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일소청명] 흔적

일청 3시간 전력 주제 <목>

소재 제공: 술꽃님

장일소에게는 어렸을 적부터 따라다니는 소문이 있었다. 살인범에게 살해당할 뻔했다느니 큰 사고를 당해 죽다 살아났다느니 하는 괴담 같은 이야기였다. 변주는 다양했으나 그 소문은 늘 같은 결말로 끝났다. 죽다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 소문의 근원은 다름 아닌 장일소의 흉터였다. 화려한 얼굴과는 대비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어딘가 께름칙한 기분을 들게 하는 목에 난 커다란 흉터. 주변의 피부보다 조금 더 밝은 톤에 만져보면 미묘하게 튀어나온 것이 느껴지는 피부는 어느 모로 봐도 한 번 찢어졌다 붙은 자국이었다. 그 흉터는 목을 둥글게 감싸듯이 길게 나 있었는데 크고 날카로운 것이 단번에 박혔던 상처 같기도, 무언가가 깊게 베고 지나간 상처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상처가 났을 당시에는 끔찍했을 게 분명했다.

그 흉터를 본 이들은 민감한 질문이라는 자각도 없이 혹은 알면서도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어쩌다 그런 상처가 났는지 물었다. 장일소는 입담이 좋은 편이었으나 꼭 그 질문에는 대답 없이 의뭉스레 웃기만 했다. 그가 불행한 과거를 말하는 것을 거북해하거나 죽다 살아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모든 일을 극복한 것처럼 담담하게 말하기만 했어도 그렇게 무성한 소문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의뭉스러운 웃음은 더 기괴하고 과장된 소문을 만들었고 그가 성인이 되어 그가 자란 동네를 떠날 때까지 무성한 소문이 그를 따라다녔다. 다른 곳으로 가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보통은 그런 끊임없는 불쾌한 관심과 근거 없는 소문에 시달리는 것이 힘들어 흉터를 감추었을 텐데 장일소는 흉터를 가리는 법이 없었다. 되레 그 흉터를 자랑이라도 하듯 훤히 드러내고 다녔다. 더 크게 떠들어 보라는 듯이. 혹은 그런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이유야 단순했다. 그런 말들이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쾌한 관심도 근거 없는 소문도 모두 익숙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이십 대가 된 이 청년의 안에 든 것은 한때 중원을 불태웠던 만사의 제왕, 사패련의 련주, 패군 장일소였던 것이다. 진흙탕을 구르며 자라 사파 수괴가 된 남자가 그런 것들에 상처받을 리 없다. 그는 그를 따라다니는 질 나쁜 소문과 악담에 익숙한 자였다. 이 정도는 오히려 귀엽지 않나. 제 흉터에 관해 묻는 이들이 귀찮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문에 흉터를 가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 흉터는 패군 장일소를 죽음에 이르게 한 상처였으니까.

제 마지막 순간은 제법 뚜렷하다. 피투성이가 된 그와 자신. 목을 파고든 서늘한 날의 촉감.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검과 같은 기세의 눈. ‘네 목은 내꺼라고 했지?’ 그 눈은 꼭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흡사 악귀와 같은 뒤틀린 입매에서 그는 끔찍한 악의와 질척이는 집착을 읽었다. 어쩌면 당사자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감정을. 죽음이 코앞에 와 있었으나, 그때 그는 꽤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전생의 상처가 어떤 원리로 내세의 몸에 새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기억하는 최초의 순간부터 그는 흉터를 갖고 있었고 어쩌면 그 흉터의 내력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었을 부모는 얼굴조차 모른다. 보육원 원장 역시 네 살 어린 나이에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의 목에 난 흉터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니 앞으로도 진실을 알게 되기란 요원할 것이다. 그러니 그는 좋을 대로 여기기로 했다. 전생의 흔적이 끈질기게 내세까지 따라온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어쩐지 묘한 충족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이 흉터를 만든 이는 이 세상에 없더라도 여전히 그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걸 광고하고 다녔다고?”

“광고라니. 흉터를 감추겠다고 뭘 둘둘 두르고 다니는 게 더 이상하지 않니.”

사계절 내내 목에 뭔가를 두르고 다니면 분명 시선을 끌 것이다. 그러니 틀린 말은 아닌데 저놈이 하니 화가 난다. 심지어 저놈의 얼굴은 넝마를 걸쳐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얼굴이 아닌가. 역시 개소리가 맞다. 속으로 결론을 내린 청명은 굳이 참지 않고 장일소를 걷어찼다. 그러나 청명이 그렇게 행동하리란 걸 알았다는 듯 장일소가 대뜸 그를 끌어안은 탓에 장일소를 걷어차기 위해 뻗어진 다리는 꼭 장일소를 끌어안으려던 것처럼 얽어졌다.

엉겹결에 서로 끌어안은 자세가 된 청명은 헛웃음을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일소는 청명의 목에 입술을 내리며 성가시게 굴었다. 입술이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느껴지는 간질거리는 감촉에 작작 하라며 장일소를 밀어내려는데 별안간 밀려온 둔한 통증에 청명이 악 소리를 냈다. 장일소가 청명의 목을 물어뜯기라도 할 듯이 씹은 것이다. 

“뭣 하는 짓거리야!”

“생각해 보니 억울해서 말이다. 네 목에도 흔적을 남겨둬야 공평하지 않겠어.”

“공평은 개뿔이. 네가 져서 생긴 걸 왜 나한테 똑같이 남기고 싶어 하는데!”

“사파놈이 좋을 대로 하는 게 이상한가?”

“살만큼 살았냐?”

영양가 없는 대화가 몇 번 더 오갔고 그동안 장일소는 청명을 꽉 끌어안은 채로 아프지 않게 목을 깨물었다. 몇 번을 물고 빨고를 반복한 끝에 붉은 울혈을 만든 장일소는 그제야 청명을 놓아주고 제가 만들어 놓은 흔적을 바라봤다. 크게 눈에 띄지도 않고 며칠 못 가 사라져버릴 흔적이지만 나쁘지 않다. 나중에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가리지 말렴.”

“동네방네 소문낼 일 있냐.”

“그럼, 소문내야지. 네가 내꺼라고 말이야.”

장일소는 눈을 기름하게 접어 웃으며 말했다. 저러면 넘어가 줄 줄 아는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청명은 괜히 목을 벅벅 문질렀다. 그 거친 손길에 장일소가 만든 울혈을 중심으로 피부가 조금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걸 본 장일소는 과장되게 눈을 깜박이더니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듯 입을 가리며 말했다.

“역시 그런 흔적은 너무 작았구나. 몇 개 더 만들어줄까?”

“미친 새끼 아니야! 안 꺼져? 안 꺼져?”

장일소는 결국 청명의 목에 두어개의 울혈을 더 만들고 나서야 청명을 풀어줬다. 얼마나 야무지게 물고 빨았는지 밴드로도 다 가려지지 않을 것 같은 흔적이었다. 청명은 한동안 목을 완전히 감싸는 목티를 입고 다녀야 했으나 청명의 열성적인 애인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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