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계의 주인

[당보청명] 명계의 주인 一

인간 당보 x 명계의 주인 청명

風淸月朗 by 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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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의 주인 공지 사항

글의 주의사항과 올리는 주기가 적혀져 있습니다. 짧게 썼으니 본 편을 읽기 전 한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https://posty.pe/ptrzds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항상 같았다.

하늘에 떠 있는 고요한 달과 눈 앞에 펼쳐진 끝이 보이지 않는 깊고 어두운 강.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면 오늘도 어김없이 뿌연 안개로 가득 채워 시야를 가리고 있다.

이 공간에서 손을 드는 것도, 걷는 것 조차 할 수 없다. 그저 고개를 돌려 하늘과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전부였다.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 언제 끝날지. 어떤 행위를 할 때 이 곳에 들어오는지 조차 알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깨어나기를 바라며 짙은 안개로 흐려진 하늘 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 뿐.

명계의 주인 一

-년 만에 돌아오다

“ ……요.”

“ …….”

“ …나…세요.”

“ …….”

“도련님!”

“헉!”

갑작스레 폐로 들어오는 찬 공기와 함께 번쩍 눈이 떠졌다. 순간적으로 멈춰버린 생각에 잠시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차오른 숨을 진정시키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니 그제서야 차 문을 잡은 채 걱정하는 눈빛으로 서서 기다리는 기사 아저씨가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아…….괜찮아.”

“도련님, 도착했습니다.”

“그래……. 오늘도 고마워.”

다시 예를 차리는 아저씨를 보면서 시트에서 등을 때고 차 밖으로 나왔다. 폐로 스며들어오는 공기가 시원했다. 초봄이라 아직은 서늘한 감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푸른빛은 가시고 붉은 색으로 칠해진 배경으로 익숙하고 거대한 건물이 자리해있다. 영어로 멋스럽게 ‘사천 호텔’이라 써진 것을 보며 당보는 그제야 지금이 현실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안 날 때부터 주기적으로 꾸고 있는 꿈. 최근 들어 본 적이 없어, 이제는 안 꾸려나 안심하던 찰나에 어김없이 찾아왔다.

“내일 저녁에 회장님과…….”

“안가.”

상념을 깨는 차 문이 닫히는 탁 소리를 이어 아저씨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말이 다 잇기도 전에 끊어버렸다.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 지난 일이었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얽히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 안 데리러 와도 돼. 나 잠은 친구네 집에서 잘 거고, 집은 며칠 내로 구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이리 오랜만에 돌아오셨는데…….”

“오랜만에 돌아왔으니까 그 얼굴을 더 안 보고 싶은 거야.”

트렁크에서 꺼내준 작은 캐리어를 건네받은 당보는 오랜만에 만난 기사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비록 마지막은 아니겠지만, 당분간은 못 볼 것이다.

“저……. 도련님.”

“할 말이라도 있어?”

등을 돌려 걸음을 옮기려 할 때 저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저씨의 표정을 본 순간 당보는 아저씨가 무슨 말을 꺼낼지 알 것 같았다.

“회장님은 도련님을 아끼십니다. 그러니… 나중에라도 한번 만나봐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많이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그 양반이? 그럴 리가. 날 집 밖으로 내쫓은 인간인데 설마 지가 쫓아내 놓고 그리워하겠어?”

“그래도…!”

“됐어 그만해. 이제 진짜 갈 거니까. 정 그 인간이 걱정되면 난 홀로 잘 먹고 잘살고 있다고 전해줘.”

아쉬운기세가 가득한 얼굴이 보였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이미 오래전에 정한 길이다. 비록 시작은 강제로 내몰려진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은 상관 없었다. 오히려 다행하지. 더 오래 있었다면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모를 테니까.

“그럼 간다. 또 봐.”

이제는 자신보다 더 작아진 아저씨의 어깨를 가볍게 손을 두들기고 장난스레 입꼬리를 말아 올려 웃고는 등을 돌렸다. 다시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과거였다면 한두 번 더 뒤를 돌아 손 인사라도 건넸겠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오랜만에 돌아온 조국, 대략 십년 만에 다시 보게 된 고향은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 예전엔 호텔 이름도 영어가 아닌 한자로 써져 있었고, 높이도 더 낮았던 건물이 지금은 오십층은 넘는 대형 호텔이 된 것 처럼 말이다. 세상은 변했고, 당보도 변했다.

호텔의 회전문을 통과하자 주황 불빛으로 가득 채워져 따스하게 반짝이는 홀 안이 보였다. 평일이기도 하고 아직 낮이라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아 한산했다.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니 자신을 알아본 직원 몇이 먼저 다가와 짐을 가져가고 안내를 해주었다.

그러는 동시에 점점 등짝이 따가워지는 것을 보아하니 어느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모양이다.

아마 잔뜩 꾸미고 차려입은 사람이 가득한 특급호텔에 웬 청바지에 후줄근한 후드만 입고 있으니 그런 것이겠지. 아니면 얼굴을 알아봤을 수도 있겠다.

