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연성

언성듀엣 주저리 (1)

2021.06.06

언성듀엣을 다녀온 이후의 옵시와 라리안에 대해서

연인은 서로 사랑하며 사랑을 나누기로 약속한 자들을 뜻한다. 그러나 사랑하며 사랑을 나누는 이들이 연인은 아니다. 이것은 단순한 논리이다. 참의 역은 참이 되지 않다.

    

‘옵시디언과 자신은 연인이었다. 그리고 더는 연인이 아니다.’ 라리안은 이 명제가 불변의 진리일지는 고민해봐야 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고집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객관적으로 보고 있기에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옵시디언과 자신은 연인이었다.’ 그것만큼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과거를 뒤집는다 해도 그것만큼은 변할 수 없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옵시디언도, 최소한 그것은 기억하는 눈치였다. 라리안은 필요하다면 연인이라는 약속의 증인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 고백을 받았고 승낙했다. 사랑했으며 사랑을 나누었다.

    

걸리는 부분은 여기이다. ‘더는 연인이 아니다.’

    

라리안은 옵시디언이 다시 연락했을 때를 떠올린다. 직전에 옵시디언은 두어달 간 실종 상태였고 라리안은 그 기간 동안 사방을 헤집었다. 옵시디언의 지인을 닥치는 대로 만났다. 바람을 의심한 것은 아니고 그 중 누구라도 옵시디언의 행방을 알지 않을까 싶은 절박함이었다. 예의이기에, 혹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원래라면 평생 모를 인간관계를 전부 꿰뚫었다. 그럼에도 옵시디언은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정도면 범죄를 의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납치, 인신매매. 말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 성정을 떠올리면 더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그래도 다단계나 사이비. 옵시디언을 데려간 자가 협박을 보낼 경우 경찰에 몰래 연락하는가, 연락하지 않는가를 두고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정작 그에게 문자가 왔을 때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의 이름이 보이자 마자 다른 무언가를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머리에서 싹 날아갔다. 다른 사람의 것인지 그의 것인지 확인하기 바빴다. 그리고 확인한 후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문자에서 옵시디언이 헤어짐을 요청했으니까.

    

그래. 그때 옵시디언이 헤어짐을 요청했다. 그 내용은 순간 실종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첫 번째로 하는 말이 정리 선언이면, 그 전부터 자신을 원하지 않았기에 피했을 것이다. 라리안은 충격에 사고가 멎기 전에 간신히 걱정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옵시디언의 번호로 온 문자이지만 옵시디언이 직접 보냈다는 증거는 없다. 그 말은 아직 옵시디언의 안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라리안은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옵시디언은 받았다. 라리안은 어디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근황을 물었다. 옵시디언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라리안은 당신을 꼭 만나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러기 전에는 그 무엇도 허락하지 않을것이라고. 이별통보를 문자로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며 걱정되므로 당신을 만나봐야겠다고. 그래야만 헤어지자는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전화기에 매달리며 말했던 것 같다. 옵시디언은 침묵 끝에 승낙했다. 그는 그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장소를 돌고 돌았으나 집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그러니까 그때, 옵시디언을 만났으니 헤어지는 것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 통상적으로 문자로 이별통보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만나서 직접하라는 말이 전제된다. 옵시디언은 만나서 이별 절차를 밟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직후의 상황은 혼란스러웠다.

    

라리안이 가서 본 옵시디언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람이 시간이나 장소에 물들어 변할 수 있는 것 이상이었다. 인간이라는 형체 자체가 변해있었다. 검던 머리는 희게 탈색되었으며 풀들이 살갗에서 자라나 몸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사람 좋아 보이던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생기가 전부 빠진 듯 피폐한 표정이었다. 그대로 두면 곧 죽을 이의 모습이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기운이 빈약했고, 정신이 불안정했으며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모습이 아니었다. 옵시디언은 간략하게 설명하고 이만 가달라고 했다. 라리안은 옵시디언을 붙잡고 곁에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실종 중에 마음을 너무 많이 졸였다. 그러다 겨우 만났다.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옵시디언을 잃고 싶지 않았다. 옵시디언은 화들짝 놀라며 라리안을 내쳤다. 허락할테니 접족만은 하지 말라달라면서 제 얼굴을 박박 비볐다. 간청이 먹혀 들어갔다기 보다는 약점을 눌러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라리안은 알았다. 그러나 라리안은 되묻지는 않았다. 몇가지만 어긋나면 그대로 내쫓기고 다시는 옵시디언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억지에 가까운 승낙을 받아들이고 모른 체 했다.

