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0
청명드림_침상4
부제:우리 집 침대 위로 동양 무협풍 남자가 떨어진 것에 대하여
청명 네임리스 드림
침상_3 [02:00]
본인을 상공이라 부르라 한 청명씨. 두 번째 만남에 냅다 같은 방에서 자자고 한 사람.
내게 갑자기 훅 다가왔던 것과 달리 그는 생각보다 규칙을 잘 지켰다. 그날. 그에게 너무 놀랐냐느니 규칙을 정하느니 하며 한 이야기들 속에 든 것이 그에게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며 그어둔 선임을 알았는지, 그는 혹여 그 선을 넘을까 노심초사하듯 나와 우연히 마주칠 때도 잘 자라는 간단한 밤 인사만을 할 뿐으로, 그때처럼 갑작스럽게 거리를 좁혀 오려 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와의 사이가 그때 이후로 그대로였느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불법 침입자라 칭한 이에게 친근감을 느끼냐고 한다면 할말이 없었으나, 밤만 되면 집에 찾아와 매일같이 함께 있는 이에게 친근감을 느끼지 않는 것 또한 신기한 일이었다. 애초에 그에게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정이 생기는 것 정도야 쉬웠다.
분명 외로웠던 탓도 있을 것이다.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 쭉 홀로 데운 공간에 다른 이의 온기가 생긴다는 것은 그렇게 무시하기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 그가 사용한 잠자리를 치우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물을 마시러 나간 거실에서 불룩한 침대를 마주해도 더이상 놀라지 않았다. 저녁을 하기 귀찮아 배달 음식이라도 시켜 먹을 적에는 그의 몫을 따로 덜어두기도 했다.
요즈음에는 늦게 잠드는 밤이면 내 침대 가에 앉아 그가 언제 도착할지 재고 있다가, 눈이 맞으면 어색한 듯 인사하는 것도 슬슬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 장황한 변명의 뜻은⋯ 그러니까 적어도,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있는 이를 걱정하여 다급해질 정도의 친근감과 정을 내가 그에게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청명 씨! 일어나봐요."
더군다나 평소 같으면 오전 7시 반이란, 그가 이미 집에 돌아가고도 남을 시간이다. 내게 다른 일정이 있어 일찍 일어날 때도 이미 자리에 없던 경우가 허다한 사람이 아직도 누워있다면 분명 무슨 일이 생겼을 것이 자명했다. 베갯잇과 이불이 젖을 만치 흘린 땀에 그의 이마에 손을 대보았다. 열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청명 씨⋯!"
"으⋯,"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자, 인상을 찌푸린 그가 뒤척이며 신음을 냈다.
"정신 좀 차려봐요. 어디 안 좋아요?"
"부인⋯."
그가 어깨를 잡은 내 손을 휘어잡았다. 내 목소리를 듣고 앞에 있는 게 나인 걸 알아차린 건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부른 그가 살며시 눈을 떴다.
"괜찮아요?"
멍한 눈으로 나를 확인한 그가 입꼬리를 올려 작게 웃었다.
"당연히 괜찮지⋯."
그러고는, 그러고는⋯ 다시 잠들어버렸다. 그래, 잠들었다.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안정된 숨소리로 새근거리며 잘 자고 있었다.
"청명 씨? 상공?"
어찌나 잘 자는지, 그를 다시 깨워보려 어깨를 아무리 흔들어도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방금 잡은 내 손을 자면서도 놓으려 하지 않아 때어놓는 것이 고역이었다. 일전 그가 나를 껴안았을 때 느낀 감정을 이런 것으로 또 느끼게 될 줄이야. 자고 있는데 힘이 왜 이렇게 강한거야. 사람이 자면 몸에 힘이 풀려야 하는 거 아닌가?
"청명 씨, 이것 좀 놔보실래요?"
안간힘을 쓰며 그의 손가락을 때어놓으려 애썼지만, 이전 나를 끌어안았을 때처럼 제힘을 증명이라도 하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 출근해야 하거든요⋯!"