‘그래 봐라, 봐. 아주 실컷 봐라.’

노골적인 시선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는 인간들을 비웃으며 보란 듯이 풀어헤친 긴 머리를 뒤로 넘겼다. 안내해주는 대로 VIP 전용 엘리베이터에 타고는 엘리베이터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 안에는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반쯤 묶은 건장한 사내가 있었다. 약간의 성질이 나 힘이 들어가 더 올라간 눈꼬리는 날카로우며 예민해 보였고, 꾹 닫힌 입은 고집스러워 보였다. 얕게 구겨진 미간은 신경질을 잘 낼 것 같은 게.

한마디로 성격 한번 더럽게 생겼다는 뜻이다.

큰 키와 꾸준한 운동으로 단련한 몸, 그리고 우월한 유전자를 받아 지금 사천 호텔을 광고해주고 있는 아이돌 뺨을 후려치고 남을 정도로 잘난 얼굴이지만, 정작 그 얼굴을 마구잡이로 쓰는 주인은 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거울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삐뚜름하게 웃어보았다. 그러자 망나니가 따로 없다.

‘크으~ 진짜 상종하기 싫게 생겼네.’

그래, 만만하게 생긴 것 보다는 낫지.

원래 계획은 방으로 먼저 가서 짐을 푸는 것이었는데, 원치 않게 짐을 다 뺏기는 탓에 레스토랑에나 먼저 가기로 했다.

띵-. 청아하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시에 안내를 해준 직원이 깍듯이 몸을 숙여 인사를 건네 오는 것을 가볍게 손 흔드는 것으로 받아주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다 무시할 줄 알았는데…….’

안 그런걸 보면 직원 교육에 나름 힘을 썼나보다. 하기야 어느 그룹에서 기업 회장에 장자를 막대할까. 물론 막대해서 여기 회장한테 일러바쳐도 별일은 안 일어났을 것이다. ‘사천그룹의 유일한 흠’이라고 불리는걸 그 누가 모른다고. 하여간 인간들은 걱정이 너무 많아서 문제야.

레스토랑 안에서도 직급이 높아 보이는 직원이 옆에 딱 붙어 직접 안내를 해주자 잠시 사라졌던 시선이 다시 붙기 시작했다. 이 정도 까지 친절은 필요하지도 않는데 왜 이리 열심히 하는지 모를 일이다. 나한테 잘해줘도 떨어지는 콩고물 하나 없을 텐데.

그래도 해주겠다는데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사전에 조사를 했는지 따로 시답지 않는 말을 꺼내지 않아 편하기도 했고.

‘하필 여기냐…….’

직원이 안내해준 곳은 경치를 구경하라고 한쪽 벽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사천강이 잘 보이는 명당자리였다.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이 호텔 주인의 아들인데 당연히 가장 좋은 자리로 내주려 할 것이다. 다만 당보가 바로 자리에 앉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이유는…….

‘맨날 이곳에 앉았단 말이야…….’

비록 건물을 다시 지었기에 이 자리에 앉는 것은 처음이겠지만, 적어도 가장 호화롭고 사천강이 잘 보이는 자리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크게 들리지 않는 한숨을 내쉬었다. 신세 한탄을 하고 싶었지만 괜히 직원에게 눈치를 줄 필요도 없었으니까.

어디에 앉겠느냐는 고민은 눈 깜빡하는 사이에 끝냈다. 6인 테이블에 마주 보는 상석이 두 개. 당보는 망설임 없이 가장 가까운 상석 의자를 빼고 앉았다.

가족끼리 왔다면 이 오른쪽 자리가 당보의 자리였을 터. 그러나 지금은 홀로 왔으니까.

‘그리고 난 상석을 좋아하고.’

어릴적에 중앙 자리에 앉겠다고 했다가 혼난 적이 있을 정도로. 누군가 왜 하필 그 자리냐고 묻는 다면 글쎄……. 그냥이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관심 받기를 좋아하는 종자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직원이 건네준 메뉴판을 한번 훑어보고는 이것저것 다양하게 주문했다. 실상 몇 가지 메뉴 빼고는 다 시켰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많이. 직원도 놀란 눈치이긴 한데 뭐 어떤가? 이 돈이 내 돈으로 나가는 거였으면 고민을 했겠지. 하지만 당보는 오늘 신나게 놀고 먹고 전부 외상으로 달아둘 작정이다.

어디 어느 곳에 누군가 말하였지. 공짜가 최고라고. 비록 댓가가 없는 공짜는 없지만.

‘뭐……. 꼬우면 찾아와서 지랄하든가.’

내가 무서워하겠냐, 니가 제 발로 찾아오는 게 귀찮겠냐. 누군가 들었다면 아버지한테 ‘니’라는 호칭을 쓴다고 뭐라 하려나?

