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보청명][당청] 落花流水(0)

당청 컬러버스 (생환암존 X 화산신룡) - 落花流水(낙화유수)

당청을 해요 by 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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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유수

지나가는 봄의 경치나 또는 힘과 세력이 약해져 물흐르듯 보잘것없이 쇠퇴해간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떨어지는 꽃은 물이 흐르는 대로 가기를 원하고, 흐르는 물은 꽃을 싣고 가기를 원하므로 서로 그리워하는 정을 비유하기도 한다.


아, 이자가 내 운명이구나. 질리도록 들었던 운명을 처음에 만났을 때, 당보는 운명이라는 말을 체감했다. 흑백의 툭 치면 무너질 따분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색을 띄고, 그 주위의 것들을 모조리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여버리는 청명은, 약관의 당보에겐 정말 신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청명을 처음 본 순간 전신을 타고 찌르르 흐르는 강렬한 감각, 온몸에 흐르던 그 짜릿한 감각, 당보의 눈을 가득 채우던 그 빛나던 색채. 그리고, 당보가 그 빛나는 그 색의 파편들을 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습게도, 그런 그를 보고 튀어나온 말은 참으로 하찮았다.

”댁이 그 유명한 청명이요? 저랑 한 판 뜹시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흑백의 세상에 맞춰 같이 따분해졌던 당보는, 그 날 오랜만에,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꼈다. 처음 만난 운명에 대한 환희와, 이토록 약한 자신에 대한 분노, 운명의 상대에게서 본능적으로 느끼는 끌림, 아름다운 세상을 처음 본 기쁨.

“...오냐, 처맞고 싶다는데 못할 것도 없지.“

청명의 사정도 비슷했다. 흐릿하던 세상에서, 오로지 매화만이 붉게 빛나던 그 세상에서, 처음으로 다른 빛나는 색을 마주했다. 당보의 주변이 모두 선명하게 보였다.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모든 색깔이 찬란히 빛났다. 청명은, 그날 처음으로, 세상이 그토록 아름다움을 알았다. 그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이상하다. 빛나던 세상이 모조리 흑백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아해야, 진실을 고해라.”

그 말과 동시에 암존의 살기가 흘러나왔다. 어찌 감히 그 앞에서 거짓을 고하겠는가. 일개 장로가 말이다. 그 살기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당가의 한 장로가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검존을 포함한 결사대가 십만대산에서 천마의 목을 치고 전멸하였습니다. 남은 잔당들이 화산으로 가 어찌할 바 없이...”

“되었다. 그래. 당가가 그렇지. 내 이래서 형님을 어찌보라고.”

당보의 눈에 얼핏 경멸과 살심이 스쳤으나, 형님을 운운하며 화산을 지원하라는 명만을 내렸다. 끝까지 청명이 그곳에서 함께 영면에 들었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형님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저를 가만두지 않을것이라며 미리 술을 준비하라는 그 말에, 결국 장로가 다시 입을 열어 말하였다. 그 결정이 제정신에서 한 것일리 없었다. 화산을 멸문 직전까지 몰고 간 상황에서도 술이나 운운할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당보는, 암존은 말이다.

“암존, 검존께서는, 결사대와 함께 십만대산에서 영면에 드셨습니다...”

그 말에 당보는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럴 리가... 그럴 수 없는 인간이다... 형님께서는 그리 쉽게 죽을 인간이 아니시다.

“하하. 장난이 과하구나.”

당보는 애써 현실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의 세상이 무너진 것을 쉬이 인정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당보는 계속해서 부정하기만 했다. 애써 세상이 아직도 아름다운 척 했다. 그런다고 청명이 돌아오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당보는 그랬다. 끝을 약속했다. 서로에게 영원을 약속했다. 아직까지도 전쟁 전의 그 풍경이 눈에 선했다. 그런데 이럴 리가 없다. 분명히, 같이 살아남자고... 분명히, 같이... 그 순간, 당보가 입에서 왈칵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심마의 초입이었다.

그 뒤는 조용했다. 당가에서도 심마에 미쳐버린, 그것도 ’존‘이라는 별호를 단 위험인물을 굳이 밖으로 나돌게 하지 않았다. 당보도, 제 처소에 틀어박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나마 시간이 흐른 뒤에는 화산과 관련한 일에서는 정신을 차리긴 했다. 앞장 서 화산을 지원하려 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화산이 명맥을 잇고 있는데에 9할이 당보의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교 발호 이후 급격한 쇠락을 겪던 당가는, 더 이상의 지원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 결정을 내렸을 때에, 당보는 당가를 거의 멸문 직전까지 몰아갔다. 화산을 저리 만든 것이 너희의 탓인데 어찌 수습조차 하지 않으려 드냐고. 그러나, 정마대전 이후 쇠약해진 몸에 심마까지 얻은 당보는, 당가를 이기지 못하고, 당가의 가장 은밀한 전각에 유폐되었다.

당보는, 전각에 유폐된 채 조용히 삶을 보냈다. 몸이 심하게 상해 당가에 뭔가를 더 요구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대신 당보는, 몸을 회복하고 힘을 되찾는데, 그리고 당가의 아해들을 키우는 데에 전력을 다했다. 화산에 그 빚을 갚아야 했으니. 그리고 당보는, 이십사수매화검법의 비급을 복구하려 애썼다. 청명과의 비무를 떠올려가며 최선을 다했지만, 될 리가 없었다. 존 자를 단 무인 답게 아름다운 매화가 피어나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저 아름다웠다. 청명의 매화처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매화검법이라기엔, 그저 ‘매화’를 피어내기만 하였다. 본질에 닿지 못하였다. 그토록 찬란하지 않았다. 청명을 홀리게 한 그 매화를 도저히 재현해 낼수가 없었다. 그 검로가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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