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롱바오

성장통

우리는 함께 하기에 다시 일어나 웃을 수 있어.

성장통

: 몸이 커나감에 따라 신경이 자극되어 발생하는 통증, 혹은 정신이 커나감에 따라 동반되는 혼란과 슬픔.


누군가 그랬던가.

속이 깎이고 닳아 웃는 낯 속으로 피눈물을 삼킬 줄 아는 것이 대인이라고,

사람들의 관심이 끊겨 혼자 남게 되더라도 잘 버텨낼 줄 아는 것이 대인이라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길을 닦아나가고 기꺼이 그에 책임을 질 줄 아는 것이 대인이라고.

그걸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역시 열여덟의 이방인에게 이 세상은 너무나 가혹했다. 차라리 만두 열 두 판을 앉은 자리에서 해치우는게 더 쉽겠다 싶을 정도로.

혼자서 떠난 여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분명 몸은 홀몸임에도 어깨에 얹힌 부담감에 짓눌려 악몽을 꾸곤 했다. 그 누구도 내게 짐을 쥐어주지 않았건만, 운명이란 것이 다 그런 거겠지. 누군가의 선택과 나의 선택이 만나 이런 길을 닦아냈을 것이고. 별 영양가도 없는 생각이나 하며 별을 세었다.

“야, 야! 고뿔 들어! 아직도 밤공기가 찬데 밖에서 뭐하냐?”

“어엉? 아, 어. 그냥 바람 좀 쐬고 있었어. 시원하구 좋은데 뭐~”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걸어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아둔해진 정신에 동생의 목소리가 내던져지면 문득-

‘네 아비가 포기한 자식과 지켜내려한 자식. 네가 어느 쪽일 것 같더냐.’

신령인지 잡귀인지도 모를 것이 동생의 소리를 빌려 내 귓가에 흘렸던 말이 다시 뇌리를 스친다. 내 아무리 둔하고 낙천적인 놈이라 한들 그런 소리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한날한시에 첫 울음을 터뜨린 두 핏덩이가 같은 령을 뫼실 수는 없다는 걸 잘 안다. 신령과 악귀가 마냥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란 것도 잘 안다. 게다가, 하랑은 영령을 뫼시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내 머릿속을 쿡쿡 찔러대기도 한다.

“너 그러다 얼어 죽으면 잡귀된다?”

“에헤이~ 내가 죽으면 신령이 되겠지~”

“만둣집 귀신 아니고?”

안녕하던 마음에 돌을 던지는 것도 저 목소리고, 연못의 물살에 손을 담가 잔잔히 가라앉히는 것도 저 목소리다. 나와 닮았지만 안개 끼인 것 없이 아주 깨끗하고 단호한 울림. 저 녀석과 시답잖은 소리나 하며 잠시 흐트러진 영기를 바로잡고 나면 어딘지 한결 편해진 느낌이 든다. 대충 웃어넘기고 먼저 발걸음을 옮긴 동생을 따라 실내로 들어선다.

“그나저나,”

“엉?”

“아까 잡귀들이 또 어슬렁거리던데. 뭐 고민이라도 있냐?”

“고민은 무슨. 잘생긴 사람한테는 령도 많이 꼬이는 거 알잖아.”

“윽.”

나보다 나를 더 꿰뚫어보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제법 오싹한 경험이다. 나 역시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을 보곤 한다만- 저 녀석은 그 이상을 보고 있는 것 같단 말야. 그러면서도 어찌나 고결한 령들이 저 애를 지켜주는 건지, 영기의 어느 곳에서도 흠집이 보이지 않는다. 스승이 잘 붙들어매준 덕일까, 아니면 타고난 걸까? 나도 수련이라면 제법 했다고 생각하는데.

“야, 하랑아.”

“어.”

“나한테 아주 악독한 것이 깃들면 넌 날 가차없이 패버릴 거지?”

“얼씨구? 당연한 소리를 새삼스럽게 하는 재주가 있네?”

“말이라도 아니라고 해주면 덧나나.”

“그거 대충 버려뒀다가 무슨 일이 날 줄 알고.”

반 진심, 반 장난. 무슨 일이 날지 모르는 것은 아냐. 악귀한테 싸워 이기지 못하면 저승에도 가지 못할 상것이 되어 미물이나 물어뜯고 다니겠지. 그게 무섭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그치만, 패기 전에 부적이나 몇 장 써서 네 상판에 덕지덕지 벽지 바르듯 발라봐야지.”

“숨구멍은 뚫어줘. 맛난 고기요리 냄새 맡고 정신 차릴 여지는 둬야하지 않겠어?”

내 손을 붙드는 잡것들이 눈에 보였구나. 때맞춰 장난스럽게 화제를 돌리는 넉살스러운 한 마디에 근심을 털어내고 농담으로 돌려주었다. 걱정마라, 네 마음 잘 안다만 이 형님은 그렇게 쉽게 무너질 사람 아냐.


