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델금랑] 오해를 만나 소개팅과 인사

프롤로그

蓝沙 by 푸른 모래
17
1
0

잠에서 막 깬 듯 편하게 입고 나온 금랑의 앞에는 정장 차림의 단델과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서 있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말문이 막혀 입을 뗄 수 없던 금랑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든 단델이 그런 그에게 단 한 문장으로 충격을 안겼다.

"왔구나! 금랑. 이쪽은 내 애인이야. 서로 인사해."

"그렇구나. 반가워."

반사적으로 나온 문장에 스스로도 놀랐다. 이렇게 대처 능력이 뛰어났었나 나 님?

뒤이어 뭐라 말하는 단델의 입모양에 응응 그랬구나, 그래? 정말? 같은 추임새만 넣을뿐 제대로 대답을 했는지 따위는 모르겠다.

'이쪽은 내 애인이야.'

솔직히 말해서 좋아하는 사람의 애인 따위 반갑지도 않고 오히려 싫다. 더군다나 이런 방식으로 소개 받고 싶지 않았다.

바쁜 일정 속 모처럼 얻어낸 휴일에도 단델의 연락을 확인하고서 한걸음에 달려 나왔는데…

설마 나 님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하하하. 요즘 업무가 밀려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네! 그래도 이런 장면까지 나오다니 심하잖아?

… 이거 꿈 맞지?

"반가워요."

그런 금랑의 내적 고뇌 따위는 모른다는 듯 미성의 여자가 악수를 건넸다.

‘싫다’ 금랑은 그녀가 내민 예쁜 손을 내려다 본 채로 생각했다.

처음 만난 여성에게 그런 생각을 한 자신 또한 싫다고 생각해버렸다.

“저, 금랑씨?”

“금랑?”

의아한 듯 물어오는 두 사람이 너무 잘 어울려서.

입을 가리고 헛웃음 친 금랑은 이제 이 불쾌한 꿈에서 깨기 위해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기에 금랑은 그만 입꼬리를 위로 끌어 당긴 채 굳어버렸다.

+++

"있잖아 설희씨, 애인이 생기면 어떤 기분이야?"

"음?"

자신의 비서 역을 맡아 주고 있는 여자에게 금랑은 꽤 사적인 것을 물어봤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그의 주변에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최근 애인이 생긴 설희 밖에 없었다.

설희의 의문 섞인 푸른 눈이 잔뜩 늘어진 모습의 금랑을 내려다 봤다.

금랑이 입술을 삐죽였다. 2m의 체육관 관장님은 체면 따위 챙기지않는다.

"뭔가… 애인은, 친구랑 다르겠지?"

"당연한 소리를 하시는데, 한가하세요?"

정 한가하시면 이번에 진행될 체육관 보수공사 계획서 좀 읽어보세요. 그녀는 흘러내린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품 안의 서류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쾅-

묵직한 서류가 책상에 부딪히며 큰소리를 내자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메타몽처럼 푹 퍼졌던 금랑은 자세를 바로 했다.

일하자 일. 나 님의 머리 속에서 그런 울적한 일 따위는 지워버리자. 그는 으으 거리는 신음 소리로 자신의 결심을 표출했다.

“뭐야아…체육관 보수공사?”

“원래대로라면 오늘 아침 확인하셔야 했던 서류인데 누가 온 종일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셔서 아직 결재를 못받았어요.”

스타디움 담당이던 성희씨가 울상이었죠.

설희의 뼈있는 말에 멋쩍은 미소를 지은 금랑은 뒷목을 긁었다.

“미안 지금 바로 해줄게.”

서류를 넘기며 하단에 사인을 하던 금랑을 뚱하게 보던 설희는 갑자기 입을 달싹거렸다.

“애인이 생기면 좋죠, 이런 저런 일을 상의 할 수 있기도 하고요.”

“…응?”

뜬금없는 말에 금랑이 펜을 든 채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녀는 뒷면에 사인이 필요한 곳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금랑은 다시 ‘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항상 고마워, 여기 있어. 그럼- 다음 달부터 바로 공사가 시작되는 건가?”

다음 달 스타디움쪽 트레이너들의 휴무 일도 조정해야겠네.

시끄러울 수 있으니까 소음에 예민한 포켓몬들은 한동안 꺼내두지 않는 편이 좋겠고.

금랑이 낮게 중얼거리자 잠시 조용하던 설희가 그에게 폭탄을 떨어트렸다.

“그러고 보니, 단델님과 여자친구 분은 사업 상의 미팅 자리에서 만나셨다던데.”

아,아아!

금랑이 소리 없이 입을 벌려 아우성 쳤다.

