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encounters of the eighth kind
잇솔
푸쉬쉭-
최신식 엄폐 기술을 탑재한 행성간 이동 우주선이 조용히 행성 표면에 내려앉았다. 조종간을 쥐고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고 있었던 탐험가는 참고 있었던 숨을 내보냈다. 성체가 된 후로 평생을 우주에서 보내 왔고, 몇 백 광년 정도는 우습게 보일 정도로 먼 길을 드나든 탐험가였지만, 이착륙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다는 긴장감일까. 이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긴장감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하겠지만. 탐험가는 흐음, 하며 우주선의 움직임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마지막 진동이 멈추고 고요가 찾아들자 탐험가는 손을 들어 우주선의 음성 인식 기능을 켰다.
“우주선 상태 확인.”
이상 없음. 착륙 성공. 보호색 시퀀스 작동.
“좋아.”
고생 많았어. 탐험가는 오랜 여행에 굳어 버린 몸을 일으키며 조종간을 두어 번 팡팡 소리가 나도록 두드려 주었다. 우주선은 회답하듯 부르르 떨려 왔다. 탐험가는 씩 웃으며 낯선 행성 속으로 향했다.
우주선에서 내려 마주한 광경은 한없이 초록빛이었다. 식물종이 풍부하군. 탄소 화합물 기반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우주 대다수의 행성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탐험가는 여기저기 흩뜨려진 식물종들을 관찰하며 연구용 샘플을 채취했다. 생물다양성에 대한 연구를 하는 이들이 이걸 본다면 정말 기뻐하겠지.
그렇게 주변 관찰에 열중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부스럭.
도처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는 걸 들은 탐험가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이럴 수가, 발각되면 귀찮아지는데. 기나긴 탐험의 시간 동안 경험해 온 온갖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위협을 파악하려던 와중,
“...어.”
돌아본 곳에는 탐험가와 아주 많이 닮은 갈색 눈의 생물체가 탐험가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낯선 행성에서 만난 첫 생물체, 정확히 말하자면 동물체, 는 신기할 정도로 탐험가가 떠나 온 행성의 우점종과 닮아 있었다.
비슷하게 생긴 얼굴. 이목구비의 배치도 비슷하고. 비슷하게 생긴 몸의 형태. 언뜻 본 시선에 손가락이 다섯 개라는 것까지도 비슷했다. 차이라면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검은 색이라는 정도. 물론 더 깊게 들여다보면 다른 점도 많다. 우주의 여러 종족들이 다른 종족을 쉽게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별개로 탐험가와 이 낯선 개체를 나란히 놓고 같은 개체로 헷갈리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 더 부드럽게 생긴 탐험가와는 다르게 조금 더 단단한 인상. 우주를 여행하며 여러 모습의 생명을 마주했지만 이렇게까지 닮은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떠나온 지 오래된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래서는 발각을 우려할 필요가 없었겠는걸. 제법 닮은 생김새에 마음을 한결 놓은 탐험가는 슬쩍 경계를 누그러뜨렸다. 탐험가를 인지한 개체의 눈은 여전히 동그랗게 떠진 채였다. 여기에서 누군가를 마주치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처럼.
그에 대해 호기심이 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침 지난 번에 들른 행성에서 우주 종족간 통역 장치를 구매했는데.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무슨 언어라도 완벽하게 인식하고 통역할 수 있는 기구라는 말에 자신에게 딱이라고 생각하며 구매한 게 이런 식으로 쓰임을 찾을 줄이야. 탐험가는 후다닥 통역 장치를 뒤집어쓰곤 전원을 켰다.
[안녕.]
“.... 오.”
특이한 소리를 내네. 탐험가의 첫 감상이었다.
낯선 갈색 눈의 개체는 그 뒤에 뭔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탐험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통역 장치가 인식할 수 없는 크기의 음성인 듯 했다. 조심스럽게 건넨 인사에 대한 반응으로는 조금 김이 새긴 했지만, 이 행성의 사회적 규범은 내가 잘 모르니까. 이런 것 하나하나에 서운해하다간 우주를 살필 수가 없다. 빠르게 포기한 탐험가는 흠흠, 목을 고른 다음 다시 질문을 건넸다.
[이름이 뭐야?]
