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보청명] 파주임풍(把酒臨風)

당청 합작

메모장 by 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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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바람을 타고 붉은 단풍잎 하나가 강물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 중심으로 작고 둥근 물 파동이 그려지는 것을 눈에 담은 청명은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강과 같은 푸른색의 높은 하늘, 그 하늘에 떠내려가는 듯 바람에 날아가는 단풍잎들, 술이 저절로 들어갔다. 익숙한 쓴맛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할 때쯤, 자신을 부르는 쪽으로 고개만 움직였다.

단풍과 같은 붉은 비녀를 하고 있는 남성, 당보가 청명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을 덤덤하게 보며 청명은 다시 한번 더 술병을 물었다. 그 모습에 당보는 술병을 낚아챘다. 그제야 청명은 당보를 똑바로 보았다.


"도사 형님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 기억납니까?"

"어. 대충 장로들이 문제라고 했던가?"

"…틀리지는 않았는데, 흠흠 그래서 말입니다! 그놈들이 그놈의 독이 더-.."


당보의 말을 한 귀로 들으며 청명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손엔 어느새 당보가 뺏어든 술병이 들려있었다. 또다시 자기 말을 듣지 않은 청명에게 당보는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눈을 반짝이며 보는 모습에 입가가 조금씩 올라왔다.


“도사 형님, 마음에 드십니까?”

"그래 …. 오길 잘했어."


두 사람 사이에 작게 바람이 불었다.



**✿❀ ❀✿**




오늘도 청명은 평소와 다름없이 청문의 눈을 피해 화음에 내려와 객잔에서 술 한잔하려고 했었다. 몰래 나온 거니 들키기 전에 서둘러 경공을 쓰기 위해 자세를 잡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눈앞에 녹색 장포가 들어왔다. 


“당보?”

"도사 형님!"


급한 일이 있어 당가로 돌아간다던 녀석이 제 눈앞에 있자 눈을 끔뻑거리던 청명의 앞에 당보가 코앞까지 서서 소매로 입을 가리고는 헛기침을 연신 해댔다. 고뿔이라도 걸렸나? 눈을 가늘하게 뜨고 있으니 당보는 더 크게 웃었다.

당보는 각 소매에 양손을 하나씩 넣고 다가오고 있었는데, 모습이 마치 부모 몰래 물건을 몰래 가져온 모습 같았다. 


“마침 도사 형님 뵈려 화산에 가려 했는데 여기서 다 만나네요.”

“화산에? … 너 설마 산채라도 발견한 거냐?”

“흐흐 산채보다 더 좋은 게 있습니다.”


실실 웃은 당보가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이자 무신경한 표정을 짓던 청명의 눈이 반짝였다. 당보가 보인 것은 당가 문양이 그려진 작은 술병이었다. 그 문양이 새겨진 술은 청명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건 설마…. "

“맞습니다. 역시 도사 형님, 눈치가 빠르네요!”

“이 자식! 잘했어!”


청명은 크게 기뻐하며 당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당보가 가져온 이것은 사천당가의 가주가 직접 빚은 술을 표시한 물건이었다. 보통의 백주와는 달리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독주(毒酒)로, 가주만이 알고 있는 장소에 숨겨두었는데 그 물건이 지금 당보의 손에 있었다.

그것을 낚아채 유심히 보던 청명은 당보를 보지 않고 말했다. 그 속에 감정이 


“그거 말고 더 있는 거지?”

“당연하죠! 가주가 꿍쳐놓은 걸 겨우 찾았는데!”

“좋아! 당장 화산으로 가자! 들키기 전에 얼른 마셔야지! 낄낄!”

“도사 형님 오늘은 제가 따로 장소를 알아뒀으니 따라오세요!”


하긴 화산으로 가면 자연스럽게 가주 귀에 들어가려나…?

속으로 긍정을 한 청명은 경공을 쓰며 먼저 앞서가는 당보를 뒤따라 경공을 썼다. 한참을 그렇게 달렸을까, 그들이 도착한 곳은 황하(黃河)로 이어지는 강의 나루터였다. 작은 지붕이 붙여진 배와 그 주인인 뱃사공이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자 익숙하게 배와 나루터 사이에 나무판자를 올렸다.


“배? 이번만큼은 가주한테 걸리면 죽나 보지?”


청명은 배를 뚫어지며 말하자 작게 웃음소리가 울렸다.


