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이웃은 보았다
불미스러운 사고가 일어난 것도 아니면서 한동안 비어있었던 앞집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처음에는 발랄한 초록빛을 자랑하던 정원도 점점 지쳐가는 집주인을 따라 시들어갔다. 저러면 더 안 팔릴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입을 꾹 닫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집은 어쩌면 평생 안 팔릴지도 몰라.
세상에는 궁합이란 게 있다. 집과 집주인 사이에도 분명 궁합은 있을 것이다. 지금의 집주인도 그걸 느꼈으니 집을 팔려고 하는 걸 테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리를 보러 온 수많은 손님도 마찬가지였다는 게 그의 비극이었다. 동분서주하는 집주인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워했지만, 적극적으로 사람을 소개하려 하지는 않았다. 아마 나와 비슷한 걸 느낀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나만 집주인에게 매정하다고는 할 수 없다.
물건은 쓸수록 닳는 법이지만, 쓰지 않으면 그저 폐기물이 될 뿐이다. 집도 마찬가지였기에, 앞집은 슬슬 집이 아니라 폐가로 불리기 직전에 다다르고 있었다. 차라리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며 하소연하는 집주인을 달래는 나날도 지겨워질 때쯤.
낯선 두 사람이 마을에 찾아왔다.
다른 지역에 비하면 땅이 좁은 탓에 그다지 번화하지 않은 마을은 좋게 말하면 사이가 돈독했고 나쁘게 말하면 폐쇄적이었다. 그래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면 금세 눈치채기 일쑤. 나는 늘 그것의 장단점을 따지고 있었으나 지금만큼은 감사할 수 있었다.
아니, 사실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그는 이 마을에서 몹시 튀는 존재였다. 느릿느릿 도로 위를 굴러가는 그 차는 처음 보는 차였다. 누가 새 차를 뽑았나 싶어 기웃거리자면 창문은 완전히 검게 선팅되어 있어서 안쪽이 하나도 안 보였다. 너무 수상하잖아. 물론 단순히 사생활의 중요시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이건 너무 과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어디 높은 사람이라도 태웠나 싶은 수준 아닌가.
경계 단계가 한층 올라갔을 때쯤, 그 차는 내 앞에서 슬금슬금 멈춰 섰다. 그때의 나는 당장 발을 돌려 도망쳐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고 나를 휘리릭 휘감아 납치해 간다는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열린 건 문이 아니라 창문이었다.
“길 좀 묻고 싶은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건네는 것치고는 꽤 무례한 말투였다. 그러나 그런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잘생겼기 때문이다. 그것도 엄청. 어디 한 군데 군살이라곤 하나 없이 날카롭게 빠진 얼굴과 창문 너머로 슬쩍 보이는 목과 어깨만으로도 예상할 수 있는 다부진 몸. 여태 본 적 없는 미남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 분께서 이런 외진 마을까지.
“아….”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그때, 말 없는 나를 보던 남자는 슬그머니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니, 그게 아닙니다. 오해세요.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얼굴을 감상하고 있었을 뿐인데. 일단 아무 말이라도 내뱉으려고 숨을 들이켜던 찰나, 남자가 고개를 돌려 옆좌석을 바라보았다.
“야. 까… 아니. …어쨌든. 네가 해.”
까? 뭘 말하려던 건지 궁금했지만, 그 의문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금세 날아가고 말았다. 남자가 어설프게 몸을 틀어 낸 공간으로 한 여자가 고개를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실례합니다. 제임스 스콧 씨가 내어두신 집을 보러왔습니다만.”
아, 좋은 남자는 다 임자가 있다더니. 그 말이 한 치 틀림없는 사실이란 걸 오늘에서야 뼈저리게 느꼈다.
앞집이 팔렸다. 집주인은 이제야 집을 판 돈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겠다며 후련하게 떠나갔다. 그 소식은 금세 온 마을에 퍼졌다. 최근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 두 사람에 관해 떠들었다.
“군인이었다던데.”
