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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GO/멀린

FGO - 멀린 드림 * 1부 시점

몽유기담 by 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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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있었던 일들도, 자칫하면 모두 잊어버리게 되는 걸까.”

 그것은 상대의 의견을 구하기보다는, 불안함을 곱씹기 위한 말처럼 들렸다. 한입 베어 문 빵조각을 꽂은 포크를 마치 해를 겨누듯 들어 올리면서 그 끝에 시선을 던진다. 너무나도 산만한 그녀의 모습에 멀린은 경쾌한, 혹은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왜, 마스터? 간식이 입에 안 맞아?”

“응? 아니, 맛있어.”

편안한 홍차 향기와 너무 달지 않은 폭신한 바움쿠헨. 그녀가 좋아하는 조합이었으니 그 맛에 집중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의 말에 의식을 돌리기라도 하듯 마스터의 손안에 있던 포크가 한 바퀴 가볍게 빙그르르 허공을 돌았다. 아까 베어먹었던 바움쿠헨 조각이 마저 입에 들어갔지만, 평소 먹을 때 보여주는 야무짐이 없다. 생각에 쫓기듯이 입을 오물거리면서, 심지어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눈을 맞춰주는 그녀가 간혹 이런 모습을 보일 때면, 뭐라고 해야 할까. 드물게, 정말 드물게― 초조함이 명치께를 훑는다. 멀린은 다소 과장된 움직임으로 자신의 찻잔을 들어 올렸다.

“마이 로드는 박정하네에. 사람이 왔는데 눈길 한번 안 주고.”

“멀린은 사람 아니잖아.”

아아, 이제야 눈이 맞았다. 청회색 동글동글한 눈동자. 마스터가 그를 흘겨보았다. 그녀의 감정에 초점이 들어옴과 동시에 약간의 선명함과 함께 물결마냥 일렁임이 깃든다. 사람의 정신성을 탐하는 몽마로서는 이런 사소한 변화가 반가웠다. 다람쥐처럼 부산한 감정도 그 나름대로 맛은 있지만서도. 뭐어, 내게도 취향 정도는 있다.

“일단 뭐, 생긴 것만큼은 사람 같잖아? 눈이 팍 뜨이게 아주 잘 생긴 오빠지만.”

“뭐어― 그래.”

멀린은 생글생글 웃었고, 마스터는 그런 그를 게슴츠레하게 쳐다보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작은 입에 포크를 물고서는 아까처럼 허공에 시선을 돌린다. 멀린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고민이라면 이 멀린 오빠가 들어줄 수 있는데? 뭐든 말해도 좋아, 마스터. 뭐가 마음에 걸리니?”

“딱히… 고민은 아닌데.”

마스터는 문제집을 풀다 막힌 아이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곤란한 듯한, 기운이 없는 듯한 얼굴로 포크를 내려놓으면서 그녀는 말을 가다듬었다.

“그냥, 안 좋은 일도 있을 수 있겠구나 했을 뿐이야.”

기운이 없어 보이는 것이 안 좋은 꿈이라도 꿨나 싶지만 그건 오답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그는 몽마. 마스터가 악몽에 시달렸다면 모를 리 없다. 특히 요즈음 그녀의 꿈을 맛보는 것이 일상의 즐거움이 되어있는 만큼 더더욱.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의 꿈자리엔 딱히 이상할 게 없었다.

잠시 눈을 뗀 사이 일상 속에서 다른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조금 생각하던 멀린은 지팡이의 모퉁이로 뺨을 긁적이고는 마스터를 위해 본인에게 남아있는 티끌만큼의 성실함을 긁어모아 대답했다.

“칼데아는 인리소각에서 벗어나 있긴 하지만, 특이점은 아니니까 그렇게 불안정하지는 않아. 훌륭히 인리소각을 막아낸다면 그렇게 덧없이 사라질 것도 없겠지?”

“...어. 대답해주는 거야?”

“마스터가 물어봤잖아?”

“못 들은 척하길래, 말하기 싫은가보다 했지.”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너무 의미 없는 궁금증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지. 대답할 필요가 없었을 것 같아서 다물고 있던 것뿐이니 원한다면 이정도는 대답해줄 수 있다.

“음~ 그런 건 아닌데?”

어깨를 으쓱이며 실없이 웃어 보이자 마스터는 고개를 갸웃거리고서는 하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혹시라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그때에도… 잊거나 없는 일이 되거나 하진 않아?”

“꿈에서 깨어나듯이? 아하, 머리맡에 쌓아놨던 책을 본 거구나? 마이 로드는 귀엽기도 하지.”

“말로 하지 않아도 돼.”

정답인가보다. 그녀가 입을 비죽였다. 스무 살, 나이로는 요즘의 인간 사회에서는 대부분 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지만 세간의 지식과는 동떨어져 자란 소녀다. 요즘 들어 책이며 다큐멘터리며 한껏 빠져있더니 거기서 뭔가 본 모양이지. 부루퉁하게 팔짱을 껴봤자 귀여워보일 뿐이었다.

“꿈이라 한들 모든 것이 그리 쉽게 잊혀지는 것은 아니야. 마스터가 지난 특이점들에서 만났던 모든 것처럼.”

“그래도 음, 만에 하나라도. 모두 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건 좀.”

그러니까 그럴 리 없다니까. 지켜낼 수만 있다면. 멀린은 생글거리며 놀리듯 물었다.

“슬퍼?”

“-뭐, 그렇지.”

마스터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정말로 곤란해하고 있었다.

“멀린도 잊어버릴 것 아냐.”

-아. 내 마스터는,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말을 하는지.

안 그래도 탑에 틀어박혀 있는데, 나까지 잊어버리면 누가 멀린이랑 놀아주겠어? 하고 이 눈을 껌벅였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의식이 날았다. 마치 취한 것처럼. 아니, 정말 일순 취한 것만 같았다.

꿈에 직접 들어간 것도 아닌데 달고 단 감각이 엄습했다. 인간처럼 구강으로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과는 다른 감각, 몽마만이 즐기는 꿈과 정신성의 맛이다. 주로 기쁠 때나 행복할 때 느끼는 맛인데, 오히려 쓸모없는 걱정에 빠져 있는 그녀를 앞에 두고 이 맛에 취하는 건 어째서일까. 다른 생물처럼 입에 침이 고이지는 않는다지만 무심코 입맛을 다시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모든 인간이 이렇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니, 그녀라고 특별한 인간은 아니니만큼 실상 대단한 차이는 없겠지마는 그런데도. 유독 그녀만은 늘 이렇게 맛있―예뻐 보이는 건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사랑스러운 탓에, 장난기가 섞일 틈도 없이 입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걱정이라면 부디 잊어줬으면 하는데. 그럴 꿈이라면 이 몽마가 꿈처럼 처리할 테니까.”

마스터가 꾸는 꿈이라면 재미있고 즐거운 걸로 족해.

분명 목소리를 내어 말했을 터인데 마지막 속삭임은 오히려 그 자신에게 그야말로 꿈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럴 만도 하지. 이 내가, 진심이라니.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 겸 헛웃음을 감추듯 꼼지락거리던 손을 쥔다. 그 손이 꿈이라도 되는 듯 먹어버릴 것처럼 입을 벌리고- 이가 손에 닿을 거리쯤에 와서는 새털처럼 가볍게 입 맞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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