근데 어쩌라고. 아버지가 아버지 같아야 존중을 해주지. 어머니한테는 꼬박꼬박 존칭을 달고 존댓말을 쓰고 있으니 자신은 효를 다 한 것이다. 날 때부터 불 속성으로 태어난걸 어쩌겠는가. 태어난 대로 살아야지.

아니, 나도 어릴 때는 까득했는데……. 부모님이 강제로 날 불 속성으로 만든 거지.

마음에 드는 결론이 나오자 당보는 홀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점점 어두워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약간 눈이 부시기는 했지만 그것도 찰나. 금세 빛은 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더 이상의 구경거리가 없을 때 쯤 사이드로 식전 메뉴들과 주문했던 와인이 나왔다.

포크를 들어 뭘 부터 먹을까 하다 샐러드를 찍어서 입안에 넣었다. 역시 비싼 곳은 음식의 기본 질 자체가 좋다. 입안에서 아삭하게 씹히는 양상추가 없던 식욕마저 증진해주는 느낌을 주었다.

샐러드를 두어번 더 먹고 옆에 있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한 맛을 뒤로 단맛이 강하게 올라온다. 평소라면 단 와인은 잘 안 찾았겠지만…….

오늘 기분이 유달리 좋지 않아 단 맛으로라도 기분을 풀어보고 싶었다.

한 손으로는 잘린 빵 하나를 집어 먹으며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폰을 꺼내 켰다. 알람에 친구들이 언제 돌아왔냐고 한번 보자는 메시지들이 여러 개가 보였으나, 전부 지워버렸다. 답장이야 하루 이틀 안 해도 문제는 없었다. 사실 한 달 동안 안 했어도 다들 그냥 당보가 당보했구나. 하고 넘어갈 것이다.

친구들의 알람을 뒤로하고 들어간 앱은 도서 앱. 소설도 보고 만화도 보는 그런 거.

앱에 들어가자 최근 유행하고 이벤트 하는 소설들이 떴다. 물론 전부 관심이 없어서 무시하고 보관함으로 들어가 가장 최근에 읽었던 소설을 켰다.

해외생활 십년에 이제는 안 읽은 유명 소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소설을 읽었던 당보가 이번에 중국에 들어오면서 보기 시작한 소설이다.

평소라면 찾아 읽을 생각도 안 했겠지만 앱에서 특별히 ‘뻔한 것을 싫어하는 당신에게.’라며 추천해주지 않았던가?

속는샘 치고 봤더니 정말 뻔하지 않는 소설이었다.

키워드도 신화 기반, 로맨스 단 두 개 뿐이고, 소개 글도 텅텅 비어있었다. 심지어 웹소설의 중심이라고 봐도 되는 그림 마저 없어서, 이런 글이 어떻게 앱에 올라오게 되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성의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으나.

그래도 추천도 받았겠다 호기심에 읽어보긴 했다. 물론 1화만 읽고 재미없으면 다음부터 알람은 절대 믿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서.

이상할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글은 꽤 재미있었다. 시간대는 세계가 생겨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에 신화 세계관으로 특이한 점은 캐릭터에게 이름이 따로 없고 전부 생명, 죽음, 지식 이런 식이나 천왕, 명왕 이런 식 으로 불린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캐릭터한테 이름도 안 지어주는 작가는 또 처음 봐서 이게 뭔가, 이렇게 성의가 없어도 되는 건가 싶었던 것도 잠시 매끄럽게 이어지는 글은 가볍게 읽기에 무척이나 좋았다.

시작은 간단한 세계관 설명을 시작으로 헷갈리지 않게 해주었고. 죽음의 신 시점으로 간략히 명계의 이야기와 함께 소설이 시작되면서, 현재의 시점은 죽음이 생명에게 명계로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하고 있었다. 지상에서 고충을 겪고 있는 생명에게 죽음이 자신이 그걸 도와줄 수 있다고 손을 내밀었고 생명은 의심도 없이 그 손을 잡아 따라 내려갔다.

이쯤 되니까 로맨스라는 키워드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주요 등장인물이 생명과 죽음 뿐이었고 집중적으로 둘의 시점과 관계를 서술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 저 둘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보통 성별이라도 있지 않나……?’

신화라고 한다면 보통 남신, 여신 이렇게 나누어 부르는데 이 소설에는 그런 거 하나 없었다. 외관의 대한 묘사는 나왔으나 신체적인 특징이나 성별을 특정할 수 있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동양 세계관이라고 머리카락이 다 검은색 아니면 갈색이라 사실 외관의 대한 묘사도 옷차림과 표정 정도의 차이 밖에 없다.

표지도 없지, 이름도 없지, 외관도 대충 썼지만 그런데도 재밌을 수 있다는 점이 참 신기하다.

달그락.

“뭐야, 언제 음식이…….”

죽음이 생명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무언가를 가져오겠다며 가버리는 부분에서 당보는 고개를 들었다. 직원이 음식을 내오며 하는 인사 덕에 집중에서 깬 것도 있었으나 그보다…….

“음?”

고개를 조금 돌리자 바로 옆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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