“오.... 와우.“
반복된 대답에 탐험가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뭐야. 저 말밖에 못 하나. 아니면 통역 장치가 작동을 제대로 못 하나. 분명 말하는 거 듣는 거 둘 다 효과 확실하다고 그랬는데. 목에 매고 있는 통역 장치를 툭툭 두드렸다. 이건 뭐, 작동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서 원. 나름 우주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하니 행성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사 온 건데.
의복이나 이런 걸 보면 전혀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새로 접하는 언어니까 데이터가 덜 쌓여서 그런 건가. 아니면 음성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나. 탐험가는 다시 한 번 통역 장치를 툭툭 두드렸다. 통역 장치가 그런 것까지는 아직 못 반영할 수도 있겠지. 혹시 하니 행성에 다시 방문한다면 과장 광고를 항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탐험가는 다시 한 번 소통을 시도했다.
[내 말 이해해?]
“와...”
또 똑같은 소리. 탐험가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이 종족을 오와우 족이라고 부르기로 결심했다. 소통이 안 되는 생물종인 건지, 아니면 통역 장치가 고장난 건지. 아무튼 대화를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탐험가는 결국 체념했다.
[말이 안 통하나 본데... 뭐, 어쩔 수 없지. 잘 가, 나는 할 일이 바빠서, 이만. 여긴 내게 제법 낯선 행성이라 할 일이 많네.]
솔직히 조금 실망스러웠다. 새로운 행성에 도착하여 그 행성의 문명과 종족에 대해 배우게 되는 것은 탐험가의 큰 낙 중 하나였으니까. 그렇지만 대화할 수 없는 상대를 붙잡고 계속 소통을 시도할 만큼 참을성 있는 편도 아니었다. 여러 종족을 만나면서 익힌 일종의 선택과 집중 기술이었다. 이곳에 대한 파악이 끝나면 어디로 이동해야 할 지 고민하며 마지막으로 인사를 남기곤 돌아서 떠나려고 했는데,
“너, 그럼 외계인인 거야?”
... 어?
말을... 하네.
안내인과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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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비싼 값 주고 산 통역 장치가 사기는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탐험가는 쫑알거리는 오와우 족 개체를 옆바라보며 생각했다.
탐험가를 발견한 개체는 스스로 탐험가를 위해 낯선 행성을 안내해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했다. 혼자 다니는 것이 훨씬 익숙한 탐험가는 난색을 표했다. 잘 안 맞는 존재와 함께하는 것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 그것이 탐험가가 시간의 대부분을 혼자 보내게 되는 길을 택한 이유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체는 끈질겼다.
[도와줄 사람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그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해. 여기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원래 탐험은 혼자 하는 거야.]
“누가 그렇게 정했어?”
[내가.]
“순 엉터리 조건이네.”
이거 지금 통역 때문에 이렇게 짜증나게 들리는 건가. 탐험가는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 번 통역기를 툭툭 쳤다. 대화에서 오는 영양가라곤 추호도 없는데 이걸 계속 상대해줘야 한다니. 이거 끄는 버튼은 없나. 그냥 벗어 버리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긴 여행에 피로가 쌓인 탐험가는 그것까지는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상대는 실컷 떠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 이 행성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혼자 탐험을 하겠다고? 그거야말로 멍청한 짓이 따로 없지. 도와주겠다잖아. 바라는 것도 없어, 난. 그걸 굳이 마다하는 게 과연 현명할까? 그렇게 해서는 절대 지속 가능한 탐험이 안 될 걸.”
의기양양한 태도가 이상했다. 내가 너보단 훨씬 더 오래, 그리고 훨씬 더 많이 탐험을 해 봤을 텐데. 튀어나오려는 대꾸를 참았다. 얘는 왜 내가 싫다는데 계속 이래. 짜증이 훅 밀려왔다. 움직임이 거칠어진 덕분에 수집하려던 식물종의 샘플이 손상되어버리기까지 했다. 후, 후, 심호흡을 한 탐험가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곤 다시 한 번 물었다.
[원하는 게 뭐야?]
“도와주고 싶다니까.”
웃기는 소리. 온 우주, 까지는 아니지만 우주의 꽤 많은 부분을 떠돌아다녀 본 탐험가는 이게 순 헛소리인 걸 안다. 뭔가를 제시하는 이는 항상 그 댓가로 원하는 게 있다.