자는 사람 손아귀 힘이 이렇게까지 강할 필요가 있나? 그의 손이 이렇게 큰데도 그 사이로 내 손가락 하나 들어가지 않는다.
"상공–, 제발 놓아주시겠어요? 제발!"
스르륵, 툭.
힘이 풀린 그의 손이 침대 위로 떨어졌다. ⋯이 사람 깨어있는거 아니야? 내가 손으로 때어낼 때는 꿈쩍도 하지 않던 것이 상공이라고 부르니까 순식간에 떨어지는게 말이 되냐고.
"저기요? 일어나있죠. 눈 좀 떠봐요. 저기요?"
여전히 답이 없다. 거기에 이번엔 또 무슨 꿈을 꾸는지, 입맛을 다시고 실실 웃으며 자고 있었다.
"아니,"
우웅–.
알람이 울린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7시 50분. 마지막 알람이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무조건 지각이다. 급하게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문을 나서기 직전, 불을 끄며 뒤를 돌아 즐겁게 자고 있을 그를 바라봤다.
"오늘 밤에 봅시다."
방 안은 작은 숨소리를 제외하고는 아주 고요하다. 마지막으로 본 그의 표정이 아주 피어있던 걸 생각하면 지금 그에게 더 이상의 걱정은 쓸모 없을 것이다. 아까 그렇게 식은땀을 흘린 것도 아마 악몽이라도 꿨던 것일테다. 아직도 여기 있는 거면 늦잠이라도 자나? 수많은 의문이 들지만 지금 해결할 수는 없다. 대신 밤에 만나면 할말이 아주 많을 것이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계획한 일들이 모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퇴근하고 문을 연 집 안에서 그를 발견한 나의 심정을 서술하시오. 아직 할 말이나 마음의 준비는 하나도 안 되었는데.
"⋯왜 있어요?"
내가 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 있었는지, 문을 열자마자 제 배에 손을 얹고 있던 그와 눈이 맞았다. 나를 확인한 그가 자신의 배 언저리를 문지르던 것을 그만두고 입을 열었다.
"글쎄."
신발을 벗던 걸 멈추고 그가 있는 쪽을 흘끔 바라봤다.
"글쎄라뇨. 모르신다는 거예요?"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안 됐나 보지."
거실을 밟을 때 들려온 그의 태연한 대답에 미간을 찡그렸다.
"지금 오후 일곱 시 반 정도밖에 안 됐거든요. 원래 한창 활동하던 시간이잖아요. 아침에도 안 일어나고. 휴가라도 받았어요?"
"휴가?"
휴가가 뭔지 모르진 않을 텐데. 내 방으로 향하며 본 그의 얼굴을 보니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표정이다. 휴가는 아닌 것 같고, 일을 그만뒀다던가. 하지만 그랬으면 보통 휴가 이야기하자마자 좋아하거나 슬퍼했을 텐데. 항상 주말 늦잠같은건 없는 사람처럼 늘 일찍 일어나 자리에 없던 사람이니 이상하게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다.
분명 아까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안 됐다고 했지. ⋯아직? 내 방 문고리를 잡은 채 휙 그를 돌아봤다.
"혹시 오늘 계속 여기 있었어요?"
"응."
내가 이 질문을 하리라는 걸 알았다는 듯 표정과 목소리에 변화가 없다. 문득 오늘 아침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을 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침에 느꼈던 다급함과 불안이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태연을 가장해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오늘 아침에 악몽이라도 꾸는 것 같던데."
"그냥 비무 좀 했어. 그보다 부인, 집에 음식 있어? 어젯밤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배고파서 배에 손을 얹고 있었나. 그보다 비무? 그가 말하는 단어들은 내가 아는 것들과 영 동떨어져 있어서, 바로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일전 상공이나 가가도 그렇지 않은가. 찾아보려 했는데 너무 바빠 잊고 있었다. 설명하라는 뜻을 담아 선 채로 그를 빤히 바라보자, 그가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입을 열었다.
