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천청명] 看雲步月, 四
현화산 백천 X IF 화산이 망해 낭인으로 살아가는 청명.
※ 화산귀환 1536화까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간운보월 3편: https://glph.to/tizvp6
“다 왔어.”
조심스레 청명을 뒤따라 발을 들인 백천이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객잔에서 나온 청명이 대뜸 화산으로 간다기에 뒤따라왔더니 얼핏 봐서는 절대 알아볼 수 없을 만한 절벽에 있는 작은 동굴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허리 한번 못 펼 것 같던 동굴 입구로 몸을 구겨가며 들어가자, 내부는 작고 좁게만 보였던 입구에 비해 생각보다 꽤 넓었다. 천장도 아슬아슬하게 백천의 머리가 닿을 듯 말 듯 할 정도였다. 두 사람의 체격 차이를 생각한다면 그보다 작은 청명에게는 꽤나 널찍한 보금자리였을 것이다.
“화산의 이런 곳에 이런 굴이 있을 줄 몰랐다. 분명 여기 주변에 있는 절벽들을 수백 번은 더 올랐을 텐데…….”
백천의 진심이 담긴 듯한 감탄에 괜히 우쭐해진 청명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피식 웃었다.
“다 보이지 않을 법한 각도가 있지. 파두면서 근처에 얼씬하지 말라고 주변도 좀 더 가파르게 깎아뒀고. 때와 기분에 따라서 적당히 여기저기 돌아가면서 있다가 나가곤 했거든.”
지금이야 아무도 남아있지 않아 적막하기만 하다지만, 예전의 청명이 화산에서 자랐을 적에는 워낙 사람이 많아 조용할 틈이 없었다. 물론 그 소란 가운데에 청명이 있었던 적이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긴 하지만, 어쨌거나 사람이 언제나 시끄러운 곳에만 머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청명에게는 사형 몰래 혼자 술을 마실 곳도, 수련을 빼먹고 몰래 도망쳐 나와 한숨 잘 곳도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그때의 도피처가 또다시 도피처로 이용된 것뿐이다. 그 상대가 사형과 사형제들의 시선에서 중원의 무림인들로 바뀌어버리긴 했지만.
“……그리고, 여기에 있으면 화산이 잘 보여. 봄이 되면 대충 걸터앉아서 술 마시기에도 좋고.”
그래서 좋았다.
그가 듣고자 한다면 어린 제자들의 수련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입구에 대강 걸터앉으면 화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으니까. 비록 지금은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폐허만 남은 화산이 눈에 담길 뿐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청명은 몸을 숨길 곳 중 한 곳으로 이곳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황폐해진 화산을 보며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럼 한동안은 여기서 지낼 생각이냐?”
화산이 잘 보인다는 청명의 말에 자연스럽게 들어온 밖을 바라보던 백천의 물음에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제게 덤비던 놈들의 주머니를 매번 털어온다고 해도 객잔에 매일같이 지내기는 힘들었다. 어쨌거나 사람들이 드나들 수밖에 없으니 눈에 띌 수도 있기도 하고. 하여 대부분은 이렇게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을 법한 여러 동굴을 찾아 전전하며 지내야만 했다.
“일단은. 다음에는 사천 쪽으로 갈까 싶기도 하고…….”
그러다 돌연 청명이 입을 꾹 닫았다. 어딘가 불만스러워 보이는 얼굴에 백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어디에 그리 심통이 났느냐 묻고 싶었지만, 그저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대충 자리를 털어내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청명이 퉁명스레 말했다.
“……그냥 알아서 잘 따라다녀. 우리가 뭐, 죄다 말해줘야 할 사이인가.”
오랜만에 느끼는 온정에 무뎌져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 힘을 다 찾지 못했기에 이리 지내고 있으나, 그는 언젠가 제 사형제들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든 작자들의 목숨으로 그 복수를 마쳐야만 하니까. 그리고 그걸 끝내고 나면 청명 또한…….
이어지려는 상념을 떨쳐낸 청명이 동굴 벽에 등을 툭 기대며 백천의 시선을 외면하듯 고개를 획 돌렸다. 어째선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백천이라는 녀석은 그의 낯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 순간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대번에 알아챌 것만 같았다.
