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낙화, 어둠 속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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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남궁혁님의 2차 창작 팬 소설입니다.

등장인물인 남궁혁님, 관계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글은 지체없이 삭제됩니다.


낙화落火

우연히 마주친 사내는 ‘중원’에서 왔다고 했다. 중원? 처음 듣는 이름이라 그게 나라를 뜻하는 것인지, 혹은 어느 지명을 뜻하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김에 우리의 복식을 차려입었다고 말하는 사내에게 나는 충동적으로 말했다. 풍겨오는 분위기에 절로 말을 높인 채였다.

“나리, 마침 정월 대보름이라 낙화놀이를 합니다요. 시간만 괜찮으시면 구경하러 오지 않으실는지···.”

“낙화(落火)라. 좋은 구경거리가 되겠는데. 안내해 주겠나?”

사내가 수락할 거라 생각도 못 한 채로 건넸던 말이어서일까, 나는 순간 등이 긴장으로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높으신 분을 감히 안내하는 기분이라, 멍청하게도 “예, 예. 따라오십쇼, 나리.”하곤 같은 쪽의 팔과 다리를 동시에 뻗으며 걸었다.

안내한 곳은 내가 아는 곳 중에서도 가장 명당이었다. 그러니까, 이 명당이라 함은- 저기 김 씨 아저씨가 정말 기가 막히게 좋은 숯가루를 넣어둔 주머니 근처를 말하는 거다. 불티가 뭉치지도 않고 곱게 산산이 흩뿌려지는 주머니니까. 뱃놀이하시는 선비님들 말고도, 마을 사람들 즐기라고 따로 마을 안쪽 절벽에까지 주머니를 걸어주는 고마운 아저씨였다.

아저씨들과 나이가 좀 있는 사내놈들이 주머니에 불을 붙였다. 곧 숯가루에 불이 붙고, 가루들을 감싼 주머니가 타들어 가면서 불씨가 맺힌 가루들이 고운 자태로 날리기 시작했다. 언제 보아도 멋진 구경거리라 멍하니 바라보다가- 내가 데려온 사내는 그걸 어떻게 볼는지 궁금해 돌아보았다.

사내의 눈이 떨어지는 큰 불씨를 따라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밤이 깊고, 사내가 입은 옷도 밤의 색이라 도통 모습이라곤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스치는 불씨가 보여준 사내의 얼굴엔 은은한 웃음이 맺혀있었다. 양반댁 아씨가 달처럼 웃는다더니, 이 사내가 웃는 모양도 분명 달처럼 웃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뿌듯했다. 잘한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정말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닙니까요, 나리?”

“그렇네. 덕분에 좋은 구경을 하고 가는구만.”

고맙네. 사내는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곤 다시 고개를 들어, 불씨가 흩어지는 시작점을 바라보았다. 나도 다시 고개를 들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낙화놀이가 끝나고 다시 옆을 돌아보았을 때 사내는 없었다. 인기척도 없이 떠난 것인지, 귀신에라도 홀린 것인지. 거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둠 속의 눈동자

“빌어먹을, 빌어먹을···. 미치지 않고서야 이게 말이···.”

달조차 구름에 가려 월광도 없는 산중. 남자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흐르는 식은땀이 등판을 다 적셔 옷자락이 들러붙은 채로 밤공기에 식으며 체온이 내려가는 탓도 있었겠으나, 무엇보다도 남자를 두렵게 하는 것은.

“단신으로 부하놈들을 다···. 젠장할, 이렇게까지 강하다는 말은 없었잖아···!”

말이라도 내뱉지 않으면 떨림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 남자는 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위치가 노출되지 않는지에 대한 우려는 없었다. 그 빌어먹을 남궁세가의 삼 공자는 제가 어딨는지 이미 뻔히 알고 있을 테니까.

“나도 빨리 상대해 주지 그래···. 차라리 죽이라고! 계속 이렇게 갖고 놀 바엔,”

“원한다면 그러도록 할까.”

잎사귀 스치는 소리도 없이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무력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서 기이할 정도로 빛나는 호박빛 눈.

어쩌면 금빛으로도, 어쩌면 샛노랗게도 보여서 마치 저를 잡아먹으러 온 짐승처럼도 보였다. ······. 아니, 그 비유는 틀렸다.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 언뜻 보이는 나무들의 그림자 사이로 저를 또렷이 응시한 채 미동도 없는 그 눈동자. 남자는 그 자리에 선 채 후들거리는 다리를 수습하지도 못하고 주저앉았다. 이건 저를 짓누르는 집채만 한 범이요, 그 자체로 내려다보는 포식자였다. 이건, 이것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조금 괴롭히게 되었으니- 편히 보내주도록 하지.”

잘 가게.

검이 무언가를 베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제 시야가 기울어짐에도 그 눈에 포박된 것처럼 눈을 돌릴 수조차 없었다. 구름이 걷히고, 검을 집어넣은 남궁세가의 그 사내가 제게 다가와 눈을 감겼다. 암전된 시야 속에서도 노란 눈이 여전히 빛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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