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이가 공작 차남의 성년 축하 파티
정쿱
"얘들아, 주문한 옷이 도착했단다. 가서 얼른 입어보고 오렴."
점심 식사가 끝날 무렵 승연과 승철에게 '어머니'가 이야기를 건넸다. 며칠 전, 사람을 불러 치수를 제고 의상제작자와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결국 무도회에 가기 위한 옷을 제작하신 것 같았다. 방 안 가지런히 놓여있는 옷은 초대장에 적혀있던 드레스 코드인 하얀색 정복이었다. 깔끔하면서도 정갈하면서 몸에는 너무 달라붙지 않은 디자인이 승철의 마음에 쏙 들었다. 생각보다 움직이기도 편하고, 뭣보다 거울로 비춰지는 모습이 잘 생겨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점도 그런 생각에 힘을 더해주었다. 검은 색 셔츠 위로 은색 자수가 넣어진 베스트 위로 하얀 마이, 그 위로 두터운 안감의 망토를 두른 모습은 외관은 귀족의 자제로서 어디가도 꿀리지 않을 분위기를 자아냈다.
거실로 나오니 저와 같은 옷감으로 만들어진 하얀 드레스에 검은 허리띠, 승철과 디자인이 흡사한 케이프를 걸친 승연이 서있었다. 케이프와 망토에는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누가봐도 같은 가문의 남매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누구 아들딸인지 몰라~"
입고있는 옷을 내려다 보던 승철은 곧 파티에 가야한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다. 소설의 시작. 그곳으로 가면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승철은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적응한다고 아등바등 굴긴 했지만 승철의 최우선 목적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미 정해진 죽음을 바꿀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기 때문에. 만약 내가 발버둥을 쳐도 결말이 그대로라면? 문득 떠오른 부정적인 생각은 그 크기를 순식간에 키워 승철을 집어삼켰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승철은 가끔 늦은 밤에도 검을 휘둘렀다. 꾹 쥐었다 편 손바닥에는 어느 새 새로 생긴 생채기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승연은 어머니가 방에서 나가고도 우두커니 서 있는 승철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건드렸다. "아냐, 아무것도." 미심쩍게 웃으며 방을 나서는 승철을 바라보다 승연도 제 방으로 돌아갔다.
*
"잘 다녀오렴."
"예."
몇 일이 지났을까. 벌써 파티 당일이 되어 승철은 옷장 한쪽에 정갈히 걸어둔 옷을 입고서 집 대문 앞에 승연과 서 있었다. 마차에 오르기 전에 옷매무새를 확인해준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두 사람은 마차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얼마 안 가 차체가 흔들리더니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승철은 마차 문에 달린 작은 창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본다. 잘할 수 있을까. 심호흡을 크게 하고 싶었지만 건너편에 있는 승연이 이상하게 볼까 시도하지 못하고 바깥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워냈다. 별일 없겠지. 하고 자신을 타이르는 수 밖에.
"처음도 아닌데 왜 그리 긴장하셨나요."
"멀미를 좀 하나 봐."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는지 저를 바라보는 승연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대충 얼버무렸다. 진실을 이야기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그녀는 작중 등장인물이었으니까. 사실을 말해봤자 미친 사람 취급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소설이 진행되는 일에 자신이 끼어들어도 괜찮을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작품에서 최승연의 오빠는 그다지 비중 있는 인물이 아니었고, 작가가 설정을 깊게 안 짜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빙의한 이 캐릭터에게 긴밀한 친우가 없던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친한 친구가 있었다면 조금 달라진 승철의 행동에 금방 위화감을 느꼈을 테니까.
