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의 별 1
화산귀환 윤종드림
“사랑이요.”
그러자 청명은 썩은 표정을 지었다.
“죽을래?”
아닌데, 진짠데… 나는 중얼이며 몸을 움츠렸다. 내 이름은 ■■■. 앞으로 사용할 이름은 벽진. 화산에 떨어지다. 그러니까 이건 화산귀환이 아니라 화산… 트립? 그렇게 알아두시면 되겠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화산귀환의 팬이라고 하기엔 덕심이 애매했고 아니라기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웹툰만 봤다. 그랬는데 뭔시기천존인지의 계략(?)으로 화산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점이라면, 눈을 떠보니 화산의 대문 앞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이상한데 떨어졌거나 화산을 올라야 하는 처지였다면 나는 이 모든 것을 꿈으로 치부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졌을 것이다. (물론 비유다. 이딴 체력으로 단장애를 오를 수 있을 리가.)
나는 문을 두드렸고, 곧 지금 시점이 청명의 화산 복구 이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깨끗한 현판과 연무장. 더 열심히 검을 휘두르라며 귀에 꽂히는 고함소리까지. 나는 정신 나갈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은은하게 웃었다. 그리고 나를 맞이한 이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화산의 제자가 되기 위해 왔습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운자배의 사람이었던가. 그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뭐라 말하려다 뒤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화산의 현 장문인이었다.
“그래, 제자가 되기 위해 왔다고. 자네 이름이 뭔가?”
네? 이렇게 쉽게요? 드는 생각은 많았지만 이건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었다. 나는 아직 식지 않은 아드레날린에 기대어 대담하게 굴었다.
“벽진이라고 합니다, 장문인. 그리고 저는 화산신룡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그를 불러주시겠습니까?”
“허어.”
그 말에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럴 만도 하지. 외부인이 대뜸 찾아와서 하는 말이 제자로 받아주세요, 화산신룡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이런 것이니.
“미안하지만-”
“저 불렀어요?”
더 밀어붙일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휴식시간인지 지나가던 소년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청명이구나. 나는 그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애기네, 애기. 아, 근데 지금은 나도 애기지. 음. 빤히 보고 말을 안하자 기분이 나빴는지 소년의 표정이 구겨졌다.
“뭐야, 왜 사람을 그렇게 보고 그래? 장문인, 이거 누구예요?”
“그게…”
“청명, 할 말이 있어요. 단 둘이서만.”
나는 그 틈새를 끼어들었다. 당돌한 태도에 소년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당신, 날 알아? 아, 됐다. 다짜고짜 그런 말을 해봤자 내 답은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아주 중요한 이야기예요. ‘보이는 모든 것이 붉다’로 시작하는 이야기.”
그러자 그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었다. 이 묘사가 맞던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붉은 시체들의 산이 떠오를 뿐이다. 그래도 대충 들어맞은 모양이다. 청명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장문인에게 말했다.
“…일단 제가 말을 들어볼게요.”
“하지만 청명아.”
“괜찮아요. 제가 누군지 아시잖아요.”
아니, 모른다. 아마 여기서 나만이 그가 진짜 누군지 아는 단 한 사람일 것이다. 와, 이러니까 전독시같네. 청명은 나를 한적한 빈 구석으로 이끌었다. 아무도 없고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한 곳에 도착하자 그가 등을 돌려 나를 노려보았다.
“너, 할 말이 뭐야.”
“화산파 13대 제자, 매화검존이여. 나는 당신과 비슷한… 방문자입니다.”
“방문자? 정확히 말해. 안 그러면…”
“일단 내 말을 마저 들어요.”
그리고 나는 대충 핵심을 털어놓았다.
“당신이 다른 시간대에서 현재로 왔다면, 나는 다른 세계에서 이곳으로 왔어요. 당신의 삶이 ‘이야기’인 곳에서. 그러니 나는 당신의 이해자인 셈이죠.”
“누구 맘대로.”
“청명,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알아요. 당신이 돌아왔듯이 천마도 돌아올 거예요.”
그의 눈에 살의가 어렸다. 등골이 오싹했다. 아무리 유사-제4의벽이 있어도 나는 생존욕구가 있는 인간이다.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솔직히 천마를 퇴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곤 못하겠어요. 그럼에도 내 선택지는 하나뿐이에요. 화산의 사람이 되는 것.”
“목적이 뭐지?”
낮은 목소리가 물었다. 이번 대답은 중요하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슬슬 아드레날린이 다 떨어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파들거리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사랑이요.”
“죽을래?”
“아닌데, 진짠데…”
“설명.”
“화산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나?”
“그랬으면 진작에 달려들었다가 깨졌겠죠?”
“그럼 누구. 동룡이?”
“윤종 사형.”
사형이라고 불러도 되나? 아직 입문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인데. 뭐 어떠랴. 어차피 여기서 설득에 실패하면 죽는다. 그런 각오였다.
“흠.”
청명의 표정이 오묘했다. 대충 이해는 가는데 영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난 좀 억울해져서 따졌다.
“아니 사람이 선성향 실눈캐 도사 화산의 정신 차기 장문지재 좀 좋아할 수도 있지 그렇게 봐요?”
“차기 장문지재애애?? 누가, 윤종 사형이?”
“차차 알게 될 거예요.”
“허어…”
그는 하늘을 봤다가, 땅을 봤다가, 추측하건대 청문 사형에게 혼잣말을 보냈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명심해. 너 완전히 믿는 거 아니야.”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제가 어느 쪽이든.”
“이름이 뭐라고 했지?”
“벽진입니다, 청명.”
“그래. 앞으로 각오하라고. 이제 나도 후배가 생겼구만. 크큭…”
청명 특유의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인간 설마 나를 굴릴 셈인가.
“잠깐… 나도 수련 해야 돼요?”
“당연하지? 청자배로 들어오는 거 아니었어?”
“장문인은 아무 말도 안하셨는데.”
“아이, 내가 그렇게 만들거야. 그렇고말고. 그러니 걱정 말고 준비나 해. 나를 안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대충 짐작하고 있지?”
알긴 안다. 다만 내가 그 대상이 되리라곤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큰일이다. 나 저질체력인데. 죽느냐, 죽을만큼 구르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에잇,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취! 그래야 자랑스러운 화산의 제자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고 다짐했다. 어디서 또 이런 트레이닝을 받아보겠어. 그새 화산의 제자가 되어버린 건 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됐습니다.”
“청명아, 아무리 그래도…”
그래, 아무리 청명이라도 외부인을 대뜸 받는 힘들지. 나는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장문인. 저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만일 제가 화산에 해가 되는 자라고 판단된다면 즉시 내쫓으시거나, 목숨을 거두셔도 납득하겠습니다.”
극단적인 말에 장문인의 표정이 안쓰럽다는 듯 변했다. 참고로 이거 연기 아니다. 진심이다. 무협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내가 화산을 떠나 어디로 가겠는가. 그리고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정말 간절한 모양이구나.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그래, 벽진이라고 했던가? 화산에 온 것을 환영하네.”
“감사합니다!”
드디어 이 벽진, 화산의 23대 제자가 되다. 이제부터는 공략의 시간이다.
윤종드림인데 이제 1편부터 윤종이 안 나오는
설정이고 고증이고 날림으로 갑니다(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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