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상

20:15

청명드림_침상5

Key by 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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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우리 집 침대 위로 동양 무협풍 남자가 떨어진 것에 대하여

  • 청명 네임리스 드림

침상_4 [7:30]


문을 열자 후끈한 욕실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갔다. 상대적으로 차가운 거실의 공기에 몸이 움츠러든다. 허여멀거한 덩어리가 식탁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아하니 배달도 잘 받은 것 같은데. 풀어놓고 있나? 소매도 걷 올리고 꽤 의욕적이다.

"피자 받았어요?"

식탁 앞에 덩그러니 서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피자를 왜 안 꺼내뒀지. 가까히 다가가니 그는 봉지 입구 부분을 양손으로 꽉 잡고 있었다. 그것을 구겨진 미간으로 내려다보던 그가 내 부름을 듣고 퍼뜩 놀라며 돌아봤다. 뭐지? 나를 보고 묘하게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이 이상해 그의 곁으로 다가가 봉지를 내려다봤다.

"부인, 그⋯."

그가 제 손으로 구겨 가리고 있던 피자 봉지 윗부분을 펼쳐 보였다. 비닐봉지 윗 매듭이 찢긴 모양새. 배배 꼬아진 봉지 윗부분이 옆에서 달랑거리는 걸 보아하니, 가게에서 너무 꽉 묶어서 풀다가 찢어먹은 모양인데. 나도 모르게 그의 드러난 팔뚝으로 시선이 돌아간다. 무슨 사람 근육이⋯. 저 정도면 안 뜯기는 게 이상한 걸지도 모른다.

"보자기가 찢겼는데."

우물쭈물하던 그가 이내 입을 열었다. 보자기. 비닐봉지가 보자기. 나로서는 가히 충격적인 말이었다. 사용 방법을 생각하면 그렇게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사실 따지고 보면 비닐봉지도 여러 번 사용하기 위한 리사이클링 보자기로 쓰려고 만들어진 거니까. 난처한 표정과 목소리를 보이는 그에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고 그를 안심시키려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큽⋯, 원래 잘 찢어지는 소재라. 옆에 접어두시면 쓰레기 버릴 때라도 쓸게요."

"그래⋯."

작게 대답한 그는 여전히 봉지 입구를 잡고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괜찮은데. 움직이지 않는 그 대신 벌어진 봉지 입구 사이로 손을 넣어 피자 박스를 꺼냈다.

툭, 투툭.

머리를 숙인 탓인지 박스 위로 머리에서 떨어진 물이 튀었다. 머리부터 말리고 올걸 그랬나. 목 옆으로 떨어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려 하자, 옆에서 그것을 보던 그가 어깨에 걸친 수건을 빼 내 머리를 감쌌다. 말려야 하나? 흘끗 바라본 시선 끝의 그가 봉지 안을 바라보고 있어 그냥 두기로 했다. 물 떨어지니까 감싸준 거겠지. 과대해석 하지 말자.

"고마워요."

봉지에서 나머지 것들을 꺼냈다. 탄산음료는 없나? 요즘 기본으로 안 넣어주는 곳이 너무 많단 말이야. 피자 박스를 열고 피클을 뜯어 함께 두었다. 포크, 포크⋯. 작은 포크 두 개를 꺼내 식탁 자리에 하나씩 두고 그를 바라봤다. 음, 포크 쓰는 법을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꽤 직관적이고. 

"정말 먼저 먹어도 괜찮아요. 저는 머리 좀 말리고 올게요."

"말려줄까?"

"아뇨. 괜찮–아요."

"필요하면 불러."

머리 감싸줄 때 말릴걸. 한 번 접촉을 묵인하니까 더 해도 되냐는 소리가 나오지. 필요하면 부르라니,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방문을 닫고 화장대에 앉아 시간을 확인했다. 머리를 말리는데 빠르면 오 분, 지금은 여덟 시 십팔 분. 잠옷은 내일 퇴근길에나 사 와야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차를 타고 나가지 않는 이상 이 시간에 옷을 살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리고 나는 자차가 없지⋯.

그에게 대신 입힐 수 있을 만한 옷들을 떠올리며 드라이기를 켰다. 상의는 오버사이즈 티가 있으니 괜찮을거고⋯, 하의가 문제인가. 그건 입던 걸 그대로 입어야 할지도. 옷장 속의 옷들을 떠올리며 머리를 말리고 있자 드라이기 소리 사이로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가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 기운에 눌려 나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몸을 화장대 쪽으로 붙였다.

