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빈 001.

薪盡火滅 by 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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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라고 한 소리야. 중얼거리듯 뱉었다. 효과 기대하진 않았지만 네 표정 살피려 고개 돌리다가… 그냥 말았다.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 여기 있는 놈들이 애도 아니고, 머리 다 컸는데 이런 거짓말도 한 두 번이지. 자꾸 떠들어대서 뭐 하나. 입만 아프고….

나야 뭐, 살겠지. 딱히 죽을 이유가 없잖아. 적어도 너보단 오래 살 것 같은데. 내가 너보다 먼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이창현은, 어떻게라도 살아서 곁에 있어줄 거냐는 물음을 신이빈이 죽은 뒤에야 제가 비로소 죽을 수 있다는 맥락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상황에서 죽음을 상정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어차피 모두가 죽잖아. 네가 먼저 죽어 봤자 사랑하는 것들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상실 이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텐데. 그럴 바엔 오래 살아남아서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것이 낫지 않으려나.

… 알겠어. 알겠어…. 나도 죽고 싶지 않어. 살아서 해야 할 것도 많고.

책임저야 할 것도 많은데.

그렇지만 이빈아,

그 어떤 약속도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서 내뱉는 맹세는

거짓말이랑 다를 게 없어.

죽은 자는 원래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법이니까. … 뭐 하냐, 다 큰 놈이. 징그럽게.

피, 먼지, 원천을 알아볼 수도 없는 얼룩으로 엉망이 된 얼굴에 손이 와닿자 인상 잔뜩 구기는 시늉 했다. … 굳이 피하진 않았다.

기억을 논하지 말고 생존을 논해, 지금은. 아직 안 죽어놓고 왜 그런 소릴 해. 그런 때에 할 말이 유언밖에 더 돼? 열여덟 창창한 놈이. 아무리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그래도… 운수는 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라니까.

이창현은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말들을 간신히 삼켰다. 내가 뭘 어떻게 잊어. 난 아무것도 못 잊는 사람이다. 지나간 미련이나 붙잡고 떠들어대는 게 습관인 사람한테 너는 왜 저주 같은 말을 하냐. 죽지 않을 생각을 해야지 왜 잊혀지지 않겠다는 가정부터 하고 있냐고. 그러나 동시에 이창현은 신이빈의 마음을 평생토록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죽어서 잊혀지는 것만을 상념 속에 품고 살아가는 청년이기 때문이다. 남들 생기부 채울 동안 장기 기증 희망 등록을 하고, 내신 공부 할 때 연명치료 거부 신청서를 쓰는 기관을 알아보던 놈은 그냥 바스라지듯 사라져서 제 사람들의 살아갈 의지, 그것마저도 되기에 버거웠다.

그래서 그냥, 그 이해할 수 없는 부탁에. 저보다 훨씬 열여덟이라는 숫자에 어울리던 네가 유념을 논하는 것만 탓하고 마는 것이다. 당장 닥친 상황이 이런 마당에 주머니에 종이 쪼가리로 갈겨 쓴 유서 정돈 아무나 지녀도 이상하지 않단 사실을 알면서. 저는 죽음을 따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모순.

…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뭐가 좀 달라지냐? 손목 걸고 맹세하면 믿기나 할 거야?

네가 살아가는 길이 내 것과는 다르길 바라면서 물었다. 이창현의 친애는 대개 그런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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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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