그렇게 적막이 내려앉은 마차 안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속도가 서서히 느려지더니 완전히 멈춘 마차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목소리에 승철은 문을 열고 마차에서 내려섰다. 뒤돌아서 승연의 손을 잡아줘야 하나했지만, 질색할 것 같아 혹여나 넘어질때를 대비할 수 있는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나란히 선 두 사람을 본 공작 저 사용인이 예를 표했다. 간단히 목례를 한 뒤 안내에 따라 파티 회장으로 걸어갔다. 황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공작의 저택이라 그런지 승철이 지내던 최 가(家)의 저택보다 화려했고 또 넓었다. 여기서 잘못하면 길 잃기 쉽겠는데. 눈으로만 대충 훑다보니 어느새 연회장 입구에 도착했다. 이미 문이 열린 회장 내부에는 먼저 도착한 귀족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승철은 회장 구석 편 벽에 팔짱을 끼고 섰다. 승연 또한 사교를 즐기는 편은 아닌지 어느 새 승철의 옆으로 와 서서 회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들어오는 인파를 바라보며 시간을 죽이던 승철은 눈을 잠시 감고 원작 소설의 내용을 떠올렸다.
왕실과 친밀한 가문 중 하나인 이씨 가문 차남의 성년 축하 파티, 바로 소설 1화에 배경이 되는 장소였다. 이곳에서 여주인공 '이주연'과 남주인공 '윤정한'이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이 날을 기점으로 여러 우연들이 겹쳐가며 두 사람은 서로 사랑에 빠지는 흔한 러브 스토리였다. 스토리 전개와는 별개로 두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감정선이 너무 인위적이라는 후기도 많았지만 승철은 오히려 뻔하고 진부한 사랑 방식이 좋았다. 사랑은 정말 별 거 아닌 것에서 부터 시작이 되니까. 그런 사랑의 시작을 직접 볼 수 있다니 좀 설레기도 했다.
사람이 하나 둘 차서 이런 저런 소음이 쌓여가던 파티장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다들 시선이 집중된 곳을 바라보니 이 소설의 남주인공이 등장한 것 같았다. 금세 모여든 사람들 사이로 솟아오른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이 파티 주최인 공작도 황실과 긴밀한 사이였지만, 윤 가(家) 네는 건국 때부터 황실 직속으로 일하고 인연을 맺어온 가문이었다. 그 가문에 장남인데다 이미 대외적으로는 소공작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후 물려받을 작위가 확실한데 외모와 실력 또한 출중한 말그대로 먼치킨 남주인공. 주변에 잘 보이려는 사람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위치다. 그렇지만 남주인공인 '정한'은 그런 허례허식적인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 여주인공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이다. 승철도 소설을 읽는 내내 굽히지 않고 행동하는 여주인공의 행보를 참 좋아했었다. 그런 성격은 제 동생인 승연도 마찬가지인데. 슬쩍 시선을 돌려 옆을 보니 승연이 초점없는 눈으로 사람이 몰린 곳을 보고있었다.
"너는 관심 없느냐?"
"네?"
"윤가네 장남."
"없는데요."
"왜?"
"제 취향 아니라서요."
단호한 승연의 대답에 승철은 다시 고개를 돌려 인사를 나누고 하나 둘 흩어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연적이 되는 건 아닌데 어쩌다 주인공에게 밉보인 걸까. 고민하는 사이 드디어 인파 사이로 '정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승철은 그를 보자마자 소설에서 왜 몇 문단을 써가며 장황하게 서술했는지 이해가 갔다. 잘생겼다. 예쁘다. 라는 느낌도 있지만 그에게는 '아름답다.'라는 말이 가장 적합했다. 단정하게 내린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얇지만 진한 눈썹이 깔끔하게 자리하고 있고 짙은 쌍꺼풀이 호선을 그렸다. 곧게 내린 코와 얇은 입술이 눈과 조화를 이루어내 마치 누군가 공들여 조각한 예술 작품 같았다. 올라간 입꼬리가 다정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서 호감이 갔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던 승철은 정한과 눈이 마주쳤다. 금세 다가온 사람에게 고개가 돌아간 탓에 확신은 안 갔지만 너무 보고 있던 건 사실이라 승철은 속으로 자책했다. 여기는 귀족들의 기싸움이 행해지는 곳이다. 매사 행동을 조심해야했다.
