를 굴려 말한 것이겠지. 진짜 동생은 아니지만, 우리 동생 똑똑하구나. 벌써부터 가족이라는 틀에 묶여있으니 승철의 팔은 안으로 굽어갔다. 제가 가르쳐주면 여러모로 가까워질 여지도 있고, 여차하면 호신술도 되니 생각할 수록 참으로 이득이었다. 승철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시간은 부모님이 정기적 회의를 위해 집을 잠시 비우시는 매주 수요일. 그리고 만에 하나 들킨다고 해도 진검을 사용하지 않으니 문제 잡힐 건 없었다.

 

사실 최 가문은 검술보다는 전략을 세우는 것으로 더 유명한 집 안이었다. 검술에는 특출난 재능을 가진 자가 없었단 소리다, 그러나 이번 세대의 장남 ‘최승철’은 달랐다. 가문의 이단아. 전술을 세우는 것도 뒤쳐지지는 않았으나 검술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최 家 전속 검술선생은 어린 장남의 재능을 단 번에 알아보았다. 이건 천재라 볼 수 있다며 자신보다는 다른 선생을 구해 가르침을 주는 게 맞다고 생각된다는 보고를 통해 장남은 책보다는 검을 쥐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본인도 그것을 더 즐거워하니 실력은 나날히 늘어갔다. 그렇지만 영혼이 바뀐 승철은 검은 고사하고 뭘 잡고 휘두른건 중학교때 애들 장난으로 빗자루 싸움을 한 게 전부였다. 자신이 검술 천재 ‘최승철’을 연기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

물론 방 안에 소중히 보관된 검을 쥐자, 다른 물건을 만졌을 때와 같이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하는지, 자신이 써오던 검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마치 위화감없게 이 곳에 섞이라는 것처럼. 한편으로는 안도가 되었지만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단은 살아남기. 빙의 후 첫 목표는 그거였다. 승철은 불안감이 커질때마다 집 안 검술장으로 가서 칼을 휘둘렀다. 뭐라도 일단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봤자 결말은 숙청당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요즘 정말 별 일 없지?”

“오라버니 차에 어떻게 하면 독 탈 수 있을지가 고민이네요.”

“너어는! 진짜 오라비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입이 대빨 튀어나온 승철을 흘긋 쳐다본 동생은 다시 목검을 들고 기본자세를 취했다. 무게중심 너무 쏠렸다. 삐진 티를 저리 내면서도 약속을 이행하는 모습에 승연의 마음도 점차 누그러졌다. 뭐 가족인데 척질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사춘기 청소년의 말이라고 귓등으로도 안 듣는 다른 가족들보다야. 조금 귀찮게 굴어도 제 말을 존중해주는 승철에게 좀 더 신뢰가 쌓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전과 좀 달라도 어쨌든 제 오라비는 오라비였으니. 술 먹다가 어디 머리라도 부딪혔나보지. 거만 떨던 이전보다야 조금 귀찮게 구는 지금이 훨씬 나았다.

 

잠시 후 지친 승연은 벽 한 쪽에 비치되어있는 벤치에 앉았다. 숨을 고르며 같은 목검을 들고도 확실히 폼이 다르게 움직이는 승철을 본다. 그저 가문 사람들 중에서 그나마 잘하는 걸 천재라고 위상띄우는 건 줄 알았으나, 자신의 오라비는 정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렇다고 노력을 개을리 하지 않은 것도 이제는 안다. 이전에는 정말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내심 이렇게 가까워진게 나쁘지는 않다고 승연은 생각했다.


"오라버니는"

"응?"

"기사가 되실 생각인가요?"


잠시 검을 내린 승철이 승연을 돌아보았다. 크게 흥미를 갖고 물은 건 아닌지 무심한 표정을 바라보다 시선을 내려 제 손을 봤다. 단시간에 다져진게 아닌 굳은살들이 목검과 맞닿아있었다.


"…그래야겠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가장 큰 방법이 뭘까. 승철은 이 로판 속에 떨어진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끊임없이 생각했다. 

- 1. 여주인공과 제 동생을 못만나게 하기

승연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는 제가 제어를 할 수 없다. 기각. 

- 2. 내가 여주인공과 친해지기. 

접점도 없거니와 쓸데없는 의심을 사서 더 일찍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것도 기각. 

