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보청명] 명계의 주인 二
인간 당보 x 명계의 주인 청명
명계의 주인 1화
시선을 더 올려 얼굴을 보자 순간 당보는 숨을 잊었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떠나 아름답기 까지 한 사람도 많이 봤다.
다만……. 이렇게까지 인간 같지 않는 외모를 가진 사람은 또 처음 보았기에. 예쁘다는 말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 같은 외모를 가진 여인의 얼굴은 당보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첫눈에 반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름답기는 했으나 이 여인에게 느낀 감정은 인간 같지 않은 것을 봤을 때 느끼는 무언가였다.
아까 읽었던 소설에서 나왔던 ‘신’의 묘사와도 같은.
그래, 그리 표현하는 것이 가장 쉬울 것이다.
명계의 주인 二
이상한 여인
달그락.
길지 않는 순간 동안 마주친 붉은색 눈동자가 눈꺼풀의 움직임과 함께 시선이 사라지자 그제야 당보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멈췄던 호흡을 돌아와 숨을 크게 드라마시며 뻑뻑한 눈을 깜빡였다.
건조함이 가신 눈으로 다시 본 여인의 얼굴은 변함 없이 충격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래도 눈을 한번 깜빡거릴 때마다 그 느낌이 조금씩은 사그라들고 있었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리면서 완전히 진정을 하자 여인의 얼굴이 조금 더 명확하게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본 여성의 옆모습은 일단 단점을 찾기 어려운 미인이라는 점은 명확했지만……. 다시 생각하니 그런 반응을 보였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을까?
‘신은 무슨 신이야. 정신이 나갔지.’
저 여인을 본 순간 심장에서 쿵 소리와 함께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을 정도로 큰 충격이었으나 지금은 그 충격을 느꼈다는 게 의아하기만 했다.
한편으로는 무표정의 여성이, 저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더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시간이 더 길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의미 없는 생각과 함께 한숨을 내쉬고서 눈에 보인 건. 자신에 손에 들려있는 한입 먹고 남은 빵.
얼마나 글에 집중하고 있었으면 먹는 것도 잊고 사람이 와서 앉은 것도 모를 수 있었는지. 작게 헛웃음을 치고는 빵을 내려 놓았다.
“어라…….”
폰도 주머니에 넣어두고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맞은 편에 앉은 여성 바라보니, 여성은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써는 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 묻겠지만, 문제는 그 스테이크가…….
“그거 내껀데.”
“알아.”
다시 스테이크를 가져오려던 당보의 계획은 너무 단호한 두글자에 깔끔하게 묵사발이 났다.
설마 이렇게 딱 끊어 말할 줄은 몰랐는데,.
무표정한 얼굴에 붉은 눈동자로 쳐다보며 짧게 딱 내뱉는 말에 입이 저절로 다물려졌다.
아까운 내 스테이크……. 일부러 맛있게 와인이랑 먹으려고 미디움 레어도 아닌 그냥 레어로 시켰는데. 그래도 뭐 괜찮다. 음식은 많으니까. 음, 아직 나에게는 스튜도 있고 파스타도…….
“아니 잠깐만.”
비어진 스테이크 자리 옆에 있던 파스타를 먹기 위해 포크를 집어 들자 그제야 집 나간 이성이 돌아왔다.
들었던 포크를 상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자 여성의 눈썹이 살짝 올라간 채 당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쪽은 누구신데 여기에 앉아 있는 겁니까?”
처음부터 하려고 했었으나 얼굴을 보자 순간 기억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던 것이 이제야 다시 나타나 입 밖으로 나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에 홀린 듯 자연스럽게 넘어갈 뻔한걸 정신이 그를 이겨냈다.
“이 자리는 내가 먼저 앉아있었습니다.”
“여기”
당보의 항의에 겨우 여인은 고개를 돌려 당보를 바라보았다. 일자로 닫혀있는 입이 열리고.
“자리 있어?”
여인은 너무 당당하게 자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당보를 향해 눈썹 까지 들썩이며 거봐 없잖아. 라는 말을 하는 듯했다.
그치, 그 자리는 임자가 없긴 하지. 근데 내가 물어본 게 그게 아니었지 않나? 당보는 크게 숨을 드리시고는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자리가 없어도 나 혼자서 앉아 있을 생각이었고, 그리고 그 스테이크는 내꺼야.”
혼자의 시간을 방해 받은 것 부터 짜증이 나는데 심지어 고기가 까지 뺏겼으니 이 참담한 심정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스테이크는 또 시키면 되고, 두 개든 세 개든 나오는 대로 먹을 수 있지만 아까의 그 기분은 이미 박살이 나버렸다.
당보의 말에 여인은 잠깐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가 금방 사라졌다. 그리곤 고개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누가 모른대?”
라며 뻔뻔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보의 잔뜩 구겨진 미간을 봤을 텐데 오히려 그게 대체 뭐가 문제냐는 듯 당보를 바라보고는 마지막 조각을 썰었다.
인내심에 한계가 다가왔던 당보는 순간 진심으로 화를 내려다가 행동을 멈췄다.
“자.”