[그런 말 말고. 바라는 거 있잖아.]
그런 얄팍한 수 따위 뻔히 보인다는 낯으로 똑바로 응시하자 곧내 꼬리를 내린다. 그러면 그렇지. 탐험가는 단칼에 거절할 준비를 했다.
“... 우주에 대해 듣고 싶어.”
[...어?]
그렇지만 이건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탐험가는... 글쎄. 워낙 온 우주에 욕심 많은 이들이 가득해서 그런가. 좀 다른 걸 예상했다. 예를 들면, 뭘 내놓으라던가, 뭘 해 주면 도와주겠다던가. 받을 사람은 필요도 없는 걸 제시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걸 얻어가려고 하는. 여러 번 데여 오기도 했다. 어쩌면 그게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르지. 보다 더 온화한 종족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담긴 종족들도 있었다.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탐험가에게까지 그 배려가 전해지는 건 아니었다. 이 행성 저 행성을 돌아다니는 탐험가는 모든 곳에서 이방인이었고, 생긴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닮지 않은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친절한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담백한 답을 해 주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고... 말하는 이가 마치 쑥스럽다는 듯 시선을 피하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탐험가가 이 행동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탐험가가 보기에는 그랬다. 낯선 행성에 대한 첫인상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당황하는 사이, 오와우 족은 탐험가가 망설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네가 떠나온 곳이든, 네가 이 과정에서 거쳐 온 곳이든 상관 없어. 우주에 대해 듣고 싶어. 모든 걸 다 얘기해 줄 수 없다면 얘기해도 되는 것만 알려줘도 좋아. 그냥.... 알고 싶어서 그래.”
[... 왜?]
사실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해 주기 싫은 것도 아니었고. 탐험가의 우주선에서부터 탐험가 본인을 내놓으라는 둥 말도 안 되는 거래를 요구한 우주의 여러 악당들에 비하면 정말이지 귀여운 수준이었다. 우주에 대한 이야기는 탐험가에게는 차고 넘치도록 있는 것이기도 했고. 그렇지만 괜히 궁금해졌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걸 원하는 건지.
“음, 나는... 우주를 좋아해.”
그렇지만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그래, 좋아.]
그렇게 탐험가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나누는 댓가로 이 행성의 안내인을 얻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탐험은 처음이었다.
여정에 나선 이후, 여러 행성을 비롯한 우주 속 공간들을 방문했던 탐험가였지만 잠깐 필요에 의해 대화를 나누거나, 거래를 한 것을 제외한다면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 것, 거기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랜만이다 못해 거의 처음이 아닐까. 그러나 이 낯선 감각이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안내인의 존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이 되어 주었다.
오와우 족의 행성은 정신이 없었다. 사실, 행성 자체가 정신이 없다기보다는 행성의 우점종인 오와우 족이 구성해낸 문명이 정신이 없었던 것에 가깝다. 안내인은 이 행성의 이름을 <지구>, 우점 생물종의 이름을 <인간> 이라고 했다. 탐험가는 조심스럽게 그 사실을 수첩에 기록했다. 확실한 건, <지구> 의 <인간> 문명은 탐험가가 지금껏 봐 온 것 중에 가장 복잡하게 발달한 문명 중 하나였다.
처음 착륙해서 다양한 식물종에 설렜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착륙 위치에서 조금 걸어가기만 하면 도처에 자연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빼곡한 도시 문명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탐험가는 제법 머쓱해했다.
[...이런 게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그러게 내가 도와줄 사람이 필요할 거라고 했잖아.”
제 쓸모를 입증한 안내인은 제법 신이 나 보였다. 탐험가는 구태여 부정하지 않았다.
<인간>의 도시는 복잡했다. 시끄러웠고, 빨랐으며, 여러모로 정신이 없었다.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 만큼 끔찍한 것들도 많았다. 친절한 이들만큼 못된 이들도 많았으며, 탐험가에게는 설상가상으로 그 둘을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렇게까지 복잡한 문명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어서 더더욱 힘들었다.
혼자서도 해낼 수는 있었을 거다. 그걸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 도와줄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은, 글쎄. 없다고 해서 찾지는 않았겠지만 있을 때 그 소중함을 모르지도 않았다.
