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너무 많아

잇솔 리얼물?


최한솔은 서명호가 신경쓰인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서명호는 최한솔의 연인이니까. 서로가 좋다고 고백도 하고 마음을 확인하고 연애하자고 못도 땅땅 박아두고 아무튼 그런 사이. 두 사람이 연애를 한다는 건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거고, 원래 좋아하는 사람은 신경쓰이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신경쓰인다. 그건 별로 이상하지 않다. 심지어 그건 사귀기 전에 혼자서 남몰래 좋아하(는 줄 알았)던 때와 썸이라면 썸을 타고 있을 때도 그랬다. 

그니까 지금 한솔이 고민하고 있는 건 그런 부분이 아니다. 최한솔은 지금....

손에 쥔 핸드폰에서는 소리 없이 동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한참 예전에 찍은 컨텐츠 비하인드였다. 사실 동영상이 공개된 건 촬영 시점에서 한참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약간 기억도 가물가물할 정도였고 사실 한솔이 그걸 모니터링할 필요도 굳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한 번 보고 싶더라. 그랬는데 속이 뒤틀릴 정도로 신경쓰이는 걸 봐 버린 거다. 

그러니까 영상 속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멤버들이 사이 좋게 놀고 있는데. 물론 거기에는 서명호도 끼어 있고. 최한솔은... 어디 있었지. 몰라, 기억이 안 난다. 그렇지만 이날이 명호가 떠나기 전날이라 싱숭생숭해서 괜히 곁에 안 붙어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냥.

그런데 그 사이에 이런 사달이 벌어졌다는 말이지. 스스로를 괴롭히는 길인 걸 알면서도 손가락은 지 멋대로 움직여서 재생바를 돌린다. 그럼 이제 (최한솔의 시선에서는) 슬로우 모션으로 영상이 움직인다.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약간 울적해져서 조금 가라앉아 보이는 서명호가 보이고, 그 앞에 있던 익숙한 멤버 형이 고개를 숙이더니....

한솔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아, 씨. 진짜 신경쓰이네. 하필 이런 걸 봐 가지고. 형은 왜 이런 걸 가만 두는 거야.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러니까, 이게 어디가 신경쓰이는지 잘 모르겠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알겠는데 모르겠다고.

일단 한솔이 명호를, 자신에 대한 명호의 마음을 의심하진 않는다. 매일 시시때때로 손을 잡아오면서 자길 쳐다보는 눈빛이 진심이라는 걸 알고, 사랑한다고 하는 말을 허투루 하지 않는 사람인 것도 안다. 하는 말의 절반 정도는 밈이나 장난으로 이루어져 있는 한솔과는 다르게 명호는 한 마디 한 마디의 무게를 알고 그만큼 진중하게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최한솔은 서명호가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것들 중에서 나와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고 할 때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그리고 덕분에 서명호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인 것을, 한솔은 잘 알고 있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마음에 대한 의심을 하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다.

아니근데아무리그래도.

그러니까 의심이 안 되는 거랑 연인 사이의 뭐랄까, 예의랄까. 아니 서명호가 예의가 없는 애인이라는 건 아니고. 지키는 게 있는 건데, 그러니까 명호 형이 그런 지킬 걸 지키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도 아닌데. 이게 뭔소리냐면. 

아니근데

뽀뽀하는데 그걸 그냥 가만히 있냐고!!!!

아니다. 한솔은 생각이 떨어져나가길 바라는 것처럼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사람이 뽀뽀할... 수도 있지. 물론 최한솔은 그렇지 않지만, 그런 사람의 심리랄까? 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다. 도겸이 형이랑 몇 년을 같이 살았는데 그걸 못 이해해. 그거 이해 못했으면 우리 재계약도 못했고 세븐틴도... 아, 아무튼.

둘이 친한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석민이 뽀뽀귀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다들 아는 사실 아닌가. 서명호에게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정말정말 만일을 가정해서 둘이 뭐가 있는 거라고 쳐도 그럼 둘이 숨어서 그러겠지 이렇게 대놓고 애정표현을 할 리는 없고. 그리고 아무튼 둘 다 최한솔에게 그럴 사람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걱정할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거다.

그치만그건그렇다쳐도.

