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야야

아오키는 손끝을 타고 오르는 미약한 불편감을 느꼈다

C보다 D에 가까운 A

drunkenness by 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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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jjRIezR8X4?si=8ihrKNEppGt1wA4w&t=9

아오키는 초침 소리를 손목으로 느끼고 있었다. 진득하게 달라붙는 시곗줄을 검지로 긁어내며 응어리진 숨을 내뱉었다. 167g의 무게가 선명했다. 부산물이 많았던 책상이 서서히 정리되는 것과는 반대로 아오키의 마음은 난잡하게 엉켜만 갔다. 아오키는 미약한 권태감을 느꼈다. 자신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다.

아오키는 힘의 관계에 대해 잘 알았다. 태생부터 많은 것을 틀어쥐고 태어난 만큼 그 흐름에 기민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이상. 그 동경조차도 관계의 역동에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두 달 전 마주친 격발도 매한가지였다.

철제 펜꽂이까지 챙기자 책상에 남은 아오키의 흔적이라고는 세 달 전 가위를 떨어뜨려 생긴 흠집뿐이었다. 아오키는 얕게 패인 홈을 상자로 덮었다. 이로써 아오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는 평범한 사무용 책상이 되었다. 아오키는 책상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더듬다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흔적을 발견했다. 자신이 근 2년간 사용하던 책상이다. 아무런 흠집이 없을 리가 없었다. 때에 맞지 않는 웃음이 새었다. 아오키는 조직범죄대책부 소속이었다.

 

퇴원을 하고 업무에 복귀한 지 사흘도 채 되지 않았을 때, 키타야마 계장은 아오키를 빈 회의실로 불러들였다. 아오키는 계장에게도 별실이 제공되면 더 쾌적한 환경일 거라고 겉으로 내지 못할 농담을 했다. 조용히 불러낸 것에 비해 내용은 거창한 게 없었다.

 

“발령 대기야. 아마 조대가 아닌 곳으로 발령이 날 것 같다.”

 

오히려 생각보다 온건하고 늦은 결정이었다. 아오키는 심드렁하게 키타야마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회의실 밖의 귀와 눈이 창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키타야마도 그걸 느꼈는지 뒤늦게 블라인드를 치고 말을 이었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 임마! …. 아무튼 수1로 가게 될 것 같으니까 알아둬.”

 

한숨으로 끓어오르는 속을 애써 누르던 키타야마 계장의 낯이 흐렸다. 키타야마는 할 말을 마친 듯 아오키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더니 회의실을 나섰다. 아오키는 여전히 경찰이었다.

생명체는 목적 지향적이다. 아오키의 목적은 조대였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따지자면 정의를 관철하는 경찰이었고, 그 이상에 부합하는 것이 조대였을 뿐이다. 조대가 아닌 곳. 단 한 번도 선망해본 적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렇다고 이상을 선택할 수 있는데 최선이나 차선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키타야마 계장은 윗선과 연이 깊은 편은 아니었다. 당장에 3계 계장이랑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경찰의 귀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입은 무거웠지만 귀는 밝은 사람. 아오키는 키타야마의 말을 듣고 한 가지 미래를 확신했다. 자신은 이제 수사 제1과에 배속된다.

 

아오키는 상자를 손으로 쓸었다. 사용한 적이 없는 새 상자라 그런지 모서리가 거칠었다. 손끝에 먼지라도 끼인 것인지 감각이 둔해졌다. 먹먹한 손가락을 문지르던 아오키는 고개를 들었다. 뒤통수에 닿는 시선들이 소란스러웠다. 아오키는 소리 없는 질문들을 내는 시선들을 뒤로하고 자신의 캐비닛으로 향했다.

옷걸이가 행거와 부딪혀 찰캉거리는 소음을 내었다. 거울 위에 붙여두었던 사진을 조심히 떼어내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헤진 모서리가 코트에 닿아 더 닳아가는 게 느껴졌다. 캐비닛은 옷걸이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자리를 지켰다. 아오키는 자신의 후임이 옷걸이를 버릴지 그대로 사용할지를 속으로 점치며 캐비닛을 닫았다. 처음 배정받았을 때부터 삐걱거리던 경첩이 신음을 내질렀다. 아오키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거울에 비치는 눈가가 유난히 거뭇해보였다.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컨디션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도 만성피로와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주차장의 어두운 조명 탓일 테지. 아오키는 코트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사진을 다시 꺼내 글러브박스에 넣었다.

