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저 청명입니다!

. by 마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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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이 허공 보며 얘기하는 걸 심각하게 생각하는 천우맹이 좋음. 현종과 당군악이 제일 많이 걱정할 것 같아. 화산파는 너무 자주 봤던 모습이라 그냥 '미친놈 또 저러네' 하고 넘겼는데, 당군악이 심각한 주제로 얘기를 꺼내니까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겠지. 그 시대에는 정신질병이란 게 없겠지만, 어렴풋이 그 고통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 같음. 

당군악은 그간 청명이 보여왔던 모습을 떠올리며 청명이 가진 심적 고통을 이야기했음. 어쩌면 청명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할지도 모르겠다고. 현종은 청명이 이상한 행동을 보여도 쉬쉬하며 넘겼던 지난날의 자신을 질책했음. 그렇지만 치료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음. 이미 마음을 연 아이가 속을 털어놓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니 억지로 캐물 수도 없었지.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없다면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 아이가 맘 편히 지낼 수 있게 일이라도 거들려고 하겠지. 원래라면 청명이 맡아서 했을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거나 역할을 분담했음. 청명은 주변에서 묘하게 자신을 도와주고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애들이 자꾸 이상하게 구니까 한 놈 잡아다가 패면서 내막을 알게 됐음. 좋게좋게 돌려 말했지만 결국 청명이 힘들어하니까 쉴 수 있게 돕고 싶다는 말이었음.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청명은 잡았던 멱살을 툭 놓아버렸음. 내가 뭐? 지쳐? 내가. ……감히.

상황을 살피던 당군악은 청명에게 빠르게 다가왔음. 청명의 상태를 걱정하며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우리에게 모든 걸 맡기고 쉬어달라고 말했음. 현종 역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잡아오니, 청명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음. 청명의 눈을 그윽하게 바라보던 현종은 흉터가 가득한 손을 문지르며 물었음.

"청명아 힘들지 않느냐."

'제자. 당연히 괜찮습니다.' 자신있게 답하려던 청명은 한참을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대답하지 못했음. 잔혹했던 전쟁을 겪고서 또다시 끔찍했던 전장으로 돌아가려는 자신이 정말로 미치지 않았는지. 확신이 없었음. 청명은 한참 입을 꾹 다물다가 잘 모르겠어요, 하고 답했음. 

…아. 답답해. 청명은 가슴을 문지르며 고개를 떨어뜨렸음. 평생 모르고 살았던 피로에 짓눌리는 듯했음. 숨이 턱 막히고 머리가 지끈거렸음. 그때도 분명 이런 기분이었는데. 천마의 목을 베고 쓰러지던 순간 자신을 덮쳐 온 절망은 분명 이런 무게였음. 왜 여태 기억하지 못했을까. 피로를 인지하는 순간 청명의 영혼이 비명을 질렀음. 수년간 써 온 견고한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었음. 청명을 마주본 현종의 얼굴이 아프게 일그러졌음.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었음.

"괜찮다, 괜찮으니. 지금은 아무 걱정 말고 쉬어라."

청명은 고개조차 끄덕이지 못했음. 처음으로 피로를 깨닫고 그 무게에 짓눌린 모습이 안쓰러웠음. 현종은 청명이 그토록 지쳐있는 줄 몰랐음. 아이의 짐을 함께 짊어지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말 뿐이었구나. 나는 이 아이의 장문일 자격이 없다. 현종이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을 숨기려 붙잡은 손을 떼어내려고 했을 때, 청명은 현종의 손을 붙잡았음. 현종의 눈물이 난처하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고 어설프게 웃었음.

"장문인. 저는 아마, 괜찮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평생을 아프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부디 그런 표정 짓지 말아주십시오."

맨 얼굴에 다시 견고한 가면이 덧씌워졌음. 아이는 저가 힘든 것보다 현종의 눈물이 더 걱정된다는 듯한 태도였음. 또다시 그 어깨에 짐을 올렸구나.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가득 치밀어 올랐음.

현종은 아이를 꽉 끌어안았음.

"아잇, 아파요. 장문인 아프다니까요."

화산을 향한 청명의 헌신은 감히 현종 조차 가늠할 수 없었음. 자신이 가장 힘들 때도 화산의 문도를 걱정하는 모습은 일종의 강박으로 보였음.

"걱정하지 마세요. 저 청명입니다!"

현종은 청명의 삶이 서글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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