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2차창작 / 구화산 연령반전if] 그저, 한낱, 인간. - 02
구화산 청문 청명 연령반전 if
***
시간은 천천히, 끊임없이 흘렀다. 화산이 제자를 받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퍼진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화산의 제자가 되기 위해 산을 올랐다.
청문처럼 입문과 동시에 도호를 받고 진산제자가 되겠노라 결정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으나, 청문은 청자배의 대제자로서 새로이 입문하는 어린 제자들을 매번 환영하며 맞이해야 했다.
“청문아.”
“사부님?”
청문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퍼득 고개를 돌렸다. 저를 향해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는 청자배들에게 대강 손짓을 해 뒤로 물린 백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 청명이를 보지 못하였느냐.”
“청명 사제를요?”
“그래. 본래는 그 녀석도 네 옆에서 같이 사형제들을 받아야 하지 않더냐. 그런데 이제자라는 놈이 일은 죄다 너에게 떠넘기고…….”
“제자는 괜찮습니다. 애초에 사제의 성정에 맞는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청문의 변명에 백오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혀를 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청명은 백오의 직전제자이기는 했으나, 청명이 그를 진정 제 사부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화산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백오 역시 청명을 진정 제 제자로 여기며 보듬고 이끌겠다는 각오는 내버린 지 오래였다.
결국 그 아이를 가누는 것은, 청문의 몫이 될 터였다.
“사제가 어딜 갔는지는 모르겠으나, 급한 일이시라면 제가 한 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런 것은 아니다. 또 어딜 가서 사고라도 치고 있을까 걱정이 되어 그런 것이지.”
애초에 그 놈에게 일을 시켜먹을 사람도 없고. 반쯤 농담 삼아 덧붙여진 말에 청문은 소리 없이 옅은 미소만 지어보였다.
“저, 대사형.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하마.”
청문은 제게 꾸벅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어린 제자들을 보며 빙긋 웃어주었다. 대부분은 열 살 언저리, 많아봐야 열두엇인 아이들은 나름대로 의젓한 표정을 지으며 각자의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청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활짝 열려있는 산문 사이로, 붉게 물들기 시작한 하늘이 보였다.
한참이나 노을을 바라보던 청문은 조용한 걸음으로 산문을 향해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사숙.”
“아, 청문이구나.”
산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던 백자배가 청문을 돌아보았다. 청문은 그에게 공손히 포권을 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괜찮으시다면 문은 제가 닫도록 하겠습니다.”
“음? 네가 말이냐?”
“예. 그것이…….”
청문은 말끝을 흐리며 산문 밖을 흘끔 쳐다보았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하나뿐인 오솔길을.
그 눈짓만으로도 대강 그가 하려던 말을 알아들은 듯, 백자배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나 참. 네가 고생이 많구나.”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을요.”
“청문아. 네 열심히 고민하고, 맡은 바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말이다. 음…….”
백자배는 복잡한 감정이 어린 눈으로 청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은 수도 없이 많아보였으나, 차마 내뱉을 수는 없는 모양인지. 우물거리는 입안에서 몇 번이나 말을 고르던 백자배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에 툭 손을 얹었다.
“그 아이는 보통 사람과는 조금……. 조금 다른 아이란다.”
“예?”
“그 아이를 바르게 가르치고 이끄는 일은 우리의 몫이었지. 허나 그 아이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아이였다.”
백자배를 올려다보는 청문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갔다. 지금 눈앞의 사내가 누굴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는지, 알아듣지 못할 재간이 없었다.
청문의 어깨를 부여잡은 백자배의 얼굴은 말 그대로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사숙 된 입장으로서 제 사질을 붙잡고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부끄럽다는 듯. 그러나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일종의 각오와 책임이 어린 얼굴로.
“너는 아직 어려 모르겠지만, 세상엔 종종 그런 이들이 나는 법이다. 범인의 눈과 마음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도, 따라갈 수도 없는 자들이.”
“…사숙.”
