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일소청명] 아무래도 내 정인이 요괴인 것 같다

재활용 짧글

'키스할때 혀가 너무 깊이들어와서 이놈은 뱀인가.. 생각하는 할배' 가 리퀘스트였는데 아무래도 다른 글이 된 것 같습니다

오전 수련을 마친 청명은 적당한 나무에 올라 병나발을 부르며 짧은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고민도 걱정도 없이 한가로운 시간. 그의 기감에 무언가가 소리 없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슬쩍 시선을 내리자 수풀 사이로 밧줄 같은 게 언뜻 보였다 사라졌다. 안력을 돋우어 그쪽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무스름한 뱀이 땅을 기어가는 게 선명히 보였다. 암산(岩山)이기는 해도 화산에서 땅짐승을 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 주의 깊게 들여볼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청명은 술을 들이켜는 것도 잊고 뱀을 관찰했다. 검은 뱀이 어두운 몸과는 대비되는 발갛고 긴 혀를 날름거렸다.

‘뱀······.’

청명은 그 순간 장일소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놈의······ 혀를.

장일소와 입술을 맞대고 배도 붙이는 관계가 된 지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전혀 도사 같지 않지만 어떤 면에서는 정말로 돌산에서 도만 닦은 도사 같던 청명이 색에 익숙해질 만한 시간이다. 처음에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장일소를 따라가느라 급급했지만, 이제는 중간중간 딴생각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놈의 기묘하게 긴 혀라던가.

구흡을 할 때면 장일소의 혀는 뱀처럼 기어들어 와 그의 혀를 옭아맨다. 밧줄에 혀가 묶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영역표시라도 하듯 거의 목구멍까지 들어올 때는 어떤가. 그는 때때로 제가 구흡을 하는지 구음을 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평범한 사람의 혀가 그렇게 깊숙이 들어올 수 있나? 다른 사람과 혀를 섞어본 적이 있어야 장일소의 혀가 특별히 긴 건지 아니면 원래 혀라는 게 이렇게 긴 건지 알 수 있을 텐데 비교 대상이 없다. 다른 놈과 그런 짓을 하고 싶지도 않고.

그사이 뱀은 소리 없이 땅을 기어 그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청명은 그걸 보다가 멍하니 생각했다. 사실 그놈이 뱀인 건 아닐까?

개소리다. 하지만 아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스스로 단전을 만들어 영물이 되는 동물도 있는 마당이다. 짐승이 사람으로 둔갑해서 사람 행세하는 이야기는 민간에 유구하게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 요사스러운 웃음이나 뱀 같은 성정을 생각하면 놈이 실은 뱀이었대도 이상하지 않다······.

“요즘 기가 허한가 헛생각이······.”

스스로 한 생각이 어처구니가 없어 청명은 헛웃음을 뱉으며 남은 술을 입안에 털어 넣고 휙 나무에서 내려왔다. 너무 오래 쉬어도 사람이 멍청해진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며칠 후 청명은 기어코 장일소를 찾아가고야 만다.

“음?”

야심한 시각. 홀로 술을 즐기고 있던 장일소는 익숙한 기척에 고개를 기울였다. 종종 사패련의 본단에 청명이 찾아오는 일이 있기는 했으나 약속하지 않은 때에 언질도 없이 무작정 쳐들어오는 일은 흔치 않았던 탓이다.

창문이 벌컥 열리며 자수 없는 검은 무복 차림의 청명이 훌쩍 들어왔다. 청명은 장일소가 무어라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성큼 다가와 장일소의 멱살을 잡고 대뜸 입술부터 붙였다. 급작스러운 일에 내심 당황했으나 장일소는 익숙하게 입을 열어 청명을 맞았다. 먼저 달려든 건 청명이었으나 주도권은 금세 그에게 넘어왔다. 장일소는 익숙하게 청명의 혀에 제 혀를 얽고 희롱하다 깊숙이 빨아들였다. 입술 사이로 얕은 신음이 뭉개졌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외설적인 소리가 방을 채웠다.

호흡을 조절할 수 없을 즈음이 되어서야 장일소를 가볍게 밀어내며 입술을 떨어뜨린 청명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장일소를 바라봤다.

“몸이 달아서 온 건 아닌 것 같고······. 무슨 목적이 있어 이러실까?”

‘······진짜 뱀 새낀가.’

“검협? 응? 명아?”

‘무슨 혀가······.’

장일소가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붉은 혀가 언뜻 보이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게 또 혀를 날름대는 뱀을 생각나게 했다. 청명은 결국 의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장일소 너······ 뱀이냐?”

난데없는 질문에 장일소는 눈을 깜박였다. 어떤 맥락에서 그 질문이 나온 건지 도무지 알아차릴 수 없었던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침묵이 맴돌았다. 그 물음을 던진 청명은 그 얼토당토않은 질문의 의도를 이해해 보려 애쓰는 장일소를 보고 되레 민망해졌다. 이미 뱉어버린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청명은 제 멍청한 짓을 수습하는 것 대신 도망치기를 선택했다. 비록 몸을 돌리자마자 장일소에게 붙잡혔지만.

“이거 안 놔?!”

“궁금한 걸 참고 넘기는 성미는 못 되어서 말이지. 네 생각은 제법 꿰고 있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구나.”

쉬이 도망가지 못하게 양팔로 청명을 단단히 옭아맨 장일소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청명의 양 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여전히 어떤 연상의 결과로 나온 질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걸 보니 청명답지 않은 상상임은 틀림없었다.

“궁금한데, 알려주지 않겠어?”

귓가에서 속살거리는 목소리에 청명의 바둥거림이 더 커졌다. 심지어는 내력을 쓰면서까지 벗어나려는 모습에 장일소는 똑같이 내력으로 다투는 대신 눈앞의 잘 익은 귀를 앙 물었다. 품 안의 몸이 파드득 떨리는 게 선명히 느껴졌다.

“먼저 입술을 훔쳤으면서 그냥 도망가면 안 되지.”

뱀 같은 혀가 청명의 귀를 진득하게 핥았다. 공들여 귀를 간질이는 소리가 선명했다. 신음을 내지 않으려 입술을 지르물며 역시 뱀 새끼가 틀림없다고 생각 한 건 청명만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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