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가 맞는 사람은 있다

정쿱 용왕윤X고잉블루최


최승철은 사주를 믿었다. 

“아, 왜 인천공항이 섬에 있어? 인천이 섬이야?”

“형. 됐으니까 그냥 가자.”

“사주에 바다 조심하라고 했다고~!!!!!!”

인천 공항으로 향하는 긴급 출동 고잉 레인저 카니발 안에서 다른 레인저들의 불만이 연달아 터져나왔다.

“사주 좀 그만 믿어! 바다 놀러 한 번도 안 가봤어?”

“대구에서 뭔 바다야. 맨날 계곡 가서 백숙 먹었지!”

사주에 최승철은 가족운이 많지 않고 고독하고 쓸쓸한 팔자를 타고 났다고 했다. 도로에 쏟아진 산사태가 차를 덮쳐 하루아침에 천애고아가 되었으니 사주가 맞았던 셈이다.

그리고 큰 사랑을 받았으니 동티 나지 않게 남들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대체 가족이 아니면 누가 큰 사랑을 주는가 싶지만 승철은 대충 알아들었다. 

만 분의 일도 안 되는 희박한 확률을 뚫고 초능력을 발현하게 되었다면 그것도 큰 사랑 아닐까? 

가족을 잃고 초능력을 발현한 최승철은 약 3년간의 의무복무 기간에 아예 서울로 거주지를 옮겨 고잉 레인저로 들어갔다. 능력적이고 뭐고 블루의 자리가 남는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말이 히어로고 레인저지 솔직히 전일 근무 하는 만능최저임금 인턴이었다.

하지만 레인저들이 출동 대비로 합숙한다는 것만은 마음에 들었다.

혼자는 싫으니까. 

“그렇다고 이게 말이 되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벌어진 꼬라지를 보고 승철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의무복무라 해도 진짜 우리 월급 더 많이 받아야 돼.”

알 수 없는 씨앗이 발아해서 인천공항 1번 게이트에서 거대하게 자라난 채로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그나마 사람들은 대피했지만 경보는 왱왱 울리고 계속해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에너지를 흡수한 식물은 미친 듯한 속도로 캐모마일과 비슷하게 생긴 거대한 꽃까지 피웠다. 꽃은 뚝 목이 떨어져 자꾸 민들레 홀씨처럼 터미널 밖으로 날아가 버리려고 했다.

“저거 먼저 잡아!”

꽃을 터트리고, 줄기도 태우고 지지고 물들이고 얼리고 반복하며 마침내 뿌리를 뽑아낸 건 좋았는데, 이 자식이 뿌리를 뽑아도 죽지 않았다. 

“악! 승철이 형! 이거 어떡해!”

 아직도 몸부림치는 뿌리를 온몸으로 덮어 누른 찬을 향해 명호가 다급하게 조언했다.

“그러다 너 배 뚫리겠다. 잠깐만 비켜 봐.”

“아니~~~ 내가 비키면 이거 또 스프링처럼 어디로 뛰쳐나갈 것 같아서 그러지!”

“어, 그러니까 힘 좀 빼놔야지. 거기서 안 비키면 너도 맞는다.”

그 말에 찬이 황급하게 비키자 그 위로 (사랑의) 힘을 가득 담은 배트가 내리쳐졌다.

빠아아악. 

“!!!!”

강한 충격을 받은 뿌리의 꿈틀거림이 잠시 잦아든 사이, 경찰의 신호를 받은 승철이 오른쪽으로 가란 신호를 했다.

바로 밖에 비행기 수십 대가 있는 공항 터미널이 아니라 부수는 것보단 아무 것도 없는 해안가 도로 쪽으로 유인하란 뜻이었다.

식물형에게 영 통하지 않는 물 지배 능력자 승철은 다른 능력자들의 능력에 공항피해를 줄이는 데 힘쓰며 뿌리를 바다 쪽으로 몰았다.