"대련이랑 비슷한 말이야. 대련은 아려나?"
대련, 그거 싸웠다는 거잖아. 순간 떠오른 생각에 가방을 던지듯 내려놓고 급히 그에게 다가가 그가 앉아있는 소파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는 바로 앞에 다가온 나에도 여전히 태연한 얼굴을 하고 나를 보고 있었다.
"크게 다쳤어요? 의식불명이라도 된 거 아니예요? 잠을 자면 이곳에 오는 건데, 그게 결국 의식이 없다는 말이잖아요. 아침부터 계속 여기에 있다는건 잠깐이라도 못 일어났다는 건데⋯."
"괜찮아. 멀쩡할 거야."
"안 멀쩡하니까 못 일어나죠!"
"죽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어?"
"위중할지도 모르잖아요!"
"부인이랑 여기서 좀 오래 있는 거지, 뭐."
황당하다. 지금 본인이 위중한건 신경도 안 쓰이는거야?
"비무 가지고 죽지는 않아."
"지금 그게 중요해요? 의식불명일 정도로 큰 상처인데 안 죽으면 되는 거냐고요."
그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걱정이 어려있을 내 표정과 달리 그는 여즉 태연하기만 했다.
"부인, 걱정하지마. 그리 걱정되면 검법 펼치는거라도 보여줄까? 배고프니까 밥 좀 먹고."
"저쪽에서의 몸이 아픈 건데 지금 증명해서 뭐 해요!"
벌떡 일어났다. 말이 안 통해. 사람이 걱정하는데 괜찮냐느니 배고프다는 말만 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기다려봐요. 먹을 거 시켜줄 테니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전에 준 새우 올라간 게 맛있던데."
그에게 준 새우가 들어간 음식이라고 하면 하나뿐이다.
"피자요. 잠깐만 기다려요."
그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주워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마자 그곳에 등을 기댔다. 문에 뒤통수를 몇 번 콩콩 찧었다.
"아⋯."
지금 같은 집에 있다고는 해도 서로 그렇게 교류하지도 않은 사람한테 과한 참견이었을까? 아니, 보통 얼굴만 사람이라도 위독하다고 하면 걱정되잖아. 아니면 비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라 그 사람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문밖에 있을 그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더 자세히 물어볼까?
⋯대답 안 해줄 것 같지, 아마. 계속 배고프다며 말을 돌렸잖아. 배고프다고 한 것도 거짓말이라던가.
"에휴."
그는 전부터 생각보다 저에 대해 해주는 말이 없었다. 고민해서 뭣해. 옷장을 열어 가방을 집어넣으며 휴대폰으로 배달 앱을 켰다. 본인이 멀쩡하다고 하는데 더 이야기하는 것도 실례일지도 모른다. 대련 도중 어디 머리라도 찧어서 가벼운 뇌진탕이 온 정도일 수도 있다.
스크롤을 내리던 손가락을 멈췄다. 정말 그런거라면 내가 엄청 호들갑을 떤 것일테다. 그 스스로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겠는가. 그 생각을 하니 민망함이 몰려와 열굴이 열이 오른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전에 시켰던 피자집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혹시 만약 조금 더 심각한 경우라 하더라도, 아플 때는 잠이 보약이라고도 하니까. 잘 자고 잘 먹으면 정말 멀쩡해지겠지. 가슴 속에 작은 불안이 남은 채 걱정을 털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 거실로 나왔다. 여전히 내가 내어준 침대 위에 얌전히 앉아있던 그가 나를 돌아봤다. 그에게 배달 시간을 알려주며 욕실 문을 열었다.
"저 씻고 나올게요. 피자는 30분 정도 걸린다니까, 배달 오면 음식 좀 받아줘요."
"부인."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었다.
"왜요?"
"30분이 얼마야?"