“……됐고, 동룡이 네 얘기나 좀 해봐.”
“내 얘기?”
이제까지 많은 걸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는 대꾸에 한숨과 함께 재빠르게 표정을 갈무리한 청명이 그를 흘겨보았다.
“어지럼증이 닥쳐 눈을 감았다 떴더니 홀로 화음 길바닥에 있었다고 했잖냐. 그 직전에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같은 거.”
“아, 그거라면…….”
슬그머니 청명의 눈치를 살핀 백천이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기억이 안 나더구나.”
“……진짜 뭐 하는 새끼지, 이거?”
“……내가 사숙이야.”
“뭐, 인마? 나한테는 사숙 없거든?”
황당하다는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욕설로 대꾸하며 청명이 이마를 짚었다. 제일 중요한 걸 빼먹고 말하지 않았으면서 어디서 뭘 잘했다고 말대답이야! 으르렁거리며 당장이라도 백천을 씹어먹을 듯 노려보자, 목숨의 위협을 느낀 백천이 익숙하게 청명을 진정시키려는 듯 자세를 낮추며 여느 때보다 빠르게 말을 쏘아댔다.
“다, 다른 건 다 기억이 난다! 종남에서 나와 화산에 올랐던 날부터 천우맹이 결성되고, 장문대리 직을 달게 된 것도, 청명이 녀석이 화음에 인력을 총동원해 번성한 도시처럼 만들어낸 것과 개방 총단에 다녀온 일까지는 다 기억이 나. 그런데 딱 거기서 기억이 끊겨 있었어.”
분명 곁에는 청명을 포함한 사형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화음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기껏해야 화산이나 섬서 안이었을 테고.
“딱 그 부분만 지워진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아.”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무엇을 이야기하고 들었는지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청명의 말처럼 그것을 알아내야만 백천이 이리 오게 된 이유와 돌아갈 방법이 보일 텐데, 아무리 떠올리려 애를 써봐도 머리만 아파질 뿐이었다.
청명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백천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백천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런 거짓을 말할 이유도 없다. 그가 이리로 오기 직전의 상황을 알아야 부족한 상상력이라도 조금이나마 보태볼 텐데. 청명이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어휴. 텄네, 텄어. 동룡이 여기서 평생 살 준비나 해야겠네. 대체 어떡하려고 그러냐?”
“같이 살 집이나 알아볼까?”
“이 새끼가 미쳤나? 네가 때 되어도 못 돌아가면 그냥 버리고 튈 거야, 이 새끼야!”
“내가 사숙이라고…….”
“아, 나는 사숙 없다고!”
되살아난 이후로 열 받았으면 받았지, 이렇게까지 버럭버럭 소리칠 일은 없었는데 오늘 하루에만 이게 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청명아. 나도 하나만 묻자.”
“뭔데.”
“알아보니 혈화마검이라는 별호가 떠돈 지 시간이 꽤나 지난 것 같은데, 그동안은 어떻게 얼굴을 숨겼느냐?”
“……아, 그거.”
청명의 눈빛을 살피며 백천이 조심스레 숨을 가다듬었다. 따지면 관군을 모조리 따돌린 범죄자에게 어떤 방법으로 도망칠 수 있었느냐 물어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게다가 이곳의 청명은 그가 알던 청명과 달리 백천에게 조금의 신뢰도 없을 테니까. 말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을 테지만…….
“보아하니 인피면구를 쓰거나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건 좀 꺼림칙하니까.”
생각보다 청명은 선선히 대답했다. 달리 기분 나빠 보이지도 않았고, 백천을 떠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닌 듯해 보였다. 그가 청명의 대답을 유도했다는 것을 알 텐데도 딱히 개의치 않는 듯해 보였다.
“인피면구라는 게, 사람 가죽이나 고급 가죽으로 가공한 것들인데 그게 오래 가면 얼마나 오래 가겠어? 뒤집어쓰고 있으면 갑갑한 데다가 들킬 때마다 바꿔야 할 테니 돈도 많이 들 거고.”
