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신 샤르마 라하의 회고록

첨단의 열화, 그 이후

이것은 죄많은 글이 될 겁니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표지를 넘긴 당신이 어째서 그러하냐 물으신다면, 나 자신이 죄많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업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들 합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감히 그것의 총량을 재어본다면 가벼울 자신은 도저히 없습니다. 지난 저녁에는 이웃집에 사는 수줍은 아이가 악수를 청해주었습니다. 정말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이었습니다. 그와는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어느 날에는 퉁퉁 부은 볼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릇을 깨트렸더니 어머니가 호되게 혼냈다며 기분이 상한 듯했습니다. 어쩌다가 그랬는지 가만히, 간혹 짧은 질문을 던지며, 들어준 끝에는 어머니를 놀라게 한 것을 사과하러 가고 싶다 하였습니다. 벌떡 일어나 바로 옆에 있는 집으로 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요. 어느새 태양은 새빨갛게 타오르며 그림자를 늘이고 있었습니다. 펜이 끊임없이 멈추려고 합니다. 아이의 짧은 고백이 동시에 나를 두렵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릇은 순식간에 깨지고 맙니다. 보통 정신을 차리면 이미 무릎 아래까지 내려가서, 사람의 외마디 비명보다 빠르게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조각납니다. 찰나에 일어난 잘못에 해를 골아떨어지게 할 만큼의 고해가 필요하다면 도대체 나에게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눈깜짝할새 벌인 일과, 생각을 쌓아올려 저지른 일들이 목을 끔찍하게 채워넣더군요. 반백년도 안 되는 인생에서 참 부지런하게도 어리석은 행동을 거듭했습니다. 지금도 뒷통수에서 스며나오는 혈향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내가, 우리가, 내가 속을 털어놓을 시간마저 앗아버린 동료와 대립자가 그 주인입니다. 지금도 책상에서 머리를 들면 걸려있는 검은 나의 기억보다 무겁습니다. 나는 한때 이것을 쥐고 많은 동료에게 보장할 수 없는 말을 떠들어댔습니다. 지금 의자에 앉아서 펜을 들고, 구구절절 써내려갈 수 있는 것도 누군가의 생을 먹어치웠기 때문임을 느낍니다.

친절한 나의 동거인이 이 글을 읽는다면 필시 화를 낼 것만 같습니다. 함께하면서 어깨를 밀어주고 칼바람을 나누어준 그분을 위해서. 종이뭉치는 완성될 때까지 깊숙한 곳에 숨겨둘 작정입니다. 이를 고백하기 위한 종이를 한장 더 사러 가야겠군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나에게는 수많은 업을 써내려갈 종이가 충분히 있으니까요. 이제 여정을 떠나고자 합니다. 서른을 뛰어넘는 길이 둘로 뭉쳐졌다가, 다시 갈래가 되고, 이윽고 하나가 되어 퍼져나간, 그 발자취들을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떠올릴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가깝고 먼 사람들이 많이 있는 덕분입니다.

친애하는 검집과 탄피에게,

이 글이 잠을 방해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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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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