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나가기 전에 생각 했나요?
드림 / 사이퍼즈 / 일상 / 벨져바보멍청이! 오마카세
이글. 네게 짝이 생길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만에 하나 약혼자가 생긴다면 꼭,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고 아껴주어라.
……. 진심으로 하는 조언이다.
눈가에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고, 코 끝을 맴도는 공기가 제법 잘 데워졌을 때가 되어서야 느즈막히 눈꺼풀을 열어본다. 바스스- 순백색의 부드러운 면을 갈라 손을 밀어보면 따뜻하게 손에 닿는… 닿는… 닿아야 하는…
없다.
손을 휘저어봐도, 없다.
없다고, 항상 내가 눈을 뜰 때까지 곁을 지켜주던 이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주변을 둘러본다. 화장실에 갔나? 허기가 져서 요기라도 하러 갔나? 그럴 리가 없는데. 이불을 걷어 차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대충 건져 신어 질질 끌리는 채로 벨져를 찾아나섰다. 말도 없이 사라질 사람이 아닌데, 무슨 일이라도 난 건 아닌지. 오랜만에 쉬게 되어 같이 있겠다고 했으면서 대체 어딜 홀랑 나가버린 건지…. 분주하게 저택 곳곳을 쏘다니는 내 뒤로 사용인이 허겁지겁 뛰어와 어깨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 그, 이른 새벽에 둘째 도련님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신다는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
“……. 네?”
한 마디 말을 듣자마자 있는 어처구니, 없는 어처구니를 싹싹 긁어모아 상실했다. 약혼자도 있는 사람이… 오랜만에 잠깐 쉬게 된 거면서… 겨우 저 한 마디 남기고 사라졌다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안타리우스의 세력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해 충분히 불안했는데, 이렇게 불안감을 더 심어주다니. 아주 대단하십니다, 벨져 홀든 경!
그래. 급한 용무가 생겨 급하게 자리를 비운 거…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는데, 어떻게 나한테까지도 아무 말 없이, 내가 푹 잠들어서 눈치도 채지 못한 새에, 이렇게 홀랑 사라질 수가 있냐고! 돌아오면 정말 가만 안 둘 거야. 그 잘난 입이 마르고 닳도록 사과하게 할 거니까, 두고 보세요 벨져 경!
훌쩍 훌쩍,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린다던가. 지쳐 잠들었는데 악몽을 꾸는 바람에 약혼자의 이름을 부르며 깬다던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을 감정소모를 하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그렇게 밤새 얕은 잠을 반복하다 기어코 다음날의 해가 떠올랐고, 또 혼자서 눈을 떠야만 했다. 울다 잠든 탓에 눈이 퉁퉁 부어 쉽게 눈꺼풀을 들어올리지도 못하겠다. 약혼자를 이렇게 추한 꼴로 만들다니. 볼을 마구 꼬집어버릴 거야. 이이익, 화나. 열받아!
“벨져, 벨져! 진짜 미워요!”
“…….”
“바보! 멍청이! 으아아, 이 바보같은 사람!”
“그거 참… 미안하게 됐군.”
“우악-!?”
"우악… 이라니. 강도라도 든 줄 알겠어, 안젤라.“
한껏 잠기고 다 갈라지는 목소리로 상대에 대한 화를 거침없이 쏟아냈는데, 그걸 당사자가 들었을 때의 당혹감은 평생이 가도 적응되지 않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가리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요란해진 머릿속의 구름들을 이리저리 가라앉히며 정리했다. 언제부터 와있었던 거지? 왜 이렇게 이른 아침에 잠에 들지도 않고 거기 걸터앉아서 사람을 보고 있는 거지? 뭐, 뭐야 정말…!
“잘 자고 일어났으면 굿모닝 키스라도 해주려나 기대했는데.”
이불을 훌렁 걷어내고 슬쩍 다가와 아직 바깥 공기의 내음이 가시지 않은 품에 나를 품어 안았다. 시린 바람이 스쳐 풀이 짓이겨진 촉촉한 향.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아주 멀리- 도시를 훌쩍 벗어나 다녀왔나보다. 따뜻하고 좋은데, 짜증나. 바보, 바보. 바보!
“사랑하는 약혼자를 지키기 위해 오랜만에 강도 높은 수련을 잠시 다녀온 건데, 취급이 가혹한 걸.”
“뭐어…라구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이… 이… 이익…!!”
“으응…?”
“무슨 일 생겼을까봐 걱정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평소라면 쉽게 놔주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데, 조금 몸을 비틀어 꿈틀거리니 그 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제법 당황한 모양이지. 몸을 홱- 돌려 눈을 부릅뜨고 바라본 그의 소매에는 바싹 마른 이파리 조각 하나가 존재를 뽐내고 있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 누가 나 지키게 가서 훈련이나 하라고 했냐고. 그냥… 나랑 잠깐이라도 같이 자고, 일어나고, 브런치를 먹고, 그런 소소한 일상을 즐겨주면 덧나는 거였냐구…….
“안젤라. 그러니까…”
“몰라요!”
“안젤라…”
“말 걸지 마요, 바보!”
무어라 말도 뱉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리며 이쪽을 바라보는 그 눈에 당혹스러움이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다 업보입니다, 홀든가의 둘째 도련님. 쉽게 용서해줄 생각 없으니 그렇게 알라구요.
“… 안젤라. 화… 가 난 거라면 조금 마음을 풀어주면 좋겠는데.”
“몰라요. 모른다구요.”
“말 없이 다녀온 것은 사과할테니…”
“사과하면 다 끝난다고 생각하지 마요. 흥.”
우물쭈물.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난처함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서 좀 웃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화를 풀어줄 순 없…
다고 생각하던 찰나. 벨져가 평소처럼 불쾌함 섞인 얼굴이 아닌, 사고 치고 나서 눈치를 보는 동물같은 얼굴로 슬금 다가와 내 손끝을 잡았다. 꽉 잡아 쥐는 것도 아니고- 아주 살포시 손끝만.
“사랑하는 약혼자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인 걸 잘 알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앞으로는 꼬박꼬박 얘기하고 갈테니, 이번만 화를 풀어주겠어… 레이디?”
“… 이럴 때만.”
귀족에게 아주 중요한 핵심 소양. 처세술…
홀든가의 세 형제는 다들 결이 달라서 그렇지, 처세술에 능한 사람 뿐이다. 벨져도 자존심만 강하고 오만한 이로 평가되지만 사실… 필요에 의한 처세술이라면 다른 두 형제 못지 않게 능청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내 앞에서!
“안젤라. 내 명예를 걸고 약조하지. 앞으론 말 없이 사라지지 않겠다고.”
“……. 어기면, 진짜 혼날 줄 알아요. 또 그랬다간 저택 정문에 두 손 들고 벌 세워놓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얼마든지.”
잡고있던 손을 잠시 놓더니 허리에 팔을 감아 확 당겨 다시 나를 품에 안았다. 이번에 봐줬다고 또 이렇게 사람 불안하게 만들면 확 안타리우스에 밥으로 던져줄지도 몰라. 앞으로 잘하세요, 벨져 홀든 경. 약혼자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예?
내가 이런 적폐 핑크빛 말랑 순애를 쓰다니
신청 감사합니다… @RAPIDF0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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