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2차

[금룡송백] 一朝 : 어느 날의 아침

* 짧음

* 아침에 약한 진금룡

[一朝 : 어느 날의 아침]

 

해가 뜨는 것이 빨라져 사방에 여명이 흩어지고 있었음에도 사위는 아직 고요하기만 했다. 아마 이각 뒤부터 슬슬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렇듯 송백의 아침은 남들에 비해 이르게 시작되었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산아래까지 가볍게 뛰어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검을 휘두르기 까지가 빠듯하게 반시진이 걸린다. 그렇게 한차례 흘린 땀을 씻고 나면 정해진 기상 시간에서 이각 정도가 남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렵이 되면 송백의 시선은 숙소를 향해 돌아갔다. 여명으로 인해 빛이 드는 전경이 어느 때보다도 푸르고 편안했다. 미소를 지은 송백이 발을 뗐다. 곧이어 정갈한 발소리가 산문 안을 조용하게 채웠다.

 

*

 

문간에 도착한 송백이 잠시 긴장한 것처럼 주먹을 살짝 쥐었다 폈다. 아주 잠깐의 간극 뒤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똑똑하는 소리가 작게 울리긴 했으나 듣지 못할 크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안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며칠간 반복된 일에 예상하긴 했지만-,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송백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가, 곧 마지못한 듯, 포기한 듯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송백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다른 때였다면 아마 한소리를 크게 들었을 것이지만, 이 시간만은 달랐다.

한발을 들여놓자마자 복도와는 다른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건물을 이루는 목재에서 여전히 차오르는 향이, 곳곳을 메운 책과 은은한 먹의 냄새가, 즐겨마시는 차의 향 같은-, 그 모든 것이 어우러졌는데도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하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향은 익숙한 체취와 닮아있어서 마음이 편해졌다.

송백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소리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햇빛이 들기 시작하자 침대 위로 빛이 지고 있었는데, 정자세로 자는 와중에도 빛을 피해 고개를 돌린 사형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소가 진 입을 가리고선 송백은 아주 잠시 금룡을 내려다보았다.

언제보아도 헌앙하니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잠이 들어 평온한 분위기가 더해지니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촘촘히 길게 뻗은 속눈썹이나 작지도 크지도 않고 곧게 뻗은 콧날을 보며 송백은 그럴듯한 표현을 떠올려보려 애썼다. 말주변이 없어 생각나는 것이 많지 않았다. 굳이 따진다면-, 곱다? 송백은 사형 앞에선 감히 못할 말을 생각으로 떠올림으로써 또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송백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인지-, 금룡의 눈꺼풀이 희미하게 한차례 떨렸다.

“음…….”

잠투정처럼 낮은 목울음 소리가 얕게 번져드는 것을 들으며 송백은 이곳에 온 이유를 떠올렸다.

“사형.”

“…….”

깨어있을 땐 가까이 다가가기만해도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치던 분이, 아침마다 좀체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은 어쩐지 신기하기만했다.

“사형. 일어나셔야 합니다.”

재차 부르고 있으니 미간에 골이 새겨지며 곧 힘겹게 눈꺼풀이 뜨였다. 그 사이에 박힌 눈동자가 흐릿하게 구르다 초점을 찾으며 송백을 담았다.

“……이송백.”

잠긴 목소리가 한번 저를 불러오는 것을 들으며 송백이 예, 하고 답했다. 그러자 사형의 눈이 한차례 다시 깜박였다. 정신을 차리려는 작은 행위에도 송백에게서 웃음이 새었다.

“왜……, 웃지?”

반쯤 감긴 눈으로도 웃는 것을 보았는지 그가 못마땅한 듯 입을 열었다.

“안 웃었습니다.”

“…….”

시치미를 떼니 그의 눈이 의아함을 품고 가늘어졌다. 정말로 자신이 잘못본건가, 하는 눈치였다. 평소라면 어림도 없을 반응을 보며 송백이 웃음을 감추었다.

“이만 일어나세요.”