이전에 고도화된 문명들을 발견했을 때에는 주변을 훑기만 하는 식으로 이 모든 걸 피해 왔었다. 조금 덜 부담스러운 탐험 방식이지만, 탐험가도 내심 그걸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행성 내부자의 도움이 있으니 훨씬 더 많은 정보를 훨씬 더 수월하게 얻을 수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을 돕고 있는 안내인은, 탐험가에게 정말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고나 할까.
설명하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안내인은 쉴 새 없이 탐험가에게 말을 걸어 왔다. 가끔은 탐험가가 대답을 해 줄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처음에는 시끄럽고 정신없어서 신경이 잔뜩 예민해졌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거기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무엇보다 이 개체보다 훨씬 더 시끄럽고 정신없고 무례한 밖을 탐색하다 보면 말이 많은 안내인 정도는 상대도 안 됐다.
기록의 의무를 지닌 이답게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를 감당하다 보면 몸이 물에 젖은 방한소재처럼 축 늘어졌다. 한계치를 인지하지 못하고 무리한 날에는 안내인에게 매달려 들어오기 일쑤였다. 안내인은 몇 번을 그 모습을 보면서 말릴 법도 했으나, 탐험가가 스스로 원하는 만큼 도전하게 두고선 축 늘어진 그를 집으로 데려오는 방법을 택했다. 대신 잃어버리면 큰일이니 떨어지지 말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탐험가는 구태여 그것에 반항하지 않았고, 얌전히 안내인의 곁에 찰싹 붙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습관이 될 정도로.
“...그렇게까지 붙을 필요는 없는데.”
[알아. 그치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괜히 신경쓰여. 잃어버릴 것 같은 걸.]
“너를 잃어버리기는 쉽지 않아. 어디 무지개 색 머리가 흔한 줄 알아?”
네가 나를 잃어버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너를 잃어버리는 게 문제라고, 문제. 탐험가는 이 말은 속으로 씹어 삼켰다. 안내인도 툴툴대는 것과는 다르게 제 팔에 기대 오는 탐험가를 가만히 두었다.
비가 오거나, 체력이 부족해서, 아니면 기분이 영 별로여서, 아무튼 온갖 이유로 나가기 싫어지는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안내인은 작은 방 한 칸 짜리 집에서 탐험가를 앞에 앉혀 두곤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예전엔 우주인이 되고 싶었어.”
우주를 좋아하게 된 이유라던가, 우주에 가고 싶었는데 몇 가지 식품에 대한 과민면역성 반응 때문에 그 꿈을 버려야 했던 이야기. 누군가가 이미 <최초>가 되어버렸을 때의 상심. <최초>가 아니더라도 좋다며 꿈꿨던 일들이 자신이 조절할 수 없었던 일들로 인해 좌절되는 슬픔. 이 행성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 같은 행성과 같은 문명에서 나고 자란 사이임에도 섞여들지 못하는 이야기들이나, 우주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다른 문명을 마주치는 일들. 탐험가로서는 쉽게 공감하지 못하거나, 의외로 이해가 되기도 하는 이야기들을 잔뜩 듣고 있다 보면, 낯선 것들을 잔뜩 마주하느라 피로해진 몸이 이상하게 가뿐해지는 것만 같았다. 비슷하다고 느껴서인지.
한참을 이야기를 듣다 보면, 탐험가도 안내인이 제공하는 것에 대한 댓가로, 그리고 이야기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이 겪은 수많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나눠주었다. 안내인은 자신이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는 만큼이나 이 시간을 즐거워했다.
[우주는 정말 광활해. 상상도 못할 만한 것들이 정말 많아. 우리가 처음에 탐사를 나섰을 때는 이렇게까지 클 거라고 생각을 못 했는데, 계속 봐도 새로운 것들이 계속 나와.]
기체로 이루어져 있는 줄 알았더니 용케 그 안에서 문명을 형성했던 미생물들이 살던 행성. 조음 기관이 없어 자신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제 뇌에 이상한 기관을 이식하려던 문명. 얼마나 많은 행성들이 지구와 닮았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행성들이 이 행성과는 다른지. 이야깃거리가 바닥날 일은 없었다. 그걸 가만 듣고 있던 안내인은 탐사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어?”