"무슨⋯ 일이예요?"

"부인이야말로–,"

그가 내 손에서 윙윙대는 소리를 내는 드라이기를 노려봤다. 큰 소리가 나서 들어온 건가? 그래서 방문 닫은 건데.

"괜찮아?"

"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건 뭐야?"

"머리 말려주는 기계예요. 뜨거운 바람 나오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드라이기를 바라보는 그의 손을 당겨 그 위에 바람을 쏴주었다. 내 손이 닿자 순간 움찔한 그가 바람을 확인하고는 얼굴의 힘을 풀었다. 큰 손에 단단히 들어가 있던 힘도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작게 숨을 뱉었다.

"그래⋯. 무슨 일 생긴 거 아니면 됐어."

"놀랐어요? 저 정말 괜찮아요."

"이상한 소리가 나서 보러 온 것뿐이야. 무슨 일 없으면 됐어. ⋯멋대로 들어와서 미안."

그가 내게 잡힌 손을 빼어 돌아나갔다. 놀랐다 힘이 빠진 듯 조금 처진 듯한 어깨는 덤이었다. 드라이기 소리가 그렇게 놀랄만큼 큰가? 손에 들린 드라이기를 몇 번 흔들었다. 음, 옛날에는 집에서 이런 소리가 날 일도 없었을테니 놀랄만 하겠구나. 내가 배려가 부족했네. 

그러고 보니 청명 씨도 씻어야 하지 않나? 아침에 땀 흘리고 잤으니까 썩 찝찝할 텐데. 지금 바로 씻게 해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식어버릴 테니까⋯ 일단 피자부터 먹고, 욕실 쓰는 법을 알려줘야겠다. 씻는 동안 빠른 세탁 돌리고 탈수 건조하면 바지는 어찌저찌 오늘 안에 입을 수는 있을 거다. 


"다음부터는 방에 찾아오면 노크하고 들어와요."

손을 접어 각진 부분으로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렇게 보여주면 굳이 더 설명할 필요 없겠지. 예상대로,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만족스럽네. 역시 바디랭귀지가 최고라니까.

토마토 냄새가 나는 거실 식탁. 그는 내가 꺼내준 피자 박스를 열고 내가 미처 꺼내지 못한 호일 그릇도 함께 올려둔 식탁 앞에 자리 잡고 앉아 제가 선언한 대로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인 동그란 피자. 혹시 말을 잘 안 듣는 타입인가? 먼저 먹어도 된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 아니면 혼밥은 잘 못하는 타입이라던가.

"잠시만요. 앞접시만 가지고 갈게요."

"응."

그가 망설임 없이 일어서서 내 곁에 섰다. 여차하면 나 대신 그릇을 꺼내줄 기세였다. 그냥 기다려도 되는데. 머리 쪽에 위치한 선반을 열어 그릇에 손을 뻗었다. 좀 안쪽에 뒀던가. 안 닿네. 까치발을 들어 작은 그릇 하나를 꺼냈다. 하나를 더 꺼내려 싱크대 근처에 올려두려 하자 그가 자연스레 받아가는 것을 흘끔 바라봤다. 나름 내 손바닥만 한 크기인데, 그의 손에 들어가니 훨씬 작아 보인다.

"그냥 들고 먹어도 되는 거 아닌가? 일전에 그리 먹었던 것 같은데."

"배고프다고 해서 스파게티도 하나 시켰거든요."

그는 일전 내가 남겨둔 피자 네 조각을 다 먹은 전적이 있었다. 저 덩치를 유지하려면 그 정도 먹는 것쯤이야 당연하겠지. 오늘 대련 했다고 하는 걸 보면 몸 쓰는 사람일거고. 그런 사람이 배고프다고 했으니 얼마나 더 먹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물론 내가 먹고 싶기도 했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이것저것 먹겠어.

"스파게티?"

"피자를 맛있게 먹었으면 이것도 마음에 들 거예요. 면은 좋아해요?"

"잘 먹지."