어르는 듯한 말투에 금룡이 고개를 한번 기울였다. 그 사이 송백은 자리끼로 둔 듯한 물잔을 가져와 건넸다. 금룡이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잔을 받아들었다. 미지근한 물을 한모금 들이키고서도 시선은 멍했다. 머리가 아픈지 미간을 문지르기도 했으며, 몇차례 눈을 찌푸리기도 했다.

이 모습은 벌써 며칠째 보는 모습이었음에도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침잠에 약한 사형이라니. 누가 믿을까? 당장 자신조차도 실제로 겪지 않았다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을 터다. 그린듯한 모습으로 완벽한 생활을 고수하는 사형의 모습 이면에 이런 점이 있다는게 신기하기만 했다.

송백이 새삼스럽게 그런 사형의 모습을 관찰하는데, 시야에 하얀 손이 움직이는 것이 잡혔다. 둥글어진 눈으로 손을 보니 가까이 와보라는 듯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의아함을 담고 몸을 가까이 하자 어느 순간 손이 저를 낚아채며 몸이 훅 끌려갔다. 넘어질 뻔한 것을 침대를 짚어 겨우 멈췄을 땐, 사형의 매끄러운 이마가 제 어깨에 닿아있었다.

“……사형?”

“조금만.”

정리되지 않은 머리칼이 턱밑을 간질였다. 감각은 분명한데, 왜 이리도 이 상황이 현실 같지 않은지 모를 일이었다. 송백은 제 어깨에 기대어있는 사형을 눈을 깜박이며 내려다보았다.

잠에서 깨려고 애를 쓰시는 건지, 몇차례나 고개를 저어대는 것이 또 한번 우스울 법하다 싶었지만 이번엔 웃음이 새지 않았다. 송백에게는 갑자기 사형이 제게 부비적 거리는 상황이 된 탓이었다.

잔뜩 웃어댄 벌인 걸까? 송백은 어정쩡하게 굳은 채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눈을 두어차례 굴리며 사형을 밀어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데, 사형의 움직임이 줄어들었다. 힘이 빠지고 무게가 더 실리는 것이 다시 잠든 모양이었다. 송백은 정말로 당황하고 말았다.

“사, 사형?”

당혹스러운 목소리에 다시 잠에서 깬 것인지 금룡에게서 느릿하게 응, 하는 대답이 들렸다. 여전히 잠에 취한 목소리였다.

“사형, 정말 일어나셔야합니다.”

조심스럽게 몸을 물리고서 사형을 일으키려하자 허리를 끌어안은 손에 바짝 힘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시끄럽군.”

그 말과 동시에 들린 고개가 가까이 훅 다가왔다. 어? 하는 순간 입술에 말캉함이 닿았다. 놀란 송백이 몸을 뒤로 빼려는데, 금룡이 따라붙으며 진득하게 입술을 탐했다. 반사적으로 꾹 다물어버린 입술을 열라는 신호였다.

여러차례 할짝이는 혀와 꾸짖듯 깨물어오는 이 때문에 결국 송백은 항복하듯 입술을 열어주고 말았다. 그 순간만을 기다린 혀가 사이를 가르고 깊게 파고들었다. 송백은 서너차례 제 혀를 휘어감는 행위에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머리를 진정시키려고 애써보았지만, 집요한 감각이 선명하게 이어졌다.

한참의 입맞춤이 끝나고 떨어졌을 때, 송백의 얼굴은 붉게 익어있었다.

“아침부터-, 이 무슨…….”

얼굴을 가리며 무어라 중얼거리는 송백을 보며, 금룡이 어느새 잠기운이 조금 가신 얼굴이 되었다.

“싫었느냐?”

멍한 목소리에 짓궂음이 조금 담겨있는 걸 눈치챈 송백은 눈을 한차례 찌푸렸다. 송백이 원망스런 눈초리를 잠깐 던지고선 몸을 빼었다.

“이제 정말로 일어나십시오.”

금룡은 제 손에서 빠져나가는 온기를 느끼며 뚱한 기색을 보이다 곧 피식 미소를 한 번 지었다.

 

나쁘지 않은-, 평화로운 어느 하루의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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