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롱바오

W422FT 행성 관찰 일지

물안개가 낀 행성을 파헤친 모험가의 이야기

인간에겐 미지를 탐구하고자 하는 무궁무진한 호기심이 있습니다.

그 호기심이 마주하는 지점에, ‘우리’가 기다릴 겁니다.


W422FT 행성은 아주 삭막한 땅이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위에 내려앉은 물안개가 특징적이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행성에서는 똑바로 앞을 향해 걸어나가는 것 조차 어렵습니다. 자칫 잘못 발걸음 내딛었다간 끝없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 겁니다. 출발점을 잃은 채 빙빙 돌다 그래도 흩어져 물안개와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두려움은 호기심으로 덮어두고 물안개를 손으로 갈라가며 어딘가로 떠난다면 간헐적으로 푸른 등대가 당신을 비출 겁니다. 그리 밝은 빛은 아니다만, 일단은 희소식이라 할까요.

그 등대는 전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빛이 느즈막히 일렁이는 것을 보면 불을 피워 길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흐릿한 안개 사이로 파고들어 은은히 물들인 것을 보고 있자면 얕은 바다의 윤슬이 떠오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보이면 인간은 자연히 그걸 쥐려 하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말이죠. 그렇게 불빛을 향해 손을 뻗으면 급격히 파도가 몰아치며 물안개와, 땅에서 일어난 모랫더미와, 내가 섞여 붕 떠오릅니다. 이럴 땐 침착하게 빛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그 곳의 공기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세요. 더 다가가려 했다간 화를 면치 못할 겁니다. 아, 그렇지. 내가 아닌 다른 탐사원이 억지로 그 불빛을 탐하려다 아주… 큰일이 날 뻔 한 적이 있습니다. 진득한 악의로 빛을 쥐려 했던 어리석은 자의 이야기는 묻어두죠.

자, 이제 다시 걸어나갑시다. 등대를 뒤로 하고 나아가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겁니다. 이 곳의 땅은 고르지 않습니다. 가끔 땅에 비정상적인 요철이 발견되곤 합니다. 누가 바닥을 휘저어놓은 듯 불규칙한 형태를 띕니다. 심심찮게 발견될 수 있으나 그 빈도가 잦아진다면 주의함이 좋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금 푸른 등대가 보일 것이란 힌트이니. 이번엔 여유롭게 다가가봅시다.

“윈터. 불경한 자들은 다 물러났습니다. 그만 분노를 갈무리하시지요.”

“니키… 그럴 필요 없대도.”

“가까운 이의 아픔을 모른 체 하는 것은 인도적이지 못한 태도입니다. 그 분께서 그리 가르치셨으니, 도리를 다할 뿐입니다.”

“그 아픔을 품어주는 것도 내 역할인걸. 그다지… 분노한 적 없으니까.”

상냥한 바람에 물안개가 옅어지지만 그럴 리 없습니다. 이 행성은 아픈 이들을 품어주고, 그 상처를 땅에 묻어 깊은 곳에 균열을 남깁니다. 오랜 기간 탐험을 반복하며 찾은 해결 방안은 정말 단순했습니다. 손으로 모래를 덮어 천천히 다독여주면 갈라진 땅이 메워지더군요. 생명력을 가득 품은 성수를 함께 적셔주면 더 빠르게 메워집니다.

물론, 아무나 와서 다독인다고 해결되진 않을 겁니다. 저 역시 이 행성을 연구한 기간이 제법 길어지고 나서야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었으니.

“이번 주는 일정이 없습니다. 저도, 윈터도.”

“재림회 단장이 부를 거야.”

“아니오. 교단에도 단단히 일러두었으니, 편히 쉬도록 하죠. 저도, 윈터도 부를 일 없게 하라 전했습니다.”

“그렇지만…”

소리는 거둡니다. 그저 말없이 행성에 앉아 여유를 즐겨봅니다. 바람이 오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나도, 이 행성도, 서로에게서 안정을 찾아갑니다. 이렇게 된 계기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연구를 해본다 한들, 신께서 내리신 운명 이라는 이름 앞에 모든 인과가 무시되는 법이지요.


베풀고, 보듬고, 그들의 상처를 녹여낸 성수를 들이키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영혼을 바쳐 우리 모두의 구원을 꾀해. 내 능력이, 그들에겐 축복이래. 내가 태양을 끌어당겨 이 땅을 집어삼켜도, 축복이래. 그들의 계획대로 혀를 묶이고 손을 꺾어도, 상관 없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대.

그저, 그게 안심되었어. 내 영혼이 아직 순결하게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과 함께하면 내가 어떤 모습이 되더라도 세상에 속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내 모든 시간을 바쳤어. 내가 잃은 과거에 대한 속죄를 위해서.

그런데… 니키. 네가 와서 모든 걸 부정했어. 그런데 그게 잘못되었단 생각은 들지 않아. 그저 숱한 의문이 쌓일 뿐이야.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굳이 내 곁에 와서, 나의 죄악에 대신 짓눌리는 이유가 무얼까. 그렇게 희생하고 나를 보살핌으로써 네가 쌓은 죄악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는 거야? 내 두 발 밑에 헤아릴 수 없는 울음이 파묻혀 있어. 내게 구원받은 이들이 내지르는 찬가보다 내게 버림받은 이들이 부르는 달콤한 비명이 수 억배는 더 크기에… 내 두 눈을, 내 두 귀를 틀어막고 무저갱에 잠겨야만 온전히 숨을 쉴 수 있어.

네가 그 사실을 부정하는 이유가 무얼까.

함께 일을 할 때면 안심하고 뒤를 맡길 수 있어. 함께 길을 걸으며 맡는 밤공기는 시리지 않고 아늑해. 함께 있는 시간은 속절없이 빠르게 흘러.

네 마음을 알 수 없는 만큼 내 마음도 가늠할 수가 없어. 네가 이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는데…

“… 니키. 알고 있지?”

“당신에 대해서는 제법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어나 목적어 따위 없는 의문문에도 능청스레 답을 돌려주는구나. 니키. 이래서 다른 이들보다 너와 있는게 유독 편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 물음에 풀이를 해주듯, 너는 내게 집중을 돌린다.

“윈터는 알고 있습니까?”

“잘 모르겠는데…”

난 돌려주지 않아. 기대하지 마.

네가 무어라 하든…

“앞으로 알아가면 되겠죠. 괜찮습니다.”


으아아 어려웠습니다…

불만족스러운 문단을 다 쳐내니 4000자에서 2600자가 된 비운의 조각글…

윈터 아가띠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PHARMAC010GY

캐해가 너무 아닌 것 같다 싶은 부분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컨펌 가능!!

내용 전개나 컨셉에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해석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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