한솔은 괜히 휴대폰 화면을 향해 눈을 흘겼다. 계속 노려보면 해리 포터에 나오는 마법 사진처럼 화면 속 인물들이 자아를 가지고 움직이기라도 할 것처럼.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면 사진 속 서명호와 이석민이 최한솔의 불타는 눈빛을 느끼고 부끄러운 줄을 알고 떨어져서 시선을 피하고 더 이상 붙어 있지도 않고 뽀뽀하지도 않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다시 또 심경이 복잡해져서 머리를 벅벅 문질렀다. 아, 그만, 그만. 생각이 쉽게 떨쳐지지를 않는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여태 아무 말도 안 했으면서 이제 와서 왜 이러냐, 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겠다. 솔직히 거기에 대해선 최한솔도 할 말이 없다. 도겸을 비롯한 멤버들은 사이가 굉장히 좋았고,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만큼 서로에게 익숙해서 터치나 애정 표현이나 이런 것도 스스럼없는 걸 안다. 당장 한솔도 그런 애정 표현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참 동알 받아왔는걸. 

심지어는 연애하고 나서도 거기에 대해서는 터치를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잖아. 원래 의미는 부여할수록 이상해지는 거다. 순수한 감정이나 유대감에도 과민반응하면 지치는 건 최한솔과 서명호일 거고, 그건 최한솔이 절대 원하지 않는 일이다. 연애 전에도 최한솔과 서명호의 관계와 그 외 다른 멤버들과의 관계는 달랐으니, 연애 후에도 그건 똑같다. 연애하게 됐으니까 친구 관계 다 끊으라는 그런 어불성설이 어디 있어. 최한솔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건 그런데.

 그걸 해 버릇하는 거랑 그걸 찍어서 올리는 건 다른 거 아니야?

왜 다르냐고 하면 그걸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다르다. 뭐가 다르냐면 그건 솔직히 상관없었는데 이건 진짜 미치도록 신경이 쓰인다는 거. 이런 모습은 나만 보고 싶은데 팬들이며 멤버들이며 아무튼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올라가있다는 것 아닌가. 

이게 과한 욕심이야? 솔직히. 서명호 저런 모습은... 나만 보고 싶고. 나한테만 웃었으면 좋겠고. 나하고만 손잡고 머리 쓰다듬고 나한테만 예쁘게 말하고 나한테만 못되게 말하고 나한테만 화내고 나하고만 뽀뽀하고 나하고만 껴안고 나한테만 나한테만 나하고만 나한테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한솔은 제 생각이 흘러가는 방향에 파드득 놀라며 다급하게 정신을 다잡았다. 

미친. 뭔소리야? 뭔소리냐고.

대기실에서 각자 시간을 때우던 몇몇 멤버들이 갑자기 몸부림치는 한솔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곧 다시 시선을 돌린다.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한솔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텐데 괜히 눈치가 보인다. 

아, 진짜 최악이다. 누구랑 연애한다고 그 사람을 독점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내 것이 된다거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내 마음대로 뭐라고 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한솔은 손톱을 까득까득 씹었다. 정말로 누가 지금 내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그랬다가 멤버들이 나한테 끔찍하게 실망해서 세븐틴이고 뭐고 다 그만두자고 할지도 몰라.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사실 멤버들의 성정을 생각하면 이것마저도 지나칠 정도로 비현실적인 걱정이지만 최한솔은 그걸 따질 이성이 지금 없어서 그것도 몰랐다.)

사람이 다양한 만큼 연애의 방식도 다양하다지만, 한솔은 유구하게 그런 식으로 상대를 통제하려 드는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질투 같은 건 핑계고, 사실은 통제 욕구지. 연애 관계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그럴 리가 없잖아? 서명호에게 묻지는 않았지만 그도 대충 동의하는 듯 했고, 그걸 눈치챈 후 역시 나는 명호형이랑 잘 맞아, 하면서 사랑을 재확인하고 기뻐하기까지 한 기억이 있었다. 원래 이런 건 서로 연애하는 사람들끼리만 잘 맞으면 되는 거니까.

그렇기 때문에 한솔은 자신의 이런 신념이 절대적이라거나, 보편적이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당장 이런저런 드라마니 연애 프로그램이니 하는 것들을 보며 이런 의견을 밝혔다가 몇몇 멤버들에게 이해가 안 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그렇지만 한솔은 쉽게 고집을 굽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생각을 한 이상 말해야 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에 괜히 고집스럽게 더 많이 이야기해왔더랬다. 