해안가 도로는 버려진 차량들이 메우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와 멀리 사람들이 보이자 다시 뿌리가 발광하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아!”

“저거 식물형이니까 짠물에선 죽겠지? 일단 담가. 담가봐!”

승철은 화급히 고개를 돌렸다. 바다가 정말로 가까웠다. 

숨이 막힐 듯이 거대한 물. 바다. 심장이 뚝 떨어져내려 발치에서 구르는 듯 했다. 

물 한 방울은 투명하고, 물 한 바가지도 투명하고. 비가 그렇게 내린 후에도 맑은데 어째서 저렇게 거대히 뭉친 물은 색깔을 되찾은 것처럼 푸른 색이 되는지.

그리고 문득 최승철은 한강을 가로지르는 지하철에서 자신만이 유일하게 아름답게 윤슬이 빛나는 강을 내다보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걸 상기한다. 푸르게 너울거리며 빛나는 것이 너무나 거대해서.

‘사주에서 큰 물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는데…….’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난생 처음 보는 현상이 눈앞에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쓰스스- 바닷물이 마치 갈퀴로 긁어낸 듯이 바다 쪽으로 밀려갔다. 

“어?”

그 다음 이어질 일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밀려갔던 만큼 거대한 파도가 닥쳐올 것이다. 

승철은 냅다 지수의 손에서 뿌리를 빼앗아 드러난 뻘에 던졌다. 

“승철아!”

이미 저 멀리에서 파도가 풍랑이 되어 닥쳐오고 있었다.

흉물스럽게 드러난 모래와 뻘이 섞인 바닥에 신발이 잠겨드는 걸 느끼며 승철이 두 손을 쥐었다 폈다.

“들어오지 마!”

석민이 영문도 모르고 일단 따라 들어오려고 해서 승철은 물펀치를 날려 밀어냈다. 

“어풉! 형! 왜 나한테 왜 이래?”

“물은 나한테 맡기고 여기 근처 대피부터 시켜!”

명호가 석민의 팔을 잡고 일단 일으켜세웠다.

“알았어! 석민이 데리고 나갈게. 위험하면 바로 나와!”

이제 완전히 그 애들에게서 등을 돌린 승철은 바다를 향해 두 손을 들고 힘을 끌어올렸다. 

섬세한 컨트롤은 연습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원래 승철의 강점은 투박할 정도로 강력한 역류였다. 

콰아아- 

거침없이 영종도를 향해 밀려오던 거대한 파도가 마치 투명한 유리벽에 가로막힌 듯 멈췄다. 

“끄으으응!”

그 투명한 유리벽을 만들어낸 승철은 거기에 가해지는 물의 압력 역시 누구보다 강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짜디짠 물은 무겁고, 파랑이 일 때마다 유리벽은 끼긱거리며 기울어지고 흔들렸다. 

자신의 키보다 높은 파도가 몇 번이고 부딪쳐온다. 

몸서리 칠 정도로 강력한 압력을 몸으로 받아낸 승철의 내부가 진탕되는가 싶더니 코에서 주르륵 피가 흘렀다. 

등 뒤에서 레인저들이 소리치며 남아있는 경찰마저 대피시키는 소리가 멀어졌다. 

‘천천히… 막무가내로 막지 말고 천천히 뚫릴 구멍을 주면서…….’

그러나 눈앞에서 바다가 승철의 힘을 받아 멈추어 선 채 아우성쳤다. 그저 자연 현상이라고 하기엔, 바닷물은 명확히 무언가 의지를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승철은 코피를 줄줄 흘리며 소리쳤다. 

“말하고 싶음 말해!”

[보 고 싶 어]

“…뭐?”

[보 고 싶 어 해]

강렬한 그리움이 바다 사이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바다에서 누가 이토록 누군가를 그리워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힘으로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그 마음이 승철에게 전이될 정도로 강력했다. 