⋯모르나? 모를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모르면 전에 내가 세 시라고 할 때도, 아까 일곱 시 반이라고 할 때도 왜 알아들은 것처럼 가만히 있었던 거야.
"청명 씨⋯ 상공네는 시간 단위가 어떻게 돼요?"
청명 씨라고 부르자 가늘어지는 눈에 급히 호칭을 바꿔 불렀다. 내 정정에 눈가를 편 그가 짧은 고민 끝에 간단한 설명을 내놓았다.
"차 마실 정도의 시간이 일각, 더 길면 한 식경, 그것보다 더 길면 한 시진."
"으음⋯. 그걸로는 감이 안 오는데. 한 식경에 보통 뭐해요?"
"흠, 보통 밥시간이 반 시진 정도. 반 시진의 반이 한 식경."
밥시간⋯ 점심시간으로 치면 반 시진이면 한 시간 정도일 거고, 그 반이 한 식경이면 이쪽은 30분이겠네.
"그럼 한 식경 정도 걸릴 거예요. 아, 차라리 핸드폰을 드릴게요."
방으로 돌아가 핸드폰을 가져와 그에게 건네줬다.
"전에 봤죠?"
"크흠."
그가 민망한 듯 헛기침했다.
"어차피 잠금 걸려있어서 괜찮아요. 여기 버튼⋯,"
버튼이 한자어로 뭐지? 생각이 나지 않아 직접 손으로 전원 버튼을 눌러 보여줬다.
"여기 튀어나온 걸 누르면 화면이 켜지거든요? 지금 일곱 시 사십 분에 시켰으니까 여덟 시 십 분이 되면,"
"이게 숫자야?"
"네?"
그게 무슨 말이지. 그를 휙 돌아보자, 그가 화면을 보며 눈가를 찌푸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내가 설정해둔 사진을 배경으로 상단에 위치한 아라비아 숫자로 이루어진 디지털 시계. 순간 그가 살아왔을 시대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아, 맞네. 옛날 사람이 아라비아 숫자를 어떻게 알아. 한 일, 두 이로 이루어진 한자 수를 알지. 그도 내가 삽십, 일곱 시 등을 말하니 이게 숫자라는 것만 겨우 알아차린 모양이다.
"음, 으음⋯."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하지. 생각해 보니, 배달 받아달라고 말하기는 했는데 그가 문을 열어줄 수 있을까? 여기는 아래에서 문을 열어줘야 현관 앞으로 올라올 수 있는 구조다. 인터폰으로 아래쪽 문을 열어줘야하는데⋯.
차라리 초인종이 울리면 열어달라고 해야겠다. 시간을 알려줄 게 아니라 이걸 말했어야했구나. 문 근처의 인터폰으로 가 그를 불렀다.
"이쪽으로 오세요."
"가도 돼?"
내 부름을 들은 그가 침대 헤드에 기댄 채로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가도 되냐니, 그게 무슨 뜻이지. 소파베드 자리를 준게 거기에만 있으라는 이야기라고 생각한건가.
"거기에서 나오지 말라는 뜻은 아니었는데요."
"너무 가까이 가는 걸 싫어하는 것 같길래."
"⋯괜찮아요. 싫었으면 아까 가까이 가지도 않았죠."
그가 그제서야 느린 동작으로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침대 끝자락에 널브러져 있던 옷가지들이 흘러내렸다. 둘째날 그가 벗어던진 옷들과 같은 것들로 보였다. 옷걸이라도 줘야 하나. 옷장에 남은 옷걸이가 있던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온 그가 내 옆에 딱 붙어섰다. 내가 와도 된다고 했지만 좀 가깝지 않나? 인터폰을 같이 보려면 붙어야 하는 건 맞는데⋯.
의식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그를 애써 무시하며 가능한 쉽게 설명하려 생각을 정리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안 된다. 나는 지금부터 조선시대 사람에게 설명하고 있는 거야.
"초인종이 눌리면, 소리가 나면서 여기 화면에 불이 들어오거든요. 그러면서 움직이는 그림⋯이 나타날 거예요."