“이들은 천재와도 다르단다. 그저……. 그저 처음부터 그렇게 난 것뿐이다. 그런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해서, 따라가지 못한다고 해서 네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부담감을 느낄 필요도 없단다.”
청문은 이것이 어디까지나 그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건네는 충고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뜻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으나, 적어도 악의를 가지고 청명을 헐뜯기 위해 늘어놓는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백자배의 눈에서 묻어나는 것은 그저 청문을 향한 걱정. 그리고 일말의 죄책감뿐이었다.
“사숙. 제자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청자배의 대사형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다.
“사제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는 일입니다. 저는 대화산파 십삼 대의 대제자이고, 청명은 제 사제입니다.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성정이 모나거나 남들과 조화롭게 살아가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뭐 그리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지난 며칠간 화산에서 지내며 청문은 종종 청명을 마주쳤고, 그에게 몇 번이나 말을 걸어보기도 했고, 몇 번쯤은 스승이 명한 일을 그에게 내리거나 직접 도움을 청해보기도 했다.
청명이 바로 윗배분인 백자배들을 어떻게 들이받고 대거리를 해대는지, 백자배들이 그런 청명을 보며 얼마나 속이 터져나가고 목청을 높여대는지, 청명이 지나간 뒤에서 얼마나 깊은 한숨을 푹푹 내쉬어대는지도 모두 지켜보았다.
지금은 청문을 비롯한 새로운 제자들이 화산에 들고 있으니 저들 나름대로 참고 또 참고 있을 테니, 평소에는 이보다도 더하리라는 것 역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제가 능히 사제를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숙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제가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면, 평범한 제가 어찌 감히 그 속을 가늠하고 가르쳐 이끌 수 있겠습니까.”
“청문아.”
“다만 노력해야겠지요.”
청문은 백자배를 향해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 열다섯 난 소년이 짓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어른스럽고 차분한 표정이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진심은 전해지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한결같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사제도 언젠가는 제 마음을 알아줄 거라 생각합니다.”
“…청문아. 내 말했지만, 그 아이는…….”
“설령 그 아이를 올바르게 이끌지 못한다고 한들,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제자는 가르침이 짧아 아직 도를 논할 주제는 되지 못하지만, 타고난 성정을 억지로 억누르고 뒤트는 것이 도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백자배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얼핏 보면 사질이 사숙을 가르치려 드는 듯한 모양새였으나, 적어도 그 건방진 모습에 분노한 것은 아닌 듯했다.
착잡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백자배를 향해, 청문은 공손이 고개를 숙였다.
“사숙의 걱정과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사숙께서 해주신 말씀은 잊지 않고 제 마음에 새겨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너는 영특하고 야무진 아이이니 잘 해낼 것이다.”
결국 백자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 물러나주고 말았다.
그는 여전히 청문이 걱정스럽긴 했으나, 제 사형제를 챙기겠다는 아이에게 사제를 내버리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너무 늦게까지 있진 말거라. 문이 닫혀있어도 그 아이라면 훌쩍 담을 넘어 들어오곤 하니.”
“예, 사숙. 안녕히 가십시오.”
백자배는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버렸다. 멀어져가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청문은, 참았던 한숨을 호르르 내쉬며 산문 앞 계단에 걸터앉았다.
두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감히 사숙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한다는 것은 여간 긴장되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 청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백자배에게 묻지도 않은 제 의견을 직접 밝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화산에 입문한 뒤로 청문이 하는 가장 크고 어려운 고민은 바로 청명에 대한 것이었으므로. 저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데다가, 저를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는 것 같은, 그래서 대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그의 사제에 대해, 몇 번이나 거듭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청명은 굳이 다른 사형제들처럼 품으려 할 필요 없다는 그의 말에, 저도 모르게 제 생각이 밖으로 튀어나가고 만 것이다.
“하아…….”
긴장이 완전히 풀리고, 떨리던 손이 진정될 즈음. 땅거미가 완전히 내려앉아 사위가 캄캄해질 즈음.