경시청의 주차장은 바퀴의 마찰음이 쉴 새 없이 울린다. 하지만 그것도 업무 차량용 주차장에 국한되는 이야기인지라, 아오키가 차 안에 앉아있기만 하는 지금은 폐쇄형 주차장 특유의 먹먹한 백색소음만이 들려왔다. 아오키는 그렇게도 질색하던 주차장 냄새에도 불구하고 좌석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시선의 한켠에 마끈으로 연결된 오마모리가 흔들렸다. 차 안을 부유하던 먼지가 가라앉았다.

 

아카사키 경부보는 활기찬 사람이다. 오랜 잠복에서도 집중을 잃지 않는 에너지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찰이었다. 아오키의 첫 파트너였던 그는 아오키가 조대로 발령난지 얼마 되지 않아 오마모리를 선물해주었다. 아오키가 경찰이 된 걸 실감한 날이었다.

 

“우리쪽이랑 소방 애들 사이에서 유명한 데서 받아온 거야. 잘 가지고 다녀. 이거 가지고 있으면 한 번은 죽음에서 구해준다더라!”

 

어떠한 사건은 다른 사건의 결과이자 시발점이이 된다. 아오키가 어릴 적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말이었다. 아오키는 오마모리를 처음 받았을 때 이 부적이 실제로 기능한다면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의 촉발 사건을 뒤트는 것일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 자체에 간섭하는 것일지를 고민했다.

밝게 웃는 아카사키의 얼굴이 미웠다. 아카사키와 서로의 안녕을 빌었을 때에는 자신도 웃었던 것 같은데 자신의 감정이 늘어진 테이프처럼 변질되었다. 아니, 변한…. 아오키는 부적을 움켜쥐었다. 손 안에서 종이가 구겨지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손을 힘주어 내리기만 하면 이 감정도 해결될 것만 같았다.

 

간만의 휴식이었다. 벗어난 일상은 어색하기만 했다. 오랜만에 화분을 베란다로 꺼냈다. 축축한 흙에서 올라오는 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아오키는 기지개를 한 번 켰다. 외투 하나 없이 맞기엔 아직 서늘한 바람도 그저 상쾌하기만 했다.

아오키는 사건을 맡을 때 사건의 기본 정보와 주요 관계자의 이름을 기록해두는 습관이 있다. 그 덕에 처음에는 창고로 사용하던 방은 점점 서재로써의 구색을 갖춰갔다. 아오키는 서재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발길을 돌려 베란다 창의 커튼을 쳤다. 아무리 평일의 한낮이라 한들 아무런 조치 없이 사건 기록물이 있는 방문을 활짝 열어두기에는 아오키의 성정이 그를 용납하지 못했다. 아오키는 커튼의 끝을 한 번 모아 쥐고서야 만족스레 서재로 향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잠겨있는 방이라 그런지 옅은 먼지 냄새가 고였다. 아오키는 책상 위에 널부러진 서류들을 모아 정리했다. 여러 장의 종이가 책상에 부딪혀 내는 화음이 불쾌했다. 마구잡이로 서류를 정리한 탓에 가장 보고 싶지 않은 페이지가 표지를 대신하고 있었다. 아오키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종이를 뒤집어 책상 한켠에 모아두었다. 이미 완치 판정을 받은 허리가 아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정의는 경찰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매혹적인 덫이다.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경찰은 정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 꽤 오랜 기간동안 경찰이 주인공으로 그려지는 창작물에서 경찰은 곧 정의로 표현되었다. 반면 가장 최악의 경찰로 그려지는 것이 정의를 배반하고 타락한 고위관료였으니, 그것을 보고 자란 사람들은 경찰 자신마저도 경찰은 정의라고 쉽게 착각하고는 한다.

아오키는 자신의 10년 전을 떠올렸다. 가장 최악은 타락한 경찰이 아니다. 자신의 정의를 과신하고 그 정의에 휘둘려 자신의 힘을 남용하는 경찰이다. 헤집어진 정원, 삐걱거리는 마루, 뒤엉키는 고성. 자신을 품에 안은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난장은 중학생이었던 아오키에게 한 가지 명제를 심었다.