형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 각자의 방식이 다른 거야. 나도 이해는 못 하지만 네가 그렇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잖아? 그러다 보니 멤버들도 자연스레 그 사실을 받아들였고, 명호와의 연애 이후에도 둘을 대하는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몇 번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하는 멤버들이 던진, 혹시 내가 이러면 질투 나? 같은 질문을 듣고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질색했던 탓도 있었을 거다. 그렇지만 멤버들이 그 덕분에 좀 더 마음이 편해 보였던 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그 생각을 당당하게 주장해 온 만큼, 이런 모순적인 상황은 한솔에게 다소 자괴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바로 그 행동을, 다른 사람이 나에게 했다간 기함을 하고 도망칠 만한 행동(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아무것도 한 건 아니고 그냥 생각 뿐이지만)을 내가 하고 있다는 거잖아. 으, 끔찍해. 

뭣보다 한솔은 안다. 신경쓰려면 명호도 신경쓸 게 정말 많다는 걸.

그러니까 자기보다 한창 시간을 앞서 간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 유일한 동갑내기라는 유대로 묶여 있는 녀석이라던가, 한 명 뿐이라 더 아끼는 동생이라던가. 명호는 한솔이 조슈아와 영어로 말하는 걸 보면서 저 형은 내가 다 알아들을 수 없는 너의 모습까지 알 수 있어서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거기에 대해 한솔은 자기도 준 형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대답했지만. (그리고 굳이 말이 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도 덧붙여서, 감탄하는 명호를 보곤 스스로가 조금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연인의 입장에서 표면적으로 질투하고 신경쓸 건 한솔 쪽에도 많다는 거다. 그렇지만 명호는 한솔을 존중해서 그런 부분을 터치하지 않았고, 한솔은 그 덕분에 그만큼 더 명호를 사랑했다. 아끼고 좋아하는 멤버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급발진한다니 풀소유 신선이라느니 팬들이 만들어낸 많은 말들로 명호를 놀리지만, 누구보다도 더 많이 명호에게 시비를 걸어 온 한솔은 명호가 참을성이 정말 많고 정말 어른스러운 사람이라는 걸 안다. 멋진 내 애인. 그렇지만 나란히 두고 보면 스스로가 더 유치해 보이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유치하다느니 애같다느니 하는 말들에 영향을 받는 편은 아니었지만 명호와의 관계에서는 괜히 그런 시선이 신경쓰였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런 것 하나 성숙하게 넘기질 못하고. 몰려오는 자괴감에 한솔은 으으으, 하며 괴성을 부르짖었다. 멤버들의 흘깃거리는 시선이 머리통 위로 느껴졌다.

한솔이 명호에게 오래 쌓아 온 감정을 공유한 날에 명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멤버들하고 관계 설명 안 해도 돼서 좋네. 그 말에 담겨 있는 뒷이야기를 알아서 한솔은 기뻐하면서도 괜히 울고 싶어졌었다. 서명호의 전 연애 상대는 유독 돈독한 명호와 멤버들과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명호는 그 사람에게 너도 아이돌이면서 왜 멤버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걸 이해를 못하냐고 그랬지만, 그 사람은 너랑 다르게 나는 멤버들이랑은 그런 관계 아니라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었다. 마치 그게 서명호의 잘못이라는 것처럼. 결국 제법 지저분하게 헤어졌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걸 털어놓는 명호 덕에 한바탕 난리도 아니었었다. 차분하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명호를 둘러싼 채 다같이 열을 냈고, 한솔은 그날 유독 흥분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명호가 괜찮은 줄 알았으니까. 이상한 신호를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자신이 솔직히 좀 한심했다. 비록 서명호가 괜찮다고 신신당부했지만, 그래도 짜증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결국 한솔이 명호에게 고백을 하면서 그 사람의 말이 - 그러니까 멤버들이랑 관계가 수상하다는 것 - 사실인 꼴이 되긴 했다. 그렇지만 맹세코 그게 사실은 아니었다. 한솔은 명호에게 그런 감정을 티내지 않았다. 명호를 뺏어오려고 수작을 부리지도 않았고. 그건 다른 걸 떠나서도 매너가 아니지 않은가. 명호에게 그런 어려움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 말을 들은 후에 최한솔의 고백 계획이 몇 개월이 미뤄졌었다. 혹시라도 이상한 건수를 잡히지 않으려고. 

그러니까 안 그래도 억울한데 고백할 때도 그 얘기를 들었으면 솔직히 좀 서러울 만도 하지. 망할 놈. 우리 명호 형한테 뭐라고 할 데가 어디 있다고. 그래서 최한솔은 다짐했었다. 절대로 그 자식 같은 놈이 되지 않아야지. 명호 형한테 잘해 줘야지. 명호 형이 싫은 건 아무것도 안 하고...