계단에 오도카니 걸터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청문은 느긋하게 다가오는 발소리에 퍼득 고개를 들었다.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한 손은 뒷짐을 지고 터덜터덜 올라오고 있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
“사제!”
“…사형?”
청문이 벌떡 몸을 일으키자, 어둠 속에서 의아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명은 들고 있던 술병을 어딘가로 휙 내던져버리고 청문을 향해 척척 다가왔다.
“여기서 뭐합니까?”
“산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었는데 사제가 보이질 않아서, 혹시 몰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몇 번인가 말을 놓아보았다고, 이제는 반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청문은 청명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를 내려다보던 청명의 얼굴이 확 일그러지며, 고개가 삐딱하게 모로 꺾였다.
“문이 닫혀있으면 내가 알아서 넘어 들어갈 것을. 미련하게 밤이슬 맞아가면서 그러고 있소?”
“사람은 문으로 드나들어야지. 담을 넘는 건 주인이 아니라 도둑이고.”
“거 잔소리는.”
청명은 한쪽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청문을 지나쳐 성큼성큼 산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청문이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오자, 커다란 산문을 한손으로 턱하니 잡더니 힘든 내색도 없이 끌어당겨 닫기 시작했다.
“또 화음에 갔던 거냐?”
“그럼 화음 말고 갈 데가 있나? 가서 술 좀 푸다가 왔소.”
“사제. 본래 삼대제자는 함부로 화산의 산문을 벗어나면 안 되는 법이다. 이젠 네게도 사제들이 잔뜩 생겼는데, 그 아이들에게 사형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그거야 애새끼들이 화산 내려가다가 어디서 발이라도 헛디뎌서 자빠질까봐 그러는 거고. 내가 나이만 따지면 백자배가 돼도 안 이상한데, 그런 꼬꼬마들이랑 똑같이 취급받아야 쓰겠소?”
쿠웅. 묵직한 소리를 내며 산문이 닫혔다.
두 손을 툭툭 털어낸 청명은 곧바로 몸을 돌려 백오의 전각으로 향했다. 청문은 그런 청명의 뒤를 따라가며 속으로 짧은 웃음을 삼켰다.
말로는 화음에 내려가 술을 마셨다고 하지만, 청명의 몸에선 술 냄새가 별로 나지 않았다. 게다가 청명이 아무리 방종하게 굴고 산다고 한들, 삼대제자가 받는 녹봉만으로는 몇날 며칠이나 주루나 객잔에 드나들 수도 없을 것이다.
청문은 청명이 자꾸만 산문 밖으로 빠져나가 나도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지금 청자배로 입문하는 아이들은 대부분이 청문보다도 어린 아이들이다. 게다가 고향을 떠나 먼 길을 건너온 이들이 많았다.
부모의 품을 떠나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이제부터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데, 설레면서도 한껏 불안함에 떨고 있을 아이들 앞에 사형이랍시고 그들보다 열 살은 많은 사내가 떡하니 나타나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애초에 그들을 따듯하게 환영해주거나 달래줄 자신은 없으니, 그냥 그들의 눈이 닿지 않는 바깥으로 도망치기를 택해버리는 것이다. 산문 내에 남아있다면 그의 사제들은 어떻게든 청명을 찾아와 인사를 올려야만 하니까.
“알겠으니 너무 멀리 가지는 말아라. 스승님께서 찾으실 수도 있지 않느냐.”
“또 시답잖은 심부름이나 시키려던 거겠지. 사형이나 많이 하쇼.”
청명은 퉁명스레 대답하며 열심히 발을 놀려 저를 따라오는 청문을 흘끗 돌아보았다.
성큼성큼 나아가던 그의 걸음이 조금, 아주 조금 느려졌다.
***
살짝 열린 창문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온다. 청문은 제 이마를 스쳐지나가는 옅은 바람에 설핏 잠이 깨었다.
“으음……. 사제?”
청문은 부스스 몸을 일으키며 곁을 돌아보았다. 분명 머리를 대기 무섭게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던 청명의 침상은 텅 비어있었다.