여성이 잘 썰려진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다시 당보의 앞에 돌려주었기에.
“…….”
지금 여성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당보는 여성과 스테이크를 번갈아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 했는데……. 원래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먹어.”
갑자기 나타난 여성의 의도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다.
“안 먹어?”
그저 멍하니 스테이크만 바라보다가 안 먹냐며 고개를 기울이는 여성을 힐긋 보고서 포크를 들었다.
한점을 푹 찍자 흘러나오는 육즙에 잠시 사라졌던 식욕이 다시 올라왔다.
그래, 먹는 건 먹어야지. 이 맛있는걸 어떻게 안 먹겠어. 고기를 가져가 입안에 넣고 한번 씹자 부드럽게 흩어지는 맛과 향이 일품이다. 역시 고기 요리는 사천 호텔이 뒤집어지게 잘 한다.
순간 옆에서 누군가 보고 있다는 사실도 있고 당보는 스테이크 한 점을 눈을 감고 음미했다.
아무리 유럽을 돌아다니며 미슐랭을 다 돌아다녀 봤어도 맛있는 건 맛있는 거다. 그런 생각에 눈을 뜨고 나서야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당보는 눈을 피하지 않고 금방 녹아 없어진 스테이크를 삼키고는 하고 싶었던 말 중 하나를 꺼냈다.
“나를 알아?”
“알지. 당보 잖아.”
쉽게 답하는 여성을 보고는 다시 스테이크 한점을 찍어 입안에 넣었다.
“잘 아네.”
스테이크만 먹어도 질리기에 옆에 있는 샐러드도 푹 찍어 먹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내가 소개팅이라든가 미팅이라든가 다 거절하고 결혼 안 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알고 있겠지.”
“……그건 몰랐는데.”
“소문 못 들었어? 심지어 저번엔 프랑스에서 여자한테 뺨까지 맞았다고.”
또 예상외에 답변을 듣자 당보는 보란 듯이 여인의 시선에서는 보이지 않았을 반대쪽 뺨을 돌려 보여줬다.
뺨에는 선명하지는 않지만 옅게 긁힌 상처가 두 개 나 있었다. 멀리서는 안 보이지만 어느 정도 가까우면은 충분히 눈에 띄는 그런 상처.
“이거 봐봐. 여기, 아직 상처가 남았어. 뭐, 흉은 안 지겠지만.”
다 아물어가는 상처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보여주고는 다시 고개를 내려 음식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먹다가 내려놓은 빵이 딱딱하게 굳기 전에는 다 먹는 게 좋았으니까. 한쪽에 놓인 수프에 푹 찍어 간이 스며든 얼마 남지 않은 빵을 한입에 넣었다.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보지 못 했다. 시선은 여전 음식들 위에서 맴돌며 다음에는 뭘 먹을지 고를 뿐이었다.
왜냐하면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대한 명성이 하도 자자해서 이 정도는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여성의 표정은 궁금하지 않았지만 다른 부분의 대해서는 궁금한 점이 생겼다.
자신을 잘 아는 듯 행동을 해놓고 정작 이런 부분에서는 모른다는 게 참.
내가 프랑스에서 뺨을 맞은 게 파파라치한테 찍히면서 인터넷 잘 안 하는 친구마저 언제 소식을 들었는지 뒤 늦게나마 내 뺨을 걱정해주기도 했을 정도로 당보의 소문은 이미 널리 널리 퍼져있는 상태였다.
그녀석도 SNS를 안 하지만, 여인은 그마저도 얼마나 안 하면 그런 반응인지.
“나의 대해서 안다며.”
“당보의 대해서 아는 거지.”
“내가 당본데?”
“알아.”
허……. 이상한 논리에 말문이 막힌 당보는 허탈한 숨을 내뱉으며 힘이 빠진다는 듯 등받이에 몸을 맡겼다.
잠시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가 인기척에 눈동자만 돌렸다.
먹는 것을 멈춘 당보에 앞에 여인이 포크로 회과육 한점을 당보의 그릇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와인도 마시라는 듯 잔을 미는 것을 보며 당보는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건내준 회과육을 거절할 생각이 없어 입에 넣었고, 밥도 한 숟가락 먹고서 마시라는 대로 와인도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였다.
잔을 놓고 팔꿈치를 상에 올리고 턱을 짚었다. 몸이 여성 쪽으로 조금 기울어지고 밖을 향했던 발끝의 방향도 바뀌었다.
“당신……. 진짜 이상한 사람인 거 알아?”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다 행패를 부리며 내쫓는 당보에게는 희귀한 일이었다.
어째서일까. 갑자기 이 여인의 대해서는 알고 싶어졌다. 호감이 있다기 보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는 말이 신기했다 정도의 호기심.
왜 이렇게 챙겨주는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스테이크도 그렇고 원래 챙겨주는 것은 내 쪽에서 해야 하는 게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챙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기분 나빠했을 것 같은데.
“여긴 왜 앉은 거야. 나한테 뭐 반하기라도 했어?”
“……그럴지도 모르지.”
잠시에 침묵 뒤에 크지 않게 울리는 목소리를 겨우 들었다.