청명은 정체를 숨기는 것에 영 재능이 없었다. 이전 생에서는 속이 터질 것 같으면 입을 털어야 했고,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주먹이나 검을 휘두르면 됐으니까. 숨기려고 노력도 해본 적 없는 청명이 어떻게 정파고 사파고 갈피를 잡지 못하게 정체를 숨겨왔느냐고 묻는다면…….
“동룡이 너도 그간 나에 대해 발품 팔아가며 알아봤다며. 사람들이 혈화마검에 대해 뭐라 떠들던?”
“그러니까…….”
청명의 물음에 백천은 그간 자신이 조사하고 들었던 혈화마검에 대한 많은 내용 중에서 몇몇을 떠올렸다. 은둔한 노인, 가문에서 쫓겨난 망나니, 그 외의 여러 가지. 모습이 그렇게까지 가지각색 다 다른데 어떻게 혈화마검이겠느냐는 말에 이 중원에 그런 검을 펼치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다고 했었던가. 백천의 말에 피식 웃은 청명이 늘어져 있던 자세를 바르게 고치며 말했다.
“예컨대, ……이런 거지.”
백천의 눈이 크게 떠졌다. 청명이 “예컨대.”라고 했을 때 노인의 낯으로 갈라진 목소리를 내었고, 잠깐 뜸을 들이며 “이런 거지.”라고 했을 때는 명문 세가에서 곱게 자라온 듯한 얼굴로 담백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그가 알고 있는 청명의 낯으로 돌아왔다.
“뭘 어떻게 한 거냐?”
“역용술. 내력으로 얼굴의 근육과 뼈의 형태를 좀 건드려서 모습을 바꿔놓는 거지. 쯧, 옛날엔 이런 걸 굳이 할 필요가 없었는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처음엔 청명 또한 내키지 않고 돈이 좀 들더라도 인피면구를 써야 하나 싶었더랬다. 고민하며 텅 빈 화산을 맴돌던 중 청명의 먼 기억 속 한 가닥의 실마리를 떠올렸다.
섬서를 대표하는 명문 정파인 대화산파에 때때로 기이한 것들이 들어오곤 했다. 그중에는 강호에 풀리면 특히 난리가 날 것들이 몇 있었는데, 전대 고수의 비급이나 마공서가 그중 하나였다. 이를 청명이 어찌 아느냐 하면……, 사제를 괴롭히거나 타문의 제자를 때려눕힌 벌로 종종 들어온 선물들을 정리하고 분류해서 나누는 벌을 받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화산 말고는 큰 관심을 주지 않았던 청명이라고 해도 그 또한 무인이라, 비급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정리 핑계로 훑어봤던 것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휘발된 기억을 어떻게든 되살려가며 몇 번이나 이리저리 시도해본 결과, 기어이 청명은 역용술로 모습을 바꾸는 데에 성공했다.
다만 이런 역용술도 결국 내력을 이용하는 것이라, 오랜 시간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여 청명은 평상시에는 제 모습으로 다니되, 마을을 벗어나면 얼굴을 덮는 가면을 쓰고 이동해 만에 하나 무인들을 만났을 때 역용술을 쓸 시간을 벌기를 택했다.
“……확실히 역용술을 쓴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네. 역용술을 쓰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어 곧바로 떠올리질 못했구나.”
“뭐, 보통은 그렇지. 나도 우연히 떠올리지 않았다면 다른 방법을 썼을 거야.”
보통 역용술은 어딘가에 잠입하거나 암살할 때 쓰는 것이란 인식이 강하다. 청명은 따로 암살하거나 잠입하는 일 없이 단순히 피곤할 일을 피하려 얼굴을 가리는 용으로만 썼으니, 역용술이 번뜩 안 떠올랐을 수도 있고. 정파 쪽에서도 청명을 마주한 사람 중 연륜이 있는 이들은 어쩌면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청명의 원래 얼굴을 모르니까. 아는 거라곤 마주칠 때마다 바뀌는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핏빛 같은 붉은 매화를 피워내는 검뿐이다.
“그럼 나도 그걸 배워야 하지 않을까?”
“……뭐?”
생각지도 못한 백천의 말에 청명이 두 눈을 크게 떴다.
