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crose

K=Potassium by K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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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건물의 자동문이 부드럽게 열린다. 대기의 움직임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건물 내부와 외부의 온도 차가 그리 심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주경태는 얇은 겉옷을 괜히 여미다가, 데스크의 직원과 시선이 마주쳐 가볍게 인사한다. 직원이 자리에 앉으면 이마 위가 겨우 보일 정도의 높다란 데스크. 그 위에는 대체로 수업 자료나 교재 따위의 잡다한 프린트가 놓여 있기 십상이지만,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이질적인, 채도가 다소 높은 원기둥이 하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 오늘 화이트데이인가?”

경태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색색깔의 포장지로 감싸인 막대사탕이 수십 개는 들어 있는 투명한 통이 데스크 위에 있었다. 원기둥의 윗면까지 채워질 정도로 가득 들어있다. 데스크 너머의 직원은 그의 말을 듣고 모니터로 돌렸던 시선을 다시 경태에게로 향한다.

“네. 원장님이 비치해두라고 하셔서요. 선생님도 괜찮으시다면 하나 가져가세요.”

경태는 사양하지 않고 가장 위의 사탕을 집어들었다. 초록빛 포장이 둥그스름한 사탕의 머리를 잘 감싸고 있다. 사과맛, 아니면 라임맛이라도 될까. 학원의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된다면 분명 수많은 사탕이 학생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1층 교무실의 문을 열었다. 과학탐구 강사들이 사용하는 교무실이다.

각자의 자리에 앉아있던 강사들이 경태를 흘금이며 인사했다. 수업 준비로 적당히 바쁜 분위기다. 몇몇의 입에는 벌써부터 사탕이 물려있기도 하다. 사탕을 문 채 강의를 할 수는 없을 텐데.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부숴먹을 셈일까.

외투를 걸고 자리에 앉자 바로 옆 자리의 임은도가 머리를 쑥 들이밀었다. 그의 입에도 역시 사탕이 물려있다. 미세한, 인공적인 딸기의 향이 난다.

“주쌤, 하이.”

오늘도 여전히 귓불에 난해한 모양의 귀걸이를 매달고, 목에는 작은 알의 목걸이를 길게 늘어뜨리고, 손가락에는 반지를 두 개나 착용한 채로 은도는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이러고 나타나지 않으면 진지하게 그의 상태를 걱정할 경태다.

“딸기 맛이야?”

“우와,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또 냄새는 잘 맡거든.”

“주쌤은 사탕 안 가져왔어?”

“받아왔지.”

기껏 걸어둔 외투 주머니를 뒤져 초록색 사탕을 꺼냈다. 둥글게 말린 포장지에 무언가의 영어가 쓰여 있긴 하지만, 주름이 심해 그 뜻을 잘 알아볼 수 없다.

“이거, 무슨 맛이야?”

경태의 손바닥을 빤히 바라보던 은도가 안경 다리를 잡아올린다.

“라임 아니에요?”

“라임?”

“포장 색이 좀 진하긴 한데. 프린트 오류인가?”

라임은 보통 연두색으로 그려지지 않나? 이건 연두색이라기보단 쩅한 초록색에 가까운데. 같은 생각이 문득 들기는 했지만, 그런 의문을 입 밖으로 낼 정도로 사탕의 정체에 대해 크게 관심이 있지는 않았던 경태다.

딸기향을 풀풀 풍기던 은도는 이내 이빨로 당질을 부쉈다.

사탕 이야기는 제쳐두고 시시한 일상 이야기를 좀 더 했다. 하룻밤 사이 놀라울 정도로 따뜻해진 날씨. 슬슬 봄 옷을 꺼내야겠다. 조만간 벚꽃도 피겠네요. 에이, 그건 다음 달이나 되어야 피는 거 아닌가. 은도의 킥킥대는 웃음. 미소가 걸린 입가. 입술에 미세한 색조가 엿보인다. 뭘 바른 걸까. 나는 써 본 적 없는 화장품?

