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보청명(암존신룡)]








   * 날조 36854235899%

   * 캐붕 주의. 캐해석 부족함 주의.

   * 보고 싶은 장면만 넣어서 개연성 0에 수렴.













   

   손에 쥔 종이를 읽어내려가는 청명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매화빛 눈동자가 몇 번이나 똑같은 글을 계속 읽어내려갔다. 청명의 낯선 반응에 그 누구도 청명이에게 먼저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거짓말.

   청명의 손 안의 종이가 기어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구겨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청명이를 나무라지 못했다. 그의 표정이 꼭, 그때를 닮아있어서……. 손 안에서 구겨진 종이를 내려다보던 백천이 다시금 청명이에게 시선을 두었다. 무어라 입을 열려던 찰나, 청명의 입이 먼저 열렸다.

   "…… 확인해야해."

   "뭐?"

   잠깐, 하고 붙들 틈도 없이 몸을 휙 돌린 청명이 그대로 냅다 내달렸다. 저 놈이 기어이! 이를 갈아붙인 나머지 이들이 서로를 마주볼 틈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땅을 박차고 청명을 따라 내달렸다.



   사천으로 무작정 달려가는 동안, 청명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헤집어지고 있었다. 이 글에 적혀있는 이를 가리키는 것이 정말 당보가 맞을까? 정말로 그가 맞다면, 어떻게? 도저히 살아날 수 없을 만한 부상이었다. 당보의 상처는 지독하게 깊었고, 유언처럼 남긴 말 끝에 따라붙은 마지막과도 같은 숨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연했다. 만약, 그 녀석을 사칭하는 놈이라면, 절대로 살려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다리 근육이 비명을 지를만큼 거센 힘으로 땅을 박찬 청명이 앞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눈을 떴을 땐, 익숙하던 천장이었다. 제 기억보다 조금 더 오래 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100년이라니? 아득한 숫자에 멍청한 얼굴로 눈만 끔뻑여댔다. 도가의 말을 빌려 자신의 기억이 끊긴 시점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우회 등선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건만……. 당보는 제 손을 꾹 쥐었다가 폈다. 하지만 제 몸 상태는 100여년 전의 그때와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마치, 제 몸의 시간이 멈춰있었던 것처럼. 허허, 헛웃음을 터트린 당보가 이마를 슬, 짚었다. 밀려드는 정보들을 전부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십만대산에서 천마의 목을 베는데 '일조'했다던 제 형님의 이야기. 자신이 기억하는 그는 절대 그것에 일조만 했을 이가 아니었다. 분명 그가 직접 그 작자의 목을 베고도 남았을 것이건만……. 이리 이상하게 이야기가 퍼진 것은, 화산이 망해 무너졌다가 간신히 세워지고 있다는 이야길 들은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산보를 하는 동안, 당보는 조금 낯선 것들을 시야에 천천히 담았다. 조금씩 바뀐 건물들, 이라던가, 건물에 새겨진, 매, 화 같은 것들? 여기가 당가냐, 화산이냐……. 푸른 하늘을 의미없이 올려다보던 당보가 끌끌 혀를 찼다. 그래도, 그래, 나쁘진 않았다. 저와 형님이 이루지 못한 것을, 그들의 후손들이 이어나가고 있었으니……. 결국 조금 웃음이 샜다.

   "형님, 보고 계시오?"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어쩐지 입안이 썼다. 쩝, 입맛을 다신 당보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재빠른 무언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당보의 눈빛에 순식간에 날이 서린다. 소매에서 비도를 꺼내들자마자, 옆쪽 담벼락 위로 날렸다. 동시에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담벼락 위로 튀어오르며, 그가 날린 비도를 검으로 쳐냈다. 당보의 눈동자가 동글게 띄였다. 아무리 제압용으로 대충 던진 비도라지만, 자신은 암존이었다. 그걸 쳐내는 것은 보통 인간이 해낼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동시에 검은 머리카락과 긴 흑빛 장포가 흐드러지듯 흩날리며 바닥에 내려앉았다. 곧 당보의 녹색 눈동자와 매화빛 눈동자가 부딪혔다. 침입자의 시선이 크게 띄였다. 상대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은 당보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서늘하게 웃었다.

   "쳐내? 그걸?"

   "당……!"