“어머. 둘 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을 향한 호감은 간단히 치솟았다. 남자의 팔에 달린 의수가 매끈하게 빛날 때마다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떠나 동경과 감사, 연민과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고 그들의 안타까운-지레짐작뿐이지만-사연을 듣고 싶어 안달 냈다. 사실 나도 다를 바는 없었으나, 그보다 더 관심이 있는 건 남자보단 여자 쪽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두 사람의 관계 말이다.
“제발 남매길.”
나는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딱히 종교를 가지진 않았으나 필요할 때만 찾는 신이 이번에는 내 소원을 들어주길 바랐다. 혈연이란 건 이미 몇십 년 전에 정해져 있으니, 진실을 안다는 건 포장되어 있는 상자를 뜯을 뿐인 것이나 다름없어도. 한쪽은 왕년에도 지금도 제법 놀 것처럼 생겼고, 다른 쪽은 전교 1등을 놓쳐 본 적 없을 것처럼 생겨서 DNA 한 끝자락 인연도 없게 생겼지만. 그래도 꿈 정도는 꿀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냅다 찾아가서 무슨 사이냐고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어떻게 해야 접근할 수 있을까 창밖을 몰래 훔쳐보는 나날. 그 두 사람이 온 후로, 황폐하던 집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기어코 지옥에 처박힐 것만 같던 정원은 푸름을 되찾았고, 사방팔방 날리던 거미줄이 싹 걷혔으며 근처에 앉아 불길하게 까악까악 울어대던 까마귀 떼도 슬렁슬렁 다른 자리를 찾아 날아갔다. 그동안 집을 싸게 사려고 수작을 부린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솔직히 이상한 게 한둘이 아녔다. 삐걱거리던 지붕도 어느날엔가 눈 깜짝할 사이에 새것으로 바뀌었다. 분명 리모델링 업체를 부른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빨리 고칠 수 있었을까? 그뿐만이 아니라 기계 소리 하나 안 들렸는데 죽은 나무가 통째로 쑥 뽑혀있었다든가, 높은 울타리 너머로 냉장고와 선반 따위의 대형 가구를 옮기는 모습을 봤는데 정작 그 뒤에 나온 건 여자 혼자뿐이었다든가. 나는 그 집에서 말 잘 듣는 고릴라를 키우는 게 아니냐고 물어보고 싶은 것을 꾹 참아야만 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런 수상한 점을 몇 번 지나치고 나니 결국 익숙해지고 말았다. 좋은 보조도구라도 있었나 보지, 하며 자기 좋을 대로 납득하고는 어느샌가 사람보다 집의 변화를 좇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는 아닌가요. 저번에 길을 알려주셨던 분이군요. 그땐 감사했습니다.”
문 앞에 서있는 여자를 보곤, 나는 당초의 목적을 그제야 다시 떠올렸다. 얼떨떨하게 인사를 받으며 가까워진 여자를 살폈다.
무심하고 단정한 얼굴이었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암석을 잘 다듬어둔 것처럼 생겼다는 감상이 들었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만져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그가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롯이 맑게 빛나는 따뜻한 색의 눈동자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저 흔들림 없는 눈빛 하나로 어느 치열한 생을 실감케 하는…
“혹시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 아니에요!”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걸 들켜 깜짝 놀란 나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딱딱한 말투를 들으니 정말 군인 출신이 맞나보다 하는 안일한 생각과 함께. 괜히 찔려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지나 랭턴이에요. 당신은요?”
“리샤입니다. 리샤….”
순간 여자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러나 아주 짧은 시간이라 의아함이 가시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맥레오드.”