그러나 묘하게 마주쳤던 눈빛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 민망해진 승철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다 여주인공인 '이주연'도 발견했다. 소설 표지에 그려진 것처럼 연한 갈색머리가 웨이브 져 내려앉아 있었고 무난하게 단정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주변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둘이 어쩌다 만났더라. 아득한 1화 내용을 기억해보려 한 그때, 파티를 개최한 공작이 중앙 계단을 통해 홀로 내려왔다. 그의 뒤로는 막 성년이 된다는 둘째 아들이 공작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공작이 등장하자, 자연스럽게 공작과 친밀한 가문들부터 각 가문들이 차례대로 축하 인사를 하기 위해 중앙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당연하게 '윤정한'이었고, 그 뒤로는 적당히 나와서 축하의 말을 건네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승철도 가문을 대표하는 입장이라 공작에게 가서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승연의 옆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아무런 사건 없이 무사히 축하가 끝나자 공작이 박수를 두어번 쳐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늘 찾아와 축하해 주신 모두들 감사합니다. 자유롭게 즐기다 돌아가십시오."
박수 소리가 잠시 회장을 가득 채웠다 사라졌다. 간단한 공작의 인사를 끝으로 몇몇 무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막 성년이 된 황실 측근의 공작 차남의 축하를 위한 자리기도 했지만 이리도 많은 인파가 모인 이유는 곧 있을 기사 시험 때문이었다. 이 가(家)또한 오늘 파티의 주인공인 차남을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 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도 이번 기사시험에 참여하게 되니까. 각 가문의 물밑작업이 행해지는 이 곳에서 승철은 눈을 굴려 얼굴을 익힌다. 기존에 지내던 '승철'의 기억과 자신이 이미 봤던 소설 내의 등장인물들을 매칭 시켰다.
정정당당한 기사도를 시험하고 황실 기사단으로 입단할 수 있는 그 시험은 그만큼 많은 비리들도 존재했다. 이 비리에 원래 '승철'은 가담했을까? 승철은 자신이 움직여야 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그저 구석에서 어떤 존재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지 그것만 파악했다. 통과를 위해 편법을 쓴다. 승철은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력만으로 과연 통과를 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입김이 정말 황실에 닿지 않을 수 있나? 소설은 여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속단할 수 없었다.
제 가문은 그럼 힘이 있는가?
제 가문에서 기사단 시험을 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승철 이전에 아예 없던 건 아니지만 자주 일어나지는 않았어서. 남아있는 자료는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비리에 관한 자료는 남겨두지도 않았을 테니, 당연하게도 집안 서재를 전부 뒤져 보았지만 관련한 문서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런 시험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게 맞지 않은가. 목표가 남자주인공인 '윤정한'과 친밀해지기 였으므로 승철은 최대한 눈 밖에 나는 짓은 사리는 게 바르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어떤 무리에도 끼지 않고 그저 둘러보기만 했다. 회장을 둘러보니 '정한'은 주최자인 공작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저러면, 아무도 쉽사리 다가갈 수 없지.
한편으론 안심이 됐다. 제가 좋아하던 소설의 남주인공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니까. 나름 순탄하게 파티가 종료될 것 같아 승철은 긴장이 풀어지고 있었다. 벽에 기대 멍때리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굉음이 귓가로 파고들었다. 웅성거리는 소리 사이로 비명이 섞여갔다. "저… 위를 봐요! 곧 떨어질 것 같아요!" 누군가 가리키고 있는 손 끝을 따라가 보니 이미 지탱하고 있던 줄 하나가 끊어져 아슬하게 흔들거리는 샹들리에가 있었다.
아, 샹들리에.