   다급하게 열리려던 침입자, 청명의 입이 급히 다물렸다. 다시 저를 향해 쇄도하는 비도 때문이었다. 부러트릴 듯 검을 억세게 쥔 체 날아드는 것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허나 아까보다 더욱 매섭게 날아든 것을 전부 쳐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당보의 공격을 전부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었다. 두 어개의 비도가 청명의 몸에 콱, 틀어박혔다. 거의 손잡이까지 반쯤 파고든 위력에 청명의 몸이 휘청였다. 당보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청명의 목을 틀어쥐고 바닥에 쳐박았다. 청명의 입가에서 울컥, 핏물이 솟구쳤다. 청명을 내려다보는 당보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그럼에도 그의 녹빛 눈동자는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숨을 허덕이는 청명을 보며 당보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넌 뭐냐.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 보, 야."

   "……."

   "당, 보야……."

   청명의 목을 틀어쥔 당보의 손이 움찔 떨렸다. 손에 절로 힘이 풀리고, 살기를 띄우던 눈에는 당혹감이 서렸다. 이 작은 아해의 얼굴로, 퍽 익숙한 얼굴이 겹쳐든다. 늘 높게 올려묶던 검은 머리카락, 자신이 피워내던 매화를, 눈 안에 담고 있던, 제 하나뿐인 형님의 얼굴이……. 당보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 형, 님?"

   나즈막하게 뱉어진 호칭에, 청명이 간신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곧 청명의 눈동자가 내려감는 눈꺼풀에 가려졌다. 당보는 그제서야 바닥을 흥건하게 적셔가고 있는 그의 피를 발견했다. 동시에 이쪽으로 달려온 아이들이, 비명처럼 청명의 이름을 불렀다.

   "청명아!"

   "사형!"

   곧 매섭게 뽑아진 검이 당보의 목을 겨눴다. 지독하게 쏟아지는 적의.

   "떨어져."

   무례할 법한 말에도, 당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화산의 무복. 그것을 시야에 담던 당보가 답지않게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형님을, 아니, 이 아해를 의약당으로 먼저……."

   청명의 몸을 안아들려던 당보를, 거세게 밀어낸 아이들이 당보의 앞을 막아섰다. 주춤, 순순히 몇 걸음 물러난 당보가 그저 가만히, 자릴 지킨 체 섰다. 그 사이 백천이 늘어진 청명의 몸을 안아들었다. 바닥에 고인 피 하며, 축 늘어진 몸을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어두웠다. 당가란 곳은 왜 올때마다 이 지경인지. 육검이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법한 생각을 흘려낸 백천이 당보를 한 번 죽일 둣 노려보다 급하게 의약당으로 걸음을 내달렸다.



   청명이 치료를 받는 동안, 화산의 아이들은 당보의 앞을 철벽마냥 막아선 체였다. 그들이 흘려대는 적의에도 당보는 그저 묵묵히 그 너머의 청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이런 병아리들 쯤이야 밀어내버리는 정도야 일도 아니였으나……. 하나뿐인 형님의 몸에 비도를 쳐박은 것도 모자라, 형님이 가족마냥 여기는 화산의 아이들을 건드렸다가는, 정말로 연이 끊기는 건 제 쪽이 될수도 있었다. 그러니 당보는 성질을 죽인 체 그들과 묘한 대치만 이어나가고 있을 뿐이었지. 곧 청명의 치료를 마친 의원이 조용히 물러나면, 그제서야 백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돌아가시죠. 당신이 누구신진 모르겠으나, 제 사질을 저리 만든 이를 곁에 두는 것이 영 껄끄럽습니다만."

   제 집에서 오라가라 하는 이의 꼴이 퍽 거슬렸으나, 당보는 비웃음을 간신히 삼켜냈다. 다시 청명에게 시선을 둔 당보가 한숨처럼 말을 흘렸다.

   "저 아해가 깨어나면, 할 말이 있다."

   "뭐?"

   다시금 그들의 눈이 매서워졌다. 날카롭게 벼려진 검처럼 이젠 적의를 넘어 살기까지 띄운 눈동자에도, 당보는 흔들림이라곤 없었다.

   "저 녀석을 저리 만들어놓고선, 우리가 댁의 뭘 믿고!"

   조걸이 으르렁 대듯 뱉었다. 그들은 침묵으로 조걸의 말에 동조했다. 그럼에도 당보는 물러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당장이라도 무기를 뽑아들 것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금방이라도 끊어질듯 팽팽하게 당겨지는 긴장의 끈에 아이들이 기어코 검 손잡이에 손을 대었다.