승철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포말들이 입을 모아 속삭이며 승철의 힘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용 왕 님 이 찾 아 용 왕 님 을 위 해 찾 아 내 야 해]

승철은 압력에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입을 다시 뗐다.

“누구를?”

한순간 거대한 바다의 시선이 그렇게 묻는 승철에게 향했다. 

깜빡임 없이 고요히.

그 순간 승철은 등 뒤를 타고 흐르는 오한에 얼어붙었다. 

[너 를]

더 이상 단순히 물이라고 부르기 힘든 거대한 바다가 광폭하게 힘을 휘두르며 승철에게 손을 뻗었다. 

콰아아-

승철도 그걸 느끼고 더더욱 힘을 끌어올렸지만 바다는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쩌정, 하고 균열이 가는 거대한 소리가 울리고 그 사이로 막혀있던 바닷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나왔다. 좁은 틈새를 뚫은 바다의 압력은 더더욱 강해져 마침내 승철의 제어에서 완전히 풀려났다. 

원우가 뒤에서 달려왔지만 늦었다. 

파도는 쏜살같이 달려와 승철을 삼켰다.

“승철아!”

승철은 바닷물에 삼켜진 채로 발버둥쳤다. 

‘사주 맞잖아! 거 봐! 큰 물 가까이 가지 말란 사주도 맞잖아!!!!!’

뽀그르르 공기 방울을 내뱉으며 승철은 바다 깊숙이 끌려들어갔다.


[용 왕 님]

파도의 주먹에서 공손히 나온 것은 한 인간이었다. 

거대한 해류를 탄 채 비스듬히 누워있던 용왕은 상체를 일으켰다. 

뭍의 생물은 바다에서 숨 쉬지 못한다. 다행히 파도는 뒤늦게나마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그 인간의 머리에 공기 방울을 계속 만들어 죽이진 않고 데려왔다.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에서 짠기 섞인 바닷물이 뚝뚝 떨어졌다.

용왕은 아이고 소리를 내며 일단 파도에게서 작디 작은 인간을 건네받았다. 인간은 어린 개체도 아니었지만 용왕에 비하면 엄지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용 왕 님 보 고 싶 어 해]

파도는 절하고 물러갔다.

“에엥… 이렇게까지 되냐.”

하지만 용왕의 의지는 단순한 의지가 아니라 바다 전체의 소망이 되고야 만다. 단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승철의 몸을 감싸는 커다란 공기 방울을 만들자 그제야 승철의 숨이 편안해졌다.

인간은 바다에서 살 수 없는 존재니까.

용왕은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명령도 없었는데. 이래서 마음도 먹어서는 안 되는데.’

그러나 마음은, 타고나길 그토록 강대하게 태어나 시련을 거치고 마침내 그 자리에 오른 용왕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윤정한은 착잡하게 자신의 거대한 손 안에 의식을 잃고 눕혀진 승철을 보았다. 

주먹을 쥐면 그대로 으스러질 정도로 작고 약한 인간.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그 인간은 상제와 똑같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고집센 얼굴. 

스스로 관을 내려놓고 하천한 지상세계의 하나로 자신의 격을 떨어뜨리겠다고 선언한 얼굴과 같다. 

“아, 얘 먹을 것 좀 챙겨줘야지. 금강산도 식후경이랬다.”

정한은 허둥지둥 소매를 떨어 하인을 불러 먹을 만한 것을 가져오라 일렀다. 

“…그래, 상제를 위해 준비해두었던 술도 다오. 인간도 먹을 수 있을 테니. 아마? 어쩌면? 몸에 좋겠지?”

상제를 위한 술은 천년도 전에 빚어놓은 것이었다. 

그 천년의 시간동안 단 한 번도 상제가 용왕을 위해 심해로 내려오지 못했다.