그제서야 승철은 사색이 되어 1화에서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어떻게 만났는지 떠올랐다. 사람들이 혼비백산으로 도망치기 바쁠 때 누군가 여주인공을 뒤에서 치는 바람에 넘어진 여주인공을 박애가 넘치는 남주인공이 구해주는 것이 첫 만남이었다. 샹들리에가 떨어지기까지에는 아직 시간이 있었기에 승철은 제 동생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안전지대로 향했다. 동생이야 두면 알아서 잘 피하긴 하겠지만, 드레스는 기본적으로 활동성이 불편했다. 구두를 신은 상황에서 이게 제일 낫겠지. 승연도 그걸 알아서 표정이 썩긴 했지만 승철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이미 다들 출입구로 향하고 있던 터라 회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어차피 떨어진다면 굳이 사람이 혼잡한 곳보다는 파편이 튀지 않을 회장 안쪽으로 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 판단한 승철은 샹들리에와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으로 향했다.
"너무 혼잡하니까 이곳에 있다가 나가자."
"…좋아요."
위태롭게 달려있는 샹들리에는 홀 중앙 쪽에 있는 샹들리에라서 승철과 승연처럼 오히려 구석 편으로 피한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중앙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문을 향해 가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질서가 흐트러져 몇몇은 넘어지고 회장 안은 말그대로 난리가 아니었다.
툭.
그나마 지탱하고 있던 줄 하나가 마저 끊어져 이제는 정말 얼마 안 가 추락할 것 같았다. 낙하할 곳으로 보이는 곳에 막 여주인공이 지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승철은 여주인공만 그 곳에 있을 줄 알았으나 뒤에 부모를 따라 나가다 홀로 넘어진 아이를 보고말았다.
삶은 소설과 다르다. 그건 소설 안에 들어와서 생활하는 일상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였고, 소설 지문 안에는 그 세상에 들어있는 인물들의 전부가 묘사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작가가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용만 나오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두려움에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도 그 곳에 있었다는 게 나오지 않았고 무수한 인파들은 더 위태로워진 샹들리에 때문에 오로지 자신이 도망칠 곳만 바라보고 있어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거다. 저 아이를. 승철을 제외하고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 위험에 빠진 아이를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승연이 말리기도 전에 승철은 다시 샹들리에가 있는 홀 중앙으로 뛰어갔다.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심장이 이렇게 크게 뛸 수가 있나? 귓가에 제 심장 소리만 들리는 기분이었다. 구할 수 있을까? 오히려 죽으려나? 저게 떨어지면 어디까지 튀지 파편이? 승철은 고개를 들어 흔들리는 샹들리에를 바라봤다. 완전 중앙에 매달린 가장 큰 크기가 아니라 그 옆에 좀 작은 크기로 있던 것이라 떨어져도 좀 옆으로 피하면 크게 다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성인이 깔리면 크게 다칠 거고 저런 어린애라면 즉사할 가능성이 컸다. 승철은 어깨에 매달린 망토 체인을 풀어 팔에다 걸쳤다. 안감이 두터워 망토로 아이를 감쌌을 때 어느정도 충격은 막아줄 것 같았다. 그래도 나름 악역으로 대두되던 등장인물의 오빠인데 이 곳에서 죽지는 않겠지?
마침내 승철이 아이에게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왔을 때 샹들리에가 한 번 더 흔들렸다. 마음이 급해지니 오히려 시야가 좁아져서 여주인공인 '이주연' 이 있는 곳은 확인도 못했다. 옆눈으로 누군가 여주인공에게 다가오는 게 보일 때쯤 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줄이 완전히 끊어졌다. 유리와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홀 안에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승철은 넘어진 아이에게 망토를 감싼 뒤에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곧이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승철의 등 바로 뒤로 샹들리에가 떨어져 박살이 났다. 다행히 깔릴뻔한 위치에서 한두발짝 떨어져 크게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아직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놀란 가슴에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제 품 안에 있던 아이의 부모인지 하인인지 급하게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망토를 걷어내고 아이를 살피니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다친 곳은 없니?"
"…네. 감사합니다."
