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보청명] 방문

메모장 by 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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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보 생환 기반 글입니다.

* 야행복이 너무 보고 싶어서 쓴 글입니다

달빛이 드리우는 처소 안, 침상이 들썩이며 크고 작은 기침을 하는 암존 당보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곧 삐덕 소리와 함께 몸이 크게 앞으로 구부러진 당보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는 입을 막은 손을 천천히 떼었다. 손바닥에 붉은 혈흔이 작게 묻어나자 그의 표정이 살짝 굳어져 자신을 덮고 있던 비단을 잡고 거칠게 닦아내었다. 동이 트면 붉게 물들어진 이것을 발견할 의약당주나 시비가 놀랄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그저 이 더러운 것을 닦아내고 싶었다.

"콜록-.. 콜록.."

전쟁이 끝난지 벌써 백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질긴 몸은 아직도 죽지 않았다. 몸 안부터 서서히 죽어가기로 한 것인지 잦은 병치로 밖의 왕래가 적어 이 처소에서 지내게 되어 바깥 상황을 알기 힘들었다. 최근 들어 들려오는 소식은 당가주가 소가주를 폐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놈들의 얼굴을... 봤어야했거늘.."

원로원 놈들의 낯짝들이 굳어져 아무 말도 못 하는 꼴을 이 두 눈에 새겼어야 했는데 피가 묻은 입가가 올가 서서히 올라가더니 곧 쏟아지는 기침으로 내려갔다. 가슴이 들썩이며 위액이 금방이라도 올라올 것처럼 격한 기침이 차차 사그지자 숨을 고르던 당보는 핏줄이 선 눈으로 달빛이 들어오는 창을 보았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저 달빛은 변함없이 밝았다. 빌어먹게도.

왜 날 살린 건가. 왜 날 죽지 못하게 한 건가.

콜록.. 콜록.. 작게 또 기침이 올라오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달빛이 너무 눈부셨다.

"괜찮아요?"

"..."

낯선 목소리에 당보의 눈이 다시 떠졌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처음 본 사내는 검은 야행복을 입고 제 앞에 서있었다. 언제부터? 기척 따위 느껴지지 않았는데?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자 머쩍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전 일단 수상한 사람이 아니에요."

"... 그런 자가 이곳에 그 복장으로 온단 말인가?"

"정말이에요. 내일 이곳을 떠나기 전에 인사차 온 거에요."

인사? 그 말에 당보는 가늘게 눈을 떴다. 기억을 더듬어 눈앞의 사내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검은 야행복을 입은 사내는 전혀 집히는 부분이 없었다. 애초에 자신을 만나러 오는 손님 따위 발길이 끊긴지 오래라 가주나 의약당주, 자신을 돌보는 시비가 여기에 오는 것이 다였으니까.

천천히 시선을 내리던 당보의 눈에 들어온 허리에 찬 검이 보였다. 검에 새겨진 문양은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매화 문양이었다. 눈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백 년 전 화산의 검과 다른 모양이지만 검에 매화를 새길 수 있는 문파는 딱 한 곳뿐이었다.

"화산?"

"..."

"자네 화산의 제자인가?"

"아, 아닙니다. 전 그저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이 넓은 당가 안에서 야행복을 입고 지나가는 ... 당보는 어이없는 답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오간만에 나온 웃음에 밖에 대기하고 있을 식솔들을 부르는 걸을 그만두고 조금만 더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입가를 손가락으로 문지른 당보는 눈앞의 사내를 보며 웃었다.

"그럼 자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지. 후회하지 않을 걸세."

"네. 들어보죠."

"하난 내 부름 한 번으로 자넨 이곳의 침입자로서 모든 당가인들에게 목이 노려질 수도 있네. 이곳에서 잘 도망친다고 해도 우린 끝까지 외지인인 자넬 쫓아가 죽 일테지."

"그거 무섭네요~"

어깨를 살짝 올렸다 내리며 태연하게 말하는 그 모습에 당보는 잠깐 말을 멈췄다. 이 모습은 전혀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건가.

"다른 하나는... 동이 트기 전까지 나의 말상대를 해준다면 이 일은 비밀에 부치. 어떤가?"

"흐음..."

팔짱을 끼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는 모습에서 조금의 고민이 보이지 않았다. 답은 하나인가. 당보의 입가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저 자가 화산의 제자인 걸 안 순간부터 입가의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오랜 친우를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곧 답이 나왔는지 눈앞의 사내는 웃었다. 입이 천으로 가려졌지만 당보는 그리 생각했다.

"말 상대해 드릴께요. 개죽음은 질색이니까요."

"잘.. 크흠 .. 생각했네."