[...어?]
“너 말이야, 너.”
이 질문에는 잠시 당황했다. 나? 가장 긴밀하게 알고 있을 대상인데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뭘 얘기해야 하는 거지? 자신이 지금껏 겪고 기록해 온 것들과는 너무 다른 대상이라 말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어... 우주 연합에서는 우주 탐험을 위한 인력을 따로 키워.]
고심 끝에 꺼낸 말에는 반응이 좋았다. 우와, 우주 연합이라니... 감탄하는 안내인의 모습을 보자니 탐험가는 괜히 우쭐해졌다. 이런 것 가지고 감탄하면 다른 건 어떻게 들으려고. 거기서부터는 고민도 하지 않고 술술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사실 우주 탐사를 나가는 인원은 훨씬 많은데, 번호를 붙이는 계급이 따로 있어. 그냥 우주에 나가는 건 '탐사자' 라고 하고, 우리는 탐험가야. 둘은 조금 달라. 나는 그 중에 여덟 번째 탐험가고.]
탐사자는 그냥 우주에 나가는 거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그걸로 끝나지만은 않아. 우리는... 임무가 있어. 우주에서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해 본 적 없는 일들을 하는 거야.
대부분 문명을 기반으로 이루어지지. 그게 새로운 문명일 때도 있고, 이미 접한 적 있는 문명일 때도 있어. 이미 어떤 탐사자가 발견한 문명일 수도 있겠지. 다른 탐험가가 이미 한 번 접한 문명일 수도 있고. 그건 상관 없어.
아무튼, 우리 탐험가들은 어떤 문명에든 다가가서, 반드시 목적을 달성하고 와야 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영영 우리의 행성으로 돌아가지 못해. 아니, 돌아갈 수는 있는데, 딱 탐사선을 정비하고 연료를 채울 정도까지만. 중간중간 탐사가 지연될 것 같으면 돌아오는 것 정도는 허용인데,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결국엔 다시 나가야 해. 그게 탐험가의 운명이야.
“그건 좀 매정한데.”
가만히 앉아 설명을 듣던 안내인은 불퉁한 표정으로 평했다.
“쫓아내는 거 아니야?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별로 좋지도 않네. 그럼 왜 굳이 탐험가가 돼? 탐사자로 남아도 되는 거 아냐?”
의외네. 탐험가는 조용히 생각했다. 우주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평생 우주에서 하는 탐험가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다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 우리는 우주를 사랑해서 이 길을 떠나는 거야. 평생을 우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내더라도 행복할 만한 이들만 탐험가 칭호를 받을 수 있어. 은근히 기준이 엄격해. 시험도 여러 가지 통과해야 하고...]
그래도. 안내인은 비죽 튀어나온 입술을 집어넣을 생각을 않았다. 어쨌든 매정한 건 변함이 없어 보이는데.
[.... 그치만 가끔은 마냥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
"거 봐."
[아니, 네가 말한 그런 이유가 아니라.]
그럼 뭔데. 라는 표정이 선명했다. 탐험가는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었다.
“우주를 사랑하지 않아?”
[아니, 사랑하지.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평생을 우주에 바치겠어?]
“그럼 왜?”
[음... 뭐랄까. 슬프지 않아? 평생 우주만을 사랑할 운명이라니.]
우주를 물론 사랑하지만... 내가 평생 느낄 동안 느낄 사랑이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면. 안타깝잖아. 이것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니.
[아무래도 조금 그렇잖아? 아무리 좋은 것도 매일매일 그것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덜 좋아지는 것처럼.]
“음... 그런가.”
안내인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턱 부근을 긁적거렸다. 탐험가는 안내인의 여린 피부에 상처가 날까 슬쩍 안내인의 손을 제 손에 쥐었다. 안내인은 여전히 생각하느라 바빠 탐험가의 손길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잘 모르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해. 우주를 평생 돌아다닐 수 있다면, 그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아마 너처럼 탐험가가 됐을 지도 모르지. 매일매일 새로운 걸 만나고, 아무리 멀리까지 가더라도 내가 알지 못하는 게 있다는 그 감각은 상상만 해도 짜릿해. 그치만...”
그건 내 선택이어야지. 못 돌아오게 하면 그 순간부터는 내 선택이 아니잖아.