“그게 아닙니다. 이 당보가 이곳의 절경이 이맘때 가장 아름답다고 들으니 도사 형님이 생각나서 급하게 준비했습니다. 가끔은 이런 곳에서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죠?”

“흠…. 아름답다라…."


아직 주변에 나무밖에 보이지 않자 청명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배라... 항상 당보 녀석과 마시면 당가의 평상이나 언제나 사람이 북적이는 객잔에서 마셨었는데... 한참을 배를 보는 청명을 당보는 옆에 슬쩍 서서 팔을 툭툭 쳤다.


"설마 도사 형님…뱃놀이 처음ㅇ…“

“기어오른다?”

“아하하….”


얼버무리며 웃는 당보를 두고 청명은 배의 내부를 살펴보며 배에 올랐다. 생각보다 넓은 배에는 낮은 지붕과 낮은 작은 상이 놓여있고, 그 구석엔 술병들이 놓여있었는데 그 중 당보가 들고 온 술병과 똑같은 술병 몇 개가 놓여있었다.

찾던 것이 보이자 청명은 바로 자리에 앉아 술병을 흔들더니 입꼬리를 올려 마개를 열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입에 넣자 당보가 서둘러 말리는 소리가 들렸고, 마지막으로 오른 뱃사공이 천천히 노를 저어 움직였다. 청명은 옆에 놓인 술병을 쥐고는 고개를 돌려 절경을 눈에 담았다.




**✿❀ ❀✿**



청명의 표정을 확인하고 만족한 웃음을 짓던 당보는 한쪽 소매를 잡고, 강물에 손을 살짝 집어넣었다. 배의 움직임에 맞춰 손을 타고 작은 물길이 만들어지더니 단풍 하나를 건져내곤 청명의 얼굴과 번갈아 보았다.


"가끔은 이렇게 마셔야죠. 허구한 날 객잔에 마셔도 이 맛이 안 날 겁니다."


청명은 당보의 말에 끄덕였다. 처음엔 그저 나무와 강밖에 없던 곳에서 얼마 안 가 커다란 강줄기를 중심으로 주변의 커다란 돌 절벽과 그 높은 곳에서 자라고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와 강가에 있는 계절에 맞게 붉게 변한 단풍나무가 장관을 이루었다.

당보는 아까전 건져낸 단풍을 청명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술로 인해 붉은 볼과 단풍이 같아 보여 웃었다.


“누가 단풍인지 모르겠네요.”

“술병으로 대가리 깨지고 싶으면 계속 말해.”

“자 그럼 저도 그럼 슬슬 나도 마셔…. 아?"


단풍을 던져버리고 술병을 찾는 시늉을 하던 당보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분명 한가득 실은 술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중에 가주가 빚은 술병도 보이지 않자 당보는 급하게 청명을 돌아보았는데, 그의 발치에 굴러다니는 병들을 눈 씻고 봐도 저것은 분명한 당가 문양이었다.

설마 지금 저 양반이 얼굴이 붉은 건 저걸 혼자서 다 마셔서?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저 독주를 다 마셨다고? 저번처럼 쓰러지려고? 그 전에 이 말코가…. 내 몫은 안 남기고 그걸 다 처먹어? 당보는 혹여나 조금이라도 남아있을까 굴러가는 술병을 하나하나 주워들었지만 역시나 다 빈 병이었다.


"출발한 지 아직 한 식경도 안됐는데 그걸 다 마셔요?! 그 많은 양을 혼자서?!"

"너 오래간만에 보더니 내 주량을 그새 잊었냐? 고작 이 정도 양으로 마시자고? 새로 가져와!"

"여기서 무슨 수로 가져와요! 그걸 왜 혼자서 다 마시냐고! 이 말코가!"


찰랑- 찰랑-

당보의 언성에 청명은 쥐고 있던 병을 흔들며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다시 병을 입에 물었다. 손가락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당가 문양, 그 모습에 놀라 당보는 청명의 손에 들린 병을 서둘러 뺏어 들어 병 입구를 거꾸로 들어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지만, 그새 마지막 한 모금을 마셨는지 작은 술 방울이 몇 번 떨어지더니 더는 나오지 않았다.

당보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손을 얼굴에 덮었다. 이 말코가 단단히 사고 쳤구나…. 당보는 몸을 돌리지 않고 뱃사공을 불렀다.