부적 몇 장, 검 한 자루. 내 몸을 지킬 수단은 극히 한정적이었으나 세상엔 악귀보다 더 악한 것들이 넘쳐났고 맞서 싸워야할 것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새까만 령을 빌어 숨을 토해낼 때마다 머릿속엔 먹구름이 한 조각씩 얹혀간다. 하필 혼자 남은 날 이런 거지같은 일이 생기는 건 너무하잖아. 이러다 눈도 못감고 이승을 뜨는 건 옥상황제도 혀나 끌끌 차댈 기구한 결말 아니냐고.

내가 이대로 초라하게 흩어져버리면, 애써 피해온 내 진짜 운명이 날 마구 비웃을 게 뻔하단 말야. 부귀영화 따위 욕심낸 적도 없으니 그저… 그저 살아남게만 해달란 말야…!

‘수호야, 이 아비가 왔단다. 내가 기꺼이 도와줄터이니 안심하고 눈을 감아 잠에 들거라.’

거짓말 마, 기억 속에 묻어둔 아버지 목소리를 파헤쳐서 가져왔다고 내가 홀랑 넘어가줄 줄 알아? 내 목숨이 거센 바람 앞에 찢겨나간다 해도 그딴 얄팍한 수에는 안 속아!

‘…내 지금껏 널 그리도 성심성의껏 보살펴줬거늘.’

“- … !”

검을 붙들고 겨우 서있기만 한 것이 전부인 지금, 령의 목소리에 귀가 막혀 웅웅 울리는 감각만이 남고 두 눈에도 물안개가 잔뜩 서려온다. 내가 순순히 속셈에 넘어가주지 않으니 억지로 머리를 디밀어 자리를 좀먹으려 하는구나. 내 팔에 매달려 날 무너뜨리려 하는 수많은 죄악들은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무게로 날 끌어당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무리 베어내고 물어뜯어도 다시금 달려드는 짐승같은 것들이 내 다리를 무너뜨리려 수 십개의 눈을 번득인다.

결국…

이렇게 보잘 것 없이 무너지는구나. 나의 운명은.

“… ,”

“야, 이수호-!”

어렴풋이 울리던 카랑카랑한 소리가 부적과 함께 날아와 귀에, 내 정신에 꽂혔다. 찰나의 순간 거대한 바람이 휘몰아 춤을 추고 지나간 듯 정신이 맑게 개었다. 하랑아, 이 형님… 끝까지 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피붙이가 우는 꼴은 보고싶지 않아서 버텼어.

“너는, 빨리 좀 올 것이지…!”

“지금 그게 중요해? 빨리 정신이나 붙들고 도망치라고!”

“그럴 순… 더헉.”

“이 머저리야, 좀…”

정신력과 체력은 같은 갈래의 흐름. 이 말이 무엇이냐. 내가 지금 정신력에 체력까지 다 끌어다 버티느라 도저히 기운이 나질 않는다는 소리다. 다리가 풀썩 꺾여 주저앉고 말았다. 아잇, 거 참. 쪽팔리네.

“아이씨… 야, 일단 튀자. 너 나 꽉 붙들어라?”

한껏 툴툴대면서 내 손을 으스러져라 꽉 붙잡고 령의 도움으로 멀리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나도 이렇게 좀, 막. 어? 령을 말이야… 잘 써야하는데…

“… … … 하랑아. 미안. 놀랐냐?”

“아까 니 꼬라지 보고 안 놀랄 사람 있으면 데려와봐. 어디 폐허에 담력 시험이나 보내보게.”

“근데 있잖아.”

“뭐, 또.”

“왜 멋있게 구해줘놓고 말로 감동을 다 깨냐?”

“소름돋는 소리 하지 말고 가서 약이나 챙겨먹어.”

저 애는 숫기가 없는 건지, 자기네 신령들을 어디 동네 똥강아지 취급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멋있게 좀 굴어봐라, 바보야. 고맙다는 소리가 쏙 들어가네.

“약 먹기 전에 만두 먹어야 약효 잘 드는데.”

“이 돼지…”

어쩌면 난 평생을 가도 저 애의 반, 아니 그 반의 반도 못 따라잡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떻게 모두가 잘나게만 살겠는가. 확실한 건, 오늘 그 시커먼 령과의 싸움에서 내가 밀려 잡아먹히진 않았단 거지.

검술의 수련도, 령을 다루는 것도 다 똑같다. 내가 원해서 문을 열었기에 돌아갈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이 없더라도 꾸준히 갈고 닦아 온전히 나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을 다져야 한다.

그게 몇 년이 걸리더라도.

“야, 고마워. 다음 번에 고기 반찬 하나 줄게.”

내가 고난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손 내밀어줄 이만 있다면, 어려울 것 없을테니.


수호 빌려주신 갈님 감사합니다♡

@sshiphers

비루한 조각글이지만 맘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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