“아무리 알고 들어간 길이라고 해도...”
안내인은 말끝을 흐렸다. 제게 찾아온 적 없는 운명에 잔뜩 몰입한 듯 했다. 탐험가는 가만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한 마디를 남겼다.
[...너는 좋은 탐험가가 됐을 거야.]
어쩌면 나보다도 더.
“칭찬이야?”
[관찰이야.]
탐험가와 안내인은 서로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서로의 머릿속에 든 내용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았고, 서로의 문화, 서로의 기술. 이런 것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았지만 서로의 신체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서로 몸을 섞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발단은 단순했다. 탐험가가 이 행성에 도착한 지 이 곳의 기준으로 일 년이 조금 넘었던 시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료함에 휩싸인 날. 문 밖의 세상에 대해서 영원히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더 이상 알고 싶은 것이 없어졌던 날. 뭐 둘이서 할 만한 게 없냐고 물어본 날. 시끄러운 세상보다도 더 궁금한 게 많은 서로를 탐구하게 되었다. 한 번 시작하면 두 번, 세 번은 쉬웠다. 그렇게 탐험가와 안내인은 서로의 몸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탐색하는 데에 재미가 들렸다.
서로와 지겨울 정도로 붙어 있다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탐험가가 안내인에게 빌려 읽은 이런저런 오와우 족 문학에 따르면 이것도 자연스러운 일인 듯 했다. 탐험가에게는 모든 게 낯선 만큼 모든 게 다 그럭저럭 괜찮았고. 그리고 실제로, 나쁘지 않았다. 탐험가는 이런 시간들이 제법 편안했다. 안내인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괜찮았어?]
“응, 좋아.”
[다행이다.]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난 뒤 축 늘어진 두 몸이 뒤엉킨 채였다. 탐험가는 길쭉한 손가락으로 안내인의 살결을 덧그렸다.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는 피부 조직에서 방금까지 실컷 움직인 몸들의 열기가 느껴졌다.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진화 계통을 통해 발달했을 텐데도 신체 구조가 정말 비슷하네. 언제 보더라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안내인은 간지럽다고 쿡쿡 웃으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많이 닮았다면 곧 흥미를 잃기 마련이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몇십 광년을 건너 온 거리에서 발견한 닮은 이는 얼마나 들여다보더라도 흥미로웠다. 늘 변화하고 있다는 점 하나만큼은 한결같았다고 할까.
“탐험가라면서 탐험은 안 하고 여기서 노닥거리기만 하네.”
[노닥거린다니.]
탐험가는 웃으며 칭얼거리는 안내인의 등 뒤에 달라붙어 무게를 실었다. 안내인도 그것을 떨쳐내지 않았다. 탐험가가 이 시간을 즐기는 것을 안내인이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탐험가 또한 안내인이 이렇게 함께 있는 시간을 편안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는 탓이었다.
[엄연히 연구 활동 중이거든.]
“나를?”
[너희 종족의 행동 습성을.]
“어어, 진짜 매정한데.”
어디 우주 연합 출신 아니랄까봐. 안내인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게 왜 매정해. 탐험가는 받아치면서도 킥킥 웃었다. 안내인도 곧 따라 웃기 시작했다. 곧이어 정적이 찾아왔다. 별로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이 행성에 도착한 지도 시간이 꽤 지났다. 이곳의 시간으로도 몇 년이 지났고, 그 어떤 행성을 탐사하는 데 써 온 시간보다도 훨씬 오랜 기간을 머물렀다. 아니, 안내인을 탐색하는 데에만 해도 규모가 작은 행성 두어 개를 쓰고도 남는 시간을 썼다. 이 행성의 문명이 작은 편이 아님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칠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이미 행성에 대한 탐사는 끝난 지 오래다. 그것을 탐험가도, 안내인도 알고 있었다. 구태여 언급하지는 않았다.
우주로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계속 시간을 보내고 있는 스스로를 보고 있자면 의아하기도, 새롭기도 했다. 우주를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탐험을 시작했던 탐험가는 더 이상 탐험을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주가 아닌 다른 대상을 탐험한다. 우주보다 더 알고 싶은 것이 생겼기 때문에. 우주를 궁금해하는 한 인간을.
[우주로 가 보고 싶지는 않아?]