상제는 단순히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용왕이 마음을 먹으면 명령하지 않아도 온 바다가 그를 위해 움직이듯이, 상제의 마음이 어느 한 곳으로 쏟아지면 화와 복이 함께 쏟아진다. 지나친 사랑은 탈이 나고 만다. 

그리고 상제는 그가 귀애하는 이들이 많았고 그를 사모하는 이들 역시 많았다. 

원래 상제란 그러한 것이니, 적당히 어울릴 때엔 혼자 가질 수 없는 것이 힘들다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가 그들의 상제이니까 모두와 나누는 것이 당연했다.

“승철아.”

정한은 승철을 살살 쓰다듬었다.

작은 인간은 그것만으로도 조금 낑낑거렸다. 

마음에 욕심이 일었다. 

‘아.’

이 때문에 바다의 표면 어딘가가 거칠어지고 태풍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런데도 욕심을 가눌 수 없어 정한은 살포시 이마를 찌푸렸다.

잠깐 사이에 심기가 불편해진 주인 때문에 덜덜 떨며 하인이 주안상을 올렸지만, 정한은 아직 인간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며 물렸다.

그렇다. 인간이었다.

혼만이 여전히 그대로 찬란할 뿐 상제의 관을 내려놓고 능력도 무엇도 가지지 않은 인간.

정한은 다른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욕심이 났다.

‘……이제 상제가 아니라 단지 유한한 인간일 뿐이니, 누구와도 나누지 않고 나만이 독차지할 수 있을까.’

생이 끝날 때까지 여기 가두어두고 금이야 옥이야 길러주고 싶었다.

‘그렇게 기르면 내가 유일할 텐데.’

몇십 년의 세월이야 눈을 감았다 뜨면 녹아버리는 것이니 그 한순간만이라도 온전히 차지하면 이 소유욕이 잠잠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죽은 후에야 염라가 알게 될 것이다. 아니, 그 자식은 이미 알고 있겠다. 자기야 바다에 처박혀 있으니 모르지만, 염라는 인간의 죽음을 관장하니까 상제가 아닌 인간인 최승철이 죽어 저승에 온 것을 이미 몇 번이고 봤겠지.

왜 말 안했냐고 물어보면 “안 물어봤잖아.” 따위의 소리나 하며 눈웃음 칠 염라가 떠올라 짜증이 일었다.

그러다가도 자신의 손 안에 있는 승철을 보면 화가 사르르 풀렸다.

그래, 염라는 승철이 죽은 뒤에야 알 수 있지.

승철은 살아있으니까.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기다리고.

시선을 애걸하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있을 수 있다.

다른 것들에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달콤한 상상에 마음이 크게 일렁였다. 

용왕은 얼마든지 그렇게 만들 수 있었다.

정한은 공기 방울을 뚫고 얼굴을 가까이 댔다. 입술이 승철의 몸 위로 내려앉았다. 

“어라.”

단지 숨을 불어넣어주려 했을 뿐인데 혼몽한 채로도 승철이 허우적거리며 물결 같고 채찍 같은 정한의 입술을 허우적거리며 밀어냈다. 승철이 다루는 힘은 다름아닌 자신의 파편이라서, 정한은 미소했다.

정한은 입술로 짓궂게 승철의 몸을 지분거렸다.

“아이고, 내 힘으로 나한테 반항해봤자 통하냐? 위대한 상제였을 네 원래의 힘과 기억이 있으면 모를까.”

원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면서, 승철은 모든 걸 버렸다.

그리고 딱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의 파편.

왜 자신의 파편을 품었는지 상제에게 묻는다면 ‘제일 좋은 능력을 차지해야 편할 테니까’ 그딴 소리만 하겠지만. 

마침내 용왕은 쿡 웃었다.

“내가 이런 무서운 생각을 해도 네가 날 이해해야 해. 네가 나랑 몸을 섞었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 니가 먼저 확 가버렸잖아.”

“으… 응.”

