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무복

신의상 미리보기 기념 조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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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남궁혁님의 2차 창작 팬 소설입니다.

등장인물인 남궁혁님, 관계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글은 지체없이 삭제됩니다.


천주산에 터를 잡은 남궁세가 본저(本邸), 그리고 다소 외곽에 자리한 삼 공자의 자취 분가. 몇 년 전과 다르게 꽤 큼직하고 멋들어지게 바뀐 분가에서, 바로 그 몇 년 전과 달리 많이도 늘어난 작고 흰 협객단원들이 해(亥)시가 한참 넘었음에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안휘성의 사람들이 여기기를- 영물인지, 사람인지, 혹은 정말 ‘음식’인지도 모를 것들이.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분가에 머무르는 막내 공자의 썩 괜찮은 말벗이 되어준다는 점이다. 마침 그 말벗의 역할을 할 수 있게도, 표사가 자취 분가에 물건을 하나 두고 갔다. 고운 종이로 싸여진 것이었다.

“대협! 택배 왔어요!”

“아아, 거기 두게나! 드디어 새 옷이 왔나 보구만.”

새 옷! 그 옷이 무언지 당연하게도 잘 알고 있는 협객단원들은 금세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옷이지? 금색! 저번에 의뢰받은 포목점에 잠시 들렀는데 이것저것 장식도 추가됐더라! 아, 대박. 빨리 보고 싶다. 미리 볼 수 없나? 어···. 미리?

“대협. 스포 안 돼요?”

웅성거리던 소리가 커져 남궁혁이 분가의 마당으로 나오자마자 한 단원이 허겁지겁 곧바로 말을 붙였다. 스포. ···꽤 달콤한 말이다. 다른 단원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기대 가득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 밤중에 패션쇼는··· 좀 그렇지 않나?”

“한 벌이잖아요! 아, 대협. 진짜 조금만. 진짜 잠시만.”

“뭐···.”

그럴까! 툇마루에 놓인 택배를 들고서 그는 제 방으로 들어갔다. 물건을 두른 줄을 끊는 소리, 포장된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질이 좋은 천이 쓸리는 소리. 음- 하며 짧게 고민하는 목소리가 들려온 뒤, 남궁혁은 가솔을 불렀다.

언뜻 보인 뒷모습으로 보아 그는 머리를 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긴 머리카락이 등을 가려 새 옷은 끝자락만 조금 보였으니. 그래도 잠깐이나마 보인 천 자락과 약간의 장신구들에 협객단원들의 기대는 마냥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문이 닫히고 솔빗으로 머리를 쓸어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도 바꾸시나 봐. 이건 진짜다. 어느새 단원들은 검을 모두 내려놓고서 남궁혁의 방 앞에 가지런히 모여 앉았다. 마치 연극이나 영화,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아, 다 됐구만. 괜찮은데.”

준비의 끝을 알리는 말이 들리고, 협객단원들이 미처 준비조차 하기 전에 방의 문이 열렸다. 툇마루에 모여 앉은 단원들 앞에 이색적인 양식이 섞인, 그러나 분명히 중원의 것인 금빛 무복을 입은 사내가 섰다. 그리고 정말 공교롭게도- 구름이 달을 가려 내리던 빛을 거뒀다. 하늘에서 쏟아지던 빛이 없어져 툇마루를 따라 듬성듬성 놓인 작은 등만이 홀로 남궁혁의 모습을 밝혔다. 무어라 해야 할까. 빛보다는 어둠이 덮은 그 모습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감탄 속에, 위압감이 녹아들었다.

어둠 속에서 윤곽으로 보이는 것들. 고수머리처럼 다듬어진 장발, 그 옆으로 땋아 내린 한 가닥의 머리카락, 금빛의 천 위로 수 놓인 자수, 빛을 반사하는 잘그락거리는 옷의 장식들, 중원의 것과는 다른 모습의 검, 검두(劍頭)에 달린 이색적인 띠 장식. 그리고-···.

어두운 그늘을 베어내듯 샛노랗게 빛나는 호박빛의 눈.

툇마루는 달빛이 다시 들 때까지 오직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 위압이 그저 음영으로 빚어진 가상의 것이 아니라- 그 눈으로 만들어 낸 실체임을 알아서.

“어떤가. 마음에 안 드나? 생각보다 너무 조용한데.”

남궁혁이 상냥하고도 살갑게 내민 말에 그제야 정적이 깨어졌다. 거짓말처럼 멎었던 웅성거림이 다시 생기를 갖고 살아나기 시작했다. 우와, 와. 엄청나요! 어, 이 모습 그런데···.

“어두워서 잘 안 보여요, 대협···.”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나. 원래 생일 연회 때 보여주려던 것이니 자네가 감안하게나.”

“근데요, 대협.”

나누어지던 대화에 한 협객단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덧댔다. 심각해 보이던 표정은 금세 장난기를 담아 웃음이 되었다. 이어진 말에 단원들이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울 때 입으시면 안 되겠는데요. 방금 천주산에서 내려온 호랑이 같았어요.”

단원들의 웃음소리, 반대쪽에서는 어리둥절한 감탄사. 눈만이 오롯이 빛나던 그 어둠을 볼 수 없었던 본인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저를 무서워하는 이들을 위해 분위기를 부러 풀며 지내왔으니.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본연의 존재감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게도. 무서웠나? 아니요, 멋있었어요!

“음! 그럼 됐네.”

한번 씨익 웃어준 남궁혁은 다시 실내복으로 환복하기 위해 제 방의 문을 열었다. 뭐야, 더 보여줘요! 우우- 치사하다. 더 자세히 보여줘라. 불 환하게 켜서 제대로 보여줘라. 원성이 커졌지만 그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생일 연회 때 제대로 보여주겠네. 그때를 기대해 주게나.”

10월 14일. 남궁세가 삼 공자의 탄신연. 밝은 태양 아래서 금빛 무복이 빛날 시간이 이제 나흘도 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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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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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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