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보청명(암존검협)] 환상통









   * 날조 33685424135899%

   * 캐붕 주의. 캐해석 부족함 주의.

   * 보고 싶은 장면만 넣어서 개연성 0에 수렴.

   * 원래 못 쓰긴 했는데 이번 글이 더 얼레벌레함 주의…….















   계기는 단순했다. 아직 찬 바람이 쌩쌩부는 새벽이었다. 모두가 잠들었을 야심한 시각, 화산의 담벽을 가벼운 몸놀림으로 뛰어넘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녹빛 장포가 가볍게 팔락이고, 소리도 없이 바닥으로 착지한 당보가 바닥에 닿았던 옷자락의 끄트머리를 가볍게 탁탁 털었다. 짙은 어둠이 가라앉은 주변을 둘러보던 당보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걸쳤다. 사뿐사뿐 옮겨가는 걸음에는 기이하리만치 기척도, 소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익숙한 걸음을 옮겨가는 그의 허리춤엔 하얀 호리병 몇 개가 표주박 마냥 데롱데롱 매달려있었다. 웃음을 꾹꾹 참는 당보의 표정은 퍽 즐거워 보였다. 지금쯤이면 그 양반도 자고 있을테고, 조용히 접근해 놀래켜주면 어떤 표정일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놀래키지 못하고 들켜 한 대 얹어 맞아도, 아쉽긴 하겠다만……. 본래의 목적은 제 허리춤에 달린 것들이였으니 상관 없었다. 자신이 기적적으로 돌아오게 된 이후, 눈코 뜰새없이 바빴던 터라(어흐, 망할 놈들…….) 나중에 한 잔 걸치자는 약속을 이제서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에겐 알린 적이 없으니, 당사자조차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만남(?)이 되겠지. 잠을 깨웠다고 불평은 할지언정 다시 쫓아내진 않을테다. 그러기 위해 가져온 술이니까! 곧 당보의 걸음이 한 방문 앞에 탁, 멈춰섰다. 자꾸만 실실 웃음이 나려는 표정을 간신히 갈무리 한 후, 살짝 뻗어진 손이 문에 닿으려던 찰나였다. 문 너머에서 들리는, 억누른 듯한 숨소리와 고통스러운 신음에 당보의 손길이 멎었다. 즐거움으로 가득 차있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동시에 당보가 문을 열어 젖힌다. 달빛만 간신히 스며드는 어두운 방안, 침상 위에 몸을 잔뜩 웅크린 체 고통스러워하는 무언가가 보였다. 당보는 문을 닫을 생각도 못한 체 침상으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리 가까이 왔는데도, 웅크린 인형은 그의 기척조차 읽어내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을 읽어낼 여유가 없어보였다. 상처를 입은 짐승이 고통에 차서는, 억눌린 울음을 꾸역꾸역 내뱉고 있는 것 같았다.

   "형님……?"

   당보가 간신히 목소리를 내자 청명이 몸을 움찔 떨었다. 간신히 들린 청명의 얼굴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아보였다.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기로 얼굴이 흠뻑 젖어있었고,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참아낸 것인지 피딱지가 앉아있었다. 이리저리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드러난 매화빛 눈동자가 어둡게 침잠한다. 자신의 왼팔을 꽉 붙든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당보가 팔을 뻗어 떨리는 청명의 몸을 꽉 끌어 안았다. 청명은 그런 당보의 품에 고개를 묻은 체 힘겹게 헐떡였다. 존재하지도 않는 통증에 신음하며 청명이 가늘게 흐느꼈다.

   

   소리가 간신히 잦아든 것은, 달빛이 가시고 해가 떠오를 즈음이었다. 청명은 그 긴시간을 꼬박 앓았다. 통증을 견디지 못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면, 당보의 이름을, 자신의 사형과 사질, 사제들의 이름을, 그리고 지금의 그와 함께하는 그들의 이름을 웅얼거리며 허덕였다. 그 모든 소리들을 고스란히 들은 당보의 정신 역시도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잘, 지내고 있다고 믿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럴 수 없을텐데도. 전보다 자주 웃고, 전과는 달리 많은 이들이 청명의 곁에 있어주는 것 같아서, 괜찮은 것이라 생각했다. 이미 많은 것을 잃은 이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또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공포감이다. 청명은, 제 하나뿐인 형님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괜찮을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형님이라 괜찮을거라고, 자신의 멋대로 판단하고 믿어버렸다. 당보가 이를 바득, 갈아붙였다. 그걸 알아채주지 못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고, 그런 고통을 혼자 삼킨 청명에게 화가 났다.

   "언제부터요."

   "……."

   당보는 분노와 슬픔, 죄책감이 욱여넣어진 목소리를 간신히 가다듬으며 흘렸다. 그러나 청명에게선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당보의 시선을 피해버린 청명이 되레 당보를 밀어내며 품에서 빠져나가려하자, 당보가 냅다 청명의 양 팔을 잡아챘다. 그러는 중에도 청명의 왼팔을 쥔 당보의 손에는 힘이 덜 들어갔다. 간신히 들린 청명의 시야에 당보의 서늘한 표정이 가득 담겼다. 옛날에나 지금에나,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낯선 표정이었다.