“이렇게 내가 짓뭉갤 수 있는 작고 연약한 인간이 되어버리면 나한테 뭔 일을 당할 줄 알구. 내가 영영 너 가두고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하면 어떡할려구.”

손에 쥔 채로 정한이 다시 승철에게 입술을 묻었다. 

반들거리는 껍데기 같은 옷은 쉬이 헤쳐졌다. 

정한에게서 물 채찍이 스르르 번져나와 희고 보드라운 승철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으응, 흣…!”

정한에게서 또다시 새로 생겨난 물 채찍이 유연하게 모양을 변화시키며 승철의 몸 위로 기었다. 

승철이 중간에 정신이 든 듯 했지만 정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하얗게 드러난 배를 핥자 승철의 등이 경련했지만, 얇은 물 채찍이 승철의 양 다리를 옭아매고 있어 허리만 허공으로 떴다.

“하지, 앗, 흐읍!”

즐겁기만 했다. 

이토록 즐겁기만 한데도 정한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젖어들어가며 슬펐다. 

승철이 뚝뚝 흘린 눈물을 건져올리며 퍼지는 만족감에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바다의 표면에서 며칠째 인간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울고 있어 시끄러웠다. 

-치… 델타 제……, 발견…… 없음. 오바.

-블루! 들려? 들리면 제발 응답해줘!

-……블루, 응답바람, 오버.

-…원, …… 없음, 오바.

심해까지 전파는 닿지 않았지만 용왕의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은 없었다. 

이 작은 인간을 찾기 위한 소란.

얼마의 눈물이 그를 위해 쏟아졌을까.

그 눈물이 바다만큼 깊지 않다 한들 속에 있는 그리움의 경중이 다를까.

곳곳을 마음껏 희롱하여 승철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울면서 늘어지는 걸 감상하던 정한은 아쉽게 입술을 뗐다.

마음이 탁 풀어졌다.

어느 것 하나 온전할 수 없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상제는커녕 결국은 인간 하나도 독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응, 한 번 따먹었으니까 됐어. 고이 보내줄게.”

마음껏 주물럭주물럭 된 승철이 울어서 불어터진 눈으로 노려봤지만, 당연히, 정한에게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승철을 손으로 살포시 쥔 정한이 마지막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물은 모든 것을 씻고 내려가니, 이로써 바다속에서 보고 듣고 겪었던 일들이 망각될 것이다. 

승철이 꽥꽥 소리치고 발버둥쳤지만 곧 물에 젖어들며 고개를 툭 떨어뜨렸다.

손 안에서 승철이 들어갈 만한 연꽃을 피워올리던 정한은 문득 너무 올드한가 싶어서 멈췄다.

“이렇게 등장하면 누가 잡아다가 결혼해버리는 거 아냐?”

그건 좀 웃기지. 

그래서 대신 그는 눈짓으로 수면 위를 바라보고, 끈을 잃고 흘러나온 구명 보트 하나를 바다 아래로 끌고 왔다.

거기에 다시 옷을 얼추 입힌 승철을 올리자, 그럭저럭 모든 게 괜찮아보였다.

이제 정한이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바다에 다시 잡히지 않게 조심해. 가까이 오면 안 돼, 알겠지?”

용왕이 손을 놓자 구명 보트는 쏜살같이 수면을 향해 달려나갔다.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 고잉블루가 다시 나타난 것은 사흘만이었다. 의무 복무 중 사고로 초능력자가 실종되자 떠들썩해졌던 나라는, 기적처럼 구명 보트 위에서 나타난 고잉블루를 보고 다시 한 번 벌통처럼 시끄러워졌다.

승철이 물을 지배할 줄 아니까 무의식중에라도 그 능력으로 살아났다 아니다 외계인이 구해줬다 사실 간첩이다 등등의 별별 추론이 쏟아졌지만, 정작 승철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해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쨌든. 