물론 다짐은 다짐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한솔은 명호가 이런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핑계삼아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까 최악인데? 형이 싫다는 건 다 하고 (물론 그러면서도 웃어주는 걸 보니까 진짜 싫은 건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맨날 놀리기나 하고 (그렇지만 다 진짜로 형이 반응하는 게 귀여워서 그런 거긴 한데). 좋다는 말은 맨날 하지만 내 마음대로 표현한다고 또 고집이나 부리고.

음.... 최악이군.

그렇지만 형은 이런 내가 좋다고... 하기는 했는데.

그런데 이러는 걸 봐도 좋으려나?

그치만 나는 늘 이래 왔는데.

....그런데 나중에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생기면 어떡해?

뭔소리야? 뭔소리냐고.

근데 서명호 예쁜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서 막 채가려고 하면 어떡하지? 물론 서명호는 이미 연예인이고 세상 사람들이 서명호 예쁜 거 다 알고 있고, 서명호를 제 걸로 채가려고 하는 사람도... 거리는 좀 더 멀지만 이미 많이 있다. (최한솔이 뭘 찾아봤는지는 서명호에게는 평생 비밀이다) 그렇지만 최한솔은 그런 건 알 바가 아니다. 이건 원래 실질적인 걱정보다도 추상적인 걱정이다. 그러니까 형을 너무 사랑해서.... 으악, 진짜 최악인 멘트. 완전 징그러움. 명호 형이 헤어지자고 해도 할 말 없음. (제발 헤어지자고 하지 말아 줘)

그러니까 이 모든 게 최한솔에게는 너무 어려운 거다. 최한솔은 서명호를 사랑하는데. 서명호를 사랑하는 최한솔은 계속 이상해진다. 사랑을 하면 누구나 최악이... 뭐 그런 드라마? 그런 것도 있던데. 누군지 모르겠지만 제목 한 번 잘 지었다.

사랑을 해서 어디까지 해도 되는 건지. 자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자기가 하고 있고, 절대로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하던 모습을 자신이 보이고 있고. 이게 다 사랑 때문이라는 거야? 사랑 앞에서는 그러면 너무 사람이 별로가 되는데. 서명호를 가졌으면서 (물론 연애 관계는 상호 소유와는 아무짝에도 상관이 없는 거니까 가졌다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지만) 그만큼 잘해주지도 못할 거면...

그렇지만 서명호에게는 사랑이 쉽다. 쉬워 보였다. 서명호가 쉬운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사랑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라는 거다. (지나치다는 건 오롯이 최한솔의 기준이다.)

서명호에게 사랑을 받는 건 어렵지 않다. 그냥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기만 하면 된다. 서명호는 하늘을 사랑하고 바다를 사랑하고 숲을 사람을 동물을 개구리를 시끄럽게 해서 자길 귀찮게 하는 멤버들을 그리고 자길 가장 귀찮게 하는 최한솔까지도 다 사랑한다. 최한솔은 감사하게도 이 세상에 태어나 서명호의 사랑이라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명호 형은 그 중에서... 나를 왜 좋아하지? 그러니까 좋아한다고는 하는데, 내가 서명호에게 어필될 부분이 뭐가 있는데? 아니 물론 내가 연예인 하면서 느낀 거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라던가 취향이라던가 이런 데에는 정말 특이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고 나도 이미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지만? 그래도? 그러니까? 이건?

"괜찮아?"

"와악!!!!"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정신을 팔고 있느라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고개를 드니 한참 동안 제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제 애인의 얼굴이 보인다. 조금은 놀란 것 같이. 갑자기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본능적으로 피해버린 탓에 어깨에 얹혀오려던 명호의 손이 어색하게 허공을 배회했다. 헉, 어떡해. 명호 형 상처받았으려나. 어어, 어, 미안해, 형. 내가 놀라서. 내가 형을 피하려던 게 아니라...

"알았어, 알았어. 괜찮아. 너 왜 그래?"

"어어, 아무 일 아니야..."

아무 일이 아닌 건 아니지. 한솔의 머리가 복잡하긴 하다. 그런데 서명호가 신경쓸 일은 아니긴 하다. 서명호 때문... 이기는 한데 서명호 탓은 아닌, 뭐 그런 거. 

"진짜? 애들이 너 이상하다고 나 부르던데."

"아..."

그제야 아까부터 자길 힐끔거리던 멤버들의 시선이 생각난다. 그러게. 대기실 구석에서 멤버가 머리를 쥐어뜯고 있으면 좀 이상하게 보일 법도 하지. 그리고 누군가 이상 행동을 보일 때 그 사람의 처리반으로 애인을 불러주는 것도... 그래. 이상한 일은 아니다. 사실 꽤나 적절한 처사이기는 하다. 최한솔은 지금 서명호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우니까. 그래서 이런 말도 튀어나오는 거지.