"하…. 뱃사공 미안하지만, 뱃머리를 다시 돌리게."

"네? 벌써 말입니까? 출발한 지 아직 한 식경도 안된 거로 압니다만…."

"급한 문제가 생겨 우선 돌아가지. 내 값은 두배로 내겠네."


값을 준다는 말에 결국 뱃사공은 짧게 대답하고는 노를 가던 방향과 반대로 저었다. 물살이 바뀐 것을 확인한 당보는 청명의 옆에 힘없이 앉았다. 우선 약재를 조금 구해보는 게 나을까. 저번처럼 쓰러진다면..

당보의 표정을 살피던 청명이 당보의 어깨에 팔을 둘러 자신의 품에 넣었다. 뺨에 익숙한 감촉이 느껴지자 살짝 주먹을 쥐어 가슴을 쳤다. 아야…. 아프지도 않잖아요. 


"그걸 몰래 가져오느라 고생했는데 그걸 다 마셔요? 혼자서?"

"맛있더라. 잘 가져왔네."

"맛있 … 뭐 입에 맞았다니, 아니 그전에! 몸은 괜찮아요!?"


당보는 다급하게 청명의 얼굴 목을 차례대로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도복 옷깃을 약간 젖혀 그 안쪽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독에 중독된 증상이 보이지 않자 잡고 있던 옷깃을 놓고는 바르게 놓고 고개를 숙였다. 그때는 의약당이 근처에 있어서 다행이지 이 강 한가운데에 이 말코를 아무런 약초도 없이 해독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그때 당보의 손을 덮어오는 온기가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청명이 당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당보는 다시 제 손을 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떨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

“괜찮아?”

“…네. 누구 때문에 제 명에 못 살 것 같지만.”

“흐음 이거나 마셔라.”


청명이 건넨 건 익숙한 술병이었다. 도사 형님과 만났을 때 내가 보여줬었던, 저 문양은… 당가…?

당보는 눈이 커진 채로 청명을 응시했다. 청명은 당보의 시선을 피한 채 목덜미를 매만지며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남겨뒀어. 그건 너도 마시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도사 형님.”

“이 형님밖에 없지?”


낄낄 웃는 청명을 보며 당보는 벌어졌던 입을 겨우 다 물었다.

그때 뱃사공이 도착을 알리는 말과 함께 배의 움직임이 점차 느려졌다. 청명이 술병 마개를 열고 마시려는 걸 당보의 손이 막았다. 눈썹을 까딱한 청명은 당보를 보자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사 형님."

“엉?”

“잠깐, 이 당보와 어울려주세요.”


어울려? 청명이 이해하기 전에 당보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왔고 곧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조금씩 눈이 커진 청명과 달리, 당보는 그 모습을 보며 눈웃음을 짓고는 떨어졌다.


"뭘 그렇게 놀랐어요."

"ㄴ…너! 이런 곳에서 그걸 하고 싶어?!"

"하하. 뭘 새삼스럽게…."


잠시 뒤 배가 나루터에 도착하고 뱃사공이 나루터와 배 사이에 나무판자를 두는 소리가 들렸다. 홀로 배에 내린 당보는 뱃사공에게 근처 객잔과 약초방의 길 안내를 부탁했다. 뱃사공은 짧게 읍하며 당보의 뒤를 따라가다 아직 일행이 한 명이 내리지 않은 걸 깨닫고는 당보를 조심히 불러세웠다.


"저 손님. 실례지만 도사님은 홀로 두어도 괜찮습니까?"

"아…. 그 양반은 괜찮네. 뱃사공, 근처에 회과육을 잘하는 곳도 있는가?"

"네. 안내하겠습니다."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한 뱃사공은 서둘러 발을 움직였다.

아까 일로 술이 완전히 깨버린 청명은 홀로 배 안에 남아 누워있었다. 하늘은 변함없이 푸르렀다. 당보가 쥐고 있던 단풍을 잡고 손으로 돌리던 청명은 당보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잠깐은 무슨.”


그 장난스러운 얼굴과 달리 녀석의 귀는 이것과 같은 색이었다. 코웃음을 치고는 하나 남은 술병을 흔들었다.


“누가 단풍인지 모르겠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내 단풍은 언제 오려나.”


곧 뱃사공과 함께 술병들과 안주, 혹시나 모를 약초를 준비한 당보가 몸을 휘청거리며 배에 오르자 배가 물길을 만들며 나루터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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