죽다 살아났어도 의무 복무 기간은 해지되지 않았다.

“블루! 출동 준비!”

“……돈도 안 나오는데 출동 또 해야 돼?”

“아니?! 고잉 레인저 들어왔을 때의 열정을 기억해 봐, 블루!”

“그 때도 없었어. 의무 복무 해야 하니까 왔지.”

냉혹무비한 대답에도 이럴 때 찬의 열정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살아돌아온 걸 사람들이 그렇게 환영해줬는데 우리도 보답을 해줘야지! 수색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형의 생환을 빌어줬는데!”

거기까지 말하면 또 승철도 할 말이 없었다.

날씨가 험하게 바뀌었는데도 헬리콥터를 띄우고(평소에 좀 지원해주지), 군대를 동원해 수색하고(평소에 좀 지원해주지), 공중파는 물론 모든 뉴스 채널에서 보도하고(평소에도 의무복무에 관심 좀 가져주지).

승철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으… 능력 안 썼으면 좋겠는데.”

갑자기 석민이 뼈를 때리고 지나갔다. 

“능력을 안 써? 그럼 그냥 일반인 아냐?”

그 말에 울컥해서 석민에게 틱틱대며 출동했다. 

‘그래, 괜찮을 거야. 구조되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데.’

일주일 정도면 어떤 종교의 신은 빛부터 이 세계를 싹 창조하고 하루 덤으로 껴서 쉬었다.

스스로를 그렇게 위로해봤지만, 원우가 발을 잡은 동물형 괴물에게 물로 펀치를 날리려던 순간 또다시 불쑥 공포가 끼어들고야 말았다. 

 바다에서 생존해 돌아온 후로 최승철의 능력은 지나치게 막대히 늘어나 버렸다.

마치 직접 바다에 빠진 게 무언가 기폭 스위치라도 된 것처럼.

“헉, 승철이 형 주먹이 두 배는 더 커진 것 같애!”

“아니! 그건 아니야!”

“뭐? 원래도 이랬나?”

“아니, 저 펀치는 입체니까 두 배가 아니라 여덟 배인 거지!”

승철은 식은땀을 흘리며 굳어버린 손을 움직였다.

‘여덟 배 정도가 아니라 원하면 도로 아래 흐르는 상하수도 관까지 터트리고 들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능력이 강하진 않았는데.

그리고 강해지면 좋아야 하는데.

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물이 투명한 게 아니라, 이토록 거대히 모여 푸르스름한 빛을 띄게 된 순간부터 공포가 승철의 등허리를 기어올라 목을 조였다. 

 능력의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 

“피해, 원우야아아!”

“어?”

펀치가 괴물은 물론이고 원우까지 날려버렸다. 그러고도 모자란 지 한 번 더 솟아오른 파도가 거리를 덮쳤다.

“으아아! 멈춰! 멈춰!!!”

원우를 구해 고잉 레인저 대기실로 돌아오고 나서도 승철은 머리가 아팠다.

최연장자의 특권으로 자연스럽게 자기 자리처럼 소파에 길게 누워 책으로 얼굴을 덮고 있자, 명호가 옆의 팔걸이에 슬쩍 앉았다. 

“아까도 그렇고 형 다룰 수 있는 능력 범위가 더 커진 것 같지.”

“……능력이 커지면 뭐하냐, 컨트롤이 안 되는데.”

“연습하면 그것도 될 거야. 능력이 상승하면 좋지.”

연습을 하면 된다. 

걸음마도 원래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다 태어나고 1~2년간 죽자고 반복연습해서 되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능력을 쓰는 순간마다 떠오르는 공포가 너무 강해서 승철의 손이 잠시 파르르 떨었다. 

명호가 망설이다 물었다.

“능력이 다루기 힘들어진 것도 범위가 커져서일까?”

“아냐. 아니, 모르겠다. 어쩌면 그게 맞을 지도.”