머릿속에서 여러 방법을 생각하고 기각시켜 쓰레기통에 넣는 동안, 동생과 지내다보니 알게된 사실들이있다. 승연은 그렇게 누군가를 괴롭히고 다닐 성정은 아니다. 당차고 본인 할 말을 다 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경솔하게 본인보다 직위도 높은 여주인공을 괴롭혔을 것 같진 않았다. 어쩌면 누군가의 누명이지 않을까? 일인칭으로 진행되던 소설이니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았다. 그럼 누명이나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 여주인공의 최측근과 친해져서 오해를 풀기

그럴라면 어느정도 힘이 있고 여주인공의 신임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순간 승철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게 바로 남주인공이었다. 로판의 특성상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은 사랑에 빠지게 되어있다. 그럼 그와 베프를 먹으면 살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남주인공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곧 있을 기사단 모집 시험에서 승철은 기사가 되어야했다. 원작 소설에서 이번에 열리는 기사단 입단 시험에서 남주인공이 합격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부터는 검술장 문턱이 닳도록 승철은 검술 연습에 매진했다. 매주 수요일은 동생을 봐주고, 서재에 들어가서 그간 가문에서 만들어낸 전술들을 보기도 하고, 그러다 답답하면 검술장에서 훈련을 하고. 집-학교-학원-집을 반복하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이 생활이 이미 겪었던 경험들과 비슷한 것 같아 금방 적응했다. 몸 쓰는게 머리를 비울 수 있어 좋기도 했고.

"둘이 부쩍 친해진것 같구나."

그렇게 반복되던 일상 어느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승철과 승연을 보며 '아버지'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아마 하인들을 통해 보고를 받겠거니는 예상했으나 이렇게 대놓고 먼저 수를 던질 줄은.

"남매가 친하면 좋죠~"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에 어색하게 웃어넘겨야하나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무구한 표정을 지어야하나 고민하던차에 승연이 더 빠르게 행동했다.

"요즘 오라버니한테 검술을 배우고있거든요."

대놓고 뱉을 줄은 몰랐는데. 승철은 눈을 한번 도록 굴렸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승연이도 운동신경이 좋아서 금방 늘더라고요. 그리고 배워둬서 나쁠 것 없잖아요."

제가 이런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 승연이 제일 크게 놀라고, 뭐라 한마디 하려던 '아버지'의 입이 다물렸다. 그렇지만, 정말 배워서 안 좋을 건 없을 것 같은데. 비상시에 호신술 겸 사용할 수 있고…. 

"다치지만 않게 열심히 하렴."

'어머니'의 말로 상황은 종결되었다. 다행이도 그 순간에 집사가 들고온 초대장으로 화제가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한 공작 가문에서 자녀의 성인식을 기념하기 위해 한 달 뒤에 파티를 열 것인데, 각 귀족들에게 참석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어머~ 둘 다 옷 한 벌 맞춰야겠다."

승연과 승철이 동시에 파티에 참석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들떠서 어떤 색상으로 맞출지, 어디서 제작할지 신나게 말씀하시는 걸 듣다보니 어느새 저녁식사가 끝이 났다. 공작가 차남의 성년 파티…. 작중에서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첫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일단 얼굴을 익혀놔서 나쁠 것 없겠지. 소설 표지에는 여주인공만 그려져있었고, 남주인공에 대한 것은 작중 묘사로만 나왔었기 때문에(그것도 여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으로) 선뜻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었다. 물론 그냥 흘러지나가듯 읽은 탓도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백이면 백 돌아보는 미형의 남자.

눈빛은 총명하고 짙은 쌍커풀에 웃을때 애굣살이 도드라지고 아이와 같은 웃음을 지어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그는 정말 아름답다라는 말이 형상화 된 사람 같았다. 멍하니 보고있으면 사람이 홀릴정도의 외모였다.


뭐 소설의 주인공이니 잘생겼기야 하겠다만, 얼마나 잘생겼기에 사람을 홀린다고 하는지. 조금은 궁금도 해서 승철은 나름대로 파티날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대와 함께 긴장감도 같이 부풀었다. 이곳에 오고나서 처음 만나는 외부 사람들이었기에, 실수는 하지 않을 지 걱정이 되었다. 특히 여주인공한테 밉보이면 안되는데…. 상념이 많으니 시간도 빠르게 흘러가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파티 일주일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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