흐트러진 이불을 손으로 더듬어보니 서늘한 냉기만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자리를 비우고 제법 시간이 흐른 모양이었다.
“어딜 갔지…….”
청문은 신발을 신고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왔다. 청명이 종종 밤에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를 찾아 밖으로 나서는 것은 처음이었다.
한밤중의 화산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어디선가 울어오는 풀벌레와 산새 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새벽까지 도경을 외는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올 뿐. 곳곳에 횃불을 밝혀두긴 했으나 그 빛이 밝지는 않았고, 담장 너머는 그런 미약한 빛조차 없어 그저 시커먼 어둠만이 보일 뿐이었다.
청문은 보초를 서는 이대제자들의 눈을 피해 건물 그림자 사이사이로 몸을 숨기며 조용히 산문 안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가 갈 수 있는 곳을 모조리 돌아보아도, 청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청문은 몇 번이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두 눈을 딱 감고 화산의 담장을 넘고야 말았다.
한밤중의 산속은 어둡긴 했으나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환하게 뜬 보름달은 생각보다 밝았고, 산중에 난 길은 제법 반듯했다. 사람의 발이 수도 없이 밟으며 닦아놓은 길이었다. 그런 곳을 따라 걷는 것쯤은, 아직 무인보단 양민에 가까운 그라고 해도 능히 할 수 있었다.
청문은 홀린 듯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산중에 난 길은 오직 하나뿐이라, 길을 잃을 염려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사라락.
고운 비단을 날카로운 날붙이로 찢는 것처럼, 우아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청문은 신중히 옮기던 걸음을 문득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소리는 숲속으로부터, 더는 길이 남아있지 않은 어둠 속으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청문은 마치 짐승의 아가리 같은 그 어둠 속을 잠시 응시하다가, 천천히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마른 가지가 밟히고, 나무뿌리에 몇 번이나 걸려 넘어지고, 반쯤 썩은 이파리에 발이 미끄러지면서. 청문은 어둠 속을 더듬어 나아갔다.
어느 순간부터 풀벌레도, 새의 울음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들려오는 것이라곤 그저 섬세하고 날카로운 파공음 뿐.
마치 동굴처럼, 이 어둠이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즈음. 우거진 나무들이 일순간 사라지며, 거짓말처럼 넓은 공터가 드러났다.
“아…….”
청문은 저도 모르게, 탄성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매화.
나무 한 그루 남아있지 않은 공터에, 수백 년은 살아온 고목인 양 매화를 피워내는 한 검수의 모습이 보인다.
달빛을 받은 검날은 희게 반짝인다. 그가 그려내는 검로를 따라,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소담스러운 매화가 피어나고, 흩날린다.
꽃가지로 만들어낸 지붕처럼. 청문의 머리 위까지 온통 뒤덮은 매화잎은 바람에 떠밀려 날아가고, 허공을 빙글빙글 맴돌고, 바닥으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매화검법…….”
꽃을 피워내는 검. 이름 그대로, 매화를 그려내는 검.
화산의 검이 중원에서 가장 요사스럽고 화려한 검이라 불린다는 것은 청문 역시 알고는 있었으나, 직접 눈으로 목도한 그 매화는 고작 ‘요사스럽다’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을 홀리고, 혼을 빼앗아간다. 저 흩날리는 붉은 꽃잎 하나하나가 모두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검기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한 번쯤은 손을 내밀어 쥐어보고 싶을 만큼 곱지 않은가.
사박.
청문은 저도 모르게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청명의 고개가 청문을 향해 휙 돌아간다.
“…….”
몽롱하게 풀린 청명의 눈과 당황한 청문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청문은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말았다.
검에 취한 청명의 눈에는 이미 아무것도 비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시야 한구석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느끼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을 뿐.
날카롭고 정제되지 않은 살기에, 청문은 뻣뻣하게 굳은 몸을 물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청…….”
청명을 부르기 위해 청문이 간신히 입을 뗀 순간.
청명의 두 발이 땅을 박찼다.
새빨간 검기를 두른 검이, 청문의 목을 노리며 일직선으로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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