승철이 인상을 찌푸린 채 얼굴을 덮었던 책을 치웠다. 

“물을 보면 바다가 자꾸 생각나니까…….”

심지어 사진만으로 본 게 아닌 직접 가 본 바다와의 끔찍한 첫 만남이었다.

주도권 싸움을 벌이다 패배해 파도에 휘감긴 채 급작스럽게 그 아래로 가라앉을 때.

눈코입으로 밀려들어오는 짠물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와 두려움, 분노가 혼재한 가운데. 

분명히 물에 목소리가 있고, 거기에서 전해져 오는 그리움과 절망을 방울방울마다 느끼는 순간. 

태양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수면에서 빠르게 멀어지며 납처럼 어두운 깊은 바닷속으로 자신을 끌고 내려가는 의지.

그리고 마침내 거대하고 단단한 손이 그를 잡아 감싼다.

“어, 형? 아이구, 미안해미안해.”

당황한 명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울지 마. 내가 괜히 물었다.”

그 때도 그랬다. 

꿈결 속에서, 인간 하나쯤은 가볍게 손 위에 얹은 거대한 존재가 그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며 고개를 기울이며 그렇게 말하곤 했다.

움직일 때마다 관 아래로 보석으로 엮은 술이 고아하게 차르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눈물 진주로 만들면 예쁘겠다, 그치이. 싫어? 싫으면 울지 말구.]

물 속에서 울리는 말소리는 독특한 울림이 있었다.

승철은 몽롱한 채 그 존재를 올려다본다.

어떤 것은 이토록 생생한데, 그 존재의 얼굴만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마치 까맣게 먹물을 떨어뜨린 것처럼 새카맣게만 남았다.

아름다울 텐데.

분명히 그럴 텐데, 거기에 구멍이 뻥 뚫린 듯 했다.

승철이 열뻗친 얼굴로 눈물만 뚝뚝 흘리자 명호가 허둥지둥 손수건을 가져와 눈가에 대고 꾹꾹 눌러줬다.

“바다가 무서워.”

“응, 그치.”

“모르겠다, 진짜. 분명히 구조되고 나선 바다 근처는 가지도 않을 거라고 다짐했는데……. 아씨, 맞잖아. 사주 맞잖아.”

“그래그래.”

“그런데 그리워. 보고 싶어.”

다시 눈물이 퐁퐁 솟아오르는 통에 명호가 손수건을 넘겨줬다. 

“아이구. 봐, 벅벅 문지르지 말고 좀 닦으면서 얘기해. 뭐가 그렇게 그리운 거야. 바다가 그리운 거야?”

“몰라. 뭘 보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막. 답답해 미칠 거 같아. 이러다가 미쳐서 바다에 몸을 던질 거 같애. 그만한 개죽음이 또 어딨냐고.”

명호가 한숨을 쉬고 그냥 승철을 토닥토닥하다가 끌어안고 어깨를 두드렸다. 승철도 복잡한 마음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명호에게 기댔다.

그래서 손수건을 적셨던 승철의 눈물이 새삼스럽게 푸른빛으로 반짝이다가 사라졌다는 걸 명호도, 승철도 알 수 없었다. 


“얘들아. 좋은 소식이 있다.”

우 박사가 그렇게 말했지만 고잉 레인저는 하나같이 맥아리 없이 예엥… 그러시겠죠… 하고 대꾸했다. 휴가 주는 것도 아니고 뭐…….

그러나 그렇게 늘어져 있던 레인저들은 우 박사의 다음 말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고잉 레인저 2팀이 생겼다.”

“네?”

“뭔 소리예요?”

“우리 다 은퇴해요?”

누군가 꿈과 희망에 가득 찬 소리를 내뱉었지만 우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어허, 무슨 은퇴! 한 번 히어로는 영원한 히어로야!”

그 말에 고잉 레인저들의 각박한 야유가 쏟아졌다.