다시금 까치발을 드는 내 쪽으로 그가 몸을 기울였다. 한 손에는 여전히 작은 그릇을 든 채로 여유롭게 다른 하나를 꺼낸다. 내가 할 수 있는데. 그를 슬쩍 올려보다 나를 내려다보는 이와 눈이 맞았다. 어째서인지 늘 그렇다. 눈을 굴리다 그에게서 시선이 멈추면,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와 시선이 맞는다. 한 번의 깜빡임도 없이 그 눈에 새길 듯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에 나도 모르게 함께 그를 마주하고 마는 것이다. 

순간 말을 잃어 머뭇거리는 내게 그가 접시를 보여준다.

"이거 맞아?"

"아, 네⋯. 고마워요."

"뭘."

내게 붙어있던 몸을 때며 그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계속해서 느끼지만⋯, 그의 거리감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다.


"하루 이틀이면 돌아갈 거야."

"네?"

그가 포크로 서툴게 면을 말며 말했다. 방금 입에 한껏 넣었던 피자는 이미 다 삼켰는지 부풀었던 볼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적어도 하루 이틀이면 정신 차릴 거야. 오늘 이미 하루가 지났으니, 못해도 내일은 일어나겠지. 너무 걱정할 거 없어."

내가 걱정하던 걸 신경 쓰고 있었나. 아예 아무 말 안 해주려는 줄 알았는데. 그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남아있던 답답함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요⋯. 크게 안 다쳤으면 다행이죠. 많이 먹어요."

"응, 이거 맛있네."

음식이 만족스러운지 그의 목소리에서 그가 들뜬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조금만 맛보더니, 마음에 들어 욕심이 생겼는지 그는 포크에 면을 말아 큰 덩어리를 만들고 있었다. 다만 그가 포크에 익숙지 않은 탓인지 그게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포크에 엉성히 감겨있던 면들이 주르륵 흘러내려 면 몇 가닥만이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었다.

"⋯젓가락 드릴까요?"

"있어?"

그가 반색해 나를 바라봤다. 포크가 마음대로 안 되는 게 꽤 불편했나 보다.

"저기 식탁 끝에 수저통 있어요."

"아."

그의 바로 왼편 끝을 가리켰다. 원래 남의 집에 있는 물건들은 바로 옆에 있어도 못 찾는 법이지. 그가 식탁 끝으로 손을 뻗어 젓가락 한 쌍을 꺼냈다.

"부인은?"

"전 이게 편해요."

그가 젓가락을 익숙하게 제 손에 얹었다. 처음부터 젓가락으로 줄걸 그랬나. 바닥부터 긁어 욕심껏 뭉텅이로 면을 들어 올리는 그의 손을 따라 치즈가 길게 늘어졌다. 잘 먹네⋯. 이 정도면 윙도 같이 시켜도 될걸 그랬어. 이거 다 먹고도 배가 다 안 찰지도.

"양은 충분해요?"

입에 면을 한껏 집어넣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히 배고팠나 본데⋯. 먹을 때마다 입 안을 음식이 가득 채우고 있다. 나는 피자는 두 조각만 먹었고, 스파게티도 한두 입만 먹었으니 대부분은 그의 몫이었는데도 피자나 스파게티나 거의 남은 음식이 없다시피 했다. 거의 다 먹었는데도 계속해서 먹고 있네. 남은 면을 싹싹 긁어먹는 그를 보다 문득 생각난 것을 입에 담았다.

"상공. 다 먹었으면 씻을래요?"

"엉?!"

"아침에 땀 흘리면서 자기도 했고, 하루 종일 찝찝했을 거 아니예요."

여전히 빵빵한 볼은 한 채로 그가 퍼뜩 고개를 들어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요? 뭐 이상한 거 있어요?"

그가 입안에 한 움큼 머금은 것을 겨우 씹어 삼켰다. 목이 막힌 듯 제 가슴께를 두드리는 것에 급하게 물을 꺼내 건네줬다.

"괜찮아요?"

"괜찮, 괜찮아⋯, 씻을 수 있으면 좋지."

"옷은 욕실 들어가서 내어주면 세탁기 돌릴 거예요. 갈아입을 옷 말이예요, 상의는 저한테 큰 티가 있는데⋯ 바지는 맞을만한 게 없을 것 같아서 건조기 돌릴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그래."

"한 시간 반⋯, 넉넉 잡아 두 시간이니까 한 시진 정도면 될 거예요."

싱크대에 접시를 내려놓고 그에게 다가갔다. 옷에 딱히 튄 소스는 없어 보이고⋯. 