한시름 놓자 그제서야 등 뒤로 튄 파편 때문에 아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아, 큰일났네. 승철은 아이를 감싸고있던 망토를 다시 어깨로 걸쳤다. 애가 이런거 보면 안 되지, 참.
"얘야!"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애가 놀랐을텐데 예의바르네요."
연신 고개를 숙이는 아이의 부모에게 한참을 붙잡혀있다 풀려나니 뒤로 빠른 구두소리가 들려왔다.
"오라버니 괜찮으신가요?"
"어? 응. 괜찮아."
승연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망토를 자신만 볼 수 있게 살짝 들춰보고는 승철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일단 집으로 가요. 치료해야하니까."
축축한 느낌이 나기시작한 등에 상태는 직접 보지 않아도 심각한 수준일 것을 승철도 알아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죽었으면 어쩔 뻔 했냐고 진짜 요즘 이상한게 정말 미쳐버린 건 아니냐는 남들 앞에서 할 수 없는 교양없는 잔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아니 그럼 그냥 보고만 있어?"
묘하게 억울해져서 반발하니 승연은 두 눈을 꽉 감고서는 속이 답답하다는 듯 주먹을 쥐고 가슴을 두드렸다.
"그럼 다치지나 말던가요!"
나름 애정섞인 말인 걸 알아서 승철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치, 승연이도 놀랐겠지…. 떨어지는 샹들리에 밑으로 제 오빠가 뛰어가는데. 남들이 보면 죽고싶어 환장할 짓인게 맞긴 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주치의를 대기시켜 놓으라는 승연의 말에 마중 나와있던 어머니가 놀라 자빠지실뻔했다. 파티장에서 있던 일을 듣더니 잘 하기는 했지만 너무 무모하게 움직이지는 말라는 잔소리를 들으며 승철은 주치의의 치료를 받았다. 등에 박힌 유리 조각 중에 꽤 큰 파편이 있어 왼 날개뼈 밑으로 깊은 상흔이 남았다. 다른 상처들은 긁힌 수준이라 금방 낫겠지만, 그 상처는 한 달은 족히 넘어갈 것이라는 말에 승철은 아득해졌다.
당장 기사시험이 이 주일 후 인데….
괜한 일을 했나 싶다가도 아이와 그 부모의 얼굴을 떠올리니 후회는 되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죽게 냅두냐…. 그냥 못 본 척했으면 꿈자리가 사나울 것이 분명한데.
상처가 작지 않은 것이 맞긴 한듯 왼쪽 팔을 움직일때마다 약한 통증이 느껴졌다. 대검을 사용하는 승철에게 있어서 치명적이라 최대한 남은 기간은 회복하는 데에 전념해야했다. 침구에 누울 때도 온전하게 눕거나 왼쪽으로 기울여 누울 수 없었다. 엎드려서 배게에 얼굴을 묻고 잘 때에 조금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마음이 불편한 것 보다는 몸이 불편한게 나았으니까.
승철이 부상을 입었다 보니 승연의 검술 수업도 한동안 할 수 없었다. 에초에 그 날 화가 많이 났는지 그날 이후로 승철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하나뿐인 오빠인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주치의한테 정기적으로 상처가 덧나지는 않는지 진찰을 받는 날에 승연은 얼굴을 보였다.
"요즘 오라버니때문에 학교에서 얼마나 피곤한 줄 아세요?"
"나때문에? 왜?"
"그거야 그 날 공작 아들 파티장에서 '영웅'이 되셨으니까요!"
승철은 화가 나 씩씩대는 여동생한테 이유모를 사과를 하고 뒷머리만 긁적였다. 그리고 조금은 걱정도 되었다. 첫 화부터 전개가 달라진 것 같은데. 여주인공이나 남주인공 쪽의 상황을 알 수 없으니 제 행동의 여파가 어떻게 찾아올 지도 걱정이 되었다. 다음 왕실 기사단 입단 시험에서나 파악을 할 수 있을 텐데…. 몸상태가 이래서 남주인공인 정한과 인연을 맺을 수나 있을 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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