    

그렇게 라리안은 옵시디언을 만났고, 머무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에 약속한 바에 따르면 더 이상 연인은 아니게 되었다. 이후에 그 둘이 관계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사실은 모호하다. 그러나 라리안은 고지식했고 약속에 충실한 편이었다. 라리안이 조건까지 걸어가면서 지은 약속이라면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니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니다.

    

그날 밤, 라리안이 잠에 희미한 옵시디언에게 묻고 들은 말을 기억한다. 라리안이 옵시디언을 살피고 물러나려는데 옵시디언이 잠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제 옷을 쥐고 놓아주질 않았다, 라리안이 살짝 굳었다가 살짝 빼내려고 하자 옵시디언은 더 꼭 붙잡았다. 그러면서 웅얼거렸다.

    

......혼자는 무서워.

    

속내가 나온다. 옵시디언은 분명 낮에는 분명 라리안을 내보낼 듯 굴었다. 라리안은 힘이 풀려 옵시디언 옆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금 더, 조금 더 확인이 필요했다.

    

제가 곁에 있어주시길 바랍니까?

    

옵시디언은, 분명 잠결이었지만 눈을 흐리게 뜨며 라리안을 한번 보고, 제가 잡은 옷자락을 한번 보고 순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깨어있는 모습에 라리안은 심장이 섬뜩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눈을 감고 잠의 경계로 넘어갔다. 꿈과 현실이 잠시 겹쳐졌을 것이다. 맨정신의 옵시디언은 그리 말하지 않았다. 라리안은 한번 더 물었다.

    

옵시디언, 저를 아직 사랑하십니까?

    

옵시디언이 이계에 대해 숨기던 때여서 그것들을 물을까 싶었지만 잠에 취한 사람이 논리적인 설명을 하기 힘드므로 라리안은 간단한 것을 묻기로 했는데, 답변이 길어질 질문들을 쳐내니 감정적인 질문이 나왔다는 구구절절한 이유를 대려면 댈 수는 있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간에 라리안은 그것을 물었다. 자신을 사랑하냐고. 그러자 옵시디언이 중얼거렸다.

    

...... 사랑해..... 다른 걸 다 잃어버려도 그것만은 잊고 싶지 않았어.

    

라리안은 그 자리에서 무너질 것 같았다. 이미 앉은 상태가 아니면 넘어졌을지도 모른다. 사랑한다. 아직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옵시디언이 상실 속에서 라리안이 마지막 하나가 될 만큼 사랑한다고 한다. 문자를 보낼 때 정말로 사랑했다고 실토했으나 헤어지자는 말 뒤에 붙은 것이어서 라리안은 보내는데 좋은 말을 해주거나 과거 이야기일 줄 알았다. 그러나 아직도 사랑한다고 한다. 라리안은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저도 사랑합니다, 옵시디언.

    

옵시디언은 행복한 표정으로 자고 있었다.

    

연인은 서로 사랑하며 사랑을 나누기로 약속한 자들을 뜻한다. 그러나 사랑하며 사랑을 나누는 이들이 연인은 아니다. 이것은 단순한 논리이다. 참의 역은 참이 되지 않다.

    

옵시디언은 라리안을 사랑하고, 라리안도 옵시디언을 사랑한다. 그러나 연인은 감정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상호 간의 동의가 필요한 약속이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은 무수한 헤어짐이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헤어지지는 않았다. 라리안은 옵시디언의 집에서 머물며 그를 챙긴다. 장을 대신 보고 외출이 필요한 일을 도맡으며 불안정한 그를 붙잡는다. 그러나 연인은 아니다. 옵시디언은 사랑을 돌려주지 못한다. 라리안은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감정적인 보답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자신의 무던한 성격의 장점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좋았다고 끝나지는 않는다.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마무리 지을 수 없다. 옵시디언은 얇은 현실의 경계에 겨우 머무르고 있다. 전과 달리 공포에 떨고 기분이 치닫는다. 현실의 끈을 놓칠 때도, 또 실종될 때도 있었다. 상황은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른다. 얼마 전에는 말투를 잃었다. 라리안의 말투로 말하고는 한다. 옵시디언은 자꾸 스스로를 잃는다. 라리안은 그를 붙잡으려고 노력한다. 접촉을 피하는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으로 담요나 옷으로 두른 다음 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렇게 옵시디언을 다독인다. 본래 성질이 그러했으나, 이제는 더더욱 환상 따위에 젖지 않고 현실을 지키려 든다. 옵시디언이 경계 사이에서 방황한다면 자신은 더더욱 현실에 남아 그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

    

그를 지킬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잡을 것이다. 어떤 모습이라도 곁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옵시디언이 잃은 일상을 되돌려놓을 것이다.

라리안은 얕은 숨을 쉬었다. 그 목적까지 가는데 라리안이 꼭 그의 연인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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