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컾] 망자들이 돌아오는 날.








   * 제 2차 정마대전 시점 날조.

   * 보고 싶은 장면만 이어놔서 개연성 X. 어색한 구간 많습니다. 마무리도 망한 듯 합니다.

   * 여러가지 주의.











   그러니까, 이런 날이 오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면 분명 거짓말일 터였다.

   그 예감은 정말이지 끔찍할 정도로 선명하게 청명의 등줄기를 훑어내렸다. 사방으로 비명소리와 병장기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한데, 기이하게도, 그 발걸음 소리들은 청명에게만 너무 또렷하게 다가왔다. 마교도를 하나 더 베어낸 청명이 헐떡이는 숨을 뱉으며 빠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헐떡이는 그의 숨이 고요해졌다. 다른 이들이라면 간신히 사람의 형태만 알아볼 수 있을만한 거리였음에도, 청명에게는 마치 제 바로 앞에 선 양, 그들의 면면이 너무 확연하게 보였다. 아래로 맥없이 늘어진 암매검의 검날을 따라 핏물이 바닥으로 똑똑 떨어졌다. 등을 내보이는 청명을 향해 마교인 하나가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당연하게도 휘둘러져야할 청명의 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마교도를 갈라버린 것은 백천이었다.

   "이…! 대체 뭐 하는 거냐!"

   적잖게 놀란 듯 큰 소리를 낸 백천의 말끝이 살짝 떨렸다. 하지만 청명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그저, 그저 어떤 것에 모든 신경과 감각을 빼앗긴 사람처럼. 어느 새 두 사람 곁으로 모여든, 육검을 비롯한 화산의 제자들 역시도 청명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청명의 시선이 못 박힌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젠 제법 가까워진 인형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그걸 제대로 된 사람의 형태라 말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삐그덕 거릴 것 같은 몸짓으로 이곳으로 다가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부족해보였다. 그게 팔일 수도 있었고, 머리의 반쪽일 수도 있었으며, 다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화산의 제자들을 제일 경악하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낡고 넝마가 되어버린 옷이지만, 화산의 제자라면 저것을 알아보지 못 할리 없었다.

   도복의 가슴께에 피처럼 피어난, 붉은 매화. 화산의 도복.

   그것을 깨닫자 이가 절로 갈렸다.

   "이, 미친, 자식들이!"

   분노에 찬 목소리가 씹어뱉듯 내뱉어졌다. 마교라는 작자들이 정신이 나가버린 미친놈들의 집단인 것은 이미 뼈져리게 느꼈다. 하지만, 설마, 십만대산에서 원통하게 눈을 감아야했던 선조들의 영면을 방해하고, 이딴 식으로 그들의 육체를 농락하리라곤 생각치도 못했다. 그들의 검을 쥔 손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절그럭 소리를 내며 떨렸다.

   그리고, 동시에, 작게 흐,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게 웃음 소리인지, 흐느끼는 소리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천천히 떨군 청명이, 빈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어깨가 덜덜 떨리기에 우는 것인 줄 알았으나, 곧이어 터져나온 발작적인 웃음 소리에 모두가 굳어버렸다. 온 몸을 들썩이며 웃어대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서 청명을 나무라는 이는 없었다. 그 모습은, 그리 웃어 젖히는 청명의 모습은, 마치 온 몸으로 처절하게 절규하며 울부짖는 것 같아서… 그 기이한 모순에 사로잡힌 이들은 그저 그런 청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끅끅 거리며 웃음을 흘리던 청명의 웃음 소리가 어느 순간 멎었다. 고개를 든 청명의 표정을 본 백천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지금까지 청명이 화를 내며 분노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고 생각했건만……. 지금 청명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살기를 짙게 뿌리며 분노하고 있었다. 그 살기가 저를 향하는 것이 아님에도, 육검은 물론이고 근처에 있던 화산의 제자들 마저도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였다.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그래, … 이 개자식들아."

   목구멍을 긁어내는 듯한 거친 음성이 흘렀다.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냐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터였다. 자신이 돌아온 이후 화산으로 돌려보낸 육신은 겨우 하나였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은 정말로 십만대산에서 온전히 뼈를 묻었을까?

   그것에 대한 답이 지금 제 눈 앞에 있었다. 빙궁에서도, 그 미친 놈들의 헛짓거리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애써 그 가능성을 보지 않았다. 외면했다.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죽음을 농락하는 것 같은, 견딜 수 없는 감각이 제 숨통을 조였으니까. 그리고, 그 외면했던, 외면하고 싶었던 최악의 상황이, 그의 눈 앞에 지옥도처럼 펼쳐져 있었다. 속에선 불길이 치솟는 것처럼 고통스러운데도, 몸과 머리는 차갑게 식어갔다.

   "청명아……."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청명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그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뒷모습이 이리도 낯설 때가 있던가? 늘 자신들을 이끌어주던 등이, 마치 그들이 넘어갈 수 없는 선 너머로 성큼 멀어져버린 것 같았다. 좀처럼 감정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던 이설이 그의 등으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제대로 손이 닿기도 전, 청명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뻗어지던 손길이 멎었다. 뿌리쳐진 게 아닌데도, 어쩐지 거절당했다는 느낌을 견딜 수 없어서… 이설은 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여기에 있어."