   "야, 손 빼."

   그 위로 찬물을 끼얹은 것은 지독하게 잠긴 목소리 하나였다. 화산 제자들의 고개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어느 새 상체를 일으킨 청명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당보를 시선에 담고 있었다. 당보의 손이 어느 새 소매 안으로 반쯤 밀려들어 있었다. 쯧, 혀를 찬 당보가 소매에서 순순히 손을 빼냈다.

   "청명아, 괜찮으냐!"

   달려들려던 제자들의 얼굴을 밀어내던 청명이 고통에 작게 신음했다. 아직 움직이지 말라는 둥, 피를 많이 흘렸다는 둥. 걱정을 쏟아내는 제자들을 향해 손을 훼훼 내젓던 청명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다들 자리 좀 비켜줘."

   "그건 안될 말이다."

   "위험해."

   한마디 할 적마다 걱정만 두 마디씩 뱉어내는 그들에 결국 청명이 패악을 부렸다. 아오, 맞고 꺼질래! 그냥 꺼질래! 결국 못마땅한 얼굴을 하면서도 자리를 비켜주기로한 그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알리라는 말을 남긴 체 의약당을 떠났다. 물론, 당보를 힘껏 노려봐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겨우 단 둘이 남게 되자, 당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청명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청명의 고개가 들리자 풀려있던 검은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졌다.

   "…… 형님."

   "이제야 알아보냐, 이 망할 자식아."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얼굴로 얼굴을 찌푸린 당보가 작게 한숨을 뱉는다.

   "…… 형님이 이런 조막만한 아해로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소."

   "죽을래?"

   당보의 시선이 괜히 옆으로 돌아갔다. 저 양반은 조막만 해져도 성질머리는 그대로구나. 다시금 침묵이 이어졌다. 머뭇이던 당보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망할 뻔 했다던 화산을 일으킨 것도, 형님이오?"

   "당연하지. 나 아니면 누가 하냐."

   "당가랑 이리 연을 만든 것도……."

   "이것저것 아주 잘 털어갔다."

   당보가 기어이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깨어난 자신에게 들려오던 이야기에 그런 말도 섞여있던 것이 떠올랐다. 당가의 아해 하나가 청명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고, 그 댓가로 속곳까지 아주 탈탈 털렸다던가. 그리 말하던 이들의 표정과 털리고 나서 그들이 지었을 표정을 생각하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친 놈 보는 듯한 시선에도 한참 웃어대던 당보가 손 끝으로 제 눈가를 훔쳤다.

   "고맙소."

   "너네 집 재산 털어간 게?"

   "하여간 솔직하지 못한 양반 같으니…… 약속 지켜준 것 말이오."

   "…… 그냥 겸사겸사."

   당가랑 연을 잇는 게 더 얻을 게 많았다느니 떠들어대지만, 당보는 알고 있었다. 제 형님이 제 약속을 지켜줬음을. 아주 매정하지 못한 것이, 이럴 때보면 영락없는 도사였다. 떠들어대는 청명의 앞으로, 당보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청명의 한손을 끌어와 꾹 쥐었다. 그 행동에 청명 역시도 입을 다물었다. 청명의 손 안에 뺨을 부비는 당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 미안하오."

   "뭐가."

   "그냥, 전부."

   끝까지 형님 곁을 지키지 못했던 것, 형님이 혼자만의 싸움을 이어가는 동안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던 것, 형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치게 했던 것. 그 모든 것이, 전부……. 그런 당보를 내려다보던 청명이 잡혀있던 손을 빼내 당보의 머리를 헤집었다. 당보는 구태여 그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뺨에, 턱 끝에, 순서대로 핏기가 빠져나가 차가운 손이 스쳐갔다. 손 안에 닿는 체온을 새삼스레 실감한 청명이 조금 웃었다.

   "왔으니 됐다. 몸은 좀 어떠냐."

   "허, 누가 할 말을 하는거요……."

   툴툴대던 당보를 향해 청명이 손을 살짝 뻗었다. 당보가 지체없이 그의 몸을 살살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다."

   "마찬가지오……."

   청명을 품에 한가득 끌어안은 당보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금 속으로 맹세했다. 이번에야말로, 그의 곁을 놓치는 일은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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