입 밖으로 나올 기침을 억지로 참은 당보가 웃어 보이자 사내가 침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청명은 눈앞의 당보의 물음에 하나하나 답을 해주었다. 홀로 이곳에 있는 시간이 긴 만큼 당가 내부의 사정이 궁금할 터인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고민하던 것도 잠시 당보가 물은것은 그저 화산 대한 안부였다. 지난 전쟁에서 화산은 무사한지. 지금 화산의 상황은. 그저 화산에 대한 것만.

미련한 놈아.

"그런가.. 그 무당을.."

"네. 많이 놀라지 않으시네요?"

".. 매화검존이 계셨을 땐 무당은 제 밑이라 항상 그랬으니 감흥이 없구나."

"그..랬나요?"

하하하...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던 청명은 다른 말로 화제를 바꿨다. 과거의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면 당보의 표정이 가라앉는 것이 보기 힘들었다. 무당과 검총, 그리고 이곳 당가에서의 있었던 이야기가 나오자 당보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당보는 새삼 소식이 많이 느렸다. 소가주의 폐소식을 최근에 들어서야 들었다는 것에 조금 풀이 죽은 모습을 보였다.

"그런가.. 자네에게 많은 짐을 지게 했군."

"이 정도야 뭐."

"당가와 화산이 친우라... 그립구나 그리워."

눈을 살짝 감은 그 모습에 청명은 벌어졌던 입을 다시 다물었다. 이것을 그토록 바랬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당보였을 터. 자신이 이곳에서 나가기 힘들었을 때부터 가장 바래고 바랬던...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보는 청명의 주먹에 손을 올렸다. 주먹 쥔 손이 놀라 살짝 경직된 것을 당보는 미소를 지으며 눈에 담고는 조금 차가운 손가락이 크고 단단한 주먹을 쓸어내렸다.

"고맙네."

"..."

"아직 이름도 모를 자네에게 이 늙은이가 감사를 표하네. 자네를 만나게 해준 건... 우연이 아닐 테지."

당보의 몸이 앞으로 숙여졌다. 또다시 기침이 시작되는 건가 싶어 청명은 몸을 부축하려 했지만 당보의 손이 그를 제지했다. 조금씩 당보의 몸이 들썩이더니 청명의 손 위로 뜨거운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콜록-... 콜... 록..

흐르는 눈물과 함께 시작된 기침으로 몸이 들썩였다. 청명은 급히 등에 손을 올려 내력을 넣기 시작했다. 몸에 조금씩 흐르기 시작한 내력으로 기침이 조금씩 멎어가고 혈색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하자 청명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괜찮으세요?"

"..."

"곧 동이 틀 거에요. 사형제들이 기다리니 전 슬슬 가볼게요."

"..."

조용히 숨을 고르던 당보는 눈동자만 굴러 창을 보았다. 달빛이 내려앉던 어둠이 걷히고 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당보는 그제야 자신의 등을 타고 들어오는 내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따뜻했다. 몸이 조금씩 진정 되는....백 년 만이군.

청명의 손이 떨어졌다. 이 정도 내력을 줬으니 당분간 괜찮을 것 이다. 내상은 어느 정도 고쳐졌으니 앞으로는 오로지 당보의 몫이었다. 가능하다면 계속 내력을 주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으니.. 오래 산 만큼 당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가 문제지만. 아직 숨을 고르고 있는 당보를 두고 문 앞까지 간 청명은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이곳을 나가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른다. 아마 마지막일지도 모르지. 

"...소도장."

"네."

"늦었지만, 소도장의 이름을 물어도 되겠는가?"

침상 끝에 등을 대고 앉은 당보가 똑바로 청명을 보았다. 새벽녘이 창을 통해 들어오면서 청명의 얼굴을 천천히 보던 당보는 청명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마 이것이 마지막 물음이겠지. 청명은 뒤를 돌아 당보를 보았다. 입을 가리던 천을 내려 하관을 내보였다.

"청명. 화산의 청명이에요."

"... 좋은 이름이군. 난 암존 당보라 하네."

"네 알고 있어요."

그 말을 끝으로 포권을 하고 나간 청명을 눈에 담은 당보는 두시진 뒤에 들어온 의약당주와 시비의 비명에 추궁을 들었다. 이리 피를 쏟으셨으면 부르십시오! 거기 너 가서 천을 가져와서 닦아 드리거라! 당보의 얼굴과 손을 닦는 시비와 진맥을 하던 의약당주를 보던 당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의약 당주."

"네 암존."

"가주에게 내 이름으로 화산에 연통을 보내라고 전하게."

"화산에... 연통을 말입니까?"

진맥하던 손을 놓지 않고 의약당주는 의아한 눈으로 되물었다. 당보는 창밖에 날아다니는 새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은 의약당주도 오간만에 보는 웃음이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좋은 백주를 준비하고 기다리겠다고 말일세."

"그... 누구에게 보내는 겁니까? 화산의 장문인 말입니까?"

"아닐세."

참으로 기묘한 만남이지 않은가.

"청명 도장에게 보내라고 전하게."

안그렇소 도사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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