   분명 자신들을 향한 말일터였다. 눈을 동글게 뜨던 이들이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 검을 고쳐쥔 청명이 바닥을 박찼다. 청명아! 비명처럼 불린 이름을 등지고, 그가 검은 빛살처럼 달려나갔다.



   알고 있다. 더 이상 인간의 언어를 뱉을 수 없는 저것들은, 자신이 알던 이들이 아니다. 죽음을 맞이한 그 순간의 모습이 그대로 박제된 체로, 삐걱이며 움직이는 저것 들은…….

   "……."

   알고 있는데. 머리로는 전부 이해했는데. 그런데. 

   왜…?

   그들의 얼굴을 가까이서 마주하는 순간, 환청처럼, 저를 불리우던 목소리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누군가의 사숙이였고, 사형이였고, 사제였으며, 친우였던, 제 이름을 그들이 불리었다. 뻐끔대며 벌어진 제 입술은 기어코 모든 소리를 삼킨 체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했다. 청명의 얼굴이 보는 사람마저 미어질 정도로 고통스레 구겨졌다.

   안다. 이대로 시간을 끌수록 고통스러워지는 것은 그들이였다.

   그럼에도, 그래도…….

   이건, 나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청명이 낮게 웃는 소리를 냈다. 망설임 없이 베어낼 수 있을거라 자만했던 스스로에게 흘리는 비웃음이였다. 피로 얼룩져 생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그들의 얼굴에 자꾸만 과거의 잔상이 겹쳐진다. 쥔 칼 끝이 떨린다. 눈 앞이 부옇게 흐려지자, 고통스러운 신음을 삼켰다.

   나는, 정말 이들을 베어내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나?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였나?

   답을 찾지 못한 물음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기괴한 소리를 내며 달려든 것을 몸을 돌려 피했다. 제기랄, 빌어먹을. 욕설을 씹어뱉으며 다시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저 저들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 따위, 는.

   "……."

   거세게 휘둘러진 검 끝이 겨우 그것의 옷자락을 스치듯 베어냈다. 동시에 지독한 무력감이 저를 짖눌렀다. 이렇게나, 끔찍한 감각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였다. 이제는 자신을 씹어먹을 듯이 달려드는 것들을 피하는 게 전부였다. 달려드는 얼굴들이 전부 익숙했다.

   "나더러……."

   날카롭게 벼려진 손톱이 청명의 뺨을 거세게 할퀴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볼을 타고 흘러내린 핏방울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뺨에서 흐르는 게 눈물인지, 핏방울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나더러, 어떡하라고……."

   떨리는 목소리 탓인지, 흐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청명의 걸음이, 물러나면 물러날수록 흔들렸다.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그의 몸이 새겨지는 상처는 늘었다. 간신히 공격을 막아낸 청명이 숨을 거칠게 허덕였다.

   "하, 헉……."

   장문 사형. 나는, 끝까지 못난 놈인가 봅니다. 끝까지. 사형에게, 사질에게, 사제에게, 친우에게, …… 그들에게 안식을 줄 용기조차 없는 나는.

   청명아.

   환청처럼 불리운 이름에 고개가 퍼뜩 들렸다. 안타깝다는 듯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음에도, 그럼에도, 저를 보며 흐리게 웃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무어라 입을 떼기도 전, 그가 먼저 입을 떼었다.

함께 돌아가자, 청명아.

화산으로 돌아가자. 그곳이 그립구나.


   눈물이 다시 왈칵 새었다. 그가 말하는 화산이, 그 옛날의 화산이 아님을 알아버려서……. 대답 대신, 참았던 울음이 잇새를 비집고 터져나왔다. 온 몸을 떨며 흐느낌을 뱉어내는데도, 저가 쥔 검은 되레 고요해졌다. 다시금 땅을 박찼다.

   푹.

   날 선 검이 그것의 가슴께를 꿰뚫었다. 바람 빠지는 듯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들리며 그 몸이 허물어졌다. 받아낸 몸에서 검을 뽑아내고, 곧장 움직였다. 하나하나, 익숙한 얼굴을 눈에 새기며 검을 휘둘렀다. 그들의 웃음 소리가 겹쳐들었다.

   내가 반드시 와줄거라 믿었다던 목소리.

   내가 그 녀석들과 일궈낸 화산이 보고 싶다는 목소리.

   약속을 지켜주어 고맙다는 목소리. 그리고…….



   청명아, 고생했구나.



   간신히 끌어올려진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눈물에 얼굴이 흠뻑 젖어가는데도, 웃었다. 있는 힘껏.

   "알면 됐소……."

   마지막으로 틀어박힌 검에, 주위가 고요해졌다. 묵직하게 쓰러진 몸을 받아들며 주저앉았다. 간신히 유지하던 표정이 와르르 무너지며 울음이 터져나왔다. 차갑게 식은 몸을 끌어안은 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그렇게 울음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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