“한동안 너와 내가 함께 다녀야 할 텐데, 네가 어떤 모습으로 다니더라도 곁에 같은 모습의 내가 있으면 이동에 어려움이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백천의 얼굴이 어디 흔히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아니고, 그 사람 얼굴을 영 못 외우는 편이었던 청명도 백천의 얼굴만큼은 곧잘 기억했다지 않았나. 특히 백천은 체격도 있어 어딜 가나 시선이 따라붙곤 했다. 아마 혈화마검에 대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은 탓에 어딘가에선 이미 백천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잡기雜技야, 배워두면 언젠가 자잘하게 도움이 되기야 하겠지. 그런데 이것도 내력을 꽤 쓴단 말이다. 유지하기도 힘들고.”
역용술이 마공도 아니고, 못 가르쳐줄 이유야 없다. 경험이 쌓인 건지, 아니면 선천적으로 어딘가 영리한 구석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지만, 청명이 아는 잡기들을 가르쳐주면 알아서 때맞춰 잘 써먹을 녀석이란 건 알 것 같으니까. 하지만 청명이 발을 빼는 건 이유가 있었다.
“내 돌려 말하는 취미는 없으니 직설적으로 말하마. 동룡아, 넌 지금 말하자면, 금 간 술잔이야. 객잔에서 내게 보인 검법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마 원래 상태였다면 훨씬 더 나았겠지. 어쩌다 그리된 거냐고는 안 묻겠지만, 그 상태로는 이런 잡기에는 욕심내지 않는 게 나아.”
백천이 입을 꾹 다물었다. 역시 청명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 한 번 본 검에서 백천의 상태부터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원래 상태의 백천까지 모조리 파악했던 듯했다.
“애초에 내가 말했잖아, 한동안은 얌전히 지낼 거라고. 그 말인즉 나도 한동안은 안 쓰고 지낼 거란 소리다. 네가 배울 필요는 없지.”
“그리고 네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을 때 이 일들을 모두 기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냐? 당장 이리 오기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판국에. 괜히 몸 깎아 먹지 말란 소리다.”
쉬지 않고 이어진 청명의 설명과 잔소리에 동굴 안의 공기가 점점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백천은 청명의 말에 상처받거나 기가 죽은 듯해 보이지는 않았으나, 내내 말을 걸어오던 아까와 달리 한 마디도 대꾸하거나 말을 꺼내지 않으니 자연스레 침묵이 이어진 것이다. 길어지는 침묵이 불편해진 청명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돌렸다.
“하, 계속 말하니 내 목만 아프네. 시간도 늦었겠다, 그냥 빨리 자라.”
품에서 술병을 꺼내든 청명이 마치 물을 마시듯 쭉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던 백천이 자리에서 느릿하게 누우면서도 시선은 계속 청명을 향했다. 자리 잡고 바르게 누운 백천이 고개를 돌려 청명을 바라보았다.
“너는 언제 자려고?”
“당연히 네가 일어나면 자야지. 두 시진 뒤에 깨울 거니까 곧바로 일어나야 네 그 허연 목이 안전할 거다, 동룡아.”
백천은 알고 있었다. 그가 잠든 틈을 타 이곳에 청명이 그를 이곳에 버리고 가거나 찌를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저리 날 세워가며 협박하듯 말하는 것도 백천이 그가 그어둔 선을 넘지 않게끔 경고하려는 방어기제에 불과했다. 그는 언젠가 이곳을, 청명의 곁을 떠날 사람이니까.
게다가 백천은 그가 자고 일어나 교대하게 되더라도 청명이 깊게 잠들지도 않을 것을 알았다. 언제든 품에 안은 검을 휘둘러 적을 상대할 수 있도록, 그 누구도 그의 목에 검을 닿지 못하게 할 것임을. 백천이 청명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 믿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런 불안함 속에서 지내왔을 테니까.
“어쭈? 뭘 쳐다봐? 빨리 안 자? 재워줘?”
“자, 잔다! 자!”
청명이 주먹을 콱 움켜쥐며 백천을 바라보자 화들짝 놀란 그가 재빠르게 눈을 감았다. 편한 곳 하나 없는 돌바닥에서 백천은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언제 협박질을 했냐는 듯 느리게 주먹을 내린 청명이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백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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