"잠시만요."

그의 소매를 슬쩍 문질렀다. 꼭 손빨래 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지? 흘긋 바라본 그의 접시 위가 비어있었다.

"다 먹었어요? 나머지는 제가 치울 테니까 일단 씻어요."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널브러진 식탁을 한 번 쳐다본 그가 순순히 나를 따라 욕실 앞으로 향했다. 그를 욕실 안으로 밀어 넣기 전, 환기를 위해 열어둔 욕실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물을 트는 건 딱히 어려울게 없다. 몸을 씻는 방법 정도야 다 큰 어른이니 알아서 할 것이다. 내가 갑자기 직면한 문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비누라는 것이 있냐는 것이다.

창포물에 머리 감는다는 소리를 들어보긴 했어도 그게 거품이 나는지 안 나는지도 모르는데. 곁에 우뚝 서서 얌전히 내 손에 팔을 내어준 그를 올려다봤다. 나를 내려다보는 그가 지금 따라 왜 이렇게⋯ 순진해 보일까. 


"시원하다."

머리를 탈탈 털며 나온 청명 씨가 한 말이었다. 위에는 내가 준 오버사이즈 티를 입고, 아래에는 내가 일러준 선반에서 꺼낸 듯한 큰 수건을 두른 채였다. 그가 현대의 문물에 익숙하지 않아 생각보다 오래 씻었지만, 건조기는 이제야 막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못해도 이십 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줄래요? 아직 건조중이라."

그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수건이 무릎 너머까지 내려와서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썩 민망한 상황이 될 뻔했다. 티도 조금 끼지만 잘 맞는 것 같고. 바지만 잘 마르면 해결이⋯.

잠깐, 그러고 보니 속옷은? 그가 벗어 준 것 중에 속옷이 있었나? 그가 바지를 내어줄 때 정갈하게 접어줘서 그 안에 있겠거니 싶어 따로 물어보지 않았다. 그도 나에게 속옷을 보여주기 민망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그대로 세탁기에 넣었는데. 건조기에 넣을 때도 그냥 뭉텅이로 넣어서 제대로 확인을 안 했다. 

그렇다고 지금 물어보는건 피차 더 민망할 게 분명하다. 세탁기에 들어갔으면 일부러 말을 안 한 것이고, 제 손으로 빨았으면 마르지도 않았을 텐데. 아니 애초에 옛날에는 속옷을 뭘 입었지?

고민 끝에 벌떡 일어나 외투와 지갑을 챙겼다. 덜 민망할 방법. 갑자기 일어나 움직이는 나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저 편의점 좀 다녀올게요. 뭐 좀 사 오려는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이 시간에? ⋯조금 기다렸다가 나랑 같이 가."

커튼을 열어둬 훤히 보이는 창밖은 어둑하고, 시간은 이미 아홉 시를 넘었다. 아마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 그가 살던 시대에는 지금 시간에 혼자 돌아다니는 건 썩 위험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옛날이 아니고, 오 분 거리 편의점 다녀오는 것 정도는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괜찮아요. 금방 다녀올게요."

"뭐 사려고. 급해?"

급하게 당신 속옷을 사러 갑니다만. 당사자에게 당신이 속옷을 어찌 처리했는지 모르겠어서 사러 간다고 하는 건 좀 웃기지 않나? 생각해 보니 사이즈도 모르네. 적당히 큰 걸 주면 봐서 허리 바느질이라도 해서 입을 수 있겠지. 아니, 편의점 상품은 다 프리사이즈려나. 사본 적이 있어야 알지.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머뭇거렸다. 

아니지. 어차피 바지도 없는 거 내가 나간다고 따라오지는 못하겠네. 나를 따라오는 그의 시선을 느끼며 현관문을 박차고 나갈 준비를 했다. 문을 조금 연 채 그를 돌아보고 외쳤다.

"상공 속옷 좀 사 올게요. 잠깐만 기다려요!"

빠르게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그가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발을 움직였다. 대답을 듣는 게 더 민망해. 가져다주면 알아서 입겠지. 사실 건조기가 다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는 것을 지우기 위해서는 그와 잠시 떨어질 필요가 있었다. 

일단 그에게 제대로 된 것을 뭐라도 입혀두면 나도 그 수건 속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더는 신경 쓰이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청명이 속옷 입었습니다. 손빨래 하고 내력으로 말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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