“어?”
[그냥. 우주선도 아직 있고. 조금 좁기는 하겠지만 같이 나가볼 수도 있지 않을까.]
너 혼자 가도 되고. 그게 더 낫다면... 탐험가는 조심스럽게 말을 흐렸다.
오랜 시간 생각해 온 것이었다. 우주를 사랑하는 자신의 안내인을 위한 작은 선물. 그가 원하는 것이 탐험가가 넘치도록 가진 것이라면, 나누어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으니까.
예전에 들으면서 관심을 표했던, 모든 생명이 멸망한 행성이라던가, 작은 털북숭이들로 가득 찬 행성이라던가. 데려가 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자신이 본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들으며 눈을 반짝거리는 그를 보고 있자면 그 아름다운 것들 앞으로 데려다 놓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안내인은 탐험가로 하여금 우주를 더 사랑하게 만들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우주가 아닌 이곳에서 계속 머물게 했다.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았다. 오롯이 그걸 본 안내인의 반응이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은 이미 보고 또 보고 뜯어보느라 이골이 난 곳들에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어쩌면... 그를 탐험가의 모행성으로 데려가볼 수도 있을 거고.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탐험가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안내인은 여전히 그의 모행성과 우주 연합이 매정한 곳이라고 싫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기에. 아, 보면 좋아할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대답을 기다리는 와중이었다.
“음.... 글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태연한 대답이었다.
[왜? 너 늘 우주가 가고 싶었다고 했잖아.]
“나중에.”
[나중에?]
“응. 나중에 더 보고 싶어지면.”
생각보다 시원찮은 반응에 탐험가는 고개를 갸웃했다. 안내인은 그런 탐험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침구 위에서 몸을 쭉 뻗으며 <고양이>마냥 굴러다닐 뿐이었다. 탐험가는 습관적으로 안내인의 머리께를 쓰다듬었지만 여전히 그의 답을 고심하느라 대꾸는 하지 못했다. 답이 없는 탐험가에 어깨너머를 흘긋 본 안내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이 우스웠는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은 괜찮아. 우주가 아니어도 알고 싶은 게 충분히 많아.”
[하나를 한다고 다른 걸 못 하게 되는 건 아닌데.]
“응, 알아. 그래도 괜찮아.”
[정말?]
“정말.”
[그래도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앗-]
탐험가는 갑자기 자신을 끌어당기는 안내인 덕에 문장을 끝맺지 못했다. 단번에 부딪혀 오는 입술의 감촉은 익숙하면서도 늘 전율이 일었다. 방금 전까지 기운이 없다며 늘어져 있었던 것이 무색하게 탐험가의 위로 올라타는 몸은 기운에 가득 차 있었다.
단단한 팔에 둘러싸인 채 탐험가는 속으로 떠올렸다. 내가 이곳을 떠나는 날이 올까.
떠날 수도 있겠지. 우주선도 아직 남아 있고, 아직 탐험하지 않은 수많은 행성도, 자신의 모행성도 남아 있다. 갈 곳은 많고, 갈 수 있는 능력도 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는다. 이 복잡하고 머리 아프고 때로는 지독하기까지 한 문명에서도, 이것이 만들어낸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견디다 못해 그것마저 사랑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사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구나.
네가 원한다면. 혹은 네가 나와 함께 떠나길 원한다면. 나는 그때 이곳을 떠날 것이다. 우주를 줄곧 사랑해왔기 때문에, 그곳에서 온 탐험가를 궁금해하던. 탐험가의 삶을 부러워하던. 자신이 가진 것들을 자신보다 더 사랑해줌으로서 탐험가로 하여금 우주를 더 사랑하게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우주로 떠나는 것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더 행복한 것들이 남아 있는. 그런 네가 원한다면.
우주보다 너를 더 많이 사랑하는 나와, 나보다 우주를 더 많이 사랑하는 네가.
탐험가는 회답하듯 안내인을 더욱 강하게 껴안았다. 작은 방 안에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무한한 크기의 우주 두 개가 뒤엉켰다. 창문 너머로는 또 다른 우주의 풍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이들과 문명과 사랑이 담겨 있는 우주들이 모두 함께.
영화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1977)> 에서 제목을 인용했습니다.
포스타입 2022.12.08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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