보수 공사의 서류 때문에 잠시 밀어두었던 일이 떠올라 버렸다. 꿈 인줄 알고 그 자리에서 픽픽 웃기만 하다 현실을 자각하게 된 휴무 일의 그 기억이. 가냘픈 손과 예쁜 미소의 그 ‘애인’이 다시 떠올라 버렸다.

“…나 님, 그런 거 알고 싶지 않아! 그만둬 설희씨!”

금랑이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그녀에게 외쳤다.

설희는 그런 2m짜리 메타몽의 몸부림을 가볍게 무시했다.

“이렇게 된 거 어쩌겠어요? 애인이 있는 남자는 포기하셔야죠. 으음…금랑님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고 이 정도면 꽤 미남인 편이니까…”

설희가 흐물거리는 금랑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사인이 끝난 그의 손에서 살짝 구겨진 서류들을 챙겼다.

“금랑님도 다른 분과 소개팅이라도 해보시는건 어떠세요?”

“됐어.”

“뭐, 그냥 제안해 본 거에요. 이 체육관 보수 공사처럼.”

설희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제는 축 처지다 못해 퍼져있는 금랑을 힐끔거렸다. 평소에는 멀끔하게 생겨서는 실연 한 번 당했다고 변변치 못한 모양새다.

그래서 이 사람을 가만 두지 못하겠다. 설희는 생각했다. 늘 헤실 거리며 웃던 사람이다. 포켓몬 배틀에서는 늘 프로다웠다. 그런데 그랬던 금랑이 이렇게 기운 없이 처져있는 모습은, 낯설다.

심지어 전 챔피언에게 연패를 당할 때도 로토무에 사진을 올리던 사람인데.

“관심이 있으시면 여기에 연락해보세요.”

“필요없다니까.”

“말만 소개팅이지 그냥 친구를 만들기도 하는데.”

저는 여기에서 지금의 남자친구와 만났지만.

설희씨!

외침을 무시하고 빳빳한 재질의 명함을 책상에 올려둔 설희는 챙긴 서류의 앞뒤를 자세히 확인했다. 딱딱한 비서의 태도에 금랑은 종이를 손가락으로 밀어냈다.

한 단어가 그의 이목을 끌지 않았다면 분명 관심 따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전…국 포켓몬 애호 교류회?”

금랑이 명함을 가져와 자세히 들여다봤다. 금색의 장미 로고는 촌스러웠고 전국 포켓몬 애호 교류회라는 이름은 어딘가 있을법한 등산 동호회 같은 느낌마저 났다.

다시 봐도 소개팅 같은 느낌은 아니다.

의아함에 그는 설희를 올려다봤다.

“이름은 그래도, 간단한 인적 사항을 기재하면 자신과 성향이 맞는 사람들을 매칭해줘서 요즘 인기가 많아요… 그런데, 금랑님. 여기 이 부분 사인이 누락됐어요.”

“어, 응. 미안 다시 해줄게.”

설희는 금랑이 놓친 부분을 다시 내밀었다. 그리고 사인을 하는 그의 옆에서 명함의 하단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로토무를 사용해서 여기 이 번호로 인적 사항, 관심사 그리고 좋아하는 포켓몬의 타입을 제출하면 참가 완료에요.”

금랑이 흥미가 떨어진 표정을 짓자 설희는 그에게 다시 명함을 밀어주면서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화나요, 금랑님이 위원장을 좋아하는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렇게나 티 나는데, 분명 그분도…… 그런데 애인을 소개 시켜 줬다고요? 겨우 시간을 비운 휴무 날에? 그건, 보는 사람이 속상해.”

설희의 말이 끝나자 금랑은 끝내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알게 되었다. 냉정해 보이지만 마음이 여린 설희는 자신의 옆에서 꽤 오랜 기간 일 해왔던만큼 이번 일이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자주 보이지 않는 걱정 어린 시선에 금랑은 조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 명함도 서툰 그녀의 위로 방법이겠지라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그는.

“그러니까, 당신도 조금 내려놓고 다른 곳에 눈을 돌려보세요. 이런 소개팅이 아니더라도 뭐어… 애인을 공개 구인한다든지? 제가 신문에 광고라도 내볼까요?”

그것도 얼마 가지는 못했지만.

“설희씨는 항상 끝에서 엉뚱해져. 그래도…고마워.”

결국 서류에 사인을 받은 이후에도 몇 번 더 이상한 말로 금랑을 웃게 만든 설희는 어딘가 뿌듯해 보이는 얼굴로 서류를 챙겨 나갔다.

그녀가 나간 후 웃던 금랑은 몇 분 동안이나 금색 장미 로고가 박힌 명함을 빤히 보다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서 명함 속의 번호를 수신자로 해 문자를 적어 보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