"그림이 움직인다라⋯."
"네, 사람이 움직일 거예요. 보통은 알아서 누군지 말하니까 배달왔다던가, 피자 배달이라던가 말하는 걸 확인하시고, 이쪽 가장 왼쪽 버튼을 누르고 가운데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려요."
"어디 문이 열려? 여기는 내가 열면 될 듯 싶은데."
그가 우리 집 현관을 가리켰다.
"음."
뭐라고 해야 하지. 옛날에 아파트나 빌라 같은 게 있었을 리는 없고.
"여기 말고 더 바깥쪽 문이 열려요. 저 아래층. 대문?"
"내가 나가서 기다리는 건?"
내 곁에 서있는 그를 올려다봤다. 뒷짐을 지고, 인터폰을 보느라 상체를 살짝 숙인 채로 고개를 살짝 비틀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겠는데. 덩치도 생각보다 더 크다. 서있으니 앉아서 볼 때보다 훨씬 위압감도 있는 것 같고. 그가 내 눈을 빤히 보고 있는 게 괜히 어색해 눈을 도륵 굴렸다.
"그것보다는 여기에서 열어주는 게 편할 거예요."
"왜?"
"설명하기 복잡한데⋯ 나가보면 금방 이유를 알 거예요. 일단 지금은 이렇게 해주세요."
"그래, 뭐. 부인이 말한 대로 할게. 소리가 들리면 운송인지 확인하고, 우측을 누르고 중앙을 누른다. 맞지?"
"네. 그러고 조금 있다가 초인종이 한 번 더 울리면 이쪽 현관에 두고 간 거니까 들여놓으면 되요."
집 앞 현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가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 듯 눈썹을 들썩였다.
"두고 가? 직접 전달하는 게 아니라?"
"네. 두고 가달라고 써뒀거든요. 괜찮아요. 분실 위험은 거의 없으니까."
"흐음⋯. 그래, 부인이 그리 말하니까."
그와의 대화는 질문이 많은 것 같다. 서로 살던 환경이 너무 달라서 그런가. 현관에서 음식 받는 거 하나 설명하는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그리고 부인의 말대로 한다는 소리를 왜 자꾸 하는 거야, 사람 민망하게. 티 나지 않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제 됐죠? 현관문 여는 방법을 모르시진 않을 것 같고, 배고프다고 하셨으니까 먼저 드시고 있어도 괜찮아요."
"기다릴게. 느긋하게 씻고 와, 부인."
욕실로 향하던 발이 순간 멈췄다. 저 말, 뭔가⋯ 민망하지 않나. 아무렇지 않은 표정의 그를 보니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 호칭을 그냥 두고 있는 내가 잘못하는 걸까? 입을 우물거리다 결국 그를 지적하는 걸 그만두었다.
"⋯빨리 씻고 올게요."
"천천히 다녀와."
발치에 늘어진 끈 몇 개를 질질 끌며 그가 제 자리를 찾아가듯 소파침대로 향했다. 저 끈들, 자다가 풀린 것 같은데. 잘 때 완전히 안 풀어두는 건가? 그의 복장과 함께 일전 침대를 내어줄 때 그가 내게 잠옷이 있는지 물어봤던 것을 떠올렸다. 옷이 자기에 영 편해 보이진 않았지. 정말 잠옷 하나 사주긴 해야겠는데. 근처에 옷 살만한 곳이 있던가. 몸 아픈데 잘 때라도 편해야 하지 않나.
아니, 한 번 신경 쓰기 시작하니 계속해서 이것저것 떠오르는 게 씻으면서도 자꾸 생각난다. 씻으러 들어오기 전에 몇 시였지? 백화점은 적어도 여덟 시면 문을 닫을거라 못 갈 거고, 다른 곳이 있나? 마음이 조급해져 급하게 물을 틀었다.
아. 눈에 샴푸 들어갔어.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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