“뭐래는 거예요, 우우우우우.”

“여기 근무 기간 끝나자마자 도망갈 건데요?”

우 박사는 너네 스파이더맨 안 봤냐, *리큐어 안 봤냐, 2 기수가 흥해도 1 기수가 있기 때문에 어쩌구 저쩌구 훈계를 한 후에야 말했다. 

“이번에 초능력자 입대 한 친구들이 많아졌어. 그러니까 은퇴가 아니라 너희가 1팀이 되고, 2팀을 새로 만든다는 뜻이지.”

“뭐가 달라져요 그럼.”

“1, 2팀이 구역을 나눠서 출동하게 될 거고……”

원우가 안경 챠캉을 시전했다.

“나눌 구역이 어딨다고.”

“있어. 하지만 2팀은 신입이 많으니까 1팀을 메인으로 두고 연수를 좀 받아야 할 거 같아서 소개시켜주려 한다. 숫자도 색도 같으니까, 만약 레드면 레드, 옐로우면 옐로우, 이렇게 연결된다고 보면 된다.”

“잠깐만. 고잉 레인저 팀이 둘인데 왜 색을 똑같이 하는 거야, 우 박사?”

“그래! 레드는 나야! 둘이 될 수 없어!”

“……까지는 아니더라도 호칭이 복잡해지잖아.”

“아냐. 고잉블루 1팀, 2팀 이렇게 부르는 게 낫지, 고잉 로즈쿼츠세레니티! 이럴 수는 없잖아.”

“그런… 가? 다 안 겹치는 색깔을 하면 이름이 너무 길어지고 외우기 힘들어지긴 하겠지?”

“그리고 역시 팀의 중심엔 레드가 있어야 된다고 내가 강력 추천했지.”

“역시 아니네.”

그렇게 우 박사와 티격태격하며 대기실로 향하자 거기에도 역시 여섯 명이 각자의 컬러대로 레인저 복장을 한 채 앉아 있다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하이!”

레인저 복장까지 다 갖춰입었네. 있는 걸 가져다 입었다기엔 덩치들이 들쭉날쭉했는데.

최승철은 이미 싹 다 준비해놓고 모르는 척 해왔다가 뒤통수를 친 우 박사를 노려보았다가 새로운 레인저들을 눈으로 한 명씩 쭉 훑었다.

아무래도 자신과 짝이 될 블루로 눈이 먼저 갔다. 무뚝뚝해 보였다. 그리고 시선은 그 옆에 있는 키 큰 핑크에게, 또 그 옆에 있는 동그란 레드로, 그리고 어딘가 고양이 같은 옐로우. 거기에 맨 끝에 서 있는 새초롬한 블랙과 화이트에게까지 흘렀다.

탐색하던 시선이 2팀 화이트에서 우뚝 멈췄다.

동그랗게 뜨인 커다란 눈과 마주치는 순간 빨려들어간 듯이 시선이 고정되고 말았다. 

어디에 서도 시선을 모을 단정하고 고운 선으로만 이루어진 예쁜 남자긴 했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승철은 자신이 숨을 쉬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햇빛을 받아 도토리처럼 살짝 밝아진 2팀 화이트의 눈 안이 푸르게 너울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투명한 물이 모여 푸르게 보이는 것처럼. 그토록 거대한 바다처럼.

“아…”

2팀 화이트가 눈을 깜빡였다가 부스스 웃었다.

“너는 꼭 네가 있는 데에 내가 오게 만드는구나.”

승철은 자각하지 못한 채 입을 뗐다. 목소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소리가 울려나왔다. 바닷속에서 보았던 그 거대한 존재처럼.

[정한아.]

환청처럼 울려퍼지는 거대한 소리의 울림에 서로를 쭈뼛거리며 살펴보던 초능력자들이 흠칫 놀라 귀를 막았다. 

그러나 윤정한만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커플링
#정쿱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