   "다시 묻겠소. 언제부터요."

   표정처럼 차가운 말투가 청명에게 쏟아지자, 그의 입이 몇 번 달싹여댔다. 

   "별 거 아냐, 그냥……."

   "별 게 아니라고? 지금 그게 할 소리요?"

   당보는 여전히 고요하게 분노하고 있었다. 열이 끓어넘치다 못해 차게 식어버린 것 같았다. 청명은, 차라리 그가 소리치며 화내는 게 덜 무서울 지경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다쳐도 좀체 이렇게까지 화낸 적은 없었는데. 청명이 결국 죄를 고백하는 죄인마냥 작게 목소리를 내었다.

   "조금, 됐어."

   청명의 대답에 당보가 짧게 허! 웃음을 터트렸다. 그 짧은 웃음 소리에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짧은 침묵 후에 당보의 입이 열렸다.

   "형님은, 아직도 내가 그리 못 미덥소? 여전히?"

   "야, 얘기가 왜, 그렇게 돼."

   청명이 조금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청명에게 있어 당보는, 예전에도 언제나 등을 내주었던 전우였고, 제 곁을 내준 정인이었다. 그건,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 그럴리가 없다, 고, 생각했는데…….

   "그럼 왜 내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는 거요."

   "…… 네가, 쓸데없이 걱정, 할까봐……."

   그런데, 당보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확신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말을 뱉으면 뱉을수록, 당보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일그러졌다. 기어이 고인 눈물이 당보의 뺨을 타고 흘러 턱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청명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형님은, 그게 문제라는 거요."

   "당보야……."

   "형님을 걱정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거."

   "……."

   "그래서! …… 형님이 잘 지내고 있다 믿던 나를, 이리도, 비참하게 만든 거. 그게, 정녕 잘못된 것이 아니오?"

   청명은 그의 말이 쏟아지면 쏟아질수록, 떨어지는 눈물 방울이 많아질수록, 청명은 제 목구멍이 틀어막힌 양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피딱지가 붙은 청명의 입술이 달싹였다.

   "당보야, 나는,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면…… 나한테, 한 마디 정도는 해 줄 수 있었잖소. 나한테, 힘들다고, 한 마디 정도는, 해 줄 수 있었잖소……. 어찌 이리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등신 천치로 만드는 거요……."

   꺼질 듯이 위태로운 목소리에 청명의 표정 역시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더듬더듬 올라간 청명의 손이 축축히 젖은 당보의 뺨을 쓸었다. 미안해, 울지 마라……. 나즈막히 뱉어진 청명의 말에 당보가 눈을 내리 감았다. 청명의 팔을 놓고, 그의 손바닥 위로 손을 올려 감싸던 당보가, 울음을 억누른 목소리로 작게 웅얼댔다.

   "오늘은, 방에서 좀 쉬시오. 그 아해들에겐, 내가 말해두겠소……."

   "…… 그래."

   당보의 그 표정을 앞에 두고, 차마 싫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청명은 결국 그리 뱉었다. 살짝 띄인 당보의 눈동자에 짙은 안도감이 스쳤다. 청명의 이마에 살짝 입술을 대었다 떨어진 당보가 평소처럼 씩 웃었다.

   "그 병아리들 수련은 오늘만 특별히 내가 봐줄테니."

   "…… 적당히 해."

   아무렴, 누구네 새끼들인데. 그리 덧붙이던 당보가 허리춤에 달려있던 술병을 탁상에 툭툭 내려두었다.

   "혼자서 드시기 없기요. 형님이랑 한 잔 부딪히려고 온 거니까."

   청명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당보 역시도 신경쓰는 기색은 아니었다. 쉬시오. 청명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을 확인한 당보가 그제서야 청명의 방을 나섰다.

   한 걸음, 두 걸음, 열 걸음조차 채 내딛지 못하고 당보의 몸이 벽에 가볍게 툭 부딪혔다. 그 벽에 기댄 당보가 그대로 주륵 주저앉았다.

   "……."

   금세 태연한 척 했으나, 아까의 그 모습이 잔상처럼 지독히도 따라붙었다. 하여간, 바보같은 양반이다. 그런 모습은 한결같지 않아도 되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무서우면 무섭다고, 단 한 번도 제게도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옛날에야, 그가 진 짐의 무게가 지극히 무거웠음을 안다. 그건, 어쩌면 지금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었다. 당보는 느리게 고개를 들어 서서히 해가 비춰오는 화산의 풍경을 시야에 담았다. 녹빛 눈동자에 주황빛 노을이 아른거리며 섞여든다.

   "하지만, 지금은 형님 혼자가 아니지 않소……."

   괜히, 작게 중얼거림을 뱉었다. 자신도 있었고, 못 미덥지만 이곳에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익숙해져선 안 되는 짐의 무게에 익숙해져 그 당연한 사실조차 잊은 그에 입안이 퍽 썼다. 작게 한숨을 내쉰 당보가 몸을 일으키며 옷자락을 탈탈 털었다. 약속은 약속이니, 슬슬 가봐야할 시간이었다. 청명의 방문쪽을 힐끔, 돌아본 당보가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 뒤로 주황빛 노을이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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