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보청명|coc 도화영홍AU] 落花, 開花
잠깐! 글을 보시기 전에 당보청명 도화영홍 플레이 로그를 봐주시면…… 별 건 아니고 제가 좋아합니다 헤헤…….👇
https://trpgeke.tistory.com/m/41
(비밀번호 : 211229)
* COC 도화영홍(w.Cleef)의 진상에 대한 !!강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플레이 예정중이시거나 나중에 가보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읽는 것을 재고해 주세요!
* 당보청명이긴 한데? 당보 독백에 가깝습니다. 원작과는 반대로 청명이가 당보 회상에만 나와요. (이런 말.)
* TW : 죽음, 고문, 부상, 유혈 묘사.
형님.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대답은 없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불길에 데인 시야가 지독히 흐렸음에도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벌벌 떨리며 허우적대던 손이 연신 바닥을 짚었다. 차라리 기어갔다는 표현이 옳을 정도로, 그렇게 아득바득 나아간 손끝에 그의 붉은색 머리끈이 걸린다.
"형님……. 형님……."
목소리가 주체할 수 없이 떨려서, 왈칵 울음이 샐 것 같았다. 이게, 현실일리 없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켜대는 저 불꽃의 열기도, 차게 식어가는 그 몸을 눈에 담는 시야도, 그 끔찍한 감각에 몸서리치며 처절하게 울부짖는 제 목소리도. 무엇 하나 현실처럼 와닿는 것이, 단 한 개도 없었다. 찰나의 실수가 불러온 재앙과도 같은 참극에 영혼이 갈가리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저를 붙들고 끌어당기는 손길들에도 미친 사람처럼 그를 불러대는 자신에게선 제대로 된 저항조차 없다. 버둥대며 뻗어진 손길은 당연하게도, 그에게 닿지 않는다.
헉, 하는 거친 숨과 함께 고통스러운 기침을 내뱉었다. 그에 따라 흔들리는 몸뚱이가 삐걱대며 비명을 질렀다. 다시 까무룩 기절할 뻔한 정신을 간신히 붙든다. 턱 밑을 타고 물인지, 땀인지, 피인지조차 모를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아직은 조금 아득한 의식 너머로 텅, 하고 빈 나무 통이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제서야 제 머리 위로 쏟아졌던, 두개골이 시릴 만큼 차가운 물의 온도를 자각한다. 아, 어떻게, 된, 거더라. 몸만큼이나 삐걱대는 머릿속은, 흩어진 정보들을 재빠르게 모아오지 못한다.
"독하긴."
낯익은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힘겹게 들린 시선에 증오스러운 얼굴이 들어찬다. 갈라진 목소리가 씹어뱉듯 그 이름을 뱉으면 상대는 지겹다는 양 한숨을 푹, 뱉는다.
"이젠 포기할 때도 되었거늘……. 도화국은 멸망했고, 그 왕도 죽은 지 오래다. 왜 미련스럽게 구는거냐."
산 사람은 살 길을 도모해야하지 않겠냐며 저를 회유하려드는 목소리는 은근하기까지 했다. 마치 그리하면 내가 순순히 대답할 거라고 생각하는 양. 전부 우스운 일이다. 설명한다 한들,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저조차도 마음에 전부 담을 수 없어서, 그래서 입을 열면 잘못 쏟아질까 숨기기 급급했던 그 모든 것들을 제까짓 놈들이, 감히. 킥킥, 낮은 웃음이 새었다. 피가 말라붙고 쩍쩍 갈라진 입술이 쓰려왔으나 개의치 않는다. 제 웃음 소리에 상대가 불쾌한 양 미간을 좁혔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뭐?"
"이미 부러져 쓸 수도 없는 검을 붙들고 징징대는 꼴이 웃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군 그래."
힘껏 이죽대는 목소리가 위태롭게 떨렸으나 쥐어짜내는 말은 제법 신랄하기까지 했다. 내 비도는, 내 검은, 나는, 그가 죽은 그 순간부터 부러져 쓸모없는 것이 되었음에도. 반쪽짜리 검을 붙들고 제 것이라 떼를 쓰는 꼴이 도저히 못 봐줄 정도다. 상대의 입꼬리가 움찔, 떨렸다. 이를 꽉 물고, 주먹을 말아쥔다. 이미 몇 번이나 손톱이 파고든 손바닥이 쓰리다. 손바닥에 닿은 손 끝이 아렸다.
"그래, 어디 끝까지 버텨봐라."
그가 든 기다란 막대기가 제 옆구리를 콱, 찔렀다. 지져져 있던 상처가 헤집어지며 끔찍한 고통이 온 몸을 타고 올랐다. 참지 못한 신음이 흐르면 아랫입술을 짓이겨 씹는다. 으득으득, 이빨에 여린 살이 뭉게지는 소리가 선명하다. 사나운 미소를 짓던 그가 손아귀에 힘을 가힌다. 더 깊게 상처를 헤집어오는 것에 결국 끔찍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또 정신을 잃었던지, 눈을 몇 번 깜빡, 하면……. 이젠 퍽 익숙한 풍경이 들어찼다. 회색빛의, 삭막하기 짝이 없는 공간. 아, 언제부터 이것이 자신에게 익숙한 풍경이 되었던가. 깜빡깜빡, 느릿하게 띄였다 감기는 그 찰나의 사이로 익숙한 풍경과 낯선 풍경이 겹쳐든다.
그의 성격을 닮아 적당히 단조롭던 방 안의 풍경, 그 안에 한가득 들어차있던 도화(桃花)의 향, 그 사이에 서있던 뒷모습, 제 부름에 고개를 돌려오는 눈동자와 마주치면, 그래, 그것으로도 그저 좋아서 푸스스 새어나오던 제 웃음 소리.
느릿느릿 숨을 들이켜도 그립던 향은 더 이상 없었다. 몇 번이나 눈을 깜빡여도 그 풍경 역시도 없었다. 귀를 기울여도…… 그래도, 여상스레 제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도, 없었다. 그것이 못내 서러워서, 끔찍한 고통에도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왈칵, 샌다. 몸을 웅크리고 소리를 삼킨다.
사박.
오랫동안 밟은 적 없던 풀밭 위로 느리게 섰다. 아, 자신이 그리던 향이 선명하게 흘렀다. 바람이 불자 풀밭이 스러지고, 아직 개화하지 못한 봉오리들이 흔들려댄다. 아무렇게나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느리게 쥔다. 묵묵히 머리카락을 땋아내리는 손길엔 별 머뭇거림이 없다.
한 번 더 네게 기회를 준다고 한다면, 그것을 위해 넌 어디까지 할 수 있겠느냐.
그 선명하던 목소리를 곱씹었다. 뭐든. 그 대답에 상대는 낮게 웃었던가. 이젠 낡고 헤져버린 매화빛 끈이 머리카락의 끄트머리에 걸렸다. 사박사박, 다시금 풀밭을 가로지르는 걸음에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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