설마 긍정 할 줄은 몰랐지만, 지금까지의 행동을 보면 납득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어째서인지 의문만 더 들었다.
영 알 수 없는 여인에 당보는 통유리로 된 창밖을 내다보며 여인에게 말했다.
“난 사천그룹 후계자에서 진작에 나가떨어졌고, 가진 것도 나 먹고 살 정도 밖에 되질 않아.”
앞으로도 사천그룹에 그 어떤 것도 받지 못할 거야. 받을 생각이 없고.
이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실망을 할까? 아니면 아쉬워하지만 괜찮다고 할까. 사실 어떤 반응이든 상관 없다. 너무나 익숙한 반응들이었으니까.
보통은 이렇게 말하면 절반 이상은 떨어져 나간다. 신문과 뉴스에 실린 소식으로 당보의 대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장자인데, 설마 아무것도 없을까 하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진작에 집을 나온 당보가 가진 것은 어릴 때 받았던 아파트와 상가 몇채의 땅덩어리 두어개 정도가 재산에 전부였다.
소시민의 마인드로는 먹고살기도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대단한 재산이지만, 여기 피라미드 꼭대기 층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찮기만 한 재산이다.
“그게 왜?”
“ …….”
무슨 반응이 돌아올지 예상이 되었기 때문에 궁금하지도 않아서 쓸데없이 야경을 내다본 것이었는데……. 여인의 반응에 다시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저런 답을 어떤 표정으로 내놓았는지 순간 알고 싶어져서.
당보를 바라보는 여인의 얼굴은 평온했다. 처음 봤을 때 그 얼굴 그대로.
아니, 눈썹이 살짝 휘어진 게 조금은 달랐다. 지금 여인의 표정은 아까처럼 '그걸 굳이 왜?'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어떤 균열과 실망감 하나 없이 투명하게.
여성의 얼굴에서 그 어떤 실망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 ……진짜 반해서 온 거야?”
“그래.”
의구심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 또한 깔끔했다.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여인은 질문을 받자마자 즉답을 내놓았다.
“허…….”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헛웃음. 그와 같이 마음에는 묘한 감정이 찾아왔다. 당보는 이것은 안정감의 한 종류라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다가오는 사람 중 당보만을 보고 찾아온 사람은 없었고, 당보는 그런 사람들에게 치이며 살았다.
친구들 마저도 몇 명은 당보에게 무언가를 기대를 했다. 물론 도와주지 않아도 당보의 친구들은 납득하고 지나치지만……. 항상 마음이 어딘가 불편했다.
오히려 유럽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이 편했다. 그들은 당보에게 아는 것이 없어 기대하는 것이 없었고 그 덕에 당보도 마음 편히 대화할 수 있었다.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라서 대다수는 대단하다는 반응만 보이고 당보를 궁금해했지, 사천그룹에 장자의 대해서 궁금해하지는 않았으니까.
당보는 지금 그때 그 사람들과 대화할 때 느꼈던 기분을 여인을 통해서 느꼈다.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 자신이 가진 것 보다, 그저 본연의 모습을 봐줄 때 느낄 수 있었던 그 안정감을.
“보통 회사 못 물려받는다 하면 다들 당황하면서 실망하거든.”
“그런 거엔 관심 없어.”
“그래 보여.”
오히려 기분이 살짝 틀어진 듯 구는 표정에 당보는 입꼬리를 올려 가볍게 웃었다.
그러네, 정말 하나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다시 떠올려본 여성은 쭉 당보만을 보고 있었다.
무슨 브랜드 옷을 입었고, 몸에는 어떤 악세사리를 착용했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오직 당보의 얼굴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얼굴만 보고 찾아온 사람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람들과는 또 어딘가에서 달랐다.
여성은 당보의 얼굴도 아닌 그 안에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당보라는 한 사람의 본질을 봐주는 듯한 투명한 붉은 눈동자는 참 묘한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뭐, 틈만 나면 반했다면서 쫓아다니는 사람이 많기는 했다만, 이건 좀 참신했네.”
흐릿하게나마 잠시 다른 사람들을 떠올렸다. 누구는 집안에 떠밀려 오기도 했고, 누구는 정말 첫눈에 반했다면서 쫓아다녔기도 했고. 할 말이 많았으나 결과적으로는 지금 당보는 인간한테 단단히 질린 참이었다.
처음에야 잘 돌려보냈다가 나중에는 이건 아니구나 싶어서 그냥 깽판을 부렸고.
어릴적에는 인신공격도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냥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비꼬길 시작했다.
밥을 왜 그렇게 조용히 먹냐, 머리 스타일에 내 취향이 아니다, 음식이 맛없다, 오늘 손가락이 아파서 집에 가야겠다 등등.
여성은 오는 족족 다 쫓아내기 나중에는 남자가 취향이라 오해를 한 것인지 남자까지 찾아와 반했다고 했을 때는 정말이지 대가리를 부여잡고 드러눕고 싶었었다.
짧은 공상을 마치고 당보는 지금까지 자신에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질문을 해보았다.
“그래서 당신은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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