"형은 내가 좋아?"

"우와...."

엥. 방금 저건 명호 형 목소리가 아닌데.

"얘들아, 사랑 싸움 하는 거야? 그건 우리 없는 데서 좀,"

삐걱거리며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난 마냥 해맑게 웃고 있는.... 윤정한. 이 보인다. 너무나도 방금 한솔이 한 말이 들렸을 거리에서. 그렇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윤정한의 저 표정으로 알 수 있다. 다 들었다. 망했다. 적어도 한달 치 놀림거리일 텐데. 저 얄미운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는 게 슬로 모션으로 보이는 듯 했다. 피곤한 눈에 안광이 비치고, 셋, 둘, 하나...

"형, 제발..."

"정한이 형, 우리 잠깐 얘기하고 올게."

어어? 얘들아, 진짜 싸우면 안 된다?!! 한솔의 팔을 잡고 끌고 나가는 서명호의 뒷편에서 당황한 듯한 윤정한의 목소리가 점점 흐려졌다. 아니, 저 형도 진짜 웃겨. 진짜 우리가 싸우려고 했으면 저렇게 말한다고 안 싸우나? 그런데 우리 싸우나? 명호 형 화났나? 근데 왜 화나? 

"너 또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해?"

"아니..."

"내가 너 좋아한다는 거, 못 믿어?"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당연히 믿지 완전 믿지 너무 믿어. 손사래까지 치면서 거부하는데 여전히 한솔을 주시하는 눈빛은 못마땅하다는 투라 더욱 열과 성을 다해서 부정했다. 명호는 그걸 계속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어디선가 진정성을 읽어낸 건지 넘어가곤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래, 알았어. 아니면,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아니아니 형은 아무 잘못도 없어."

"그럼 왜 그런 걸 물어봐?"

어... 그러게. 그냥 튀어나왔는데.

그러니까 이게 왜 그러냐면, 세상에 형을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아니 그니까 우리는 연예인이니까 당연하지만, 그래도 너무 많아. 근데 형은 너무 착해서 사람들 다 좋아해 주고. 근데 나도 형이 너무 좋아서.... 그런데 나는 형한테 솔직히 잘 못해주잖아? 아니 그니까, 잘 못해주는 사람이랑 사귀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형한테 나쁘지는 않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근데 더 잘 해줄 수 있나 싶다가도... 근데 형은 이런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야? 그치만 왜 나를? 그런데 형이 내가 좋다고 하기는 했는데...

"오..."

"...나 설마 방금 이거 말로 했니?"

"응."

대박이다, 너. 푸흐흐 웃음을 터트리는 명호에 긴장이 조금 풀린다. 기분이 조금 좋아 보이기도 한다. 한참 고민을 한 한솔로는 김이 조금 새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는 광경이다. 그래, 형이 좋다면 됐다... 그리고 서명호 웃는 게 예쁘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웃는 게 얄미워서 옆구리며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옹골찬 몸은 살짝 떨다가도 다시 웃음으로 돌아왔다. 그게 조금 진정되자, 명호는 다시 한솔과 눈을 맞춰 왔다.

"좋아. 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우습게도, 그 한 마디에 걱정하는 마음이 다 사르르 녹아 버렸다. 오늘 하루 종일 머리 싸매고 고민한 게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정도로. 구구절절 해명하기보다 더 의미 깊은 한 마디의 말이 전해주는 안심. 그게 서명호의 사랑이고, 그게 최한솔의 연인이니까.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진짜?"

"뭘, 또 그걸, 응. 진짜."

또 뭐 그런 걸 묻냐는 듯이 윽박을 지르려던 거다, 저거. 그런데 한솔이 오늘따라 확인받고 싶어하니까 장단에 맞춰준 거. 그 와중에도 말하는 게 부끄러운지 귓바퀴에는 홧홧하게 홍조가 올라와 있다. 부끄러운 거지. 그렇지만 부끄러우면서도 원하는 건 꼬박꼬박 말해주는 것, 그게 특별한 거니까.

"나도 사랑해."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에 먼저 대답을 던진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같은 눈으로 한솔을 슬쩍 흘겨본 명호는, 한솔의 눈을 슬쩍 피하며 대답을 내놓았다.

"...응, 사랑해."

아, 서명호랑 연애하는 거 진짜 짱.


포스타입 2023.02.26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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