 

아오키는 겹쳐지고 얼룩지는 생각들을 마른 헝겊으로 닦아내었다. 지나간 자리 위로 채 갈무리하지 못한 생각들이 부유했다. 팔꿈치 위로 밀어올린 소매가 흘러내렸다. 먼지가 얼굴을 간지럽혔다.

아오키는 연갈색의 문서보관함을 꺼냈다. 수1 공조. 마른 먹이 빛을 삼켰다. 스기나미 구 연쇄 토막살인 사건. 책임자 수1 살인3계 계장 마츠다 류이치. 이하 미와 노조미, 사토 마사오, 오누마 아키라…. 아오키는 건조하게 적힌 이름들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입 속에서 발음을 뭉개며 이름을 읊었다.

서재에 있는 사건 기록물들은 아오키의 기억을 토대로 작성되는 문서인 만큼 사감이 들어가는 부분도 있었다. 가령 우측에 검은 표식이 찍혀 있는 이름들 같은 것 말이다. 아오키가 만나온 수1 사람들은 대체로 장기간 이어지는 수사에 지친 상태였다. 담배의 먹먹한 냄새가 셔츠 소매에 진득하게 달라붙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오키는 눈을 꾹 감고 고개를 내저었다. 벌써부터 머리가 흐려지는 것 같았다. 아오키는 다시 기록된 이름들을 읽으며 여기에 제 파트너가 될 사람이 있다면 검은 표식이 없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단기간의 비자발적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제 책상에는 황갈색 상자가 열린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변한 것이라고는 뒤집힌 종이 한 장이 상자 위에 놓여있다는 점뿐이었다. 경시청 직원 개인 기록. 딱딱하게 적힌 글자 아래로 제복을 입은 채 미소 짓고 있는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아오키는 습관적으로 착용하고 나온 뱃지를 깃에서 빼내었다. 고정핀에 눌린 자국은 한두 번 문지르는 것으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2023년 00월 경시청 수사 1과 소속 · 경부. 그의 오래 된 마지막 이력이었다. 코즈키 히비야는 아오키 테츠야가 조대에 있었던 것에 딱 1년을 더한 만큼 수1에 소속되어 있었다.

 

아오키는 앞으로 함께하게 될 수1 계장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코즈키와 조를 이루어 다니게 될. 친히 조대까지 걸음해주신 덕에 조대 회의실에서 평면의 코즈키 씨와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되었다. 전에는 이름이랑 마지막 이력만 보고 덮어버렸던가…. 다시 본 코즈키의 기록에는 익숙한 이름이 찍혀 있었다. 코즈키, 성이 낯익다, 했더니 부친이 그 코즈키였다.

 

아오키는 상자를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수사 1과. 수사 1과…. 아오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수1 구성원의 이름을 나열하다 문득 계장의 이름이 뭐였는지 떠올리려 했다. 불과 15분 전에 이름을 들었음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계장의 자리에도 명패가 있으면 좋겠다는 잡담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설프게 열린 쥐색의 철문 너머로 여럿의 목소리가 난잡하게 흘러나왔다. 사람의 목소리는 코너를 돌아 아오키의 발치에 닿았다. 아오키는 넘버과의 사람들은 활기차구나, 하고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짐을 한 번 치켜올렸다.

아오키는 수사 제1과라 적힌 표찰을 일별하고는 짐을 한 손으로 옮겨 들었다. 누가 들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습관에 밴 듯 노크를 두어 번 하고 들어갔다. 손에 닿는 철제 손잡이가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미지근했다.

 

“조대에서 온 아오키 씨?”

 

사진에서 본 얼굴. 사진 속에서 짓고 있던 시원스러운 미소보다 조금 더 날카로운 낯을 한 이가 자신을 반겼다. 아오키는 양손으로 짐을 고쳐들고는 목례를 했다. 단정한 차림새에 장소에는 조금 과하지만 코즈키 자신에는 안 어울린다고는 결코 평할 수 없는 원단. 아오키는 차분한 사람이기를 기대했다. 곧장 이어지는 말과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에 바로 깨진 기대였지만.

 

“이야, 반가워라. 프로필은 보고 들어왔어요. 거짓말로 적은 게 아니라면 우리 동갑이니까 말 편하게 해도 좋고. 잘 부탁해요?”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완곡한 거절의 표현에도 금 하나 가지 않는 그의 웃는 얼굴을 마주하자 미약한 불편감이 맞잡은 손을 타고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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