대화는 어느 순간 싱겁게 끊어졌다. 잡담이란 으레 이런 법이다. 오가는 발화 사이에서 내용이랄 건 없고 매듭이란 건 지어지질 않는다. 은도는 사탕이 전부 떨어진 막대를 아쉬운 듯이 입에 매달고 있다가 터덜터덜 강의실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동료가 자취를 감추고 한 시간 정도를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수업 준비라는 명목으로 마우스를 딸깍였다. 그래봤자 하는 일이라곤 프린트의 년도를 수정하는 것뿐이지만. 아직 학기 초라,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준비할 일은 없다. 새로 들어온 아이들의 얼굴을 익히는 정도는 필요하겠다.

수업 자료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은도는 돌아오지 않았다.

강의실 안에는 아직 낯이 익지 않은 아이들이 저마다 입에 사탕을 물고 앉아 있었다. 학교의 풍파에 지치지 않은 똘망똘망한 눈들이 경태를 바라본다. 저 애들은 무슨 맛 사탕을 먹고 있는 걸까. 통 안의 사탕은 얼마나 줄어들었을까. 그런 재미도 없는 생각을 하면서, 경태는 새하얀 분필을 들었다.

강단에서 다리를 움직이니 미묘한 이물감이 느껴진다. 바지 주머니에 든 사탕이 허벅지를 찌르고 있다. 교탁 뒤에서 몰래 사탕을 빼냈다. 다시금 인식되는 초록색. 초록색이라. 역시 라임 맛이려나. 입에서 청산유수로 흘러나오는 강의는 때마침 스펙트럼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미묘하게 실속이 없는 강의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니 은도가 자리에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참이다. 입술 사이로 비죽 튀어나온 기다랗고 하얀 막대가 위아래로 흔들린다. 실내 흡연에 관한 법이 개정된 게 아니라면 높은 확률로 사탕을 하나 더 먹고 있는 걸 테다.

“사탕을 또 먹어?”

의자를 꺼내 앉는 경태를 보며 싱글대는 은도.

“아직 잔뜩 남아있길래~”

입술을 우물대니 달콤한 초콜릿 향이 물씬 퍼진다.

“초콜릿이구만.”

“츄파춥스인데요?”

“아니, 초콜릿 맛이라고.”

전달 오차를 바로잡으며 윗옷 주머니에서 아까의 초록색 사탕을 꺼냈다. 단 향을 맡으니 당이 땡겼다. 단순히 말을 많이 해서 에너지가 소진된 건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안 먹었어요, 그거?”

은도가 옆 자리에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엉, 하고 대충 대답하며 포장지를 벗기니 칙칙한 초록빛의 속살이 드러난다. 라임이라기엔 채도가 너무 낮다.

“무슨 맛일까, 이거.”

입 안에서 사탕을 굴리는 은도는 대답이 없다. 당신이 입에 넣어보고 결과를 알려달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경태는 별 수 없이 사탕을 입에 밀어넣는다.

처음으로 느껴지는 건 조금 거친 느낌이 있는 사탕의 표면. 미뢰가 천천히 당질을 머금는다. 타액에 녹아내리는 투박한 겉면. 혓바닥 위로 스며든다. 당혹스러운 단맛이. 하지만 사탕이란 보통 이런 극적인 단맛을 위해 만들어진 식품인 법이다. 그런 점에 있어, 이 사탕은 제법 성공작이다.

그 직후 예상치 못한 맛이 입 안에 감돌기 시작했다.

약간의 당혹을 느끼면서, 경태는 은도를 마주본다. 기대가 실린 시선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녹차 맛이네.”

“에엥?”

“녹차 맛.”

“츄파춥스가? 녹차 맛이요?”

“녹차 외에 다른 맛은 아닌 것 같은데…”

입에서 사탕을 빼내니 은도가 슬쩍 몸을 물렸다. 먹어보라고 한 것도 아닌데 반응이 크다. 경태는 그의 오버스러운 면을 싫어하지 않는다.

“궁금하면 데스크로 가 봐. 아직 사탕 많다며. 이 맛도 몇 개 남아있지 않겠어?”

“우와, 궁금하긴 한데. 더 먹으면 당 스파이크 올 거 같아요.”

“사탕 세 개 정도로 스파이크가 오는 몸이었어?”

네가 카페에서 자주 시키는 시즌 한정 프라푸치노가 훨씬 당이 많을 것 같은데……

라는 말을 굳이 덧붙이지는 않았다.

재밌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는 그의 얼굴을 굳히고 싶지 않았으니까.

경태는 녹차 맛 사탕을 혀 위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따라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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