그러곤 웃었다. 환하지는 않았지만, 어룽어룽 흔들리며 옅게 빛나는 윤슬 같은 미소였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되냐고 묻지 못한 걸 깨달은 건 맥레오드 씨가 돌아가고 난 후였다. 나는 그가 주고 간 미트볼을 낮잠을 자고 일어난 엄마에게 넘기고-엄마는 직접 인사하지 못해 몹시 아쉬워했다- 소파에 엎어졌다. 그래도 기회는 며칠 후에 다시 찾아왔다. 맥레오드 씨는 아니었지만, 무려 그와 함께 있던 남자가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문을 열고 나서 기겁하지 않은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남자의 위압감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처음 봤을 땐 차 안에 앉아있었고 그 외에는 창문 너머로 멀리 본 것뿐이었으니 몰랐으나 남자의 키와 체구가 생각보다도 더 컸다. 아래에서 봐도 뭉개짐 없이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역광을 받아 어두워진 얼굴은 어쩐지 무서웠다. 잘못하면 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저번에 같이 인사를 드리지 못해서….”
그렇게 유창하게 말하는 남자의 모습이 어색했다. 처음 봤을 때는 반말이어서 그랬던 건지, 그냥 그의 인상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걸 지적할 용기는 없으니 그냥 그런대로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남자가 말했다.
“지오반니… 클레어입니다.”
잠깐 끼어들었던 위화감은 뒷전으로,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성이 다르잖아? 혈연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사이란 말이야. 찰나에 수많은 생각을 떠올렸다 지워내던 나는 이 이상 어물쩍거리면 더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기에 결국 정공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저… 실례가 안 된다면 맥레오드 씨와 어떤 관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맥레오드?”
남자가 미심쩍은 목소리로 되풀이하며 눈썹을 찌그러뜨렸다.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진 듯한 기분이 들어서 어깨가 절로 쪼그라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물어보면 안 되는 거였나? 나란히 정원을 돌아다니던 모습을 보면 나쁜 관계는 아닌 것 같았는데.
“네, 네… 리샤 맥레오드 씨요. 혹시 제가 이름을 잘못 기억했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밖에 없다. 생각에 잠겨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 다시 남자를 올려다본 나는 순간 머릿속에 맴돌던 고민을 날리고 헤 입을 벌렸다. 왜냐하면 그의 얼굴이 아주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시한폭탄이라면 한 10초 정도밖에 안 남았을 모양새였다.
“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를 기묘한 표정을 지은 채 뻣뻣하게 굳어있던 그가 이내 등돌려 뛰어나갔다.
“…이미친깡통-!!!”
온마을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 것은 덤이었다.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선 채 움직이지 못했다. 뭔데. 그래서 당신들 무슨 사이인 건데. 대답을 듣지 못해서 답답했지만, 아마 내가 이걸 물어볼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앞집이 안 팔릴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던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참 문 앞에 서있던 나는 느릿느릿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하… 잘 가라. 영앤리치는 모르겠지만 톨앤핸썸은 했던 남자여. 소원 하나만 말하자면, 그런 격렬한 애칭은 조용히 부르고 다녀줬으면 좋겠어.
구름 몇 점 떠다녀 기분 좋은 그늘을 만들어내는 맑은 오후. 어떻게 사다리도 없이 저 높은 곳에 올라갔는지는 이제 문젯거리조차 되지 않는 두 사람이 지붕 위에 나란히 앉아 빵을 먹고 있었다. 페인트로 얼룩덜룩한 옷을 보니 집안 인테리어 작업도 곧 끝날 모양이다.
화사하게 피어난 앞집은 언제 죽어갔었냐는 듯이 마냥 예쁘기만 했다. 전에는 새로 온 두 사람이 수작을 부린 게 아니냐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집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이건 여담인데, 할머니가 그들의 이름을 듣고 떠올리길. 할머니가 어렸을 적에는 그 집이 ‘클레어 댁’이라 불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곳에 홀로 살던 아주머니는 일찍 잃은 딸 하나뿐이었댔으니 가족관계는 아니지 않겠냐고, 굉장한 우연일 거라며 신기해했다.
다시 내다본 지붕 위. 클레어 씨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험상궂은 얼굴로 무어라 입을 달싹였고, 그걸 듣던 맥레오드 씨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였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든 빵 사이에는 갈색의 무언가가 두툼하게 끼워져 있었다. 아마 미트볼이겠지. 저 사람들 저거 진짜 좋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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